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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 나의 진로

생각의 프레임을 넓혀 다양하게 고민하세요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정옥주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선배님을 뵙기가 쉽지는 않았다. 인터뷰 약속 역시 해외 출장 일정이 있으셔서 입국 날짜 이후에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선배님에 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약속 장소를 찾아가며, 과연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위해서 해외로 나가시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번 인터뷰 중 얼굴을 전혀 모르고 인터뷰를 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선배님의 첫인상은 누가 봐도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웃음) 샤프한 이미지의 선배님은 우물쭈물 거리는 기자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얼마 전에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르완다로 다녀왔어요. 일단 그 얘기에 앞서서 ‘GGGI(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글로벌녹색성장기구)’라고 하는 이곳은, 녹색성장이라고 하는 전 세계적인 의제를 개도국에 적용해서 이제는 브라운성장이 아니라 녹색성장을 할 수 있도록 정책 및 전략 자문, 기술 지원 등을 하려고 지난 정부에서 만든 기관이에요. 처음에는 비영리 민간기관으로 시작을 해서 지금은 국가 간 협약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기구로 승격되어 한국에 본부를 가진, 그리고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설립하고 운영하는 국제기구에요. 한국, 덴마크, 노르웨이, 카타르 등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받아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죠. 20개 나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중 르완다도 있고요. 저는 설립 초기인 2010년에 들어왔는데, 2012년부터 르완다 사업 책임자로 일하고 있고, 일 년에 반은 르완다 반은 서울 오가며 살고 있어요. 아마 내년부터는 계속 르완다에 있을 것 같네요.

르완다에서 GGGI가 하는 일을 더 듣고 싶습니다.

일단 우리나라는 도시화 단계에서 아주 성숙한 나라에 속해요. 반면 르완다는 18% 정도의 도시화율을 보이고 있죠. 게다가 도시에 사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에 몰려 살고, 나머지 도시는 도시화가 아주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이건 저개발(underdeveloped) 국가의 보편적 현상인데, 수도는 도시화를 뒷받침할 것들이 부족하고, 나머지 도시는 도시화조차 잘 안 되어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GGGI에서는 르완다의 사회기반시설부(ministry of infrastructure), 우리나라의 국토교통부에 해당하는 정부부처에게 도시화를 어떻게 더 녹색적(greener)으로 할지 자문하고 있어요. 그 부처에서는 교통(transportation), 에너지(energy), 도시개발(urban development), 주거(housing) 등의 국가 기간산업을 위한 여러 가지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거든요. 르완다는 수도 이외의 중간 도시들(intermediate cities)을 선정했고, 그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화 촉진을 계획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GGGI는 그 중간 도시들의 도시화 촉진에 있어서 녹색 도시화(green urbaniztion)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비농업적(non-agricultural) 고용을 만들지, 어떻게 토지 계획과 도시 계획을 시작 단계부터 지속가능하게(sustainable) 할지, 또 어떻게 도시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처음부터 녹색적으로 건설할지 등을 자문하고 지원하고 있는 거죠. "

르완다에서 GGGI가 역할을 하려면 녹색성장에 대한 공감이 그 나라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선진국은 브라운성장을 하다가 녹색성장으로 넘어온 것이지만 막 개발을 하려는 국가에게 시작부터 녹색성장을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비싸고, 속도도 느리니까. 그래서 많은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과 저개발국가(underdeveloped country)가 브라운성장을 찾게 되고 무질서한 성장을 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쉽고 빠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녹색성장이라는 장기적인 큰 목표와 단기적으로 국가에 필요한 수요를 동시에 만족시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향해보자’, ‘성장의 첫 단추를 지속가능하게 끼워보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흔치 않은 나라 중 하나가 르완다에요.
그러한 공감대는 일부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물론 해당 부처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크죠. 그래서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도 많이 필요하고요. 정책을 실행할 때 무엇을 선별해서 우선할지에도 도움이 필요한 상태에요. 비유하자면, 집을 지을 때 터를 파고, 다지고, 뼈대를 세우는 등 일정한 차례대로 하는 게 보통이라면 르완다는 터도 파면서 뼈대를 세우고 벽도 바르는 등 모든 것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상태인거죠.

그 곳에서 박사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개인의 역할이라기보다, 팀으로 움직이면서 일해요. 우리 GGGI팀이 중간 도시들을 어떻게 도시화할지 협의한 내용에 대해서, 그것들을 가지고 르완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해야 하죠. 단순히 지시하는, 다시 말해서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왜 잡아야하고 어떻게 잡을지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중요한 것은 경제발전을 해서 그 나라 사람들 삶의 조건이 나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결국 그 나라의 발전은 그 나라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 민간 영역(private sector), 시민사회(civil society), 지자체, 중앙정부 등이 다 같이 추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은 대화를 통해 역량강화에 힘쓰고 있어요.

 

지리학은 인간과 공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리학은 인간과 공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르완다 입장에서는 당장의 경제발전이 간절할 수도 있을 텐데, 브라운성장과 속도에 차이가 있는,
어쩌면 ‘느린’ 녹색성장을 이야기 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그런 충돌은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어요. 비싸고 느려서 어렵지만, 적합한 옵션을 찾아야죠. 그래서 인센티브도 필요하고, 개도국에 맞는 다른 방식의 적정 녹색기술을 찾아야하고, 기존 방법을 이식할 때 어떻게 잘 적용할 수 있을지 적합한 방식을 르완다의 사람, 지형, 기후 기타 등등의 상황을 고려해서 고민해야하죠. 이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도 있고, 더불어 이들을 지원하는 유용한 자금 지원도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끌어다 줄지도 고민하는 거죠.

정말 다양한 노력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성과는 어떤가요?

르완다는 공감대 형성이 잘 되어있기도 하지만, 청렴도도 높아서 국제적으로도 떠오르는 강소국으로 평가 받고 있어요. 또한 젊은 공무원들의 열의가 애국적이고 헌신성이 대단해요. 두 자릿수로 성장률이 나오고 있을 정도고요. 성과가 나고 있죠.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잘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르완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만(웃음) 이제는 조금 필름을 감아서, GGGI 근무 이전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지리학과를 졸업하셨죠.

지리학은 인간과 공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공간 질서를 해석해서 어떻게 무언가를 만들어낼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학사나 석사를 하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회정책개발 쪽이었어요. 박사는 프랑스의 소르본대학에서 지역계획을 전공했고요. 이후에 국토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5년 정도 했는데 그곳에서 국가와 지자체를 위해 국토 개발과 관련되는 여러 정책을 연구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 다음에 지난 정부에서는 청와대 국토해양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2년 정도 근무했죠. 대통령실의 정책과 정부부처의 일을 연결하고 조화시키는 역할을 했어요. 학교에서 배우다가 정책을 연구하고 자문하는 일을 했고, 의사결정을 하는 곳에도 있었고, 지금 이곳 GGGI로 오게 된 거죠. 여러 곳에 있으면서 포커스가 조금씩 바뀌어 왔네요.

와, 압축적인 설명 감사해요.(웃음) 전공 이후 걸어오신 궤적이 정말 지리학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네요.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세계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요. 예를 들면, 저는 지리학을 배우며 공간을 보고, 공간을 통해서 사회를 이해하고 있는 거예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르게 이해하겠죠. 대학에서 전공을 배우며 일생에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슈를 선정하게 되고,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철학을 형성하게 되어요. 저 자신을 보면, 지리학을 공부했기에 그 관점으로 이 문제(르완다)를 접근하고 있는 거예요. 이 나라가 이루고자 하는 경제적 성취를 위해 고민할 때, 지리적인 이점을 어떻게 이용하고 공간계획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거죠.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87학번, 그 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최루탄을 맞았던 이한열 열사,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완전 정치적인 소용돌이가 휘몰아 칠 때였어요. 그 시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끼리 했던 얘기가, 90학번만 하더라도 철학이 다르다는 거였어요. 우리 때만 하더라도 개인의 삶에 관심을 돌릴 수 없었는데 이후로 갈수록 그런 게 가능한 거죠.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개인을 생각하는 것은 죄책감을 느끼게 했어요. 시험과 수업 거부하고, 데모하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과와 선배가 다 그 중심으로 짜여 있었거든요. 개인행동이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행동을 하면 마음이 편치 못한 상황이었죠. 민주주의, 정치, 이런 것이 그 시대의 의제(agenda)였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것에 묶일 수밖에 없었던 때고, 부모세대 역시 산업화, 경제발전이라는 의제에 묶여 희생이 심했죠. 지금 젊은 세대는 그 때보다 개인을 생각할 수 있고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의제로 인한 압력이 덜 하다는 점에서 좀 더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긴 하죠. 그 시절보다는 생각도 자유롭고, 선택지도 다양하고…. 그런 것 같아요.

이 웹진이 대학 입학을 앞두는 학생들이 읽는 거라면, ‘폭 넓고 멀리 보며’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고 싶어요.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과거에는 소수 엘리트 집단의 역할이 국가를 위해 많이 필요했죠. 물론 리더의 존재는 중요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많이 성장했고 전 국민의 역량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중요성이 덜 한 것 같아요. 앞에서도 운이 좋다고 표현했지만, 과거와 달리 거대한 시대 의제로부터의 압박이 없거나 또는 덜 하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저희 때 민주화, 부모세대의 산업화, 이런 부분이 없는 대신에 자신이 좀 더 건강하고 남한테 도움을 주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폭 넓고 멀리, 넓게’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폭 넓고 멀리, 넓게’ 보라는 것은 일단 앞만 보는 게 아니라 뒤를 보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요. 어떻게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역사적 인식’ 속에서 생각하라는 거죠. 다음으로, 여러 경험을 하고 다른 나라도 보면서 ‘다양성’을 가지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아직 우리나라의 인식은 고립된 편이고, 다양하지 못해요. 당장 다문화사회나 통일 문제에 있어서 갈등이 커지고 있고 사회통합이 중요해질 텐데,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받아들일까 이웃과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죠.

아까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밟으셨다고 했는데 우리와는 조금 다른가 보네요?

내가 프랑스에 가서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가 그 나라 친구들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이었어요. 어찌 생각하기에는 사회적 의제도 없고, 자기만 생각하고,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행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죠. 나는 학교가 최루탄으로 난리였는데 말이죠. 얘들(프랑스 친구들)은 방학에 어디 놀러 갈까 생각하기 바쁘고 나 어릴 때는 쌀이 없어서 밥을 굶은 일이 있었는데 얘들은 문화적으로도 누릴 수 있는 일을 많이 하고, 요트타고, 승마하고 있고… 그랬는데 ‘저런 애들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서로의 자질을 비교해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당시 했었어요. 극단적인 비유지만,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밥이 없어서 고통을 겪는 아이들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온갖 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하고 비교 해봐도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겠죠. 이런 느낌을 당시 프랑스 가서 느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과거처럼 특정하고 거대한 시대 의제에 묶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학생들이 자신의 개인적 발전도 생각하며 동시에 사회가 어찌 흘러 가야할지 폭넓고 다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우리나라 부모들은 ‘내 아이는 투자되어야 하고, 강력하게 무장해야하고…’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학생들이 나 자신의 출세가 아니라 나와 나를 포함하는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될 수 있는지 고민하면 좋겠어요, 다양성을 가지면서 말이죠. 우리 사회에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경우의 수가 너무 적은 것 같아요. 시대는 다양한 사회를 요구해요. 다양한 질서로 세계가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닐까요?

 

 ‘I`m from Korea.’가 아닌 ‘I`m from global village!’라고 말하는 거죠

 

 

‘I`m from Korea.’가 아닌 ‘I`m from global village!’라고 말하는 거죠

이제 내년(2015년)부터는 르완다로 파견근무를 계속 나가 계신다고 하셨죠.

2년 정도 살게 될 것 같아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포부, 이런 것을 묻는 건가?(웃음) 이걸 학생들이 읽을 테니까 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렇게 나이 먹은 학번인 줄 몰랐었는데(웃음) 좀 더 산 사람으로서 지나고 보니까 드는 생각을 말하죠. 앞서 다 얘기했지만, 나 자신보다는 나의 삶을 나누며 살고, 역사 속의 내가 어디 있는지를 생각하고, 생각의 프레임을 전 세계로 넓혀 다양하게 고민했으면 해요. ‘I`m from Korea.’가 아닌 ‘I`m from global village!’라고 말하는 거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건데, 종로 한 구석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한 구석을 쓸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살다보면 바쁘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기를 권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정동에 위치한 GGGI 본부였다. 회의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참 매력적이었다. 덕수궁을 비롯하여 시청 근처의 건물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기자는, 빠른 도시화 속에서 어렵게 과거를 간직해온 서울의 지나온 시간을 이제 역사라는 이름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짧은 시간동안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서울의 도시화 과정은 오롯이 우리나라 현대사의 일부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선배님은 르완다의 도시화를 자문하며 언젠가는 역사로 기억될 그곳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외를 무대로 살아가시는 선배님 삶의 이야기는 기자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 역시 선배님 말씀처럼, 큰 꿈과 넓은 마음을 가지고 다양하게 고민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좋은 말씀 전해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리며, 르완다에서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선배님!

글·사진신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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