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Push your boundaries!
기회는 구름과 같다.
늘 있는 것 같지만 아무 준비 없이 잡을 순 없다.
다 똑같아 보이지만 저마다 모양과 빛깔이 다르다.
다양한 구름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현모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 보자.

안녕하세요!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언어학과 02학번 졸업생 안현모입니다. 원래 02학번을 이름도 싱그러운 ‘산소 학번’이라 불렀었는데, 이제는 앞뒤 숫자를 뒤집은 20학번, 21학번까지 입학하게 됐으니, 그것도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어버렸군요. 졸업 후에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 국제회의통역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곧바로 방송국에 취직이 되어 7년간 방송기자로 살았습니다. 현재는 퇴사해 프리랜서 방송인/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학생들에게 언어학은 생소한 분야입니다. 언어학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언어를 좋아했고 언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외국어고등학교 진학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대학도 막연하게 어문계열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시전형을 지원하던 시점에 서울대에는 영문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언어학과에서는 영어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언어를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을 거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에 마음이 강하게 이끌렸던 거 같습니다. 영문과를 나온 친언니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고, 지인들을 통해 얻은 소소한 정보들을 종합한 결과 저에게는 문학보다는 언어학이 맞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학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떤 활동에 중점을 두셨나요?
예상했던 것보다 언어학과의 공부는 범위가 훨씬 방대했습니다. 음운론, 음성학, 통사론, 기호학 같은 기본적인 분야만 있는 게 아니라 전산언어학, 사회언어학, 법언어학, 언어치료학까지 수많은 응용 분야가 있었죠. 그래서 다소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도 재미있고 저것도 재미있고 전부 조금씩 재미있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또, 단순히 학구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계속 파고들어야 할지, 아니면 소위 취업하기 좋고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분야에 도전해야 할지 갈등도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저는 어쩌다 결국 생각지도 못한 언론계에 종사하게 됐지만, 당시의 얇고 넓었던 경험과 접촉은 비록 어떤 직접적인 유형의 결실로 이어지지는 못했더라도 제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매우 소중한 과정이었습니다.
전공 수업과 더불어 나름 열성적이었던 것은 애초에 입학한 목적대로 다양한 외국어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쉽지는 않았습니다. 동시에 너무 여러 종류의 언어 수업을 듣는 바람에 더 헷갈리기도 하고 솔직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또한 비록 해당 언어를 마스터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각종 언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기본 틀을 갖출 수 있게 된 감사한 몰입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밖에 언어학과는 전통적으로 전국 각지로 방언조사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방학마다 터키나 핀란드, 짐바브웨 등지에서의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제공했는데, 어찌하다 개인 사정으로 동기들과 함께 그런 프로그램에 한 번도 동참하지 못했던 것이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대신,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방문학생으로 지원해 그곳에서 전공 학점의 절반 가량을 이수했으며, 커뮤니케이션, 제2외국어교육 등의 수업을 들으며 언어학 전공의 확장 가능성이 실로 무궁무진함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언어에 대한 열정은 언제 시작되었나요? 그 열정을 실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언어에 열정이 있단 걸 일찍부터 뚜렷하게 자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바로 열정이었고 확실한 나만의 취향이었는데, 어릴 때는 미처 모르다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야 나 자신을 객관화해 볼 수 있게 되면서 서서히 깨달은 것 같습니다. 마치 ‘아, 우리 집은 1년 365일 과일을 챙겨 먹었었는데, 남들도 다 그런 건 아니구나’ 같은 걸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 것처럼요. 그것을 “실력으로 발전시킨 비결”이라… 답을 하기 대략 민망하고 난감하지만, 돌이켜 보면 제가 감사한 일은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빨리 대학교 졸업 전에 혹은 대학원 졸업 전에 확실한 진로를 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전혀 없었고, 무엇이든 일단 남들의 의견에 휘둘리기보다는 기회가 오면 열린 마음으로 마다하지 않고 직접 부딪혀보고 깨우친 뒤에 결정하는 타고난 느긋함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여유가 역설적이게도 저라는 사람을 보다 분명히 파악하는 지름길로 안내했고, 당장의 효용과 무관하게 좋아하고 끌리는 것에 무작정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 아닐지.
SBS 외신캐스터로서 2019 북미정상회담, 2020 미국 대선 등 해외 뉴스를 동시통역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전달해 주시는 모습을 잘 보고 있습니다. 특히 Mnet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 독점 생중계’에서 BTS의 ‘톱소셜 아티스트’ 수상 소감을 통역할 때 남다른 센스를 발휘하여 많은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통역을 위해서는 어떠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며 어떠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통역을 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요.
SBS CNBC에 처음 입사하자마자 CNBC ASIA의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 가서 생방송 진행에 필요한 훈련을 받았었는데, 영국인이던 CNBC ASIA의 사장님께서 그때부터 저를 볼 때마다 여러 차례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Live and breathe it.” 경제 뉴스의 진행자가 되었으니 매일 24시간 마치 숨 쉬듯이 경제 뉴스에 파묻혀 살라는 뜻이었죠. 이 주문이 저에게 저주처럼 박혀버렸는지, 이후에도 대체로 어떤 일이 주어지면 저 표현이 딱 들어맞게 임하는 편이에요. 질문에서 언급하신 북미회담이나 미 대선, 음악이나 영화 관련 시상식도 그러했고, 어떤 프로젝트가 다가오면 생활 전반의 알고리즘 자체가 그에 맞게 세팅된다고나 할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눈으로 보는 것도, 귀로 듣는 것도 모두 해당 주제와 관련된 것으로 맞춰져요.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과 똑같이요. 물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방송이나 행사 등 일정이 많다 보니 고시생처럼 하루 종일 앉아서 한 가지에만 전념하지는 못하죠. 그렇지만, 그 외 나머지 자투리 시간은 최대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할 수 있게끔 안테나를 항상 세우고 있어요.
언론사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회계학과 교수님으로 계시던 친척 어르신께서 오래 전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가끔 떠올라요. “수학을 싫어했는데 회계학과 교수가 됐다”며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라고 하셨었는데, 제가 딱 그런 케이스였어요. 방송인이 될 줄, 그 중에서도 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대학 시절엔 아나운서를 권유 받아도 귓등으로 흘렸었고요. 그런데 이쪽 일이 저의 운명이었나 봐요. 아님 저도 모르게 무의식의 세계가 한 발 한 발 가까이 이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고요. 통역대학원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SBS CNBC라는 새로운 케이블 채널이 개국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어로 된 CBNC 방송을 실시간으로 통역해줄 통역 알바를 구한다는 친구의 말에 이력서 들고 따라간 게 계기였어요. 서류 심사와 실무자 면접, 임원 면접 등을 거쳤는데 마지막 사장단 면접에서 방송 제의를 받았죠. 영어 방송 앵커를 찾고 있는데, 남자는 구했지만 여자는 아직 못 구했다며 “구할 때까지만” 맡아 달라는 게 원래의 제안이었어요. 길어야 한 두 달일 거라 설득했으니 가볍게 부담 없이 수락할 수 있었죠. 흔치 않은 사례이긴 하지만, 저는 인생에 늘 공식은 없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 뜻밖의 시험이 주어지고 뜻밖의 문이 열릴지 모르죠. 뻔한 공식에만 골몰하다 보면 삶의 유연성을 잃어요. 갑자기 날아오는 커브볼에도 대비하시길 바라요.
최근 SBS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을 비롯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방송 활동을 하며 새롭게 느낀 바나 깨달은 점이 있으신가요?
몇 줄로 대답하기엔 너무 큰 주제인데요? 예능 활동은 보도국 기자로서의 활동과 전혀 달라요. 180도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똑같이 TV에 얼굴이 나오는 거니까 비슷할 거라 여기기 쉽지만, 짐작하시는 것 이상으로 실상은 극과 극의 세상이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어려움도 많았고, 느끼는 바도 컸죠. 그걸 일일이 여기에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대신 직전 질문에 대한 답변의 연장선에서 말씀드리자면, 예능 출연 역시 저에게는 인생의 변화구, 커브볼이었고, 저는 그걸 몸을 웅크려 피하지 않고 몸을 날려서 잡는 쪽을 택했어요. 쉽지 않았고 희생도 따랐으나 결과적으로는 보람을 느낍니다. ‘pushing the boundaries’ 라고 하죠. 힘들더라도 나를 정의하고 있는 한계의 울타리를 있는 힘껏 밀어서 한 뼘 뒤로 보냈더니,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어요. 세상이 나를 담는 앵글이 다채로워진 만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앵글도 다채로워졌죠. 누군가 인위적으로 세워놓은 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남과 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처럼 자유롭고 싶어요.
통역사, 언론인, 방송인 등 여러 직종에 도전하시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몸이 변하는 것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마인드가 변하는 것인 것 같아요. 실제로 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단순히 나이라는 숫자 때문에 자신감을 잃거나 주춤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앞으로도 달력을 쳐다보거나 시계만 들여다보기보다는 내 날개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요. 지금 내가 뛸 수 있는지, 날 수 있는지, 걸을 수 있는지, 나의 상태가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그걸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이지요. 남들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갔는지, 어떻게 가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내가 다리가 아프다면 좀 쉬어도 되는 것이고, 내게 체력이 남는다면 고도를 좀 더 높여도 되는 것이죠. 저는 높게 나는 것에는 욕심이 없지만, 오래, 멀리는 날고 싶어요. 통역의 땅이든 언론의 땅이든, 아니면 전혀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든, 이왕 태어난 거 아름다운 세상 원 없이 구경하며 오래오래 비행하고자 합니다.
현재 직업 활동을 하시면서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계신가요?
위에도 비유적으로 썼지만, 제 자신의 건강, 제 자신의 만족도, 제 자신의 성취가 최우선이에요. 사회의 시선이나 세간의 평가, 주변의 분위기는 그냥 알기만 할 뿐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제가 싸워 이겨야 하는 가장 큰 경쟁상대도 제 자신이고, 제가 응원해야 하는 가장 큰 동지도 제 자신이랍니다. 100점이 걸린 임무에서 50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 50점 앞에 ‘고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일지 ‘무려’라는 수식어를 붙일지는 절대로 남들이 함부로 정하지 못해요. 그건 나만 알 수 있어요. 그동안 어떤 여건 속에서 얼마큼 노력했는지, 지난번에 비해 얼마큼 향상됐는지 또는 후퇴했는지를 통해 내가 점수를 부여하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내 ‘양심’만이 알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대학생 때 진로에 관한 탐색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인지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거의 없는데,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니, 이미 저보다 훨씬 나은 지점에 서 계시다고 할 수 있어요. 저처럼 보잘것없는 일개 선배의 이야기에 잠시라도 귀를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의욕을 보여주니까요. 제가 들려드린 제 경험담이 여러분을 구하진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내용은 다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걸 끝까지 읽어 내려간 여러분 내면의 에너지가 궁극엔 여러분을 구할 거라고 믿습니다. 평생 그것만 놓치지 말고 붙잡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