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낯선 나를 만나는 길

인류학은 포괄적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래서인지 인류학이 무엇을 배우고, 인류학과에 입학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 막연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잔잔하지만 묵직한 정보 또한 가득한 인류학과 새내기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고교생에게는 인류학이 생소한데 어떤 계기로 인류학과를 선택한 건가요?
수진 중고등학교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언어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모든 걸 포괄적으로 공부해볼 수 있는 학문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친구를 통해서 인류학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이 아마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인류학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고 인류학을 공부하는 것이 제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과를 생각하지 않고 계속 인류학과를 목표로 했어요. 다양한 것을 공부하면서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입학하고 나서는 제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인류학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학문이라는 점은 제 기대와 일치해요.
민성 저는 고등학교 때 전통 공연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한국 전통 공연에요. 당시에는 한국 전통 공연이 사람들에게 따분한 것으로만 인식된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전통 공연이 따분하지 않고 즐거운 순간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죠. 제가 그 재미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나중에 한국 전통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들었던 의문은 ‘그래서 한국 전통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어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한국 전통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제가 가진 시각을 한국으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세계 문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렇게 생각이 나아가는 동안 인류학이란 학문을 알게 된 것이죠. 인류학 분야의 유명한 저서 중에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이 있어요. 이 제목 자체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그러니까 다른 시각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보면 이전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이런 말들이 제게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인류학과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인류학은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 연구하는 분야입니다인류학 수업을 실제로 들어보고 난 느낌은?
수진 1학기 때 ‘인류학의 이해’, 2학기 때 ‘문화와 언어’ 그리고 ‘북한의 인류학’ 이렇게 총 세 개를 들었어요. ‘인류학의 이해’는 제게 조금은 회의감을 준 과목이었어요.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을 다루는 수업이었고 이를 통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시각으로 대상을 접근하는 점은 좋았는데 당연한 것을 의심함으로써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나머지 두 개 수업 중 ‘문화와 언어’는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언어인류학개론 수업이었어요. 언어인류학을 세부적으로 깊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보다 좋았던 것은 ‘북한의 인류학’ 수업이었는데 인류학이 실제로 어떻게 학문적으로 쓰임이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어요.
인류학과 수업은 다른 학과에 비해 읽고, 쓰는 비중이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수업 방식은 어떠신가요?
수진 사실 너무 힘들긴 했어요. ‘인류학의 이해’처럼 매주 무언가를 읽고 쓰는 건 힘들죠. 읽을 분량도 많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이 읽어야 많이 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 방식이 힘들지만 도움은 됐던 것 같아요. 인류학 수업에서는 정말 많이 쓰고 많이 말하게 시키시는데, 여기에 가능한 한 빨리 익숙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족에 가까운 것 같아요.
민성 힘들긴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복합적인 시각으로 한 사건을 봐야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지금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된, 부족한 소양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나중에 민족지를 쓰고 사건을 직접 분석하기 위해선 지금 이 정도 읽고 이렇게 개론 수업을 들으며 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류학의 꽃은 현장에서 인터뷰나 관찰을 하는 현지조사나 현장연구라고들 하잖아요. 외국으로 많이 나가기도 하고요.
수진 제가 생각하기에 현지조사라는 게, 거창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관심을 갖는 일인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그걸 글로 풀어내고 정리를 해내는 거예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인류학적 시각을 키워왔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제가 생각해왔던 걸 정리하고 글로 다듬는 훈련을 하는 것이 제가 지금 거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문화와 언어’ 수업에서도 많이 배웠던 게 언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어떤 교수님은 자신이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서 일어나는 언어생활에 대해 연구하셨다고 해요. 그 논문을 저희가 읽고 토론했는데 그걸 보면서 인류학은 정말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심 있게 보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성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가십거리까지.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현지조사 자체는 매우 기대가 커요.
고등학교 때 혹시 인류학을 공부해 본 적이 있나요?
민성 학교에 전통 공연 단체가 온 적이 있어요. 그 공연 우리의 전통적인 형식을 따르는 공연이 아니고 퓨전 공연이었거든요. 그 공연이 친구들한테 큰 호응을 받았어요. 이 공연을 보고 당시 교내 글쓰기 대회에 참여했어요. ‘한국 전통 문화를 어떤 식으로 전승할 때 신세대가 잘 수용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글을 작성했어요. 전 인류학과를 가겠다고 미리 인류학 책을 읽거나 민족지를 미리 써보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문화를 주제로 다룬 서적을 많이 읽고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갈 기회가 있을 때는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했던 것 같아요. 또, 전통 공연에 관심이 많아서 전통 공연 단체랑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연희집단 ‘더 광대’라는 단체인데 처음에는 전통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모임이었다고 해요. 그게 점점 공연처럼 되고 정부 지원을 받아서 외국으로 공연을 다니게도 되었죠. 특이하게 팬 문화를 도입하기도 했어요. 이런 방식으로 단체가 지금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이 단체와 계속 연락을 하며 제가 직접 찾아가서 배우기도 했어요. 한번은 단체가 싱가폴에서 공연을 했는데 한국의 사자와 싱가폴의 머라이언 사자의 융합을 시도해서 싱가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어요. 2학년 겨울 즈음인데 그 공연을 보면서 중국의 경극이나 상성, 일본의 가면극들과 이 공연을 비교해보며 제 나름의 식견을 마련해보기도 했어요.
수진 저는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알기 전부터도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이나 학과에 맞는 인재가 되기 위해선 겉으로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단 실질적인 역량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도 주의 깊게 보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하는 대화나 취미 생활 등 일상에서 항상 일어나는 뻔한 일에도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고 교훈을 얻는 걸 즐기면서도 중시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보는 영상, 책 이런 것에 대해 항상 꼼꼼하게 적어놓는 습관이 있었고 제가 이들을 통해서 어떤 생각을 했고 뭘 배웠는지 항상 생각했어요. 이게 점점 발전되고 누적되다 보니 제가 이렇게 성장을 해왔고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류학도 결국 시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문인 것 같아요.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찾는 것이 인류학의 방법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하다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인류학이랑 연결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하게 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항상 적는 습관, 그리고 매일 사색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혼자서 돌아다니면 별달리 할 게 없으니까 이것저것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 즈음에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나 드라마도 대부분 사극으로 많이 봤거든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랑 중국 사극을 많이 봤고, 삼국지도 정말 많이 봤어요. 인류학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하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해요. 그래서 같은 역사적 현상을 어떻게 풀어내고 스토리텔링을 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한중일이라는 동일한 문화권 내에서 역사가 전개되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역사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드라마 하나를 봐도 찾아낼 수 있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런 걸 적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더 깊게 들어가고 책도 읽다 보니까 무언가가 쌓이고 쌓인 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차곡차곡 때로는 대범하게 행해 보세요인류학과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수진 최대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그 경험을 소중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경험들을 무의미하게 생각하지 않고 치열하게 되새겨보는 것도요. 마지막으론,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 문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사람에게 관심이 많잖아요. 인류학에선 그 방식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좋아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민성 저도 사람 좋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수진이처럼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도 많이 가져보고 학교나 주변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뚜렷한 목표가 없더라도 무작정 참여해보는 것도 좋아요. 제가 공연 단체에 연락했던 것처럼 무작정 해보는 모험심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겁내지 않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