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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와 동주를 만나는 방법
육사와 동주 사이, 한성여고
내가 재직하는 학교 주변에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육사와 관련된 장소가 많다. 베이징으로 끌려가 순국하기 전 고국에서 마지막으로 갇혀 있었던 동대문경찰서, 지금의 혜화경찰서가 걸어서 갈 만 한 거리에 있고, 시신도 없이 초상을 치러야 했을 유족들의 통곡이 남은 호상소도 지척이다. 봄이면 창경궁의 벚꽃이 꽃비 내렸다던, 선생이 그걸 보고 한참을 감탄했다던, 육사의 유일한 혈육 이옥비 여사가 태어난 명륜동 거주지도 가깝다.
그뿐인가. 육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청포도」와 「절정」을 발표했던 <문장>, 이를 주관했던 상허 이태준의 집도 성북동에 있었으니 육사는 한성여고 앞 삼선교 사거리를 몇 번은 지나쳤으리라. 그 때 육사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성북구 관내의 종암동이다. ‘대한민국’ 100주년이 되는 내년 5월, 성북구에 세 번째 이육사문학관이 세워지는 연유다.
동주는 어떤가? 걷긴 멀지만 버스를 타면 30분 이내 거리에 그의 자취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제일 가깝기로는 동주가 학우들과 원족 와 기념사진을 남긴 창경‘원’ 식물원이 있다. 그와 그의 시를 우리에게 ‘선물’하는데 일등공신인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했던 집터와 아침마다 산책을 하고 계곡물에 세수를 했다던 수성동 계곡도 그대로다. 인왕산 자락 길 끝에 달린 윤동주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은 좀 오버지만 그래도 시인을 기억하기 좋은 풍경에 자리 잡았다.
동주하면 연전, 연세대학교를 빼놓을 수 없겠다. ‘청춘버스’ 273번을 타면 30분이면 족하다. 존경하던 스승 이양하 교수와 당시 문과 동문 전체가 사진을 찍은 언더우드 동상도 어엿하고, 동주가 고향 후배들에게 자랑했던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스팀슨관의 태극 문양도 또렷하다. 동주 시비로는 가장 먼저 세워진 시비도 동생 윤일주의 설계로 남아 있다. 시비 뒤편의 핀슨홀은 동주가 1학년 때 일 년 간 생활했던 기숙사다.
언더우드동상 앞의 윤동주(좌)와 한성여고 학생들(우)
육사의 외동딸과 동주의 장조카
사정이 이러한데, 문학수업시간에 육사와 동주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두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문학 수행평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육사-동주 프로젝트’다. 거창한 건 아니고 한 학기 동안 마음에 드는 시인을 선택해 자유 주제로 발표를 하고 보고서를 내는 방식이다. 마침 본교에서 채택한 문학교과서에 육사의 「절정」과 동주의 「참회록」이 실려 있으니 구색도 갖췄다.
동주의 시를 색깔로 표현한 아이, 자신의 꿈인 공간 디자이너가 돼 ‘육사의 방’과 ‘동주의 방’을 만든 학생, 동주의 시에 영감을 받아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이를 종이로 만들어 보여준 아이, 큰집 제사에 갔다 아버지를 졸라 육사의 방치된 생가를 보고 울분에 찬 발표를 하던 학생 등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대부분은 뻔한 주제로 ‘의무방어’식 발표를 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선생의 고민은 깊어진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육사와 동주를 쨍하게 심어줄 수 있을까? 두 분을 모셔올 순 없으니 유족을 만나게 할 순 없을까? 다행히 육사의 따님과 동주의 조카가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안동 이육사문학관에 계신 이옥비 여사와 성균관대에서 가르치시는 윤인석 교수를 모시고 특별한 강의를 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두 분은 아이돌 가수 대접을 받으셨다. 육사와 동주를 뵙듯 아이들은 악수를 하고 싶어 했고, 사진을 찍자고 했고, 사인을 해달라고 길게 줄을 섰다. 그러고도 쉽게 두 분을 보내 드리지 않아 나를 곤란하게 했다. 기쁘고 흐뭇한 광경이었다.
이옥비 여사 특강 장면(좌)과 안동 육사 답사(우)
이쯤 되면 분위기가 형성된다, 육사와 동주 답사가! 육사 답사는 모름지기 베이징 동촹후통의 순국처 정도는 돼야 하고, 동주 답사는 북간도 용정 묘소 정도는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앞서 소개한 서울 내 육사-동주 코스도 매우 훌륭하다. 만약 여건이 허락해 조금 더 욕심을 부릴 수 있다면? 안동-대구 육사 답사와 ‘세상에서 가장 큰 원고지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육사의 유년과 청년 시절을 찾아
육사 선생은 안동 출신이다. 그러니 안동 답사야말로 육사 답사의 시작이다. 그런데 육사가 청년시절을 보내며 첫 시를 발표하고, 첫 번째 수감생활을 하고, 신문기자로서 첫 직장생활을 한 곳은 대구다. 그런데도 육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나 문학관이 없음을 애석히 여겨 사비를 털어 ‘264작은문학관’을 열고 손수 운영하는 이가 있다. 경북대 국문과의 박현수 교수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헌병대장의 집으로 알려진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264작은문학관’은 육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에 결코 작지 않다. 공간은 아담하지만 전시물은 다양하고 충실하며, 특별히 매우 효율적으로 육사의 삶과 문학을 보여준다. 각 전시물에는 번호가 붙어 있는데, 이는 『한 권에 담은 264작은문학관』이라는 책자의 쪽수다. 유난히 크게 인쇄된 페이지 숫자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레고로 만든 陸史 서명과 육사 6형제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이곳을 떠나기 전 2층 전시실 천장을 올려다보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마룻대에 쓰인 「광야」의 일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시구가 우리를 흐뭇하게 내려다볼 것이다. 그 옆으로 李沃非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앞서 소개한 육사의 유일한 혈육 이옥비 여사의 존함이다. ‘옥비’라는 이름이 참 예뻐, 역시 시인이라 따님 이름도 남달리 지으셨구나 싶은데 한자는 전연 뜻밖이다. 딸이 태어나고 한참을 고심하다 백일 때에 지어 주었다는 이름 옥비, 기름질 沃에 아닐 非, 그러니까 ‘부유하게 살지 말아라.’, ‘담백한 삶을 살아라.’는 뜻이다.
아버지 육사의 싯구를 옮긴 이옥비 여사의 육필을 264작은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다
대구에서 안동 이육사문학관으로 넘어오면 바로 그 분을 뵐 수 있다. 미리 연락을 하면 이옥비 여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꼭 추천하고 부탁할 일이 있다. 이육사문학관 뒷산에 육사의 묘소가 있다. 왕복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다보니 많은 이들이 불가피하게 참배를 포기한다. 육사 묘소에 인사드리는 것을 일정에 넣어 꼭 다녀오길 간곡히 권한다. 육사의 묘비는 우리나라 시인 중 단 한 분에게만 허락될 것 같은 문구로 시작한다. ‘民族詩人’
안동 이육사문학관은 육사의 고향 마을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육사의 유년시절과 관련된 공간을 시를 구상한 곳으로 조성,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칼선대와 윷판대인데, 각각 「절정」과 「광야」의 시상지란다. 물론 전자는 1940년 서울 시절에 발표했고 후자는 유작이니 16세에 고향을 떠난 육사가 이곳에서 직접 시상을 일구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늘 타지와 타국을 떠돌며 쫓기듯 살았던 육사가, 정처 없는 마음일 때 떠올렸을 고향이 그의 문학의 원천이었음을 전제한 뜻깊은 추측이리라. 안동 시내로 나와서는 육사의 첫 번째 시비와 뒷면에 적힌 동탁 조지훈의 비문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학교 건물 창문을 원고지로
나도 안다. 이 정도의 답사가 학교 현장에서 쉽게 추진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뜻있는 교사들이 자율동아리를 만들거나 교육혁신지구 예산을 받아서 진행할 수 있다.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수업의 입체적 확대라고 스스로를 잠깐 속이면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문학여행을 선물할 수 있다. 단위학교 차원에서 추진이 어렵다면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것도 방법이다. 참고로 나는 이 세 가지 방식을 모두 시도했고 진행했다. 생각과 염려보다 더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도와준다.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할 수 있는 활동을 한 가지만 소개한다. 물론 이 활동도 다수 학생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학교 밖이 아니라 학교 자체를 활용하기에 다소 수월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원고지 프로젝트’ 말처럼 거창한 건 아니다.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직사각형의 긴 건물이라 창문이 많이, 그리고 규칙적으로 달려 있다. 나는 이게 어느 순간 원고지로 보였다.
이 활동은 노동집약적이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어 더 뜻깊다. 우선 학생들과 토의를 거쳐 육사나 동주의 시 중 비교적 짧은 작품을 한 편 고른다. 이 작품을 학교 건물 창문을 원고지 삼아 붙이는 것이다. 여러 반 수업을 들어간다면 한 반에서 한 연씩 작업을 하는 것도 좋겠다. 필요한 건 흰색 전지, 검정색 전지, 가위와 풀, 그리고 테이프다. 각자 개성대로 글자를 그리고 오리고 붙이면 된다. 아이들은 단순한 일을 좋아하고 거기에 집중한다.
교사가 할 일은 창문에 붙일 글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한 글자가 밀리면 그 줄의 모든 글자를 다시 붙여야 하니 주의해야 한다. 학교장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일주일 정도 붙여놓고 등교할 때 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할 수만 있다면, 육사와 동주 관련 특강 때 붙이면 더 의미 있겠다. 2017년 「절정」, 2018년 「청포도」를 본 이옥비 여사는 무척 기뻐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큰 원고지로 탄생한 한성여고 본관(좌)과 윤동주 시인의 장조카인 윤인석 교수의 특강 장면(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