서울대 신입생들의 서재
2023학년도
서울대학교 신입생들의 서재
독서는 힘이 셉니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지식을 배우고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책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며 동시에 겸손하게 합니다.
2024학년도 서류평가부터 학교생활기록부의 독서활동사항이 반영되지 않고 자기소개서가 폐지되어 지원자의 의미 있는 독서경험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가 독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독서활동목록과 자기소개서가 없어도 지원자들이 독서를 통해 쌓아 올린 지적인 역량은 학교생활기록부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책은 여전히 중요한 배움의 도구이며 독서로 쌓아 올린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의 서재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던 학생들의 지적인 여정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으며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체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고하며,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모습 등을 통해 한 사람의 사유가 점점 더 풍성해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여전히 독서를 통해 생각을 키워온 큰 사람을 기다립니다.
자연과학대학 새내기 C의 서재 책은 가장 작고 정제된 외부 세계이기도 합니다. 책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세계를 가장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이며, 온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현재까지의 매체 중 가장 정제된 형태의 지식과 의견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텍스트로만 전할 수 있었던 것들을 현대에는 사진, 소리, 영상 등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이론적, 사상적, 기술적인 내용들은 여전히 텍스트를 거치지 않고서는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추상적인 내용과 지식들은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고, 때로는 책으로만 접할 수 있습니다. 각 학문분야의 최전선을 달리는 내용을 담은 논문은 책, 문서의 형태로 출판됩니다. 고차원적인 지식과 담론을 제대로 습득하고, 또 그러한 지식의 생산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그 내용을 담은 그릇이 되는 책과 텍스트라는 매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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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칼 세이건 (홍승수)
사이언스북스
여러 책을 두루 읽던 과정에서 읽게 된 책으로,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제가 진로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 고대의 천문학으로부터 현대의 탐사선들까지, 지금까지의 인류의 지적 탐구와 그 경이로운 성과를 기반으로 사고를 확장시켜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을 도맡고 있다는 생각을 제게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이 책에 나온 학자들 중에서도 근원적인 원리로부터 이론의 체계를 구성함으로써 과학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던 뉴턴의 업적이 가장 빛나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 자연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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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유영미)
서커스출판상회
물리학과로의 진학을 고려하게 되자 과학자 사회의 모습과 그들이 연구하는 방식이 어떤지 궁금해지게 되었고, 위대한 과학자가 쓴 자서전으로부터 그에 관한 좋은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와 그 주변 인물과의 과학적 사실이나 철학적 해석에 관한 문답은 제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었고, 양자역학 성립기의 대화로부터 미지의 현상을 마주한 과학자들의 태도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대목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저로 하여금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과학대학 새내기 K의 서재
저는 독서를 통해 깊이 있는 학습을 하고, 다양한 지식을 얻어 관점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학교 수업은 여러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진행되므로 학습내용을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게 되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학습의 여지를 남겨두게 됩니다. 이때 학교수업에서 배운 내용 중 좀 더 흥미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면 독서를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책에는 사고가 유도되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이를 읽으면서 자신이 지닌 사고의 비약을 줄이고 엄밀한 논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과서에 제시되는 사실들은 그것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롤스의 정의론이 어떤 사상적 배경을 바탕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학교수업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 사상적 배경을 살펴본다면 새로운 생각,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과정도 알 수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습니다.
책은 다양한 지식을 집적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전반에 걸친 지식이 필요하며,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책에 모두 복합적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독서는 생각의 재료를 제공해주므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책을 읽으며 권리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알게 되었다면 '소득 재분배는 정의로운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스스로 근거를 들어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혹은 직접적으로 소득 재분배의 정의를 다루는 책을 읽으며 타당성을 따져 자신의 입장을 정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나면 이후 글이나 말로 생각을 표현할 때 매끄럽게 표현이 가능합니다. 학교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발표를 할 때, 혹은 면접을 볼 때, 독서를 통해 갖춘 지식이 많으면 이를 활용해서 다양한 의견을 원활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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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선택론
김성준
박영사
이 책을 읽은 후 정치의 경제학적 접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행정가는 어떻게 행위하는가?'와 같이 여러 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경제학을 단순히 시장뿐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경제를 좁은 의미로 생각했기에 더욱 논리적인 분석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후 경제학을 '선택과 대안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생각하며 경제학적인 '접근'을 학습하였습니다. 선거 이론, 법경제학, 지방자치 등을 다양한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였습니다. 지역 간 불평등이 현재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자원의 불평등이 문화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경제학을 배우며 해결 방안을 탐색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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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혜겔의 철학
백종현
아카넷
삶의 방향과 관련하여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칸트의 사상입니다. 특히 이 책은 사상을 깊이 알려주며 많은 생각을 이끌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으나, 지향점으로는 결함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쾌락주의. 저는 행복이 과연 삶의 목적인가에 의문이 있습니다. 행복감은 호르몬에 의한 보상으로서, 생존에 유익하기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생존의 목적을 지니는 한 가지 동기에 불과합니다. 반면 이성을 갖춘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는 생존 이외의 많은 과제가 있습니다. 인간을 목적으로도 대하라는 칸트의 말처럼 존엄성을 보장하고 각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반을 이루는 것이 경제학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범대학 새내기 K의 서재
책은 읽어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그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생각의 무한한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정립하고 무너뜨리고 또 정립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저는 독서를 통해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하면서 제 도덕관과 세계관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깊어진다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심이 자라난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관점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줍니다. 독서는 세상의 어려운 일들을 좀 더 높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둘째는 정보의 다양성과 지식의 깊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다룰 수 있는 학문의 깊이는 한정적입니다. 좋아하는 과목, 내용, 주제가 있다면 관련 책들을 찾아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지식에 대한 욕구를 채워본다면 그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저의 경우,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었던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이 얕은 교과서 공부에서도 깊이 있는 연결성과 내용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주었고,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 공부가 힘들 때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싫지 않게 해준 원동력이 되어주면서 동시에 지엽적인 것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관심 가는 주제가 있다면 관련 도서 한 권을 읽어보는 것이 그 분야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시험기간, 모의고사 기간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여 보통 250~350p 정도 되는 책을 하루에 50~60p씩 읽어가며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였습니다. 독서는 학교생활기록부용이 아니라 삶을 더 진정성 있고 가치 있게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책은 시간이 나면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하는 것이고, 이런 깨달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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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험
이혜정
다산4.0
이 책은 교육에 막연한 물음을 던지고 있던 저에게 교육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열의를 안겨주었습니다. 저자는 수업을 바꾸려면 평가부터 바꿔야 한다며 결과중심적인 시스템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었고 객관식 시험은 공정성 영역에서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의문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IB시험 형태를 참고하며 서술형 시험의 도입에 있어 그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그것이 결코 허황된 꿈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또한 지적 성장이란 단순히 지식의 양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이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며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선결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독서 교육과 토론 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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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리바이어던
요차이 벤클러 (이현주)
반비
경쟁 사회에 대한 칼럼을 읽고 글을 쓰던 중 '건강한 경쟁'의 존재 여부에 대해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갈등과 대립, 번아웃과 우울로 질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협력 정신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벤클러 교수는 협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대화라고 소개하였는데, 우리나라 교육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 토론 일상화의 부재라고 생각했던 저는 교육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교육자의 길을 걷는 데 더욱 사명감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협력을 불러일으키는 대화는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여 자율동아리 시간에 5분 안부 묻기 시간을 넣는 등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이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범대학 새내기 J의 서재
2024학년도부터 독서활동이 서류평가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대학에 잘 보이기 위한 장식으로 독서기록을 이용하기보다 저자의 시선을 빌려 넓은 세계를 이해하는, 독서 본래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돌이켜보면 독서만큼 생각의 깊이와 지평을 넓혀준 학습 활동은 없었습니다. 독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었습니다.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실들, 내가 모를 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일들을 알게 해준 것이 바로 독서였습니다. 저의 경우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데에 독서가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인공지능, 뇌과학, 진화심리학, 아동발달, 삶과 죽음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욕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혼자 생각하는 것을 넘어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으며 제 생각을 다져나갔습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독서 토론 소모임을 만들어 매주 직접 발제한 주제에 대해 분야를 넘나들면서 토론했던 경험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제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면접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독서는 더 이상 직접적인 평가 요소가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깊이 있는 탐구와 사고를 해본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의 다양한 방면에서 '책 많이 읽은 티'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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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이민아)
디플롯
'왜 교육하는가?'라는 질문은 앞으로 제가 어떤 교육학자로 나아갈지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 꼭 답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교육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던 제게 '천문'이라는 힌트를 주었습니다. 천문은 타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인지능력과 이를 갖추기 위해 급속도로 성장하는 뇌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화에 용이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우리의 뇌는, '인간다움'이 협력과 상생에서 시작함을 시사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교육의 근본적인 이유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내재된 자질을 끌어내는 것'이라 결론지었고, 그 '인간다움'을 우선시하는 교육학자가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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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이경신
동녘
궤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1등급을 맹목적으로 좇은 것도 그 강박에서 비롯된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 번아웃의 공허함에 '공부를 왜 했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떠올려야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깨달은 건 인생에는 어떠한 의미와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의미와 가치는 부여하기 나름이었습니다. 저는 주체적인 삶을 최고의 신념으로 설정했습니다. 주체적이려면 '나'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사유를 하는가, 나는 왜 주체성에 집착하는가. 하지만 아직 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은 '나'입니다.
인문대학 새내기 H의 서재
한 권의 책은 단순한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있고 (종이책의 경우) 저마다의 얼굴과 질감을 가진 유일한 존재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행간 너머의 의미를 추리하기도 하고, 활자 바깥에서 저만의 고유한 의미를 창출하기도 합니다. 꼭 읽고 있는 내용에 관해서가 아니더라도 무슨 생각이건 끊임없이 하게 되고요. 모든 예술 작품과 미디어가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오래 들고 다녀 너덜너덜해진 책 한 권이 적어도 저에게는 가장 밀도 높은 생각의 체험을 제공하는 사물입니다.
또 독서는 저만의 속도로 타인을 상상하고 타자를 향하게 합니다. 비단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하는 경험입니다. 화학자였던 아우슈비츠 생존 저자가 원소의 이름을 챕터의 제목으로 삼고 증언할 때(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을 상정한 고전 경제학이 어떻게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배제했는지를 기자의 눈으로 경쾌히 짚어낼 때(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양자역학을 사랑해 물리학자로 살아온 저자가 자연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인간의 경이를 말할 때(김상욱 <떨림과 울림>) 국적도 연령도 성별도 제각각인 저자들의 글을 저는 제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자세로 만날 수 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그나마 여유가 허락된 휴일을 그렇게 보내며, 저는 제가 입시에 찌든 수험생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책을 덮었다가 아무 때고 다시 펼치기도 하고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는 불가능하거나 달갑지 않은, 자유로운 ‘멈춤’이 책을 읽을 때는 가능합니다. 이것은 한시라도 멈추기가 곤란한 오늘의 우리에게 각별히 소중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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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주 (김갑수)
글항아리
단순한 우화와 유려한 문장에 담긴 전복적인 사유로 충격을 주었고, 이를 통해 타자를 향하는 태도를 가르쳐준 책입니다. <논어집주>와 <대학장구>를 한문 원전으로 읽는 공부를 하면서 때로는 성리학적 해석이 답답했습니다. 이에 반해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장자>를 읽으면서는 해방감을 느꼈고, 문학도로서 기존의 통념과 사상에 의문을 던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자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과는 달리 가상의 공자가 제자들을 버리고 자연에서 동물들과 어울리는 우화가 있는데, 이는 동등한 위치에서 타자와 대면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스스로가 지닌 차별과 편견을 인정하는 것이 수평적 연대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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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The Ethics of What We Eat)
피터 싱어, 짐 메이슨 (함규진)
산책자
생활과 윤리 과목을 공부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할 것을 주장한 싱어의 실천 윤리학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현대 공장식 축산업의 잔혹성을 폭로한 이 책을 읽고, '불완전한 실천도 의미가 있다'는 대목에 용기를 얻어 비거니즘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1학년 국어 시간에 '신의 방'을 배운 뒤 작품이 지향하는 생태적 순환의 논리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에 드러난 전체론적 자연관이 동물을 도살하고 착취하는 인간의 폭력성을 은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환경 문제와 비인간 동물의 고통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생태적 차원에서의 조화와 개별 생명체의 권리를 모두 중시하는 지속 가능한 생활 양식을 스스로 정립하게 해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