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이슈이슈!
배움은 독점이 아니라 공유할 때 그 가치가 더 빛나요!
- 문학작품 감상과 사유 그리고 교감을 통한 인식의 심화 확산 -

1. 살아 숨 쉬는 수업 만들기
교사 초년시절, 교무실 중앙 벽면에 근엄하게 도사린 액자 속의 글귀가 생각난다. 다소 위압적이면서도 고루함이 느껴지는 ‘授業(수업)은 生命(생명)’이란 궁서체 글씨다. 이 은유적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의 생각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업 브랜드나 방식을 채 정립하지 못한 초년 교사들이 수업에서 흔히 느끼는 감정이 아쉬움과 미안함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 어느 날 동료들과 수업 나눔을 하며 내 수업의 정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린 결론은 생명이 있는 유기체가 그렇듯, ‘살아 숨 쉬는 수업’이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 전하는 교사 중심의 수업에는 생기가 부족하고 뜨거움이 없다. 더욱이 잠재력을 갖춘 아이들에게 사유의 과정과 발견의 기쁨을 선사할 수가 없다. 일방이 아닌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수업,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조화로운 수업이 필요하다. 수업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이 서로 고뇌하고 탐구하며 교감할 때, 그 수업은 활기가 돋고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터득한 답은 ‘살아 숨 쉬는 수업’이었다.
2. 학습 콘텐츠와 사유 과정 그리고 삶이 조화로운 수업
수업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수업 콘텐츠도 중요하고 교수 기법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학생의 귀와 마음을 여는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스런 참여를 유도하는 알차고 짜임새 있는 수업 구성이 중요하다. 그 방안의 핵심은 학습 콘텐츠와 학생의 사유 그리고 삶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인과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국어 교과의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학수업은 적절한 학습 콘텐츠에 사유의 과정을 접목하고 삶의 현실에 적용해 그 가치를 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 사고의 폭을 넓히고 수업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작품에 따라 감상, 서술 , 발표, 토론 등의 수업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러한 과정과 기법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학생 중심의 수업을 전개하면서 창의적인 언어표현과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나아가 삶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더하며 수업의 유의미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었다. 사제동행의 입장에서 교사도 감상평을 발표하거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더하고 수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필자가 3학년을 대상으로, 주 2회 2시간 블록으로 진행한 현대문학감상 수업의 절차와 발현된 가치를 사례 중심으로 소개한다.
〈현대문학감상 수업 절차〉
학습 콘텐츠 및 학생들의 발현 가치 (일부)
| 장르 | 작가 | 작품 | 수업형태 | 학생들의 발현 가치 |
|---|---|---|---|---|
| 시 | 박노해 | 그 겨울의 시 | 감상 토의 | 이타적 사랑, 연대와 공감, 노동가치 |
| 공광규 | 소주병 | 감상 발표 | 가족애, 시의 형식미(비유와 상징) | |
| 이재무 | 길 위의 식사 | 감상 합평 | 현대인의 고독, 삶의 방식, 공동체의식 | |
| 수필 | 유달영 | 슬픔에 관하여 | 감상 발표 | 부성애, 인고의 삶, 종교적 믿음 |
| 법정 | 거꾸로 보기 | 감상 토론 | 창의적 사고, 청빈의식, 종교의 위상 | |
| 신영복 | 더불어 숲 | 감상 토론 | 삶의 가치, 연대의식 | |
| 유주현 | 탈고 안 될 전설 | 감상 발표 | 사랑의 가치, 성과 속의 본질 | |
| 소설 (영화) |
양귀자 | 한계령 | 감상 발표 | 가족애, 서민의식, 삶의 본질 |
|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 대숲 이야기 | 감상 토론 | 진실의 상대성, 인간의 본성(이기심) | |
| 김경욱 | 천국의 문 | 감상 합평 | 인간소외, 고독한 현대인, 가족해체 | |
| 윤제균 | 영웅 | 감상 토의 | 애국과 희생, 삶의 가치, 영화기법 | |
| 서양고전 | 호메로스 |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 감상 발표 | 운명개척, 전쟁과 사랑, 도전의식 |
| 까뮈 | 페스트 | 환난극복, 공동체적 연대, 코로나 극복 | ||
| 학생 창작 |
한*희 | 초록별(시) | 창작 발표 | 자연사랑, 우애 |
| 장*영 | 뽀로수 낭구(수필) | 창작 발표 | 가족애, 향수 | |
| 박*현 | 싸구려 지팡이(소설) | 창작 발표 | 공동체적 삶, 연륜과 추억 |
1) 시적 감성과 상상력으로 삶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다
시는 어렵다. 알 듯 모를 듯한 내용에다 감상안이 부족해 습관적으로 메시지에 주목하고 표현의 기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결국 시의 본질을 벗어나 변죽만 울리다 시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시를 더 어려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평가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제도권 교육의 폐해라 치부하면서도 국어교사의 책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시인의 필치와 독자의 감성이 접점을 찾고 시적 상상력으로 본질적 가치를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수업은, 시는 배우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미 시 이론에 대한 스키마가 어느 정도 형성된 아이들이라 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고 내포된 시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감상하도록 했다. 작품에 따라서는 조심스럽게 시인의 상황과 창작 배경을 언급해주기도 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자신의 감성과 느낌에다 때로는 경험을 보태 사유의 세계를 정리하고, 발표와 교감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시 감상에 흥미와 자신감을 갖고, 다음 차시에 다룰 작품을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 수업의 요체는 감상과 사유 중심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정립했다. 물론 시의 창작 배경과 시인의 철학적 가치가 감상의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지만, 무지와 순백의 상태에서 학생 스스로 느끼고 감상한 내용을 발표하고 공유함으로써 인식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시 감상의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교과서 속 작품도 좋은 텍스트다. 그런데 굳이 교과서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삶의 양태와 시대적 가치를 담아낸 좋은 작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최신 작품을 엄선해 던져주는 것도 학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식의 깊이를 더하는 방법임을 수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학생 감상문, 박노해 ‘그 겨울의 시’〉
〈전략〉 어린 '나'를 품는 작품 속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릴 적 무서운 꿈을 꾼 나를 안아주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추운 겨울임에도 얇은 이불을 덮고 사는 가난 속에서도 약한 존재와 더 어려운 사람들을 걱정하시는 할머니, 절로 따스한 사랑과 애정이 느껴진다. 연약한 존재들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혼잣말을 아름다운 시낭송으로 표현한 것을 보아 시적 자이인 '나' 또한 할머니의 마음에 동화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동정하고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찬바람은 잠들고 해는 어서 뜨라’는 대조적 표현에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싶은 시인의 따스한 희망과 의지를 읽을 수 있어 좋다. 사랑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새삼 가슴에 담는다. 나도 시인의 가슴을 닮고 싶다. 평생을 노동 해방을 위해 애쓰셨다는 시인의 삶과 노동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정말 뿌듯하다.
2) 수필을 통해 삶의 지혜와 철학을 발견하다
글의 내용을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작가의 세계관과 교감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수필이다.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비교적 정확한 게 이를 대변한다. 저마다 자신의 경험이나 사유의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한 수필 작품들은 진솔하고 나름의 멋과 철학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업 콘텐츠를 선정할 때, 아이들의 추천을 받은 작품을 함께 감상하면 공감도가 높고 반응이 매우 좋다. 한 학생이 추천한 법정 스님의 ‘거꾸로 보기’를 감상하며, 생활 속에서의 ‘발상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역지사지’의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기도 하고, 현대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토의하며 종교의 위상을 정립해 가는 아이들의 성숙한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수필을 감상한 아이들은 작가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엿보며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조심스럽게 펼친다. 생활인으로서의 지혜와 철학이 묻어나는 예리한 분석이 돋보이는 아이들의 감상 발표를 듣노라면 작가를 능가하는 또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유달영의 오래 전 작품인 ‘슬픔에 관하여’를 함께 감상하며, 슬픔의 긍정적 가치를 진솔하게 토로한 아이들의 감상은 비평가를 능가할 만큼의 깊이가 느껴진다. 작품을 감상하며 양귀자의 소설 ‘슬픔도 힘이 된다’를 비롯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린 김애란의 ‘입동’을 소환하기도 한다. 또 다른 아이는 159명의 젊은이가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언급하며 장르와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인식의 확산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정립해간다. 아이들의 생각 속에서 필자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가르치는 자로서의 보람이 충만한 순간이다. 아이들의 성숙한 내면세계를 엿보며 필자도 가끔 작품을 소개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의 깊은 관심과 함께 사제가 함께하는 작품 감상의 묘미를 체감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학생 비평문, 유달영 ‘슬픔에 관하여’〉
문학 감상 시간에 유달영의 ‘슬픔에 관하여’라는 수필을 만났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슬픔은 내가 생각하는 슬픔의 가치와는 많이 달랐다. 나는 슬픔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며 극복의 속도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왔다. 슬픔을 표현하는 나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장암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감정이었다. 나에겐 이런 시선이 적잖이 충격이었다. 내가 충격에 빠져 있었을 때, 한 작품이 떠올랐다. 바로 김애란의 소설 ‘입동’이다.
〈중략〉 입동 속 주인공 부부의 슬픔 극복을 방해했던 이웃 주민들은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슬픔은 짧을수록 좋다는 가혹한 생각. 이웃 사람들은 아들을 잃고 실의에 잠긴 아내에게 진심인 척 성의 없는, 꽃을 가장한 날카로운 매와도 같은 위로를 휘둘렀다. 혈육을 잃은 비통함을 어떻게 헤아리겠냐마는, 적어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진정성 없는 애도로 슬픔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보태서는 안 된다. 이렇게 위로가 지나치게 차가우면 상처가 되고, 위로가 지나치게 뜨거우면 동정이 될 수 있기에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내 마음의 온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다. 거듭된 고민 끝에 나는 생각했다. 슬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개개인의 상처와 슬픔의 온도에 맞게 나의 온도를 설정할 수 있는 내구성 있는 마음을 만들자고. 그들의 슬픔을 나의 가치관에 투영해 왜곡하거나, 천천히 회복 중인 누군가에게 회복을 재촉하지 말자고.
3)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소설 감상
소설은 서사적 이야기다. 인간 삶의 미추와 고락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재미있고 독자의 마음을 깊이 매혹시키는 마력을 지닌다.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의 진리와 진실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진실 탐구를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어렵지 않게 터득할 수가 있다. 그것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 및 전후소설은 가능하면 제한했다. 다분히 교훈적인 메시지가 강한 작품도 마찬가지다. 대신 고달프고 힘들지만 인간의 향기가 풍기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 아이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작품을 택해 진한 삶의 진실과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때로는 아이들의 추천으로 최근에 발표된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선정해 함께 읽고 느끼고 발견하는 재미를 더하곤 했다. 양귀자의 ‘한계령’ 감상 발표를 하며 시장터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눈물 훔치는 아이도 있었다. 201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천국의 문’ 감상 발표 시, 사회문화와 윤리 시간에 배운 가치를 접목해 가족해체와 인간소외, 노인문제 등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문제해결력을 기르고 인식의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도 대견스러웠다.
생텍쥐베리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를 함께 보고, 모둠별 토의를 통해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찾아내고 다소 전문적인 소설과 영화의 기법을 분석하며 연출가가 작품 속에 구현해 놓은 실존주의적 가치를 탐구하는 수준 높은 감상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 감상수업은 다양한 삶의 희로애락을 체험하고 느끼며 작품 이면에 감춰진 삶의 진실과 방향을 찾는 통찰력을 길러주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학생 비평문, 김경욱 ‘천국의 문’〉
〈전략〉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밤, 장례식장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메스꺼움을 느끼고 남자를 신고하려 한다. 남자의 죄를 신고함으로써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지우고 오직 남자의 잘못으로 합리화하고자 함이었을까. 하지만 이내 그 남자가 단축번호 1번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년 전 시낭송 때 느낀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시낭송 때 느꼈던 끔찍한 감정의 이름은 바로 ‘모욕감’이었다. 시낭송 때는 아빠를 피해 다니며 그 진심으로부터 도망쳤지만, 또다시 같은 감정을 느낀 여자에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아빠는 정말 죽었고, 자신도 그 감정을 똑똑히 자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그토록 바라던 아빠의 죽음이 현실이 되었음에도 인생이 끝장나버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왜일까? 가족을 버렸던 엄마, 동생과 다르다고 자부했던 마음이 사실 위선이자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까지 아버지를 보필한 것인데, 결국 그들과 같다니. 이젠 그녀에겐 자유도, 자신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병든 아버지도 없다. 여자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누구를 신고했는지 작품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여자는 말할 것이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마음으로 아버지를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였다고. 그리고 고백할 것이다. 모욕감을 준 사람도, 느낀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이었음을.
4) 시공을 초월한 서양고전의 향기에 젖어드는 시간
문학의 깊은 맛은 모름지기 장편소설에 있다. 흔히 읽어볼 기회가 많지 않은 서양 고전소설이면 더 좋다. 오랜 세월 독자의 뇌리에 감동으로 각인된 명작이 선사하는 여운과 향기는 짙고 그윽하다. 그런데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급변하는 가치관으로 인해 고전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특히 감성이 풍부한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필자가 교사 초년시절에 만난 학생들과 한 세대가 지난 요즘 아이들을 비교하면 그 격차가 현격하다.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필자가 명작으로 알려진 서양고전의 맛과 가치를 이야기하자 아이들이 흔쾌히 동의해 서양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수능을 앞둔 아이들의 망중한의 여유로움이었다. 아이들에게 ‘일리아스’를 비롯해 ‘맥베스’, ‘부활’ 등 50여 권의 장편을 안내하고 자신이 원하는 한 권을 자유스럽게 선정하여 틈틈이 읽게 하였다.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각자마다 자유로운 형식과 콘텐츠로 감상 PPT를 작성해 발표했다. 질의 응답 형식으로 교감의 시간을 가진 후 지도교사의 코멘트를 끝으로 마무리하였다.
스펀지가 물기를 빨아들이듯, 작품에 내포된 가치를 읽어내는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30명의 학생들이 각자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발표하고 교감함으로써 다같이 서양 고전의 진수를 느끼며 나름의 가치를 정립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친구들의 발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으로 더 집중하며 문학에 눈을 떠 가는 모습이 좋았다. 시공을 초월해 인류의 가슴을 울리는 고전의 매력을 만끽하고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과 그 가치를 발견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아이들, 성숙한 문학소녀들의 내공에 마음 뿌듯했다.
〈학생 감상문,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작품을 읽으며 느끼고 터득한 것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성숙해지고 문학과 가까워지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신화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하고 다양한 키워드와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어 기쁘다.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뇌했고,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화두였음도 알게 되었다. 또한 서사시의 탄생 배경과 서양 문학의 원형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중략〉 난해하다고 생각해 읽기를 주저했던 서양 고전을 친구들과 교감하며 작품의 메시지와 의미를 정리하고 성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디세이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가치와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 더 쏠쏠하고 유익했으며 그런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5) 글쓰기의 괴로움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창작 활동
국어교사로서의 책무 중의 하나가 바로 글쓰기 지도이다. 중국 산문의 대가로 칭송되는 구양수도 말하지 않았는가. 좋은 작품을 읽고 생각을 다듬고 정리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괴로운 작업이면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 바로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서평이나 칼럼 쓰기도 좋지만, 그 외의 시, 수필, 소설 등의 문학작품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순수 창작물이다. 물론 아이들이 전문적인 창작이론을 배운 것은 아니다. 창작 활동은 교육과정 상 편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그렇지만 작품 창작 활동과 감상은 아이들의 정서적 감성과 창의적 사고가 어우러진 사유의 전개 과정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다.
교사 초년시절에는 백일장 준비나 문예반 활동 등 아이들에게 창작의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좋은 문예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풋풋한 향기가 묻어 나는 아이들의 시와 수필 그리고 소설을 접하면 가슴이 은은하게 물드는 싱그러움을 느낀다. 그것이 너무 좋다. 교단에 오래 서면서 맛보는 국어교사로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바로 글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을 엿보는 일이다. 아이들의 이상과 세계가 담긴 글을 읽으면 가슴이 뛴다. 망중한(忙中閑)이란 말처럼 대입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자기만의 생각과 개성 넘치는 필치로 엮어내는 글들이기에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도 더 값지고 아름답다. 수줍은 마음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성숙한 내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몇몇 아이들은 기성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동료 학생들과 지도교사의 찬사가 더해지면 잠재된 소질과 재주가 발현되고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원석이지 않은가. 필자도 창작물을 아이들에게 가끔 소개하는데, 그 또한 아이들에게 문학에 대한 열의와 동기부여로 작용하는 것 같아 기쁘다.
〈학생 창작 수필, ‘유월의 뽀로수 낭구’〉
〈전략〉 그해 여름, 할아버지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영원히 내 곁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는 독한 암으로 말까지 잃으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 집에서 놀다가 오빠에게서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유월이었다. 〈중략〉 매년 유월이 되면 유구를 가득 메우던 웃음소리가, 할아버지와 함께 바라보던 붉은 뽀로수가, 떫고 시큼한 시간이 그리워서 종종 마트에서 보리수를 사보지만 아무리 먹어봐도 할아버지와 함께 먹던 뽀로수의 달콤한 맛을 재현할 수 없음에 가슴이 아리다. 마지막 날 따낸 보리수로 만든 진득한 잼과 보리수청, 얼린 보리수는 여전히 우리 집 냉장고 한 켠에 남아있다. 뽀로수나무도, 매실밭도, 유월 모임도 없는 지금, 상해가는 보리수들이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연줄이라는 생각에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미련이 남는다. 비록 손녀딸의 꿈에도 한 번 나와주지 않는 매정한 할아버지이지만 할아버지와의 유월을, 냉장고 속 뽀로수들을 떠올릴 때마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여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시큼함에 예민해진 지금까지도 뽀로수의 맛을 찾아 헤매고, 기억 속 여름으로 침잠하는 나는 어쩐지 여름을 아파하면서도 못내 단념하지 못하는 듯하다.
〈필자 작품〉
열아홉 그리고 – 고3 제자들에게 -
나머지 하나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금기(禁忌)의 시간들
불투명한 미래로 흔들리는
습작 같은 인생
그래,
행간을 밝히는 눈동자로
때로는 치기(稚氣)를 잠재우는 불면으로
숨겨진 조각을 찾아
삶의 무늬를 맞추어 가는
고뇌 어린 몸짓
세상의 중심을 향한 길이라는
믿음 하나로
뚜벅뚜벅 정진(精進)하는
몸살 앓으며 비상(飛翔)하는
그렇게
튼실히 영그는
뜨거운 목숨들이여!
3.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움
교사는 늘 고민한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가. 교사로서 아이들과의 수업을 통해 상호 교감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며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작업이다.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앎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콘텐츠를 준비하고 수업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큰 역할이자 일상이 되었다. 특히나 요즘 아이들은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지고 생활화된 탓인지 줄글 읽기나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모두들 문해력의 부족을 걱정한다. 국어 영역도 수능 적응력을 위해 문제풀이식 수업이 일상화된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수업으로는 깊이 있는 사고력과 인식의 확장을 제대로 기대할 수 없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감상능력의 향상은 더더욱 요원하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작품 속을 거닐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메마른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의 필요성을 아이들과의 활동을 통해 절실히 느낀다. 아이들과 함께 선정한 문학작품을 읽고 감상하며, 서로의 생각을 발표하고 공유하며 교감하는 과정 자체가 정말 즐겁다. 가르치는 자로서 느끼는 자부심이고 보람이다. 더욱이 아이들이 공감능력을 기르고 더불어 사는 삶의 연대감을 중요한 삶의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건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고 확산이다.
학기말 마무리 시간, 배움은 혼자만 소유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공유할 때 그 가치가 더 빛난다는 것을 문학수업을 통해 깨달았다는 한 아이의 말이 가슴 속에 오랜 울림으로 남아 있다. 대학에 진학해 인문학강좌나 교양강좌를 듣는 학생들이 필자와 함께 한 수업이 생각나고 많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오곤 한다. 수치로 매겨지는 학업성취도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작품의 마력에 빠져 감상하고,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공유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나는 행복한 교사다.
〈졸업생의 편지 중에서〉
〈전략〉 저희를 위해 여러 기회를 열어주시고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선생님 덕에 마음 둘 수 있었고, 수험생활을 잘 버틸 수 있었어요. 또 요즘 그리운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선생님 수업이에요! 소신 발언 하나 하자면, 쌤의 수업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수업이랍니다!! 선생님께서 매주 소개하시는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각자만의 글투로 적고 공유하던 그 시간이 정말 그리워요. 선생님의 수업은 총천연색 감성이 깨어나는 시간이었어요. 〈어린 왕자〉 영화를 통해 존재의 빛에 대해 고민하며 실존주의를 공부하던 기억도 새롭고요.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고 학생들 모두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시던 선생님의 모습, 진정으로 배움의 기쁨을 느낀 값진 시간이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정형화된 주입식 수업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생각할 수 있는 작품과 주제를 선정해 수업하십니다. 한 인물에게 이입해 작품 속 세계로 빠져들 때도 있었고 문학 창작 활동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열띤 토론으로 논리를 점검할 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창작하신 작품을 소개해 주실 때는 친구들과 참 멋진 분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매번 새로운 활동과 작품들이 가득했기에 전 선생님의 수업이 항상 기다려졌습니다. 학생들이 발표할 때도 늘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지시거나 학생들끼리 서로 질문하게 지도함으로써 사유의 폭을 넓히는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학생들에게도 항상 친근하게 다가와 주시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저는 문학 과목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기에 추천합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재학생 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