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신입생들의 서재
2017·2018학년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왜 서울대학교는 독서를 강조하는가. 이 물음은 어쩌면 그르다. 인과관계 내지 문답의 선후가 뒤바뀌었기에.
매년 입학본부는 상당수 신입학생을 만나고, 재학생 전원의 추이를 분석한다. 그 중 유독 살펴보게 되는 일군의 학생이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독서가 아닐까 싶다.
평론가 신형철은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간다. 책읽기란 그런 것이다. 내게는 그 무엇도 이 일을 대체하지 못한다.”
독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자아의 외부에 관찰의 안테나를 쭉 펴는 행위이다. 시작은 일단 읽는 것이다. 읽었는가. 유심히, 세밀히? 자문해도 별다른 의심이 없다면, 그럼 내면의 자아는 이차적 독서를 시작한다.
한데, 이차적 독서라니? 언제 어디선가 영화감독 이창동은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좋은 영화는 영화관을 나온 이후에 시작된다.” 책이 영혼에 각인되면 성찰의 더듬이는 그 내용을 곱씹게 되고, 그 끝에서 아직 해명되지 않은 무엇을 호명한다.
더듬이(성찰)의 호명은 안테나(관찰)로 되먹임 되고, 문제의식과 연관된 무엇을 잡아내는 안테나의 심도와 지평은 그만큼 개선된다. 인식의 개안이다. 이 여정에 들어서면, 이제 손에 잡는 책은 점진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단단해진다. 곧장 하이젠베르크나 헤겔을 읽을 순 없다. 3kg의 아령을 들다, 덤벨을 팽개치고 바로 181kg 역기를 들어 올리는 것은 불가하지 않은가.
고전이라, 책을 읽었다는 언행은 다소 의문스럽다. 유의미하게 양서를 넉넉히 담아둔 학생들의 공통점은 면접에 강하다는 것인데, 과시용 장서로는 어떠한 위력이나 매력도 발산하지 못한다. 한 꺼풀만 들추어도 금세 탄로가 난다. 어느 학생의 증언대로 “왜냐하면 그렇게 머리에 욱여넣은 것은 제 게 아니니까요. 면접은 뭐랄까, 체화된 육성이에요.”
자기소개서는 학생의 육성을 담는 유일한 텍스트다. 이 텍스트는 학생부를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환하는 각별한 힘이 있다. 그대는 볼테르를 아는가. 불온한 이성의 빛으로 1789년 대혁명의 주춧돌을 올린 볼테르의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다. 살롱을 드나들며 귀족을 친구라 여겼던 평민. 자신을 놀잇감 삼는 자들에게 결투를 청했으나 되레 바스티유 감옥에 처박힌 불운한 문인. 불운이 불온으로 변모한 사연은 학생부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미크로메가스』나 『깡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다시금 살펴보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자기소개서 4번의 ‘매직 솔루션’은 없다. 모집단위 유관 전공서와 교양서의 배합이나 인문과 과학의 비율, 원서와 역서의 섞임 등은 모두 지적 도량과 수준을 가늠케 하는 결정적 인자가 아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부단히 안내하듯 대학 입학에 유리한 책은 없다. 어찌 그 책의 존재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누군가의 해제와 서평과 요약으로 핵심을 찌른다 한들 손을 들어 줄 수 있겠는가. 고교시절 견지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향한 탐구활동에서 조우한 책이 아니라면 공명(共鳴)은 요원하다. 이것이 [단순한 내용 요약이나 감상이 아니라] 도서 선정 이유를 묻는 본뜻이다.
자기소개서 4번의 도서 3권은 현학을 뽐내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책의 선정 이유 즉, 자신의 안테나와 더듬이로 체화한 책과 만나는 장소이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에 따르면, 공간(space)과 달리 장소(place)엔 의미와 소통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 창밖의 풍경 같은 독서에 울림이 있을 리 없다. 하여 「서울대학교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책자에는 아래의 문장이 해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등장한다.
“타인에 의한 수박 겉핥기식 독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 책이 나에게 왜 의미가 있었는지, 읽고 나서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생각하기 바랍니다. 서울대학교는 독서를 통해 생각을 키워온 큰 사람을 기다립니다.”
2018학년도 수시모집 지원자 수는 18,871명이었고, 이 가운데 14,127명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였다. 자기소개서 4번에는 1인당 도서 3권을 적을 수 있어 산술상 최대 42,381건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나 162건 적은 42,219건이 수합되었다. 총 42,219건 중 여러 명이 기재한 책은 1권으로 간주하여, 언급된 도서 수를 집계하면 약 14,204권으로 추정된다(여기서 굳이 ‘추정’이란 어휘를 고른 까닭은 단순 오기로 인해 같은 책을 다른 책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을 감안해서다).
반가운 점은, 단 1명만 기재한 이른바 미중복 도서 수가 2014학년도 8,700권 정도에서 차차년도인 2016학년도부터 줄곧 9,400~9,600권 수준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2017학년도 기준으로 대략 4.4권 중 1권은 겹치지 않는다는 뜻인데 ‘내 인생의 책이 서로 다르다’는 건 공동체의 외연 확장과 무관하지 않은 기분 좋은 신호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할 만한 징후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표 1] 2017ㆍ2018학년도 자기소개서 도서 기재 현황
| 수시모집 | 지원인원 | 자기소개서 제출 지원인원 |
자기소개서 4번 내용 기재 건수 |
총 기재 도서 수 | 미중복 도서 |
|---|---|---|---|---|---|
| 2017 | 18,819 | 14,066 | 42,098 | 14,191 | 9,542 |
| 2018 | 18,871 | 14,127 | 42,219 | 14,204 | 9,467 |
2017ㆍ2018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스무 권. 우선 눈에 띄는 바는 1~4위가 똑같다는 것과 무려 열여덟 권의 도서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백분율로 환산하면 일치도가 90.0%에 이른다. 상이한 도서는 단 두 권인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대신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 새로 오르고,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자리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꿰찼다. 부동의 1위 『미움받을 용기』의 기재 수가 400회 안팎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추천도서 목록과 시중 판매량에 따라 자기소개서 4번이 작성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세태를 반영하듯 『사피엔스』는 8계단 올랐고,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은 7배가량 인용 수가 늘었다.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하여 미세한 변화지만 디스토피아의 음울함이 감도는 『멋진 신세계』와 『1984』가 3계단씩 동반 상승하였다. 저마다 유의미한 책일 테지만 고등학교 3년, 아니 12년간 축적한 ‘나만의 지성사’가 시류에 표표히 흩날리는 건 무색한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요 예비 신입생은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아니다. 그대들이 사회의 중추가 되는 시점은 4차 광풍 이후요, 그 책무는 5차 혁신이다.
[표 2-1] 2017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20권
| 순위 | 인원 | 제목 | 순위 | 인원 | 제목 |
|---|---|---|---|---|---|
| 1 | 385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 11 | 179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 2 | 342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쟝 지글러 | 12 | 175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
| 3 | 268 |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 13 | 154 |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
| 4 | 248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 14 | 152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
| 5 | 233 |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 15 | 151 | 변신 프란츠 카프카 |
| 6 | 212 | 죽은 시인의 사회 N. H. 클라인바움 | 16 | 150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
| 7 | 209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 17 | 150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 8 | 205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18 | 138 |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
| 9 | 191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 19 | 135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
| 10 | 186 | 1984 조지 오웰 | 20 | 125 | 이중나선 제임스 왓슨 |
[표 2-2] 2018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20권
| 순위 | 인원 | 제목 | 순위 | 인원 | 제목 |
|---|---|---|---|---|---|
| 1 | 413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 11 | 185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
| 2 | 352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쟝 지글러 | 12 | 184 | 죽은 시인의 사회 N. H. 클라인바움 |
| 3 | 276 |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 13 | 170 | 변신 프란츠 카프카 |
| 4 | 275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 14 | 172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
| 5 | 237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15 | 153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
| 6 | 228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 16 | 150 |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
| 7 | 210 | 1984 조지 오웰 | 17 | 142 | 코스모스 칼 세이건 |
| 8 | 198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 18 | 139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
| 9 | 197 | 데미안 헤르만 헤세 | 19 | 139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 10 | 185 |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 20 | 136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
앞서 살펴본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20권’이 학생들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한다면, 아래 제시된 ‘단과대학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3권’은 각성된 의식에 비견될 만하다.
[표 3-1] 2017학년도 단과대학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3권
| 단과대학 | 1위 | 2위 | 3위 |
|---|---|---|---|
| 인문대학 | 역사란 무엇인가 | 논어 | 정의란 무엇인가 |
| 사회과학대학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정의란 무엇인가 | 미움받을 용기 |
| 자연과학대학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이기적 유전자 | 미움받을 용기 |
| 간호대학 |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간호사 너 자신이 되어라 |
| 경영대학 | 경영학 콘서트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미움받을 용기 |
| 공과대학 | 엔트로피 | 공학이란 무엇인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 농업생명과학대학 | 이기적 유전자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침묵의 봄 |
| 미술대학 | 나는 3D다 | 광고천재 이제석 | 연금술사 |
| 사범대학 | 죽은 시인의 사회 | 에밀 | 수레바퀴 아래서 |
| 생활과학대학 | 트렌드 코리아 2016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소비의 사회 |
| 수의과대학 |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동물해방 |
| 음악대학 |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 미움받을 용기 | 연금술사 |
| 의과대학 | 닥터스 씽킹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이기적 유전자 |
| 자유전공학부 | 정의란 무엇인가 | 미움받을 용기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 치의학대학원 | 치과의사가 말하는 치과의사 | 닥터스 씽킹 | 이중나선 |
[표 3-2] 2018학년도 단과대학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3권
| 단과대학 | 1위 | 2위 | 3위 |
|---|---|---|---|
| 인문대학 | 사피엔스 | 미움받을 용기 | 1984 |
| 사회과학대학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정의란 무엇인가 | 1984 |
| 자연과학대학 | 이기적 유전자 | 코스모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 간호대학 | 간호사라서 다행이야 |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 사랑의 돌봄은 기적을 만든다 |
| 경영대학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넛지 | 경영학 콘서트 |
| 공과대학 | 엔트로피 | 미움받을 용기 | 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 |
| 농업생명과학대학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이기적 유전자 | 침묵의 봄 |
| 미술대학 | 데미안 | 미움받을 용기 | 디자인의 디자인 |
| 사범대학 | 죽은 시인의 사회 | 에밀 | 수레바퀴 아래서 |
| 생활과학대학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미움받을 용기 | 오래된 미래 |
| 수의과대학 |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 이기적 유전자 |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 |
| 음악대학 | 미움받을 용기 |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 자존감 수업 |
| 의과대학 | 숨결이 바람 될 때 |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 미움받을 용기 |
| 자유전공학부 | 정의란 무엇인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1984 |
| 치의학대학원 | 치과의사가 말하는 치과의사 | 숨결이 바람 될 때 | 미움받을 용기 |
좌측의 단과대학 명칭을 가린 채 도서목록만 훑어봐도 얼추 식별이 된다. 일종의 민낯인 셈인데, 소소한 부침이 있을 뿐 해당 단과대학으로 이끄는 지침서 내지 개론서들이 주로 포진해있다. 여기엔 국내 저자의 책도 간간이 보인다. 문득 소박한 바람이 인다. 훗날 고교생의 독서열이 우리 사회의 고급 통속화(haute vulgarisation)를 앞당기진 않을까. 고등학생도 너끈히 읽어낼 수 있는, 우리 삶에 뿌리박은 전문서적 보급이 들불처럼 확산되길 소망한다.
지난 5년의 자기소개서 4번 빈출도서를 일별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혹자는 줄곧 1~2위를 차지한『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주목하겠지만, 이 책이 교사와 부모와 친구가 권장하는 도서의 반열에 근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식상한 일이다.
[표 4] 2014~2018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10권
| 순위 | 2014학년도 | 2015학년도 | 2016학년도 | 2017학년도 | 2018학년도 |
|---|---|---|---|---|---|
| 1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미움받을 용기 | 미움받을 용기 |
| 2 |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이기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 3 | 이기적 유전자 | 정의란 무엇인가 | 정의란 무엇인가 | 이기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
| 4 | 정의란 무엇인가 | 연금술사 | 데미안 | 정의란 무엇인가 | 정의란 무엇인가 |
| 5 | 연금술사 | 아프니까 청춘이다 | 엔트로피 | 엔트로피 | 멋진 신세계 |
| 6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멋진 신세계 | 멋진 신세계 | 죽은 시인의 사회 | 사피엔스 |
| 7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엔트로피 | 미움받을 용기 | 연금술사 | 1984 |
| 8 | 꿈꾸는 다락방 | 죽은 시인의 사회 | 연금술사 | 멋진 신세계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 9 | 멋진 신세계 | 데미안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데미안 |
| 10 | 오래된 미래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1984 | 1984 | 엔트로피 |
골리앗의 이마는 어디인가. 2017년, 그러니까 2018학년도 신입학생이 수능을 치른 해는 IMF 외환위기 20주년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미움받을 용기』로 이어지는 그 기저에는 무엇이 웅크리고 있을까.
청춘의 초입에서 오늘날 학생은 이토록 “미움받을 용기”에 도취되는가. 자기소개서 내용을 살피면 기시미 이치로 식의 ‘아들러 이해’는 애초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업과 양극화와 가정해체의 교차점에서 발로한 각개약진의 고단함. 그 애달픔의 토로이자 위안이 책을 잡은 힘센 이유였지 두 번, 세 번 읽었기에 소중한 책은 아닌 셈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각주가 떠오른다. 그에 따르면, 독일어 Idiotismus는 본디 ‘우매함’이 아닌 ‘더 넓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상태’를 뜻했다. 이 단어에서 현재 쓰이는 idiot나 idiocy의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이는 그리스어 idiotes가 가진 본래의 함의를 반영한 것이다. “자신의 사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더 넓은 공동체의 일에는 무관심한 사람.”
일전에 황동규 시인은 “시(詩)란 행복 없이 사는 일의 훈련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독서도 비슷한 것이라 여겨진다. 하수상한 시절, 학생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독서를 당부할 수 있을까. 평론가 황현산 보다 잘 표현할 방도가 없어 선생의 문장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