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이슈이슈!
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 문을 향한 기나긴 여.행.
“네?! 어디시라구요?”
웹진 아로리로부터 진학지도기에 대한 원고를 청탁 받았을 때 내뱉은 한마디입니다. 작년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은 저에게 두 제자의 합격은 큰 기쁨임과 동시에 성취감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5년차에 접어드는 교사이기에 진학지도에 대해 논하고 조언을 드리기엔 부족함이 많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원고의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하던 중, ‘2015학년도 수시를 준비할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님들이 가장 궁금해 하실 것은 합격한 학생과 지도교사의 준비 과정 그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두 제자( K : 서울대학교 식품동물생명공학부 일반전형 합격 / I : 서울대학교 의예과 지역균형 합격)와 저의 수시준비 과정을 ‘여행’에 비유하여 최대한 생생하게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여행을 가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vs 나는 00로 여행 갈거야!
서울대학교 수시모집에 지원하기 전 지원모집단위를 결정하는데 그것은 기나긴 수시라는 여행의 최종 목적지라 볼 수 있습니다. 바다에 가고 싶은데 동해로 갈지 남해로 갈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면 그 두 곳을 비교하게 됩니다. 도착해서 볼 수 있는 경관과 맛집은 다르니까요. I는 생명에 상당한 관심이 많고 ‘재생의학’ 연구를 목표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의학이란 단어 때문에 의예과가 당연해 보였으나, 연구에 목적이 있었던 I는 생명과학부에도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생의학’ 분야의 연구들을 오랜 시간 살피며 자료를 수집했고 그것을 소논문 형식의 책자로 만들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구의 중심에는 의예과 출신자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발자취를 보며 여행의 최종 목적지를 의예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 선정에 고민은 있었지만 여행에 필요한 가이드북을 스스로 만들어 냈으니 고민의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었습니다. 반면에 K는 이미 여행지가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유전자 조절 연구’가 목표인 K는 식품동물생명공학부의 커리큘럼을 보고 쉽게 여행지를 결정했습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금새 결정 되었으니 여행의 시작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누구랑 같이 여행갈까?
수시라는 여행은 학생 혼자 나서긴 불가능한 여행입니다. 함께 떠날 친구(추천서를 쓰게 될 지도교사)가 필요한데 그 친구는 오랫동안 알던 친구일 수도, 낯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알던 친구와의 여행은 편안함과 든든함이 무기지요. 하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신선함과 짜릿함은 적을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기나긴 배낭여행을 해 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여행 중 꼭 한번은 친구와 싸우게 된다는 사실을!
낯선 친구와의 여행은 긴장감과 약간의 불편함이 따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를 알아가고자 노력을 하게 되고 배려를 하고자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합니다. 그러면서 의외의 공통점이나 관심사를 발견하게 되고 친밀도가 극대화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K와 I에게 오랫동안 알던 친구였습니다. K는 저와 성격이 비슷하여 대화가 매우 잘 되고 편안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I와의 여행보다 K와의 여행이 더 자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비슷하다보니 고민에 빠지게 되면 결정이 쉬울 때도 있었지만 의외로 같이 헤매게 될 때가 더 많았습니다. 너무 쉽게 풀릴 것 같던 여행이 예상과는 다른 어려운 여행이 되었고 그럴 때마다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한 해 동안 어느 제자보다 많은 대화와 상담이 이루어졌던 K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고 함께 한 여행을 통해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I는 저와 다른 습관과 성격의 친구였기에 여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쉽게 풀리는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I는 스스로 많은 고민을 통해 여행을 리드 해주는 친구였기에 함께 길을 걸어주기만 해도 될 것 같은 친구였습니다.
여행을 떠날 경비와 준비물은 넉넉하니 우리?
여기서 말하는 경비와 준비물이란 자기소개서에 쓸 소재(스펙)를 말합니다. 최소한의 경비와 준비물이 있어야 여행을 떠날 수 있겠지요. I와 K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혼자만의 힘으로 경비를 만들어 배낭여행을 떠나는 여행자가 같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년간의 아르바이트(2학년 때부터 다양한 활동을 시작함)는 꽤 많은 경비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남들이 가지지 않은 독특한 준비물을 가지게 했습니다.
I는 내신 성적이 언제나 1등이었고, 어린 시절의 잦은 병원 치료 경험이 생명과 재생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교내 의학 동아리를 최초로 만들어 동아리 활동 전반을 리드했습니다. 국제성취 포상제 동장 수상의 경험과 많은 독서량을 가진 학생이었습니다. 의학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 철학분야의 독서량도 뛰어나 의대 진학에 대한 사명감과 자기만의 철학이 튼튼한 학생이었습니다. 만약 I의 의대진학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몇 분도 되지 않아 I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바꾸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뛰어난 기타 실력과 사진 실력을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여 15만명 이상의 방문자를 보유하며 세상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들을 즐길 줄 아는 점이 I에게는 가장 든든한 경비이자 준비물이었습니다.
K는 생명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국내 포털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며 부족한 정보력을 느낀 후, 위키백과에 11개의 문서를 게시(‘수소가설’의 최초 게시자)하기 시작하여 꾸준한 관리를 통해 정확성을 갖춘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독서량 때문에 때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던 K는 문학에 관심이 많아 2년간 시 동아리 활동을 하며 2권의 시집을 만들었고, 고등학교 생활 3년간 1000M이상의 16개 고산을 등반한 학생이었습니다. 더불어 생물 Ⅰ,Ⅱ과목에 대한 자신만의 정리 노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노트에 실린 자료의 방대함은 대단했습니다.
자! 경비와 준비물은 넘칠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어?! 여기가 어디야?
이제 우리만의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의 목적지는 같더라도 누가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도달했는지가 중요한 여행이므로 우리만의 여행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여행 과정이란 자기소개서를 말합니다. I와 K는 자신들이 가진 경비와 준비물들을 적재적소에 쓰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여행을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능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행의 과정을 그려가는 동안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여행의 동선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동선이 꼬여 버리면 곤란합니다. 여행의 동선이 바로 자기소개서의 스토리입니다.
예를 들어, K는 고산 등반 경험이 아주 많았습니다. 다른 고교생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의미 있는 활동이자 자기관리의 한 부분이었기에 K는 이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쓰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으로 지원모집단위와 연관성 있게 스토리가 나올지 고민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등산을 하며 접했던 주목 군락과 진달래 군락 등의 식물 분포는 자연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었고, 산마다 특색 있는 식생과 경치를 관찰한 것이 식품동물생명공학부의 지원 동기에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동선은 정리가 된 것입니다. 동선 정리가 불가능하다면 아무리 좋은 경비와 준비물이더라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배낭에 필요 없는 물건이 한가득이면 그 여행은 매우 힘들어 질 것이고 중도에 그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에선 많은 것을 놓치게 되므로 가끔 주변을 돌아보기도 해야합니다. 또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좋은 관광지나 지름길, 여행의 위험요소들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낯선 사람은 ‘다른 선생님’을 말합니다. I와 K는 여행 과정과 동선에 대한 고민거리들을 3학년 부장선생님과 국어과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조언을 구했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달라진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주의사항! 너무 잦은 휴식과 낯선 친구와의 만남은 여행의 방향성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 조절
수시원서 접수를 몇 주 남겨 둔 시점에서 이 여행은 바빠집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우리의 경비와 준비물, 여행 과정 등이 보잘 것 없어 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에 괜한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시기에 여행을 함께 하는 두 사람이 각자의 눈과 귀를 서로 조금은 닫아주며 유지해오던 호흡이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길 바랍니다.
자기만의 색깔로 이루어진 자기소개서가 완성되고, 저는 I와 K의 인간미에 중점을 두고 추천서를 썼습니다. 만약, 학업에만 신경 쓰는 좁은 세계의 학생이었다면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학생은 정시로 도전하길 바랍니다.
아직은 어설플 수 있고 더 다듬어져야 하는 학생들이지만 하나의 인격체로써 그들만이 가진 향기가 생동감 있게 느껴지도록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장점을 언급하거나 제 주관적인 시각으로 I와 K를 소개하기 보다는 I와 K와의 대화를 그대로 적거나 에피소드만을 소개하며 추천서를 읽을 분들이 자유롭게 I와 K를 판단하실 수 있도록 추천서를 구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긴장감이 도는 여행의 절정
수시원서 접수의 마지막 단계인 업로드의 시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도는 여행 절정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I와 K에게 위에서 말한 호흡의 중요성을 미리 강조해왔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접수를 끝냈지만 업로드 그 순간까지 사소한 부분을 점검하기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I와 K가 제출할 서류들을 매우 성의 있게 준비했다는 점입니다. 글로 표현한 자기소개서의 많은 부분들을 진실성을 바탕으로 꼼꼼히 작성하였고 부수적인 자료들도 I와 K는 매우 정성을 들여 자신들의 3년간 생활이 집약되도록 서류들을 꾸렸습니다.
자! 이제 함께 하던 여행은 잠시 자유여행으로 바뀝니다.
자유여행
수시원서 접수가 끝나는 순간부터 여행 중이던 두 친구는 각자 한동안 자유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 여행자는 수능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다른 여행자는 자신의 친구가 자유여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보살피게 됩니다. I는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신경 써야 했으나, K는 일반전형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시라는 여행에서 최종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간의 여행은 잠시 잊고 자신만의 자유여행에 집중해주길 응원했습니다(항상 정시모집에 대한 준비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I는 대부분의 모의고사에서 평균 1등급을 유지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수능최저학력기준에 대해 크게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가끔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참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감기에 자주 걸리는 I에게 항상 감기 조심하라는 정도의 조언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I의 자유여행은 스스로 잘 해냈습니다.
K도 대부분의 모의고사에서 평균 1등급을 유지해내는 강심장의 소유자였는데 자유 여행이 시작되면서 자신에 대한 많은 고민에 빠졌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말벗이 되어주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 할 때, 담임의 마음은 타들어갑니다. 공부를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벗만 되어주기엔 시간이 넉넉하지 못 했기에 참 초조했습니다. 하지만 K의 선택을 항상 존중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지고 책임져야 함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라고 눈치를 주거나 잔소리 하지 않을 것을 K에게 다짐했고, 필요하다면 혼자 방황하지 말고 함께 대화를 하며 ‘놀자’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K라는 녀석. 수능 전날까지 담임을 초조하게 했습니다.
수능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I는 화학2에서 2등급을, 나머지 과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습니다. 수능 결과만 보면 평소의 모의고사 성적에 미치지 못 하는 성적이었지만 I는 자신의 결과에 만족한다고 했고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맞췄기 때문에 면접 준비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K는 수능 결과가 나오기 전 수시모집 1단계 합격자가 되었고, 수능 성적은 생물2에서 3등급, 나머지 과목에서 모두 1등급이었습니다. 그 동안 방황한 시간을 생각한다면 K의 성적은 담임으로서 대만족이었습니다. K에게 그간 밀렸던 잔소리를 실컷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K의 수능 성적은 정시모집으로도 자신의 최종 목적지에 도전 가능한 정도였기에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최종목적지
K는 비교적 부담없이 면접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별 노력 없이 단시간에 끝날 새로운 여행(정시모집)을 나서게 되기보다는, 이미 시작한 장기간의 여행으로 최종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면접 당일 K를 면접장에 들여 보내고 그간의 여행을 돌아보며 참 많은 감정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제 여행의 동반자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났다는 허탈함이 컸던 것 같습니다.
I는 분명 마음이 무거웠을 텐데 큰 내색 없이 면접 준비를 했습니다. 최종목적지의 문턱이 워낙 높았고 I는 새로운 여행으로 최종목적지에 재도전 할 수 있는 수능 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의 답답함은 날이 갈수록 커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I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랬지만 아마도 담임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I와 면접 전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어른스럽게 지내느라 마음 고생이 심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본 I의 모습에서 저는 크게 당황했고, 나름 응원과 조언을 해주었으나 뒤돌아 나오며 제가 한 말들이 참 어수선했음을 느꼈습니다. I도 그저 어린 학생일 뿐인데 너무 믿음직하게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과 기대감 속에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3 담임을 처음 한 제가 I를 어설프게 보살펴 왔음에 미안함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교사의 경험 부족이 제자에게 흠을 남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교사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K와 I는 자신들이 열 수 없는, 누군가가 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최종목적지의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열렸습니다.
과연 여행의 끝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제자들에게 여행이 끝났다고 안심하지 않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합격을 기대하던 간절함을 잊어버린다면 이 여행은 크게 실패한 것임을 미리 말해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여행에서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그리고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수시라는 여행을 시작하게 될 올해의 고3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여행의 끝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최종목적지의 문이 열릴까 열리지 않을까에 대해 미리 겁먹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은 간절하게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