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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이슈이슈!

헤어짐에 쉼표를 남기다

임성희 대전고등학교 교사

졸업식 날, 3학년 선생님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찾아가게 된 ‘서연의 집’,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저와 꼭 닮은 한가인의 집’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만, 어쨌든… 바다가 마주보이는 그곳에서 가슴 스치는 대사 한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십 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참 상투적인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바로 하루 전에 아이들을 떠나보내면서, “멋지게 살아라. 그리고 십 년 뒤, 우리들의 생애전환기엔 함께 여행을 떠나자. 우리 약속했던 것처럼.”이라며 눈물을 훔치던 제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지요. 십 년 뒤에 우리는 말하게 되겠지요. 치열했던 우리 고3 시절에 대해 웃음꽃을 피우면서, 아마도 서울대학교에 지원했던 C군과 L군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들의 헤어짐이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그리고 그 쉼표 안에 채워질 아이들의 여정에 힘찬 응원을 보내면서, 부족하지만 1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학기 초 처음으로 본 모의고사, 우리 학급의 성적은 자연계 8개 학급 중 6등이었습니다. 운동부 3명, 도움반 친구 1명과 직업반 친구 1명을 제외하고도, ‘공부’ 아닌 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기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아이들의 성향부터 파악해야 했습니다. 저는 ‘학습의욕이 강하고, 의지 또한 강한 학생을 A그룹으로, ‘학습의욕은 강하나, 작심 3일로 끝나는 의지력 부족학생을 B그룹으로’, ‘학습의욕도, 의지력도 부족한 학생을 C그룹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저는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정서적 안정감’이, B그룹의 학생들에겐 ‘지속적인 학습관리’, C그룹의 학생들에게는 ‘학습동기 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룹별 지도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지만, 원고량의 제한으로 오늘은 ‘A그룹 아이들과 쌓았던 정서적 유대감’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할까 합니다.

서울대학교에 지원한 L군과 C군은 A그룹에 속해있었습니다. 둘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목표 또한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자연계열 내신 1위였던 L군은 ‘전형적인 학자 타입’으로 ‘앎’에 대한 목마름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국어선생인 제게 ‘핵융합’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법 현상에 대해 ‘국어연구원’에 질문을 하는 등 엉뚱함이 엿보이는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학기 초, L군은 자신의 얘기를 저와 나누려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어차피 주어진 문제는 자신의 문제이며, 말 그대로 저는 ‘담임교사’일 뿐이었으니까요. 저는 L군과의 상담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말하고 저 혼자 답하고 이런 순간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조급증이 생겨 L군을 다그치게 되었습니다. L군은 결국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부담스럽다고, 자신이 서울대에 당연히 합격할 줄 안다고, 성적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괴롭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자신은 ‘공부를 무슨 목적이 있어 하는 것이 아니고, 좋아서 하는 거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독종이라 생각하다며.’ 말하더군요. 미안했습니다. L군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L군에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주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대신 ‘컴퓨터지킴이’를 시켜 매일 선생님들의 교재와 학습 자료들을 준비하게 하여, 다른 이와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짝과 주변 아이들은 일부러 ‘쾌활하고 말주변이 좋은 친구들’로 배치하였습니다. 말수가 워낙 적어 수시면접이 걱정이라던 주변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공감했던 저는 L에게 누가 물으면 하루에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답하는 연습을 하자며, 수업시간이나 평소에도 훈련 아닌 훈련도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L이 교무실에 오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음료와 과자를 챙겨주며, 다른 아이들과 나누어 먹으라 말했습니다.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과 말을 섞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말이지요. 혼자가 익숙했던 L군은 어느 순간부터 농담에 웃을 줄도 아는 아이로, 그리고 자신의 문제만 중요한 것이 아닌 다른 이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아이로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한번은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 조르는 아이들에게 놀랄만한 장기를 보여주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노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성큼성큼 L군이 다가오더니, 자신이 큐브를 잘 맞춘다며, 40초 안에 모든 면의 큐브를 맞추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의 엉뚱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반 아이들을 위해 그 조용한 아이가 용기를 냈다는 사실도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결국 L군은 40초 안에 큐브를 맞추고 저희 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선물하였습니다. ‘남산골 샌님’처럼 고지식하던 L군이 서로 부대끼고 어울릴 줄 아는, 때로는 성적이 안 나올지라도 ‘자신이 공부하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는 그 사실에 벅찰 정도의 감사함이 들었습니다. L군은 '머리만 명석한 아이'가 아닌, 마음도 정말이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아이’라는 것을 지난 1년 동안 확인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3학년 5반 학생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3학년 5반 학생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C군은 '비타민'같은 아이입니다. 항상 급우들과 선생님에게 재치 있는 언행으로 웃음을 주기에 누구하나 C군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C군은 외면에 감추어진, 내면의 유약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표는 확고한데, 1,2학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후회라든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라든지, 실수에 대한 공포라든지, C군을 괴롭히는 요소들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컸기 때문에, 안내해주면 곧잘 그러한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 주었습니다. C군은 수학교사도 인정할 정도로 ‘수학천재’로 불리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과목별 편차가 너무 커서 ‘영어’와 ‘국어’는 많이 어려워했습니다. C군은 언제나 수학만 공부를 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학기 초 그렇게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냉정한 이야기를 들은 후, C군은 하루에 일정 시간을 자신이 부족한 과목에 할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목 선생님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더군요. ‘선생님이 최고’라는 적절한 아부성 발언으로 선생님들을 조련하면서 말이지요. 결국 C군의 ‘국어, 영어’성적은 일등급 이상 상승할 수 있었습니다. C군은 힘든 일이 있으면, 고맙게도 담임교사인 저를 많이 찾아주었습니다. 상담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다시금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언젠가 C군이 서울대학교 탐방을 간다고 해서, 친구와 뭐라도 사 먹으라며 3만원을 손에 쥐어 준 적이 있습니다. 다음 날 제 자리에 아주 예쁜 선인장이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선생님께 받은 것이 너무 커서 '다육식물원'에 가서 손수 고른 선인장이라며, 꼭 멋진 사람이 되어 찾아 올 테니,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손편지도 함께 있었습니다. '수학'에 비해 '국어'는 못 하지만, 글로써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도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따뜻한 심성도 소유하고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대학교에 지원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학업적인 면에선 교사가 딱히 해줄 부분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두 학생의 경우도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학과의 성격, 관련 계통 분야, 요구되는 학업역량 등의 정보는 저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에서 ‘학생들의 진학지도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재료로 지도기를 써야 하나?’ 마음 속에 답답함이 들어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L군이 보낸 새해 문자가 떠올랐습니다. “선생님 1년 동안 정말로 수고하셨고,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이것밖에 말을 못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열심히 생활할게요.” 다른 이가 이런 문자를 보냈다면, 큰 감동은 못 받았을 문자이지요. 그렇지만 이 문자를 보낸 이는 L군입니다. 두 단어 이상 말이 이어지기 힘들었던 이 아이가 저를 위해 몇 번이고 쓰고 지우며, 만들었을 이 문장들에 저는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서로를 믿어주는 ‘정서적 유대감’, 바로 이 끈끈함이 지치고 힘들었던, 아니 정말이지 치열했던 고 3시절을 버티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하구요.

사실이지 저도 올해 이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진학진도기’를 쓰지 못 했을 겁니다. 4살 아이의 엄마인 제게, 고3 담임 생활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으니까요. 아이들을 자습감독하고 집에 도착하면 늦은 11시 반, 내 아이는 엄마를 보지 못하고, 침대에 혼자 잠 들어있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잠시, 아이의 어린이집 식판을 닦고, 준비물을 챙기고, 집안 정리를 하며, 저는 못난 엄마, 못난 아내로서의 삶에 미안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된 생활 속에서도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우리 반 녀석들 때문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지각해서 아침조회에 늦을라치면, 반 녀석들은 벌써 자리를 정돈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각생 한명 없이 말이지요. “우리 반은 유일하게 담임만 지각할 수 있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녀석들이 무척이나 기특했는데, 학교에서는 상반기, 무지각 반이라며 포상금도 주어서 단체로 돈가스 회식을 했던 기억도 제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저희 반 아이들은 올해 좋은 성과물을 많이 이루어냈습니다. A그룹의 아이들이 C그룹의 아이들을 지도하며, 함께 밤새며 공부한 덕에 5월 이후 모의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어려움에 직면한 학생이 있으면 반장, 부반장을 필두로 서로 도와가며 해결해나가려 노력했습니다. ‘독하게 1년 공부해서, 내년에는 방탕하게 놀자’는 우스갯소리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도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아이들도 마음껏 사랑을 표현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L과 C도 자신의 재능을 급우들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들이었고, 또한 그러한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바른 심성 덕에 ‘담임교사’가 아닌 다른 ‘교과목 선생님’들도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L은 모 대학교 물리학과에, C군은 그토록 원하던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어요!”하며, “선생님,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하며 다독이던 C군과 L군을 떠올리며, 그리고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던 우리 3학년 5반을 떠올리며, 지난 한 해, 자식농사 잘 지었다 스스로를 축하해 봅니다. 이 녀석들과 매년,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며, 아무개가 군대 갔다는 이야기, 아무개가 여자 친구와 헤어져 술통에 빠져 산다는 이야기, 아무개가 반 아이들 중 처음으로 결혼한다는 이야기 등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여정에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졸업식 날 저는 우리 반 녀석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헤어짐엔 마침표가 없다고, 우리 헤어짐은 쉼표라고, 너희들의 10년 후의 모습을 선생님에게 보여 달라고 말입니다.

C군이 선물한 선인장은 지금도 푸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C군이 선물한 선인장은 지금도 푸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3학년 5반 녀석들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한명, 한명의 행복한 내일을 기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가 이제 각자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에, 사회에 가득하기를 소망하며, 더불어 이 땅의 고3 담임선생님들과 교과 선생님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하며 부족한 저의 진학지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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