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안내
미술대학
서양화과
“To know what you're going to draw, you have to begin drawing”
때론 각자가 그리고 싶은 모습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의 단편을 담아내기 위해서,
저마다의 자리에서 창작과 배움을 이어간다.
널브러진 물감, 천, 붓, 그리고 새하얀 파티션
나눠진 공간 사이로는 작품들이 빼곡히 펼쳐져 있었다.
색색으로 구현된 물성 너머를 보고자 하는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석민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대학 서양화과 전공 13학번 황석민(이하 석민), 그리고 여기는 서양화과 15학번 안병남(이하 병남)과 자유전공학부 15학번 서양화과 전공 이윤서(이하 윤서)입니다. 저희는 현재 실기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고, TMI(Too Much Information)지만 전 현재 서양화과 13학번 중 학교에 남아있는 유일한 남자입니다(일동 웃음).
서양화에 대해 개념적인 설명을 조금 해주시겠어요? 서양화과와 동양화과의 차이는 어떤 점이 있나요?
석민 전통적인 서양화와 동양화 사이엔 미에 대한 관점 차이를 비롯해, 화구, 화법, 사용 매체 등 형식적인 차이들이 있어요. 원근법을 다루는 법이 다르기도 하고, 뭐 먹과 물감 사이의 차이처럼 보편적인 ‘동양적’ 그림과 ‘서양적’ 그림의 느낌 차이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아요. 교과 과정상 서양화과는 회화 외에도 영상, 사진, 판화와 같은 매체를 다루며, 동양화과는 한지, 서예, 전각 등의 수업이 편성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작품 활동에 있어서 서양화과와 동양화과에 따라 큰 제약이 있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현대 미술에 있어서 표현과 재료의 선택 모두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며, 어떤 것이 동양화고 서양화인지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졸업 전시의 한 작품을 보더라도 양복을 입은 서양식 파티를 먹과 수채로 동양적 기법을 활용해 그린 회화가 있었던 것처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요. 그리고 두 과 모두 회화 외에도 여러 매체를 활용해 개성 있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전공으로 하고자 하는 매체도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그래도 학과과정 상, 동양화과는 전통적인 동양적 기법을 보존하는 데 가치를 두고자, 의무적으로 전통 동양화를 졸업 전시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식상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미술을 시작한 계기와 서양화과에 오게 된 이유가 있나요?
석민 미술은 중학교 때 처음 배우기 시작했었어요. 그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잘할 수 있었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서 계속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일부러 예고를 충분히 준비해서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선택했어요. 분명히 미술을 좋아하지만, 지금까지 취미로 하던 것이 예고를 선택하게 되면 미래로 정해지게 되는 기분이 들어서 부담이 들었거든요. 시도할 수 있는 여러 길들을 열어두고 싶었어요. 그렇게 간 고등학교였지만,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미술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때는 학문을 접할 때 어느 정도 수준까지 더 배워야겠다는 성취감보단, 입시를 보고 짜인 틀에 맞춰 달려야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와중에도 다른 것들에 비해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이 미술이었기 때문에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병남 저도 취미로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 지인의 화실을 1년간 다녔었고, 그러다 중학교 2, 3학년 시기에 웹툰에 푹 빠졌어요. 그땐 저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을 가지게 되었고. 아, 그즈음 반 고흐 화집을 보게 됐는데 그 안에 반 고흐가 적은 편지들의 모음집이 있었거든요. 테오에게 그림과 함께 보내는 감정과 생각들을 보면서 무척 감동을 받았었고, 고등학교 지원서에도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막상 진학은 미술과 관련 없는 국제고를 가서, 고등학교 1, 2학년 시기는 내내 공부에 전념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고2쯤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되니, 미술이 다시 생각이 나서 전공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특목고다 보니 미술반이 따로 없어서 취미로 미술을 하는 2, 3명이 모여 미술동아리를 하기도 하고, 혼자서 그림을 계속하면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었습니다.
윤서 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해왔습니다. 집 가까이 미술관이 있었고, 문화적으로도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미술을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좋아했었는데, 2008년 피터 도이그(Peter Doig)의 전시를 보고 정말 깊이 감명 받아서 미술을 계속하게 됐어요. 그의 작품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되 물감을 흩뿌려 환상적인 효과를 내는데, 그의 작업방식만 아니라 항상 사람,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요소로써 풍경을 인간화할 방법을 찾는다는 예술관 또한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고교 역시 프랑스의 해외고를 다녔기 때문에 입시도 프랑스 대학과정을 위한 바칼로레아를 준비했습니다. 프랑스 고교 단계에는 미술이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기도 하고, 바칼로레아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잠시 미술을 하지 않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미술과 예술사 서적들을 읽고, 평소 그림을 그려 아카이빙(archiving) 해두었습니다. 결국 바칼로레아를 모두 본 뒤에도, 미술과 함께 문화에 대한 심층적 학문 탐구가 가능한 길을 찾고자 서울대의 자유전공학부를 택하게 되었고, 서양화과를 심화 전공하며 예술과 문화 사이의 통찰을 이어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다들 미술을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이유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오셨군요. 그럼 현재 서양화과의 교과과정을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병남 현재 교과과정이 매년 조금씩 수정되기 때문에 입학 학년에 따라 확인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1학년 때는 디자인과, 조소과, 동양화과, 서양화과, 공예과 등 미술대학의 다양한 과들이 모여 통합적 교과(파운데이션 과정)을 진행해요. 2학년 이후 전공선택 과목을 본격적으로 들을 수 있고, 설치, 판화, 사진, 영상 등의 매체 수업을 전공 선택 실기 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화 과목은 전공 필수 수업으로 편성되어 있고요. 3학년부터는 스튜디오 수업을 주로 진행하며 개인 작업에 몰두합니다. 교수님들과 타 수강생들과 함께 작품 크리틱(critic, 비평)을 하기도 하며 작품 활동과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서양화과에서 회화 외에도 다양한 매체의 실기를 하고 있으신데, 혹시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었거나, 기억에 남는 매체가 있나요? 있다면 그 이유는?
석민 저는 판화가 무척 좋았어요. 제가 그림을 주로 그리기에 사진, 영상 같은 다른 매체에 비해 가깝기도 하고. 판화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판화 수업 1, 2, 3, 4가 각자 모두 다른 종류를 다루어요. 각각 동판화, 석판화, 목판화, 실크스크린. 이게 재질만 다른 것이 아니라 전부 제작과정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매번 수업을 들을 때마다 다른 기법을 배우는 느낌이 있어서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복학 후 저번 2학기는 판화 수업만 들었어요. 몸이 무척 고되긴 했는데, 그만큼 보람차고 재밌었었습니다.
병남 사실 전 판화랑 잘 맞진 않은데... 판화가 정밀성을 크게 요구하거든요. 핀을 맞추는데 흔들리면 잘 안 찍히기도 하고. 하나하나 신중하고 정확한 자세를 요구하는데 전 그게 힘들었어요. 석민 형은 아마 그런 점을 좋아하나 봅니다.
윤서 저는 영상을 제 작업의 주 매체로 다루고자 해요. 그래서 실기 수업을 많이 듣진 않았지만 영상 1, 2 수업이 기억에 나기도 하고. 우선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웠고, 매체 자체가 길이가 있고 많은 의미를 풀어서 담아내다 보니 이론화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할까요. 단점은 시각화가 한번에 되지 않으니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즉각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 또 관객으로서 보는 입장에서도 체력적으로 긴 영상을 보다 보면 상당히 힘들거든요. 진입장벽이 높은 매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음향, 이미지, 공간 등 여러 요소와 효과에 따라 매체 구성이 종합적이기 때문에, 훨씬 다채롭게 감각적으로 선사할 수 있는 바가 많고, 개념적으로 레이어를 쌓아 나갈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기 수업이 많은 만큼 작업물들을 내보이는 전시들이 중요해질 것 같아요. 학기 중 진행한 주요 전시에 대한 경험이나, 혹 외부 전시를 준비한 경험이 있다면 과정이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윤서 스튜디오 수업을 위주로 3, 4학년 교과가 구성되어 있어서, 지금은 전공 선택 수업 별로 보통 미대 내에 작품의 디피(display)를 하고 있어요. 보통 외부 전시의 경우 전시 공모나 갤러리 대관을 통해 하게 돼요. 몇 명이 모여 팀 단위로 카페 같은 공간을 대관하기도 하고요. 최근 저도 을지로의 한 갤러리 전시 공모에 지원을 해서 첫 개인전을 했었습니다. 준비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기존에 작업해둔 작품에 더불어 전시 콘셉트와 일정에 맞춰서 작품을 작업해 나갔어요. 졸업 전시와 시기가 맞물리기도 했고, 교내 전시와 비교할 때 외부전시는 전시 조건 자체가 다르고 고려할 사항들이 있어서 준비가 쉽지는 않았지만, 영상 매체 작품을 오롯이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굉장히 좋았어요. 특히 향후 작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의 단계적인 경험으로, 필수적이자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제 작품관과 행적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생각하고요. 첫 전시였지만 마찰 없이 정말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기회여서 참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병남 나이가 많아지고 학년이 올라가면 경력이나 평가적인 요소로 활용되다 보니 전시가 더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꼭 거창한 전시가 아니라도, 저는 홈 파티에서 디제잉과 함께 드로잉 전시를 하기도 하고, 여러 작업 경험을 했었어요. 크게 자리를 가리지 않아도 많은 경험을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학부생으로서는 시간과 공간, 금전적인 여러 한계가 있다 보니.
본인들에게 있어서 작품 활동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인가요?
석민 음, 사실 40대가 되어도 계속될 고민 같은데. 미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작품 활동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자기 작업의 추진력을 자기 작업 내에서 찾는다는 점이에요. 작가로서 가지는 원동력과 정체성이 합치될 수 있도록. 이런 태도가 취미미술과 구분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남 저는 업(業)으로서의 장점이기도 하고. 평상시에 제가 힘을 실어서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느껴요. 그런데 전시장에서만큼은 제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전반적으로 미술, 전시라는 구실로써 색다른 이야기를 듣고 표현하는 것. 즐거움을 얻는 취미와도 어느 부분과 합치하는 것 같아요.
근래 인상 깊게 본 전시나,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윤서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한 <나는 너를 중세의 미래한다1> 중에서 전 윌 베네딕트(Will Benedict)와 스테펜 요르겐센(Steffen Jørgensen)의 설치, 영상 작품이 무척 좋았어요. 그분들의 작품은 비교적 자극적이고 스펙타클한, 블랙 유머의 작품이 많은데, ‘좋다’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 그 비결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감각적인 요소들을 되게 섬세하게 허투루 쓴 것이 없었고, 작품 하나하나가 강렬하게 남았어요. 특히 영향이라고 한다면 디스토피아라는 주제로 기폭제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유사한 감각의 연장선상으로 기술적인 완성도에 대한 열망을 더 구체적으로 갖게 되었고. 관객이 계속 보게 만드는 점, 메시지를 끌어내는 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어요.
서양화과로서 특별히 지니면 좋을 만한 자세나 태도가 있을까요.
병남 일단 자기 작업에 대해 틀을 정해두지 않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배우는 범주도 넓고, 무엇보다 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튀어 나가게 될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요. 자신만의 것은 무척 중요하지만 너무 자기의 틀이 강하면 그만큼 선이 그어져요. 학교도 결국 하나의 기회니까, 어떤 배움이 올지 모르고. 저도 미술을 예술작품이 아니라 만화를 보며 시작한 것처럼 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지금은 만화를 잘 보지 않지만..
학과의 방향성과 졸업 이후 일반적인 진로는 어떻게 되나요?
석민 앞선 답변과 비슷한 말인데, 미대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방향성이 없어야 하는 학과에요. 배우는 것의 어떤 특성상. 그런 점에서 미술을 하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불안감은 여전히 안고 있습니다. 청년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지만, 전시가 단발적일 수도 있다 보니까요. 개인적인 형편이 되면 작업실을 차리기도 하고, 등단 이후 큐레이터로서 직업을 병행하는 분도 있습니다. 작업에만 몰두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면, 작가는 부업의 형태처럼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생계를 유지하려는 노력 사이에서 걱정이 많이 되기도 하죠. 이 길을 택한다는 것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많은 학생이 작업을 뭘 해야 하는가만큼,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졸업하고 혹여 미술을 안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배움이 무의미해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재밌는 케이스는 미술을 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가 페미니즘(feminism)을 공부하게 되어 사회 운동가가 되기도 하고. 미대를 다녔다는 경험이 인생 전반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현상과 사상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표현하고 내 것을 담아가는 것들에서, 4년 동안 겪었던 것들이 모두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서양화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석민 (도망쳐). 이건 아니고... 대학교에 오면 모든 과가 그렇겠지만 고등학생과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조금은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자유와 책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미대가 그런 면에서 제겐 정말 재미있었어요.
병남 미술에 대해선 저도 아직 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을 타인이 시켜서 할 수도 있고,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해왔을 수도 있는데, 만일 본인이 원해서 왔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글 박한빈(인터뷰 서양화과 13학번 황석민, 15학번 안병남, 자유전공학부 15학번 이윤서) / 사진 박한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