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과학은 굉장히 겸허한 것입니다
날카로운 차가움이 본색을 드러내던 12월의 초입. 고등과학원을 찾아가는 길은 몹시 추웠다. 헤맨 끝에, 약속시간에 거의 딱 맞춰서야 도착할 수 있었고, 정신없이 인터뷰를 준비하는 찰나 “이리 와서 이거 한번 보실래요?”라며 교수님은 나를 컴퓨터 화면 앞으로 이끄셨다.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물리학과 동기들의 옛날 사진. 거의 40년 전, 사진 속의 교수님 모습은 머리도 수북했고 홀쭉하셨다!
지난 주 약속을 잡기 위해서 연락드렸을 때 학회에 가셔야한다고, 대만에 가신다고 하셨죠.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음…. 전공 관련 학회는 아니었고요. 일단 이곳, 고등과학원에 대해 설명해야겠네요. 고등과학원(KIAS,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은 1996년에 설립되어 수학, 물리학, 계산과학을 중심으로 기초학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곳이에요. 근데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도 기초학문만을 연구하는 고등과학원이 많아요. 지난 2010년에는 프라이그 대학교 부설 고등과학원이 주축이 되어 연합체를 이루었는데, 거기 속한 고등과학원끼리 교류하는 학회에 다녀온 거죠.
요즘 대입 수시 결과를 막 발표하는 때죠. 내일이면 서울대도 합격자를 발표하네요.
교수님은 77년에 입학하셨는데, 그 때 그 시절의 대학 입시가 궁금해요.
그 때는 관악산으로 학교를 옮긴지 5년 정도 지났을 때였나, 그랬을 거에요. 주목할 것이 무엇이냐면, 우리 시절에 입시제도가 왕창 변했어요. 대도시부터 변했는데, 우리 학번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서울과 부산이 고등학교 무시험 추첨제로 됐어요. 그래서, 사전 정보가 많았던 부산 지역 사람들은 대구나 마산으로 꽤 빠져나갔어요.
교수님도 그러셨나요?
아니에요. 나는 부산 사람인데, 계속 부산에 남았죠. 추첨으로 학교 가고. 서울 와서 까치 처음 봤어요. 학교에 본고사 치러 왔는데 정문 들어와서, 대운동장에, 등은 까맣고 하얀 새가, ‘저게 뭐지? 뭐 먹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까치더라고요.(웃음)
아! 본고사도 봤군요. 학력고사를 보던 때였나요?
그 때는 학력고사 생기기 전에 예비고사라고 해서. 예비고사가, 그야말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다 보고, 체력장까지 했죠, 340점 만점으로. 그러고서, 본고사까지 봐야했죠.
그렇게 서울대에 입학하셨는데, 당시 물리학과는 이과 학생 중 인기가 굉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시게 되었던 계기가 뭐였나요?
제가 철학적인 것에 관심이 조금 있었어요. 더불어 어렸을 때부터, 물리학이 진리탐구의 확실한 도구라고 생각을 했죠. 그거 외에, ‘기필코 이걸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는 있어요.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철학사를 배우는데, 선생님이 기독교 사상의 기본은 예정론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창조 전부터 정해져 있다.’라고 이야기하셨죠. 근데 저는 속으로 ‘저건 아닌데?’, 그랬어요. 학교가 미션스쿨이라서 목사님이 계셨고 저는 목사님한테 책을 빌려서 예정론에 대한 책도 읽었죠. 와! 생각보다 더 하더라고요. 그 때 일기장을 지금 다시 보면 어린 마음에 반발심이 컸던 것 같아요. ‘아니 그러면, 뭐 하러 사람이 살아?’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아무튼 그랬는데, 그 시기에 신문을 봤어요. 그 때 불확정성 원리 50주년을 맞이해서 해설을 해놨더라고요. 고전역학에서는 과녁을 향해서 총을 쏘면 같은 조건이면 같은 곳에 가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다를 수 있다고 기사에서는 설명하더라고요. 이걸 보고 ‘아! 내가 이걸 해야겠다.’라고 하게 되었던 거예요. (스크랩 해놓은 기사문도 직접 보여주셨다.) 이게 대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본 기사였어요. 물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굳히고 특히 양자역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학창시절 물리학을 가장 좋아하셨나 봐요.
물리학이 재미있었고, 또 가장 확실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철학적인 부분으로도 의미를 주었고요. 또 뭐가 있었더라, 아, 제가 고등학교 때 물리를 굉장히 좋아해서 질문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엔탈피라는 게 있잖아요. 엔트로피라는 것도 나오고. 설명이 잘 안되었던 것 같아요. 엔탈피? 엔트로피? 만약에 엔탈피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엔-타-르피? 같은 말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하고요.(웃음) 그래서 선생님께 “이러저러한데, 다른 게 뭡니까?”라고 질문을 하니, 대답이 “그런 것 같은데?”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전혀 다른 건데, 그렇죠? 그 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그런 것이 잘 안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예로, 당시 고민했던 것이 토크라는 개념에 대해서인데, 토크라는 물리량의 정의가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궁금했어요. ‘어디서 나왔지? 왜 하필이면 그렇게 정의를 하지? 왜 그렇게 의미가 주어져야 하는 거지?’하고 생각했죠.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보면, 어느 책도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는 책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 지금은 아이들이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며 ‘여유를 가지고 공부할 시간이 있을까?’ 생각해 봐요. 그러나 아닌 것 같아요. 안타까워요. 많이.
맞아요. 사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있죠.
음, 수학도 보면, 요즘은 그저 푸는 것에 정신없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과외 받는 친구들을 보면 <수학의 정석>을 풀더라고요. 남들 다 거기 있는 문제 풀어야한다고 할 때, 뭔가 저는 개념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나 파악이 안 되니 못 풀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미적분 같은 것도 계산을 어떻게 하고, 그런 건 이해하지만, 이게 어디에 쓰인 다든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든가, 그런 걸 모르니 납득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모르는 걸 가지고 계산한다는 게 너무너무 불편한 거예요. 아마 저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위주로 공부를 했지 ‘문제를 다 풀어야한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입시는 이렇게 하면 실패하겠죠.(웃음)
그렇다면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안타까운’ 현실, 즉 학업에서 여유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이 많이 없어진,
그러한 현실이 교육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학생 개인의 사고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입학 제도가 상당 부분 차지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대만 갔을 때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저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는 한 과정의 시험을 여러 번에 걸쳐서 보는 거예요. 우리는 엄청난 양을 한날한시에 치고 있죠. 그러고서는 부담을 경감해준다는 명목으로 과목을 줄여주고 있는데, 그것보다, 고등학교 모든 학년에 걸쳐서 확인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목을 줄여주는 것이 답이 아니고, 과학을 예로 들면, 물화생지 다 공부해야죠. 특히 물리와 화학은 더 근본적인 것이고. 스팀(STEAM) 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이러면(과목을 줄이면) 안 되는 거겠죠. 이렇게 가서는 미래가 어둡다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자녀분들께는 교육에 있어서, 어떤 말씀을 해주시나요?
학원, 그런 것 다니지 말라고 하긴 하는데 집사람하고 충돌이 있죠.(웃음) 생각을 하지 못하는 공부는 깊이 못 들어가게 되니까요.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미리 디자인된 ‘입시 준비틀’이 있어서, 그 나이에 맞게 쫓아갈 프로그램이 없고 미리미리, 빨리빨리, 학생들이 가는 길을 촉박하게 밀어 붙이는 느낌이에요. 학생들은 여러 가지를 탐구하고 경험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양자정보과학이라는 분야가, 세부분야도 다양하더라고요.
간단한 설명과 함께 교수님의 관심 분야를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양자역학이 20세기 물리학을 새로 쓴 셈이 돼요. 양자역학적 이해를 토대로 반도체, 레이저 등이 발전했고.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가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을 발전시킬 수 있었죠. 1948년에 섀넌은 정보이론을 만들었고, 정보이론은 비트 같은 것에 대한 통신이론이에요. 폰노이만의 컴퓨터 원리도 있고. 이런 것에 재료과학과 양자역학을 합쳐서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정보기술, 디지털기술이 만들어진 것이죠. 그런데 여전히 양자역학이 하드웨어만 제공하는 수준에 남아있는 거예요.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고전물리의 고전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죠. 양자역학이 이제 거기(소프트웨어)에 도입 되는 것이 양자정보과학인 것이죠. 양자컴퓨터, 양자얽힘, 양자암호 등이 그러한 분야들입니다. 특히 양자광학을 기반으로 하는 양자정보과학, 또는 양자정보기술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인 연구를 주로 하고 있죠.
좀 더 자세히 예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웃음)
양자얽힘으로 컴퓨터 뿐 아니라 ‘이미징’에도 이용할 수 있어요. 이런 게 있어요. 보통 우리가 무언가를 촬영한다고 하면 광자가 피사체에 반사된 다음 찍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양자얽힘을 이용하면 이런 게 가능해요. 어떤 물체가 있고 얽힌 두 광자, 즉 서로 코릴레이션(correlation)이 있는 상태에서, 굳이 직접 광자가 검출기와 만나지 않아도 얽혀있는 다른 광자를 통해서 ‘이미징’이 가능하게 되는 거죠. ‘이미징’ 외에도 측정에 있어서 역시 이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양자역학을 통해 위상차를 이용한 굉장히 정밀한 측정도 할 수 있게 될 거에요.
‘양자정보과학’에 대해서 저는 사실 잘 몰랐었습니다. 저만 모르는 건가요?(웃음) 혹, 저와 같은 무지한 고등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양자역학은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담고 있어요. 입자물리학, 초끈이론 등도 다 같은 맥락에 있죠. 굉장히 재미도 있고, 중요한 것은 현대 과학기술 전반에 핵심적인 토대가 됩니다. 또 양자물리학이 철학적이고 의식적인 면에서도 생각할 계기가 되기도 하죠. 이처럼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담고 있기에, 아직 발전가능성도 크고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여지가 많기도 하고 생각해 볼만한 것이 많아요. 양자정보과학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양자역학이 디지털 기술에 적용되면서 폭이 엄청나게 커지게 되었어요. 아직 개척해야 할 부분도 있고, 연구되고 있다 하더라도 추가적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해요.
교수님께서는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목적이 있는’ 연구도 중요하겠지만 ‘초목적적’ 연구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내가 하는 일에 목적이 없으면 오는 막막함이 클 것 같아요.
그럴 때, 흔히 하는 말이지만, “Challenge!” 도전해보라는 거죠. 기초과학, 기초학문이 왜 중요할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옛날에 부족이 먹을 게 없어서 옮겨가요. 그러던 중에 꼬마들이 맹랑하게 어른들은 좋은 곳이 이곳 일 것이다 하고 가는 것과 달리, 애들은 그저 주위가 좋으니까 올라가보고 그랬던 거예요. 근데 올라가보니 다른 게 보였던 거죠. 가려는 곳이 나쁘고 다른 좋은 곳이 보이는…. 저는 바로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계획되지 않은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 계획되지 않은, 다만 기초가 단단해야하는 거죠. 또, 아까 예를 든 그 상황 속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듯 성실함과 정직함을 갖추어야겠죠. 그리고 지금은 한명의 천재가 다 할 수 없습니다. 협력과 소통도 중요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교수님의 꿈!
어, 내 꿈은 사실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어요.(웃음) 지금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과학과 종교, 철학의 영역은 다른 거니까. 다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과학 이론, 법칙으로 뭐든 결정된다.’는 이런 걸 맹신하지 말고 과학은 겸허한 것이라는 사실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20세기 과학이 발견한 사실을 보면, 겸허(humility)를 보게 돼요.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 어마어마하다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20세기의 과학이 드러낸 한계를 ‘4不’로 정리할 수 있어요. 첫째는 뭐, 다 잘 아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두 번째는 카오스 이론에서 먼 미래의 상태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 셋째는 수학에서 참과 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넷째는 세 가지 이상의 옵션이 있을 때 그것 중 공정하게 선택할 방법은 없다는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그래서 정리하자면 이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고, 정해지지 않았고, 정해진 것도 예측하기 어렵고, 따라서 우리의 생각은 불완전하고 우리가 할 일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는 공대생이다. 그러나 물리 공부를 심도있게 하지는 않았던지라, 더욱이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리학의 세부내용에 익숙하지 않아서 많은 걱정을 하며 인터뷰 장소로 갔었다. 부족한 기자에게 교수님은 칠판에 쓰고 그리시며 설명해 주셨다. 인터뷰 내내 교수님의 그런 모습을 보며, 또 ‘끊임없이 생각하는’ 열정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학문을 하는 사람은 어때야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성격상, 스스로 앞날을 생각할 때 이것을 재고, 저것을 고민하느라 우유부단할 때가 많다. 그런 모습이 묻어나는 질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Challenge!”라고 대답하신 교수님의 말씀 앞에 결국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작정 많은 질문을 준비해간 탓에 1시간을 예상한 인터뷰는 30분을 더 넘겨서까지 진행되었다. 약속했던 시간을 넘겨서까지, 마지막 질문까지도 자세히 칠판에 쓰시며 답변해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인터뷰 후 사주신 점심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