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대륙 소녀의 한국 적응기

달랠 길 없는 외로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언어와 문화의 차이…. 유학생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어려움을 중국 창춘 출신 송해윤 학생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중국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우선 고향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창춘은 백두산 근처의 도시에요. 중국에서 차를 가장 많이 만드는 공장이 근처에 있고요. 고등학교 친구들의 절반 정도가 부모님이 그곳에서 일하실 정도였어요.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공장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곳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편인가요?
고등학생의 바쁜 삶은 중국도 별반 다를 게 없어요.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학교도 있고요. 제가 다닌 학교(High school attached to Northeastern Normal University)는 8시 30분까지 자율학습을 시켰지만, 저는 집에 가서 다시 공부를 하다가 자정 쯤 잠들었어요. 예체능 수업보다 국영수 중심인 것도 비슷하고요. 다른 과목 공부를 하느라 체육 수업에 안 나가는 학생들이 많았고, 선생님도 나무라지 않을 정도였어요. 딱히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아서 저도 외부 활동보다는 학교 공부에 충실했어요.
교육 환경은 정말 비슷하네요. 그래도 한국 대학은 낯설었을 텐데, 서울대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사실 잘 몰랐지만, 서울대학교에서 우리 고등학교로 설명회를 와서 알게 됐어요. 어머니께서 서울에서 일을 하셔서 메신저로만 연락을 할 수 있었는데, 서울로 대학을 오면 자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서울대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했어요. 고등학교 선생님께서도 제 사정을 아셨기 때문에 한국으로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중국으로 입학사정관님들께서 직접 찾아오셨기 때문에 두 번의 면접을 치르는 것도 별로 부담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어떤 공부를 했고, 서울대학교를 왜 선택했는지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런 편리함도 서울대학교에 지원한 이유 중에 하나였어요.
그럼 서울대학교의 많은 학과 중에서도 전기 ․ 정보공학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가족들이 모두 건축을 전공했는데도 불구하고 전기정보공학부를 선택한 것은 한국의 특징을 고려했기 때문이에요. 한국은 전자 산업이 발달했잖아요. 전기, 컴퓨터 등을 공부하기에도 좋은 환경이고 우수한 기업이 많아 취업할 기회도 많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회로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서 졸업 후에는 S전자 같은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중국 지사로도 나갈 수 있겠죠. 가장 바라는 건 한국과 중국을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멋있는 꿈이에요. 하지만 그 꿈을 펼치기 전에 어려운 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죠.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언어였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인사말밖에 알지 못했거든요.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하니 너무 힘들었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강의를 듣고, 한국 방송을 공부하는 자세로 봤어요. 중국에서 영어를 공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했어요. 이 때 어순이 가장 어려웠어요. 영어가 중국어와 어순이 비슷해 배우기 쉬웠던 것과 반대였죠.
그렇게 고생을 하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한국어 실력이 정말 뛰어납니다. 비법이 있나요?
당장 살아야 하니까? (웃음) 사실 고등학교 때 언어는 아무리 공부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았는데, 한국에 와서 급박한 문제가 되니 언어 실력이 길러진 것 같아요. 외국인 학생들의 모임에 나가지 않은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외국인 친구는 한국어에 익숙해진 뒤에 사귀어도 문제가 없고, 한국어에 많이 노출되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처음에는 공부를 위해서 봤던 방송 프로그램인 ‘런닝맨’이나 ‘아빠 어디가’를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이런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고등학교 친구들도 많이 보더라고요.
언어 공부를 위해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는데, 외롭지는 않았나요?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정말 외로웠어요. 고등학교 때는 자주 아팠는데, 한국에 온 뒤에는 챙겨줄 사람이 없어 아프면 안 된다는 것을 몸이 아는 건지 아픈 적이 없을 정도로요. 일단 말이 안 통하니 한국 친구를 사귀는 건 불가능했어요. 특히 저는 2013년 2학기에 입학했기 때문에 이미 형성된 13학번끼리의 관계에 끼어들기 어려웠어요. 지금도 13학번보다 한 학기 늦게 전공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에 마주칠 기회가 적어서 과 친구들보다 동아리 친구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괜찮지만, 핸드폰에 엄마 번호만 저장되어 있을 때 너무 슬펐어요. 중국에서 못 만났던 엄마를 주말마다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이젠 중국에 계신 할머니가 그립더라고요. 우연히 시장에서 포도를 보고 할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유일한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에서 한국에 온 친구였는데, 그마저도 다른 도시로 가서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 친구는 조선동포라 한국어에 능숙했고, 초반에 제가 언어문제로 고생할 때 메신저를 통해 많이 도와줬어요. 올해(2014년) 우리 고등학교에서 후배 한 명이 서울대학교에 왔는데, 그 친구를 보면 작년의 제가 생각나더라고요. 저도 제 친구가 했던 것처럼 도와주려고 노력 중이에요. 어떤 점이 힘든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산이 바로 문화 차이일 텐데,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문화 때문에 당황한 적은 없나요?
사소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오빠, 언니라는 호칭이 별명이나 농담처럼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중국에서는 이름을 부르거나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거든요. 또 선배에게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손을 흔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동기가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놀랐죠. 그 때부터 친구들을 따라 인사하기 시작했고, 익숙하지 않다 보니 손을 흔들면서 동시에 고개를 숙이는 실수도 했어요. 음식도 처음에는 너무 달아서 입에 맞지 않았어요. 이제는 다 익숙해졌죠. 선배들과 어울려 술도 잘 마시고, 한국 음식도 좋아해요. 여전히 김치는 너무 신 맛이 나서 먹지 못하지만, 순두부찌개와 잡채는 정말 최고에요.
생활 전반에 어려움이 있었네요. 게다가 단순한 외국 생활이 아니라 공부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나요?
최대한 영어 강의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 강의를 들어야 할 때도 있어요. 이럴 때는 전문용어가 가장 어려워요. 한자로 되어 있어도 발음이 다르니까 수업 전에 꼭 다 찾아보고 가야 해요. 어떻게 보면 강의를 듣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일 재밌었던 수업은 역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체육 수업이네요. (웃음)

다시 공부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점이 상당히 높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학점 관리를 하시나요?
갈수록 한국어 강의를 많이 들어서 학점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웃음) 특별한 방법도 없고요. 전문 용어를 찾아보며 예습을 하고, 수업 중에 필기를 하고, 선배들로부터 받은 기출문제로 복습을 하는 평범한 방법이죠. 그래도 이 일을 매일 하려면 하루 종일 중앙도서관에 있어야 해요. 특히 공대생은 과제, 시험, 퀴즈가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밤샘이 일상이 되었어요. 최근 2주 동안에는 매일 새벽 4시에 잠들고 7시에 일어났어요. 그랬더니 아무리 체육을 좋아하는 저라도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조금 더 여유롭게 하고 싶어도 주변 친구들이 워낙 열심이다 보니 저도 따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네요. 하지만 공부 외에도 대학 생활에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 않나요?
물론이에요. 우선 1년째 살고 있는 기숙사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6명이라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룸메이트와 정말 친해졌거든요. 식품영양학과에 다니는 언니인데, 처음에는 영어로 대화했지만 이제는 한국어로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과일도 나눠 먹고, 같이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구요. 이번 겨울에 같이 상해에 가서 통역을 해 줄 거예요. 한국 생활 초반에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돌려 줄 차례에요. 룸메이트 언니 외에도, 아까 말했듯이 동아리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한국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중국이 탁구 강국인 만큼 원래 탁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중앙 탁구 동아리 TTC’에 들어갔어요. 일주일에 두 번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고, 대회에 나가기도 해요. 저번 전국대회에서는 경기에 져서 실망했지만, 행운권 추첨으로 TV에 당첨되어 경기 승리보다 더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어머니 댁에 그 TV를 자랑스레 걸어 두었죠.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고 계시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를 꿈꾸는 유학생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어요?
유학생의 어려움을 잘 알아보고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유학생활이 얼마나 어려울지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초반에 많이 힘들었어요. 캠퍼스를 걸으며 ‘내가 왜 여기 있지?’, ‘중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고민을 하며 불안했죠. 하지만 이것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한국에 오는 것은 큰 기회인 게 분명해요. 자신감을 가진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송해윤 학생이 낯선 땅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비결은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조언처럼 지식과 의지를 갖춘다면 유학 생활의 난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