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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축구로 처음 접한 스페인, 자아성찰의 문이 되다.

한진혁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
인터뷰 사진

‘덕업일치’라는 신조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말 그대로 ‘덕질(특정한 분야에서의 마니아/팬 활동을 이르는 말)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의미로, 최근 많은 청년들의 인생 목표로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 단어이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취미활동은 때로 단순한 취미 이상의 변화를 우리 인생에 가져다주기도 한다.
좋아하는 축구팀을 통해서 스페인어를 접했다는 서어서문학과 한진혁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취미활동과 전공 간 일종의 ‘덕업일치’를 이루어낸 그에게서 스페인어와 인문학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얻을 수 있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어서문학과 20학번 한진혁입니다.

서어서문학과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서어서문학은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스페인어권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인식 지평을 넓히고, 더 나아가 인간다움의 추구라는 인문학의 근본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서어서문학에서는 스페인어, 스페인 문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넓게는 라틴아메리카 문학, 역사, 그리고 포르투갈어까지 스페인어권 세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부합니다.

서어서문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고등학교 3년간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에 대해 배우면서 자연스레 서어서문학과에 흥미가 생겼는데요. 특히 어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 수준에서 배우는 스페인어 이상을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여담으로, 제가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스페인 축구리그 경기를 보다가 스페인어로 해설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스페인어 특유의 발음과 리듬에 매료됐습니다.

스페인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어요. 다른 언어와 구별되는 스페인어(혹은 스페인)만의 매력이 있나요?

스페인어의 매력은 크게 2가지 정도 생각해보았는데, 첫 번째는 배우기가 무척 쉽다는 점입니다. 스페인어는 많은 어휘와 표현이 영어와 유사해서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익숙한 단어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학습하고 암기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언어를 배운다는 느낌이 강해 훨씬 수월하게 학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습니다.
스페인어의 또 다른 매력은 발음입니다. 알파벳을 읽을 때 고유의 음가 그대로 소리를 내는 스페인어 발음 특성상 발음하기 쉽고, 그 강렬한 발음이 굉장히 매력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어는 다른 나라 언어보다 유독 발음 속도가 빠른데, 이 역시도 스페인어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이나 역량이 있다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서어서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스페인어, 더 나아가 스페인어권 세계에 대한 흥미와 학구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스페인어가 한국어, 영어 다음으로 배우는 언어일 텐데요.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도 아니며,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빈번한 교류가 있었던 곳도 아니기에 어찌 보면 조금 낯선 언어와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학습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흥미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량을 기르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하셨던 활동이 있나요?

이전 질문에서 답변했듯이 저는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자연스레 스페인 축구리그를 챙겨보았으며 스페인어 해설까지 접하게 됐습니다. 스페인어 해설을 듣다 보니 스페인어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 스페인어는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배워보고 싶은 언어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배워본 적이 없던 언어를 읽기, 쓰기, 듣기, 심지어 말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고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는 스페인어와 친해지려 많이 노력했습니다. 마치 제가 스페인 사람이 된 것처럼 스페인어를 생활화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을 볼 때도 스페인어 자막을 이용했고, 각종 전자기기의 언어 설정을 스페인어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스페인어를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 단어를 보면 뜻이 비슷한 스페인어 단어가 떠오르고, 간단한 스페인어 회화가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오는 수준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스페인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꾸준히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모르는 표현이나 단어가 나오면, 저만의 노트에 기록해 지속해서 복습했고, 수업 시간에 배운 관용 표현, 문법 내용을 직접 손으로 다시 써보면서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스페인어에 관한 꾸준한 관심과 학구열이 합쳐지니 하나도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사진

고등학교 때 했던 가장 의미있는 활동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장애인식 개선 동아리에서 2년간 활동한 것이 가장 의미 있었던 경험인 것 같습니다. 그 동아리를 하면서 제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다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발달 장애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짝을 지어 활동했는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멘토가 멘티와 참여할 활동을 멘티의 성향을 고려하여 매시간 선택했습니다.
저는 멘티와 친해지기 전까지 멘티가 내성적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외부활동보다는 포스터 꾸미기와 같은 실내 활동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멘티는 활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저는 그 이유를 물어보려 했지만,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멘티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를 통해 멘티가 활동적인 아이이며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멘티에게 물어보니 멘티는 자기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실내 활동들로만 구성한 프로그램이 지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동아리 시간에 배드민턴, 마라톤 등에 함께 참여했고, 멘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어 사이도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발달 장애인들은 외부활동을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평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남을 바라본다고 자부해왔던 터라 부끄러웠습니다. 이후, 실질적으로 차별 없는 시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편견을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도 결국 남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입 과정에서 생각했던 학과의 모습과, 실제 모습 간에 차이점이 있었나요?

사실 서어서문학과를 진학하기 전까지 저는 서어서문학을 어학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봤습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에서 배운 스페인어는 문법 위주였고, 문화나 역사, 예술에 대한 측면은 깊게 다루지 않다 보니 어학에 비해서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막연하게 대학에서 배우는 서어서문학 역시 고등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해보니 서어서문학은 정말 다양한 분야를 심도 있게 다룬다는 부분이 사뭇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스페인어권 세계에 굉장히 무지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스페인의 역사부터 예술, 문학까지 전공, 교양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내신 때 배우던 스페인어보다는 훨씬 광범위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설명해주세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교내 축제에 선보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습시간 및 장소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교내 축제는 30개가 넘는 동아리가 모두 무대 위에서 공연 및 활동 발표를 하는 중요한 행사고, 따라서 모든 동아리의 연습시간이 소중했으며 학교 안에서 쾌적하고 넓은 연습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습니다. 게다가 한 학생이 하나의 동아리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두 개를 동시에 참여할 수 있어 연습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저는 ‘할리스코’라는 멕시코 전통 민속춤 동아리 부장으로서 원활한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 장소부터 시간, 부원들의 출석 여부, 그리고 점심, 저녁 식사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습니다. 연습 장소를 정할 때는 같은 곳을 사용하는 다른 동아리와 자주 충돌했고, 겨우 장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일부 부원들이 다른 동아리 공연 준비에 참석해야 해서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한된 축제 준비 기간 안에 완벽한 공연을 선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은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미흡한 공연 준비로 인해 동아리 선배들에게 구박받는 일들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부원들의 연락처를 모두 모아 표를 만들어 정리한 후, 부원들이 자리에 없을 때마다 직접 전화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다른 동아리 부장들과도 연락망을 형성하여 각 동아리의 연습시간 및 장소를 조정하여 표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동아리가 합의한 시간표대로 연습을 준비하니 갈등이 생기지도 않았고 연습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이는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결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단지 당면한 어려움에 체념하기보다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 다른 사람들과 합의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속한 동아리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동아리의 입장도 고려해보니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시간표를 어려움 없이 짤 수 있었고, 이는 남은 고등학교 생활에서 저에게 닥친 여러 갈등을 해결해나갈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스페인어 수행평가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저에게 스페인 문학의 첫 경험이자 문학을 대하는 자세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은유법을 소설 전반에 사용해 메타포(metaphor) 기법이 문학작품 안에서만 쓰이는 한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소설 속 네루다의 조언을 통해 강조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스스럼없는 성적 표현은 보수적인 한국 문학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요소라 처음에는 난해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며 스페인 문학만의 활기와 정열임을 이해하고 열린 자세로 스페인 문학을 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향후 스페인 소설뿐만 아니라 영어나 한국 문학을 읽을 때 국가별 문체 특징을 비교하며 읽는 습관을 갖추게 도와준 소중한 책입니다.

인문대생으로서, 본인은 인문학의 가치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간은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가치를 부여합니다. 충분한 자아 성찰은 자신감 형성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더불어 올바른 인성을 함양함과 동시에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합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자아 성찰은 배움의 장에 있어서든, 사회에 나가서든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문학 교육은 이러한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인문학은 이름 그대로 인간의 무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 자체는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이 자신에 대해 사유하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자아 성찰은 물론,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진로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사실 이 부분은 확실한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질문에 답변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를 진학하기 전까지 제 희망진로는 항상 법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고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제가 정말 법조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자문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민하면 할수록, 제가 그동안 저의 희망진로를 법조인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서만 생각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수강하며 여러 과목을 배울 때마다 그 과목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갓 대학교 2학년이 된 저는 희망진로를 단정을 짓기보다는 지금처럼 여러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분야를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김은지 사진한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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