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영역 바로가기

교육계 이슈이슈!

잡았다 권태감, 요놈!(한 교사의 코로나 우울감 극복기)

임지예 대진고등학교 교사
대진고등학교 교사 임지예

권.태.〔倦怠〕 :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표준국어대사전) 2020년이 오기 전까지 저는, 사전 속 ‘권태’로움이 제 삶에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국어 교사입니다.
글 제안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나 고민하다, 부끄럽지만... 교사생활 15년 만에 찾아온 권태감 극복기를 조심히 고백해 보고자 합니다. 특별하지도, 기발하지도 않은 제 이야기가 작은 위로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합니다.

권태기의 시작.

2020년 1월. 우리나라를 덮친 코로나 19는 국민 전체의 삶을 흔들어 놓았고 학교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2월. 마스크를 쓰고 만났던 아이들을, 4월이 되어서야 온라인 수업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워킹 스루라는 초유의 방법으로 학력평가 시험지를 나눠주며 스치듯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지요. 학생이 없는 학교는 참으로 고요하고 제법 편안한 곳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지속은 많은 혼란을 가져왔고 학생들이 없는 학교는 적막하기만 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아, 학교가기 싫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가.

‘권태’를 마주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마찬가지시겠지만,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즐거움은 저에게 쏟아지는 개인 업무를 버틸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이었나 봅니다. 수업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많은 계획들이 어그러지고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는 지침들은 정신적인 피로로 쌓여갔고, 이것은 곧 교사생활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자 할 의지도, 기운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었고 아이들을 만나는 날도 힘들게 느껴지기만 했습니다. ‘아, 이게 권태기구나!’ 이렇게 제게 권태기가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답 찾기.

권태에 대한 직시는 스스로를 추스르는 발판이 되었고 그 방법은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과 소통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 ‘책’이라고 생각했고 온라인 수업의 환경에서 개별적으로 가정에서 활동하기 가장 좋은 학습 형태가 ‘독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세우고 함께 책을 읽어 내려간다면 일정한 의무감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물리, 지학, 수학, 정보, 영어, 국어 과목 등 다양한 과목의 선생님들과 구성한 ‘학교 안 교원학습공동체’ 동아리 선생님들께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들을 추천 받았습니다. 그 중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책들을 추려 학생들에게 제시하였습니다.

더 위험한 과학책(랜들 먼로), 리만 가설(존 더비셔), 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새의 감각(팀 버케드),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제프 호킨스), 슈퍼인텔리전스(닉 보스트롬),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이기적인 뇌(아힘 페터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 코스모스(칼 세이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

총 14권

<학생들에게 제시한 1차 책목록>

그 후 구글 클래스룸 학급방을 통해 학생들에게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자신의 진로와 관련되었거나 관심 분야에 맞는 책을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총 6권의 책이 선정되었습니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7명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호킨스 외 멘토르)- 3명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7명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 3명
총균쇠(재러드 다이아몬드) - 7명
코스모스(칼 세이건) - 7명

<학생들이 선택한 책목록 및 조별 인원>

선정된 책들이 난이도가 있어 혼자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같은 책을 선정한 학생들을 모아 조를 구성하였습니다. 책을 읽는 방식과 소통 방식은 각 조별로 결정하게 하였고 저는 ‘책의 기본 내용 이해, 한 챕터 읽고 난 후 나눔 활동 진행,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 및 이론 학습, 자신의 진로와 연결하여 이후 학습 계획 수립’ 등의 활동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면 활동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구글 클래스룸 학급방에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만들고 그 안에 각 조별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권한을 조별 학생들에게만 부여하여 자신들이 소통하고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수시로 학생들의 나눔 정도와 진행 속도를 확인하였습니다. 격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도록 학교 등교일에는 학급 자율활동 시간이나 조회시간을 활용하여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나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일 경우에는 구글 클래스룸 행아웃을 이용하여 각 조별 진행 상황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2학기에도 학교는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 변화는 계속 되었고 1학기에 비해 짧은 학사 일정으로 인해 정기고사와 다양한 행사들로 여전히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어려운 책들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책을 모두 다 읽은 날, 이 활동을 선생님들과 나누기 위해 공개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수업은 기존의 방식이 아닌, 구글 클래스룸 수업방에 선생님들을 초대하여 행아웃으로 진행하는 언택트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행아웃을 통한 공개 수업 장면> <행아웃을 통한 공개 수업 장면>
<공개 수업 진행> <공개 수업 진행>

학생들은 조별로 행아웃을 통해 자신들의 한 학기 한 권 읽기 활동을 발표하였습니다. 발표 내용은 ‘책 선정 이유,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읽고 나서 더 탐구하거나 알아보고 싶은 내용, 자신이 학습한 내용, 느낀 점’ 등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학생 발표자료 1> <학생 발표자료 1>
<학생 발표 자료2> <학생 발표 자료2>

발표를 진행하는 동안 행아웃을 통해 수업을 듣고 계셨던 선생님들께는 피드백을, 발표를 듣는 학생들에게는 다른 조의 발표를 들으며 든 의문점을 작성하도록 요청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정리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독서 후 활동을 전개한 이유는 자신의 독서 활동을 점검하고 그것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이해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고 처음 수립한 자신의 독서 목표에 얼마나 부합하였는지를 돌아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미처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은 다시 찾아 읽는 재독서 활동으로 이어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 내용들을 기반으로 개별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독서 활동을 보고서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이해한 바를 표현하는 활동의 가치와 독서 점검 활동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는 등의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 개별 보고서1> <학생 개별 보고서1>
<학생 개별 보고서2> <학생 개별 보고서2>
<학생 개별 보고서3> <학생 개별 보고서3>

잡았다 권태감, 요놈!

큰 준비 없이 시작한 활동이었고 교직에 대한 개인적인 권태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었기에 진행을 하며 미숙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이 병행되는 환경에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에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매일 이뤄지는 조․종례 시간과 학급 자율활동 시간 등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이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학생들 모두가 제시된 책을 모두 깊이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본질에서 어긋나는 형태의 활동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얻은 것보다 교사인 제가 얻은 것이 훨씬 크다는 사실입니다. 교사의 미숙함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은 생각보다 책읽기 활동에 잘 집중해 주었고 자신의 읽기 활동을 반성하였으며 함께 소통하며 읽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제 교직 생활에 찾아온 권태감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습니다.

다시 학생 안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고 새롭게 시작될 2021년의 우리 학교는 아직도 모든 것이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2021년은 2020년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지난 1년간 많은 선생님들이 저와 같은 우울감과 권태감, 어려움을 느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학교는 학생들과 함께하기 위해 변해왔고 이제는 그 변화가 코로나 19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한 힘으로 성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저는, 교사인 제가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고 가르쳐야 하며 통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저를 찾아온 권태감을 경험하며 저도 하나의 사람이고 교사의 고민은 학생에서 시작해서 결국 학생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준 교훈이 있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학생이, 선생님들이 결국 교사인 ‘나’를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입니다. 학생과 소통하며 함께 성장함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2020년은 제게 백신과도 같은 해였습니다. 앞으로도 늘 학생 안에서 답을 찾고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마친 우리반 친구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마친 우리반 친구들>

퀵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