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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학
언어학과
이 기사를 읽는 학생들은 일단 아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인문학은 문사철이 아니다. 인문학은 문사철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문학, 사학, 철학의 종합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섭섭한 학문이 있으니, 그것을 언어학이라 하겠다.
언어학과를 다닌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무슨 어학 전공이냐고 묻는다.
바야흐로 언어학 수난시대다.
이제는 당당히 말해보자. 이게 바로 언·어·학(Lin·guis·tics)이라고요. 아시겠어요?
언어학과 남승호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언어학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문대학 안에는 커다란 학문 분야가 네 가지 있죠. 철학, 문학, 역사, 그리고 언어입니다. 언어학은 인문대학 내의 한 분과를 대표하고 있는 학문인데요. 대개는 인문대학을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그건 상당히 왜곡된 인식이고요. (웃음) 언어가 인간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건 고대에서부터 잘 알려져 왔고, 그래서 인문대 안에서도 중요한 한 분과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과를 대표해서 언어학과가 있는 것입니다.
언어학 안에는 인간의 언어 지식, 언어 능력을 연구하는 세부 분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어떻게 말소리를 사용하고 이해하는지, 그런 분야가 있고요.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단어들을 만들고 조합해서 사용하는지에 대한 단어 차원의 분야가 있고요. 또 인간이 어떻게 문장으로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탐구하는 분야도 있고요. 뿐만 아니라 언어의 역사에 대한 연구도 있고, 언어 연구를 통해 집적된 이론도 많고요. 연구 결과들이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응용언어학 분야가 또 있죠. 그런 것들에 대해 앞으로 더 자세히 이야기해봅시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안에는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등 다른 어문학과도 있고, 아시아언어문명학부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학과가 따로 존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국어국문학과에서는 국어에 대한 연구도 하고, 국어로 쓴 문학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죠. 언어학과 관련된 부분은 국어 연구에요. 영어영문학과에서도 영어를 연구하고, 영어로 쓰인 영문학을 연구하죠. 언어학과에서도 영어를 연구하기 때문에 영어학이라고 하는 게 포함되어 있죠. 국어학이든 영어학이든 그런 학문들은 기본적으로 그 언어의 문법을 연구해요. 그런데 국어나 영어나 그것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있죠. 모든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 그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게 바로 언어학이에요. 그러니까 언어학과는 모든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에 대해 질문을 하는 거죠. 그래서 모든 언어에 적용될 수 있는 문법 이론을 찾아요. 그걸 연구하는 것이 언어학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국어 문법, 영어 문법, 프랑스어 문법, 스페인어 문법, 중국어 문법 등 모든 언어의 문법을 기술하는 틀을 언어학과에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예를 들면 어떤 이론이 있을까요?
언어를 기술하는, 언어를 설명하는 이론은 시대마다 달라져 왔는데요. 예전에는 ‘언어를 사용할 때 이렇게 말해야 한다’라는, 규범적인 문법 틀을 가지고 학교에서 가르쳤고, 그것을 사람들이 언어생활 하는 기준으로써 제공했어요. 그런 문법을 ‘규범문법’, 다른 말로는 ‘학교문법’이라고도 하죠. 20세기에 들어서면 그런 태도보다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말을 사용하는지 등 언어 그 자체를 기술하려는 문법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죠. 그걸 ‘기술문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현대에서는 규범문법을 기술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기술문법을 연구하고 있죠.
언어학이라는 학문은 언제 생겨나고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는지, 언어학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언어학이라는 이름은 사실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었어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언어 연구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다만 그 이전에도 언어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연구들은 많이 있었죠. 고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언어에 대한 통찰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고요. 여러 시대를 거치며 언어에 대한 기술이나 통찰들은 발전해왔지만, 현대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전통이 있다고 생각돼요.
하나는 19세기에 꽃피었던 ‘역사언어학’인데, 언어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언어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연구합니다. 다른 하나는 20세기에 꽃피었던, 아까 이야기한 소쉬르 전통의 ‘구조언어학’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생성문법’ 이론이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한 단계 발전 내지 탈바꿈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이론이 현대언어학에서 언어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생성문법 이론을 주창한 사람이 바로 노암 촘스키라고 하는 언어학자죠.
생성문법 이론이 어떤 문법이론인지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생성문법 이론은 말 그대로 ‘생성’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어생활을 하는 데에는 단순하고 제한적인 기초 장치가 필요한데, 그 장치를 이용해서 아주 무한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유한한 장치에서 무한한 쓰임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생성적(generative)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수는 유한하고, 그리고 우리가 단어를 결합하는 규칙의 수는 유한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장들의 숫자, 그리고 그것이 전달하는 정보의 종류와 내용은 무한하다는 거지요. 이러한 언어의 창조적 사용을 설명하는 이론이 생성문법이론이라고 보시면 돼요.
문장이나 의미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기술하는 데에 주력하겠네요.
그렇죠. ‘생산’과 ‘생성’을 비교할 수 있어요. 생산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듯이 똑같은 무언가를 찍어내는 거죠. 하지만 생성문법에서의 생성은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무한히 만들어내죠. 생산과 생성은 그런 개념적 차이가 있죠.
언어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상당히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는데요.
과학적 방법론이 언어학에서 왜 필요한지, 어떻게 이용되는지 궁금합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문법을 하나의 형식 체계로 기술하려는 태도를 말해요. 모든 과학은 형식 체계를 이론의 기초로 삼고 있는데요. 형식 체계란 다시 말하면 규칙들의 체계죠. 그리고 그런 규칙들은 필수적으로 검증이 가능해야 하고요. 어떤 과학 이론 체계라도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가 나오면 그 이론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하겠죠. 최근의 생성문법의 경향도 그러합니다. 언어를 설명하는 문법 체계가 예외 없는 규칙들의 체계다, 그런데 만일 그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언어가 있다면, 그 문법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검증 가능한 문법이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언어학이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보통 주어, 목적어, 동사가 결합되어서 문장이 이루어지죠. 목적어가 두 개 나오거나 주어가 두 개 나오면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문법적인 문장만을 만들어내는 규칙을 알게 되는 거죠. 만일 목적어가 2개 나오는 문장이 나타나면 그걸 어떻게 할 거냐, 그럴 땐 규칙을 수정하거나 혹은 폐기해야겠죠. 그런데 한국어에는 목적어가 2개, 3개까지 나오는 경우가 있죠. ‘이중 목적어’ 혹은 ‘목적어 중출’ 이런 게 발견되는 거예요. 그런 경우엔 그 현상을 기술하는 규칙을 세우는 데에 있어 여러 입장들이 생겨날 수 있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부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게 되나요?
언어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잘 소개되어 있는데요. 언어학과는 크게 네 분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성에 대한 연구, 두 번째는 문장의 구조와 의미에 대한 연구, 세 번째는 언어의 변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네 번째는 언어의 처리에 대한 연구, 그러니까 언어정보가 어떻게 처리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이런 것들이 있거든요. 음성에 대한 연구에는 음성학과 음운론이 포함되어 있고요. 문장의 구조와 의미 연구에는 통사론과 의미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어 역사에 대해서는 역사비교언어학과 방언 연구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언어정보 처리를 연구하는 분야가, 최근에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컴퓨터언어학 분야인 거죠. 컴퓨터언어학에서는 크게 두 가지 언어 처리를 다루는데. 하나는 음성 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텍스트 처리입니다. 우리가 음성을 컴퓨터에 입력시켰을 때, 그 음성 정보를 분석해내는 것이 음성 정보 처리이고. 우리가 컴퓨터에 텍스트를 넣었을 때 그 텍스트에서 정보를 분석해내는 것이 텍스트 처리이죠.
최근 AI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공계열 학문과 언어학의 융합 내지 협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두 학문 간의 교류는 어떠한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지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최근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요. AI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기계 학습, 즉 머신 러닝이고, 그것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게 딥 러닝이거든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알파고가 AI 기술의 한 가지 예입니다. 이러한 AI 기술의 발달이, 언어학에서의 언어처리에 큰 영향을 미쳤죠. 즉, 음성 처리와 텍스트 처리 기술이 핵심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음성 처리와 텍스트 처리에서 언어학 이론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언어학계의 연구 결과가 입력되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자료들에서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계학습과 딥러닝 기술이 언어처리에 매우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최근 AI 기술의 발전이 언어학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일방적이었어요. 앞으로는 언어 이론이 언어 처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그러니까 언어학에서의 연구 성과들이 AI 기술에 의한 언어 처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 질문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AI기술이 언어학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단계에서, 다시 언어학 연구가 AI의 언어처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이게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고요. 그것이 앞으로 언어학의 연구 분야가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어학과 학생들을 위한 학과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나요?
언어학과는 학생과 교수가 서로 협업하고 이해하는, 그러니까 한 공동체로서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 학기마다 여행을 가고 있는데요. 1학기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1박2일 학과여행이 있고, 2학기에는 특정 지역에서 그 지역의 언어를 같이 조사하고 분석하고 공부하는 2박3일의 언어조사가 있습니다. 또한 언어학과에서는 학기 초에 개강파티를 열어 교수와 학생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요, 언어학과 학생들의 학문적인 관심을 집적시키기 위해, 국내에서 좋은 학자들을 한 달에 한두 명 초청해 콜로키엄, 강연을 계속 열고 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졸업 때가 되면 졸업논문을 쓰게 되는데, 지도교수들이 학생들의 졸업논문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뿐만 아니라, 지도받는 학생들이 나중에 다같이 모여서 졸업논문을 발표하는 행사를 지냅니다.
학생들이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지점이 있을까요?
언어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언어학을 잘못 이해하고 들어올 수 있어요. 언어학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인간의 언어 능력을 연구하는, 인문학의 본질적인 전공 분야인데요. 어떤 학생들은 언어학이 ‘언어를 학습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 분야다’, ‘여러 언어를 학습하거나 가르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그럴 순 있겠지만, 그게 언어학의 본질적인 연구 목적은 아니거든요. 혹은 언어학의 일부 분야에만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누구든 언어학 내에서 한쪽 분야에 국한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언어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언어학과에 들어올 수 있겠죠. 하지만 사실 언어학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거든요. 언어학과에 들어와 공부를 이어가면서 자기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죠. 가령 과학적인 방법론, 혹은 형식 체계로서의 문법 이론을 소화할 때엔 수리적인, 논리적인 직관 내지 기초가 필요합니다. 그런 게 있다면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그런 데에 적성이 잘 맞지 않는 학생인 경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죠.
특히 걸림돌이 되는 지점이 컴퓨터언어학일 수 있어요. 컴퓨터언어학은 프로그래밍이 직접 들어가 있어서, 프로그래밍의 알고리즘을 학생들이 잘 따라가지 못하면 흥미를 잃을 수도 있거든요. 언어학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컴퓨터언어학을 준비할 수 있는 과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언어와 컴퓨터’가 있는데요. 그런 수업들이 컴퓨터언어학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 인문학에서도 이런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것들을 학생들이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그리고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교육 내용이 되고 있잖아요.
또한 실험이나 통계에 대한 훈련을 위해 최근에 ‘실험언어학’이라는 과목도 개설했고요. 그리고 ‘언어학을 위한 통계’라는 과목도 개설되어 있죠. 이런 과목들은, 학생들이 그 부분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도, 본인이 언어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실제로 무언가에 대한 탐구 주제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더 효과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즉, 학생들이 실험적인 방법론, 그리고 통계적인 방법론에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언어학 교수의 꿈을 키우게 되셨나요?
어릴 때부터 언어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참 재미있는 언어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대학교에 왔을 때는 한국어와 외국어의 차이점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교수는 탐구자이면서도 교육자라는 성격이 있잖아요, 스스로 교육자로서의 품성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그런 자격이나 능력을 갖고 있는가, 그런 것들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씩 확신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 연구하고, 학생들과 함께 교육자로서 지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다’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렇게 대학원을 진학했죠. 대학원을 가서 특정한 분야를 연구해보니, 이 공부를 내가 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엔 교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죠.
언어학을 연구하기 위해선 해외로 유학을 가야 하나요?
그건 연구하려는 주제에 따라서 좀 달라요. 해외로 간다면 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갈 수 있을 텐데요. 그쪽은 아무래도 학문적인 전통이 우리보다 길기 때문에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죠. 또 그런 곳은 연구 인력이 집중이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죠. 물론 국내에서도 연구를 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고, 국내에서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주제들이 있죠. 예를 들어 한국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겠죠. 한국엔 국어에 대한 해박한 연구를 해온 전통이 있고, 그것들을 잘 가르치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거라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어요. 한국어의 역사, 이런 건 한국에서 하기 좋겠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해외 못지않게 연구자들의 연구 역량이 많이 향상되었고, 그래서 한국에서도 연구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훌륭한 학자들이 얼마든지 배출될 수 있죠. 요즘엔 매체들이 발전하고 활발하게 국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국내 대학원에서도 자기가 괜찮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기초가 많이 형성되었어요.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분야는 의미론·화용론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의미론·화용론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는 분야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의미론은 언어표현에 담긴 의미의 종류가 어떠한지, 그리고 그 의미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연구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추상적이고 이해가 어렵죠.
‘철수가 콜라를 마신다’를 예로 들게요. ‘철수’, ‘콜라’, ‘마시다’, 세 단어가 결합하고 있잖아요. 세 단어는 서로 다른 종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철수’는 사람을 가리키고, ‘콜라’는 물질을 가리키고, ‘마시다’는 행동을 가리키죠. 그 단어들이 결합하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예를 들어 ‘콜라’와 ‘마시다’가 결합하면, 즉 물질과 행동이 결합하면 왜 <콜라를 마신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거기에 주어 ‘철수’가 결합하면 어떤 사건적 의미를 갖게 되는지,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의미가 있으며 그것들이 결합하면서 어떤 의미를 구축해 가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죠. 의미의 세계는 굉장히 추상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의미들이 규칙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죠. 예를 들면, ‘철수가 콜라를 마신다’와 ‘철수가 물을 마신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 차이는 콜라와 물의 차이에서 오죠. 그러니까 문장의 의미를 구축해가는 그 규칙들은 굉장히 동질적이라는 겁니다. 단어가 하나 다를 뿐이지, 단어의 의미에서 시작해 문장의 의미를 구축해가는 규칙들은 같지 않겠느냐,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 규칙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고요. 또 하나 예를 들면, ‘철수가 더 이상 콜라를 마시지 않는다’의 의미와 ‘철수가 콜라를 끊었다’의 의미는 같잖아요. 이 경우 두 문장의 어휘와 구조는 다른데, 어떻게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이것도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죠. 이것이 의미론이 영역이에요.
화용론은 의미론과 어떻게 다른 분야인가요?
화용론은, 문장의 차원을 넘어서, 문장들이 어떻게 서로 결합해 담화(discourse)를 이루어 가는가, 그리고 담화가 문장 해석과 어떤 영향을 맺는가를 연구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콜라를 끊었다’라는 말은, 남승호가 이야기할 땐 ‘내’가 가리키는 게 남승호가 되고, 문성효 군이 그 말을 하면 그 ‘내’ 라는 게 문성효 군을 가리키게 되죠. 이렇게 문맥에 의해서, 혹은 담화구조에 의해서 결정되는 의미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보죠. 또 ‘콜라를 끊었다’를 생각해 보면, ‘내’가 가리키는 사람이 이전에 콜라를 마셨던 사람이어야만 그 표현을 사용할 수 있죠. 예를 들면 문성효 군이 지금까지 콜라를 마신 적이 없는데 ‘성효가 콜라를 끊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 말이 안 되죠. 그게 말이 되려면 성효 군이 콜라를 마신 적이 있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만 하는 겁니다. 한 문장은 충분한 사건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적절하게 쓰이려면 그 문장이 맥락에 적합해야 하죠. 화용론에서는 맥락과 문장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적합하게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언어학의 재미란 무엇일까요?
언어학은 인문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언어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인간이 이런 존재구나’라는 것을 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이 재미있는 거죠. 사실은 언어는 인간에게 물과 같은 존재거든요. 언어를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어는 정말 중요해!’, ‘언어 없이는 못살아!’ 이렇게 느끼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그건 마치, 우리가 물과 공기를 매일 마시며 살면서도 그것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어찌 보면 언어는 물이나 공기만큼 소중하고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게 우리 인간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언어만큼 인간을 특징짓는 것은 없거든요. 언어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통찰력을 줍니다. 언어는 정말 무한하고 놀라운 세계에요.
언어가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해요. 그리고 언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꼭 필요해요. 언어는 인간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인간을 다른 동물하고 구별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게 언어에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는 굉장히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거든요. 언어는 인간에게 가장 밀착된 인간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죠. 언어를 통해 인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굉장히 많은 행동을 하죠. 언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위들이 많아요. 토론도 못하죠. 사랑한다는 고백도 못해요. 약속도 못하구요. 선언, 경고, 명령, 계약, 이런 다 언어 없으면 못하는 행위들이거든요. 언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위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들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부분들을 구성하죠. 언어로써 우리의 삶이, 실로 천을 짜듯이 구축되어 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말로 약속을 하면 그게 내일 이뤄지잖아요. 언어라는 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창조적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언어가 그 기재가 된다는 거죠. 그리고 언어로써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죠.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인터넷 공간에서의 많은 것들이 전부 언어로써 구축되어 가는 것들이고. 그래서 언어는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을 이해하는 무한한 시각을 열어주는 키라고 할 수 있죠.
언어학과의 졸업 후 진로는 어떠한가요?
최근 들어 다양한 진로가 발생했어요. 이제까지 가장 중요한 진로라고 한다면, 언어학 연구를 계속 이어가서 연구자가 되고, 교육자가 되는 거였죠. 그리고 언어와 관련된 수많은 직장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언론이라든지, 광고, 방송, 이런 데서도 많이 활동하고, 기자로도 굉장히 많이 진출했고요. 언어학 그 자체하고는 거리가 있지만, 정치나 기업활동 등 이런 데로도 언어학과 출신들이 많이 진출했었죠. 그런데 최근에 중요한 진로로 주목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던 언어처리 분야거든요. 요즘 AI를 이용한 IT 기업들, 구글이나 네이버 등의 기업들이 언어학자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구요.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언어학 박사를 받았는데, 유명한 회사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가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언어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언어학(Computational linguistics)을 전공하고 언어처리를 연구해서, 이를 활용하는 회사들로 취업을 하죠. 다들 알겠지만, 최근에는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분야가 굉장히 각광 받고 있거든요.
서울대학교에 2020년부터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생겼어요, 그래서 여러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그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는데.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에서는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론을 배워요. 빅데이터라고 하면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가 포함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언어자료죠. 말로 이루어진 자료들. 기사가 되었건 소설이 되었건 공식문서가 되었건, 수없이 많은 언어자료들이 집적된 빅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컴퓨터언어학이 필요한 거예요. 언어학에서는 아까 말했던 음성 처리와 텍스트 처리에 대한 기초적인 토대를 제공하니, 언어처리 분야로 최근에 많이 진출하게 된 거죠. 학부 졸업생뿐만 아니라 언어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언어학을 전공하고 석박사를 졸업한 학생들도 여러 기업들로 취업하고 있죠.
언어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할까요?
일단 학문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 하죠. 어떤 분야에서든지 논리력, 분석력은 필요하잖아요. 특히 언어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관한 특성을 분석하는 시각을 갖추면 좋아요. 예를 들자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국어 문법을 스스로 이해해보고, 그걸 바탕으로 외국어 문법을 이해해보거나 다른 언어의 문법과 비교하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죠.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컴퓨터언어학을 위한 수리적인 역량도 함께 갖추면 도움이 됩니다.
어떤 학생들이 언어학과에 진학하면 좋을까요?
아까도 이야기했듯, 언어학과는 인간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좋아요. 인간이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죠. 그리고 언어학과에 진학한다면 당연히 언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해요. 언어라는 것이 왜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째서 다른 언어들은 이렇게나 다른지, 언어를 분석하는 일이 즐거운지, 그래서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하는지 등, 언어에 대한 관심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죠.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언어학은 굉장히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요. 아까도 이야기했듯 인문학 내에는 철학, 역사, 문학, 언어라는 네 분야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을 넷으로 나누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 대한 이해를 서로 다른 기초,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연구한다는 거예요. 즉, 언어학은 언어를 통해서 인간 전체를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언어학은 인간이 하는 모든 종류의 활동과 여러 사회적 측면들을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로 다룬다는 거죠. 그래서 언어학과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어떤 주제가 되었건 언어의 관점으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누구든지 와서 공부해볼 만한 학문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언어학과에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언어학이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