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신입생들의 서재
2014학년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서울대학교의 자기소개서에는 ‘어떤 책’을 읽었다고 쓰는 것이 가장 유리한지를 물어보는 분이 많다. 계열별 또는 모집단위별로 읽어야 하는 책이 정해져 있는지, 대학 이상 수준에서 공부할 어려운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 원서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만화책은 읽으면 안 되는지 등 다양한 궁금증들을 쏟아내신다.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대학 입학에 유리한 책은 없다. 만약 그러한 책이 존재한다면 필자 역시 매우 궁금할 만한 책들이다. 그리고 우리 대학은 ‘어떤 책’을 읽은 학생보다 능숙한 독서능력을 지닌 학생들을 기대하고 있다.
굳이 지식정보화사회에서 강조하는 독서의 중요성을 거론하지 않아도 성공적인 독서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지적 성숙과 정서적 감동은 그 어떤 교육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생의 성장보다 이상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는 독서 경험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학교 안팎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수학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으로 독서능력을 손꼽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깊이 있는 학문을 위해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충분히 쌓아야 하는 곳이며,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종류와 내용 중 필요한 내용을 적절히 가려내어 사용할 수 있는 소양을 기르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충분한 독서활동을 통해 연마한 우수한 독서능력은 성공적인 대학생활의 출발점이 된다.
그럼에도 지금 서울대 지원자들이 어떤 책을 읽었다고 내세웠는지를 살펴보는 이유는 ‘아로리’의 이 코너가 지향하는 재미 이상의 것은 아니다. 아무쪼록 ‘어떤 책’을 읽는 학생보다 능숙한 독서능력을 지닌 학생이 될 것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니 이곳에서는 부담없이 내용들을 즐기시기 바란다. 그럼 가장 먼저 2014학년도 수시모집에 지원한 19,900명의 지원자들이 읽은 책들을 살펴보자.
2014학년도 수시모집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 독서활동에 기재하여 제출한 3권의 종류로는 13,638권의 제목이 나열되어 있다. 물론 이 수치가 꼼꼼한 수치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예를 들어 동양 고전의 경우 맹자나 공자, 장자처럼 저자는 같으나 역자가 다른 경우 같은 종류의 책으로 취급하였고 간혹 제목을 잘못 적은 책들과 저자를 잘못 적은 책들 그리고 외국의 책들을 번역하면서 다소 다른 번역의 제목을 지니고 있는 경우와 시리즈로 구성된 책들, 기호가 들어가 있는 제목의 책들, 띄어쓰기나 맞춤범이 잘못 기입된 책들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정한 것들이 있어 지금 밝히는 내용들이 명확한 수치와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먼저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2명 이상 제출하지 않은 즉 혼자만 제출한 책의 종류가 8,731종으로 제출한 도서 목록의 64%를 차지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책의 종류만큼 서울대 지원자들도 각기 다른 다양한 책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겠다.
[표 1] 2014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베스트 20
| 순위 | 인원 | 제목 | 순위 | 인원 | 제목 |
|---|---|---|---|---|---|
| 1 | 528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 11 | 187 |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
| 2 | 400 | 아프니깐 청춘이다 김난도 | 12 | 181 | 학문의 즐거움 히로니카 헤이스케 |
| 3 | 380 |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 13 | 179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
| 4 | 302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 14 | 178 | 죽은 시인의 사회 N.H.클라인바움 |
| 5 | 279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 15 | 178 |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정재승 |
| 6 | 258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 16 | 177 |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신웅진 |
| 7 | 224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 17 | 161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
| 8 | 204 | 꿈꾸는 다락방 이지성 | 18 | 160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
| 9 | 203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19 | 158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
| 10 | 190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20 | 157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
2014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스무 가지의 목록이다. 베스트 셀러 또는 스테디 셀러라 불릴 만한 익히 눈에 익은 책들의 제목이 다수 나열되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순위권 안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인문 ․ 사회 분야 도서들이 많아 보인다. 특히 지원자들의 전공 선택과 연관성이 깊은 도서들이란 느낌이 강한데 이는 각 대학별 도서목록 순위를 보면 두드러진다.
[표 2] 2014학년도 단과대학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베스트 3
| 단과대학 | 1위 | 2위 | 3위 |
|---|---|---|---|
| 간호대학 |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
| 경영대학 | 경영학 콘서트 | 정의란 무엇인가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 공과대학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엔트로피 | 아프니깐 청춘이다 |
| 농생명과학대학 | 이기적 유전자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침묵의 봄 |
| 미술대학 | 광고천재 이제석 | 연금술사 | 변신 |
| 사범대학 | 죽은 시인의 사회 | 아프니깐 청춘이다 | 교사와 학생 사이 |
| 사회과학대학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정의란 무엇인가 | 군주론 |
| 생활과학대학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아프니깐 청춘이다 | 꿈꾸는 다락방 |
| 수의과대학 |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 이기적 유전자 | 생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 |
| 음악대학 | 아프니까 청춘이다 | 꿈꾸는 다락방 |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
| 의과대학 | 이기적 유전자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닥터스 씽킹 |
| 인문대학 | 정의란 무엇인가 | 역사란 무엇인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 자연과학대학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이기적 유전자 | 학문의 즐거움 |
| 자유전공학부 | 아프니깐 청춘이다 | 이기적 유전자 | 정의란 무엇인가 |
| 치의학대학원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이기적 유전자 | 이중나선 |
책의 제목만 보아도 각 단과대학에서 공부하는 학문 분야와 대학 졸업 후 진로 등과 관련이 깊은 도서들이 다수이다. 지원자들의 관심사와 지원동기들의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미술대학, 음악대학이 다른 단과대학과 조금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자유전공학부는 지원자 특성 상 모든 계열 학생이 지원하는 까닭에 도서목록 역시 그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지난 3년 간 변화된 양상은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표 3] 2012 - 2014학년도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베스트 10
| 순위 | 2012학년도 | 2013학년도 | 2014학년도 |
|---|---|---|---|
| 1 | 아프니까 청춘이다 | 아프니까 청춘이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 2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정의란 무엇인가 | 아프니까 청춘이다 |
| 3 | 이기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 |
| 4 | 정의란 무엇인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정의란 무엇인가 |
| 5 | 연금술사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연금술사 |
| 6 |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 연금술사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 7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 8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꿈꾸는 다락방 | 꿈꾸는 다락방 |
| 9 | 마시멜로 이야기 | 죽은 시인의 사회 | 멋진 신세계 |
| 10 | 꿈꾸는 다락방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오래된 미래 |
3년간 꾸준히 10위권 이내에 오르고 있는 책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정의란 무엇인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기적 유전자>, <연금술사>, <꿈꾸는 다락방> 모두 일곱 권 정도다. 전반적으로 단과대학 1위에 오른 책들이 다수 보이며 10권 중 7권이 해마다 오르고 있어 10위권 이내의 목록은 크게 낯설지 않으나 단과대학별 변화 추이보다는 지원자 전체 상위 10권의 책들의 순위는 변화 양상이 비교적 큰 편이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지속적으로 순위 상승을 하다 2014학년도에 1위를 차지하였다. 2위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꾸준히 1위 자리를 유지하였고 2013학년도의 경우 800건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이며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앞서도 밝힌 바 2014학년도만 보아도 2건 이상 기록되지 않은 도서들이 64%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지원자들의 다양한 독서활동을 가늠하게 하나 상위 도서목록 순위만 놓고 보자면 보통의 서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목록 자체의 개성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그나마 일반적이지 않은 책의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ebs 수능특강 고득점 시리즈>가 여기에 속하는데 제목 정도로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만화책을 목록으로 제출해도 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만화책 제목이 종종 보인다. <슬램덩크>는 10건이나 제출되었고 <미생>, <원피스>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모은 제목도 간간히 보인다. <미스터 초밥왕> 정도는 지원자의 진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으나 필자 역시 궁금증이 폭발하는 제목이 등장하는데 심지어 거의 매년 1명은 제출하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포켓몬스터>다. 다만 만화책을 읽는 행위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독해능력과는 거리가 다소 있음을 감안한다면 “만화책을 '읽었다'고 해도 되나?”라는 물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지원자들이 제출한 도서목록을 제목으로만 살펴보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들은 모두 다르며 그럴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 3권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이다. 선정한 책의 내용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감상을 말하는 것보다 왜 그 책을 읽게 되었으며 그 책은 어떠한 이유에서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 밝혀달라는 것이다. 즉, 독서활동의 배경과 그로 인한 개인의 변화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좋은 책’이란 존재할 수 있다. 여가 시간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버스 안에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 등이 학생들의 성장에 과연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기소개서에 기재하기 위해 억지로 읽고, 그나마도 두어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독서 경험으로 제출한다면 이런 경험을 지닌 학생이 서울대학교가 기대하는 모습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가벼운 종잇장들을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닌 학생들은 서울대학교가 기다리고 있는 학생은 분명히 아니다. 만물의 성장과 결실에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의 올바른 성장에 자양분이 될 만한 책이라면 간편하게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책보다 한 장을 넘기더라도 스스로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책, 인생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책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고교 생활에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이 마치 상식인 것처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다. 이미 기본적인 읽기 교육은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교생활기록부에도 독서활동상황이 필수적으로 기재된다. 그 밖에도 학교에서 별도로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 읽을 시간을 따로 내어야 한다는 말은 도대체 학생들이 무엇에 시간을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물론 ‘공부’하는데 시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공부’라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서두에서도 밝힌 것처럼 학문의 메카인 상아탑의 출발점은 독서라고 말씀드린 점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시는 학생들이라면 지금 무엇이 ‘공부’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