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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기

안녕하세요? 저는 군위고등학교에서 4년째 근무 중인 윤리 교사 권혜인입니다. 군위고는 2023년 7월 1일자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습니다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경상북도의 작은 지역인 군위읍에 위치한 단 하나뿐인 고등학교였습니다.(물론 행정 구역 상 소속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소규모
농어촌 지역의 학교입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중학교에서 근무를 하였고,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것은 군위가 처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랬던 고등학교 근무라 설렘과 더불어
대입이라는 걱정을 안고 학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뉴스에서만 보던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인한 다양한 변화와 더불어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보람이 넘치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위고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대도시 소재의 학교에 비해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폭넓게 보장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근무하시는 선생님 수가 적어서 1인당 담당하는 과목 수가 이미 너무 많고, 또한 농어촌 지역의 학교 특성상
강사님을 모시는 데에도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대구시 교육청의 온라인 학교,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등을 통해 이러한 점이 보완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고교학점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윤리 교사로서 수업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이 가능할까? 1등급을 받게 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특히 탐구 과목은 내용 교과이다 보니 학생들이 수능을 대비할 때 학교 수업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수능 출제 경향에 맞게,
오답을 잘 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처음 고등학교 발령을 받고 수업을 준비할 때에는 기출 문제를 분석하고, 자주
나오는 오답이나 주의해야 할 문제 유형들을 수집했습니다. 윤리 과목을 난생 처음 배우는 학생들을 데리고 완벽하게 '수능용'의 윤리 지식을
가르치려 하다 보니, 과연 이게 맞는 방향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교실 안의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서 윤리 과목을 선택한 것일 뿐,
굳이 수능을 칠 것도 아닌데 괜히 저 혼자 핏대 세우며 '모의고사에 자주 나오는 거야.'와 같은 말로 학생들을 버겁게 하면서, '내가 뭘 하고
있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도 저도 지쳐갔고,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수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단순히
수능 1등급 받는 것이 나의 목표인가?' 와 같은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좋아하는 교수님의 강의 계획서를 보았습니다. 정성스럽게 쓰여진 강의 계획서의 교육 목표에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계몽의 모토로 제시했던 '감히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를 인용한
것이었지요. 덧붙여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맺어왔던 관계와 제도들을 낯설게 봄으로써 자신의 지성을 스스로 사용해 볼 기회를 갖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저는, 저도 감히 우리 학교 학생들이 윤리 수업을 통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사상을 배우고, 더 열린 태도를 가지게 되기를, 또한 이를 통해 세상에 자신만의 질문을 던져 보기를 말입니다.
부끄럽지만, 이런 관점에서 여기서 제가 윤리 시간에 했던 몇 가지 수업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해외 원조 실천하기: '피터 싱어 기부 마켓'
'생활과 윤리' 과목의 맨 마지막 단원에는 '지구촌 평화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해외원조와 관련한 여러 사상가들의 입장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이 단순히 자기 주변의 이웃과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를 넘어서서, 세계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수업을 꾸려야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학생들이 '해외 원조'라는 주제를 처음 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 많은데 왜 다른 나라 사람까지 도와야 해요?', '솔직히 제가 쓸 돈도 없는데 무슨 기부예요. 기부는 부자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였습니다. 사실 모두 충분히 이해가 가고, 일리가 있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 단원을 공부하며, 아이들이 세계의 이웃에게까지 인류애를 실천할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진 학생들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배울 철학자 중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원조를 주장하는 '피터 싱어'의 생각을 배운 뒤, 우리가 직접 그의 생각을 '피터 싱어 기부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부 마켓 수업의 준비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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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는 우리가 이타적 행동을 할 때 따뜻한 가슴만이 아닌, 냉정한 이성을 통해 우리 행동이 가져올 결과적 효율성을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도움 주체의 과도한 희생이 없다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고도 남는 소득에 대해서는 더욱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기부하는 것이 최대한의 효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싱어는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국경을 초월하여 우리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에게 기부할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싱어의 철학을 배우면서 무엇보다도 그의 실천성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싱어는 실제로 채식을 하고, 자신의 소득 중 많은 부분을
기부합니다.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당장 채식을 실천하거나, 고액 기부를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철학을 함께 나누고 작게나마 실천해 본 경험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보람찼던 점은 학생들이 처음 '해외 원조' 주제를 처음 접했을 때와는 달리 마켓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살면 나만 손해인가?' 라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약간은 위악적으로, 또는 별 생각 없이 '그렇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타인을 돕는 것이 상대방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나에게도 큰 기쁨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기에 이
프로젝트는 저와 학생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마켓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군위고등학교' 이름으로 유엔난민기구에
기부하였는데,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고, 어떤 효과가 발생했는지 지속적으로 알려주었기에 오랫동안 큰 뿌듯함으로 남았습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아침 루틴 만들기: '우리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고전과 윤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고전도 싫고, 윤리는 더 싫은데 고전과 윤리라니요. 이런 지겨운 제목을 가진 과목을 기꺼이 선택한 학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절대 이 시간만큼은 아이들을 재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과거의 고전을 최대한 우리 삶에 적용시켜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모든 수업을 학생들의 생활에 바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계획했습니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발췌독했던 수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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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맷은 윤리와 사상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진도를 나갈 때에도 항상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2000년도 훨씬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케케묵은 이야기로 생각하면 하품이 나오지만, 우리가 실제 삶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그의 사상에 접근하면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훗날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문장들은 다 잊어버려도, 3주 동안 의지의 나약함을 이겨내 본 경험은 조금 더 오래 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교사가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배울 점도, 궁금한 점도 너무나 많습니다. 늘 고민입니다.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배움이
일어났을지, 그들의 마음을 미세하게나마 움직였을지, 혹여 AI시대에 챗GPT보다도 부족한 나의 알량한 지식을 마구 떠들다가 나온 것만은 아닐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이 더 나은 수업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이러한 고민 속에서 학생들이 윤리 과목을 그저
등급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가는 데 쓰는 과목이 아닌,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로 삼게 될 것이라고도 말입니다.
1학년 통합사회부터 2학년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수업을 함께 했던 서울대 23학번 경제학부 K군은 저에게 가르침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한 교사는 학생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을 통해 더 큰 배움을 얻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준 학생입니다.
2학년 1학기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에서 저는 윤리와 사상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1학기 말 K군이 2학년 윤리와 사상 수행평가로 '철학자 인명사전 만들기'를 한 후 작성한 느낀 점을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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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을 배우는 목적은 사유하기 위함이 아닌가. 철학을 통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점차 성장할 수 있다. 이번에 나는 철학자 인명사전을 작성하며 많은 시간을 썼지만,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배웠다. 퇴계 이황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배웠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나의 성장을 위한 습관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르트르를 통해 자유와 책임을 배웠다. 마르크스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배웠다. 그리고 롤스를 통해 복지와 정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철학자 인명사전을 정리했기 때문에, 사상가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과정이 의미가 있었다. 한층 더 이상적인 나에 가까워지게 되어 정말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우고 싶다." |
칸트의 묘비명의 내용처럼, 광활한 우주 속의 한낱 미물과도 같은 인간이, 그의 내면에는 또한 그 만큼이나 큰 우주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을 K군을 보며 느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더 넓은 세계에 나아가 부딪치고, 배우고 성장하며 동시에 자신 안에 있는 아름다운 우주를 잘 간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윤리를 배울 때 사상가가 저술한 책의 문구를 인용해서 소개해주고, 의미 해석을 같이 함으로써 원래 내용을 스스로 읽고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수능 대비까지 가능한 꼼꼼한 수업으로 윤리를 선택한 학생들이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좋은 수능 성적을 거두는데 큰 도움을 제공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소에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그런 향상심이 저에게 모범이 되어 저도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재학생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