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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학

철학과

‘철학’은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학문일까?
정치학은 정치 현상을, 종교학은 종교 현상을, 생명과학은 생명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철학과는 철을 다루는 학문일까...?
대부분의 학과는 그 학문의 이름만 보면 무엇을 배우는 학과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철학과는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 불리는 철학이 어떤 학문인지 궁금하다면, 철학과 강진호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철학과

‘철학’이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철학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철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철학은 우선 그 문제들의 성격에 따라 분야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철학의 주요 분야로 논리학과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이 있습니다. 논리학에서는 논증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법칙들 또는 우리가 논리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법칙들에 대해 배우고, 형이상학에서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며 존재자들의 가장 보편적 특성들은 무엇인지 배웁니다. 또한 인식론에서는 지식의 본성과 범위 및 한계를 배우며, 윤리학에서는 도덕의 근본 원리들 및 도덕성의 철학적 토대에 대해 배웁니다. 이 밖에도 언어철학, 심리철학, 과학철학, 사회철학, 역사철학 등의 분야가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과에서는 이렇게 철학적 문제들의 성격에 따라 구분되는 분야들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전개한 생각을 시대와 지역, 사조별로 분류하여 배우기도 합니다. 가령 서양고대철학, 서양근대철학, 중국고대철학, 유가철학, 인도불교철학, 한국철학사 등이 그러한 과목입니다.

철학과의 대표적인 학부 강의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전공 필수 과목인 기호논리학, 윤리학, 한국철학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이 세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므로 가장 많은 철학과 학부생들이 이 과목들을 수강합니다. 또한 철학이 아닌 타 학문 전공생들도 이 과목을 많이 수강하는 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무엇을 연구하시나요?

저는 언어철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언어철학”이라는 말은 철학의 한 분야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하나의 철학 방법론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저는 두 가지 의미의 언어철학에 모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의 한 분야로서의 언어철학은 언어 의미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문제들을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언어 의미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언어학의 의미론(Semantics)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만, 의미론은 아직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처럼 모두가 합의하는 이론 틀을 갖고 있지 않으며, 과연 언어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물음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철학적 문제들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들을 연구하고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언어 의미는 규범성을 갖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언어 의미의 규범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둘째, 문장의 의미와 그 문장의 진리조건, 즉 그 문장이 참일 조건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셋째, 문장이 참이라고 할 때 참(truth)이라는 속성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철학 방법론으로서의 언어철학은, 언어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 또는 해소하고자 하는 방법론을 가리킵니다. 가령 20세기의 주요 철학 사조 중 하나인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는 언어 의미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무의미한 문제들임을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철학자들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이나 인식론, 윤리학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과 관련하여 언어 의미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왜 철학을 전공하셨나요?

사실 제가 철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저도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하게 된 과정만 말씀드립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학교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어떻든 삶을 낭비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도 좋았습니다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을 정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대학에 가면 제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얘기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펼칠 꿈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막연히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여 이과를 선택했고 부모님의 소망에 따라 의대를 지원했는데, 떨어져서 재수를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다시 의대에 지원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도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갑자기, 당시 1월 중순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철학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로 결심을 바꾸지 않아 결국 철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특히 문학 작품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철학책을 읽어본 적은 없고 철학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철학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 문제들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으로 인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 문제들을 탐구해보고자 했던 욕망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철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철학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탐구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문제들은, 보는 대로 믿고 욕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의 믿음과 욕구를 반성하고 그 근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반성적 능력을 지닌 인간이 자신의 반성적 능력을 그 극한까지 발휘할 때 마지막에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적 탐구를 통해 이 문제들을 성찰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해보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지적 활동 중 가장 탁월하고 고귀한 종류의 활동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 철학의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전문 철학자이므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단지 성찰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어떤 새로운 생각을 담은 연구 결과물을 내야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제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저처럼 전문적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또한 매혹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학생들이 철학을 공부하면 좋은가요?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 문제들에 관심이 많고, 아울러 이러한 문제들을 종교적 영감이나 예술적 통찰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에 의해 최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자 하는 학생들이 철학을 공부하면 좋을 것입니다. 보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근거를 합리적으로 따져 묻는 것을 즐기는 학생들이라면 철학을 공부하는데 안성맞춤일 것입니다.

철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나요?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철저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고 그 결과를 말과 글로 적절히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학과에서 4년 동안 철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만약 제대로 공부했다면,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및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체계적이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됩니다. 이러한 능력은 어떠한 진로를 선택하든 매우 유용하며, 특히 말과 글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분야들에서는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이러한 분야 관련 진로를 많이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사례만 들자면 로스쿨 진학과 언론 방면 진로 선택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철학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전문적인 철학 연구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제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철학과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들이 읽어볼만한 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고등학생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라면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추천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국가>, <향연> 등 잘 알려진 대화편들은 물론이고, <크뤼톤>, <파이돈>, <고르기아스>, <메논>, <에우튀프론>, <크라튈로스> 등을 추천합니다. 이 대화편들을 읽음으로써 어떤 문제들이 철학적 문제들이고 이 문제들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토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톤의 글은 명료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대단한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철학은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므로, 그의 대화편들을 읽는 것은 철학과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싶은 고등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위에서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어볼 것을 추천했지만, 사실 철학과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철학책을 많이 읽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철학책들 중에는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난삽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그 명성에 이끌려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읽을 경우, 독자는 자칫 머릿속에 남은 몇 가지 휘황찬란한 개념들과 멋진 문장들만을 바탕으로 저자인 철학자의 생각을 어설프게 흉내 내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세계와 인간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엄밀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있음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반철학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철학이 모든 학문의 근본임을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이렇게 근본학으로서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사실 철학 이외의 분과 학문들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분과 학문들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토대를 탐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학과에 지원하고자 하는 고등학생들은 오히려 철학보다는 다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광범위한 분야의 독서는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강진호 교수님


‘철학’이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의미는 ‘지혜를 사랑하다’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탐구하고자 했던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다.
철학과에서는 그 철학자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어떻게 답했는지를 배운다.
학부생으로서 철학을 배운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또 한 명의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고 싶다면,
철학에 도전해보자.



홈페이지 http://philosophy.snu.ac.kr/board/html/main/index.php
서은혜(인터뷰 인문대학 철학과 강진호 교수님) / 사진 서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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