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에요
2015년 12월의 어느 맑은 날, 선배님을 만나러 신사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선배님이 하던 일들이나 활동 등은 인터넷 기사나 방송을 통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떨렸다. 가는 동안 차가 밀려 조금 늦었지만 선배님은 괜찮다며 편하게 앉으라고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두희라고 하고, 서울대학교 학부는 컴퓨터공학과 03학번이고, 석사는 08학번, 박사는 10학번입니다. 아, 박사는 다니던 도중 자퇴했습니다. 현재는 이 카페 근처에 있는 클래스팅이라는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먼저 선배님의 학창시절이 궁금한데, 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고 당시에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과는 좀 달랐어요. 저는 원래는 물리학과를 희망하던 학생이었어요. 물리를 좋아해서 물리학과로 진학을 하려다가, 주변에서 ‘순수학문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 것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해서, 공대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계열에서 자연대가 아니면 갈 수 있는 곳이 공과대학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물리 이외에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분야도 없었고,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빨리 볼 수 있는 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건축공학이나 조선공학 등의 학과는 건축이나 배를 만드는 데 몇 년씩 걸리잖아요. 하지만 컴퓨터공학과는 그렇게까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오래 안 걸릴 것이라 생각을 해서 입학을 결심했습니다. 특히 컴퓨터공학과에서 공부한다면 막연하지만 괜찮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컴퓨터는 어디든 쓰이는 중요한 기계여서 금융권으로도 갈 수 있고, 수의대도 갈 수 있고, 심지어 미술 분야로도 나갈 수가 있어요. 어느 학문 분야, 산업 분야든 제가 전공을 통해 배우는 지식과 기능들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럼 입학 후 컴퓨터 분야가 적성에 맞는 편이었나요?
하하. 아니요. 제 1학년, 2학년 때 학점이 모두 1점대 학점입니다. (웃음) 그냥 학과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과대도 했었고, 모든 MT활동도 다 가고. 술을 전혀 못하는 데도 열심히 놀았어요. 그래서 사실 초반에 전과도 시도했었어요. 경영대로 가보고 싶었는데, 학점이 좋아야만 전과가 가능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불공평한 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적성에 안 맞는 학생들을 위한 제도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여하튼 그렇게 전과를 실패한 후에, 비로소 컴퓨터를 제대로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비로소 깊이 있게 공부했어요. 3학년 때부터는 컴퓨터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습니다.
소위 ‘천재 해커’라는 수식어가 따르잖아요? 재학 중에도 다양한 일들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고요. 심지어 전공에 부적응 했던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컴퓨터가 굉장히 실생활과 가까운 학문이라 생각하는데,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신생 학문이다 보니까 가장 기본적인 이론들만을 중심적으로 가르치더라고요. 그런데 컴퓨터는 잘만 활용하면 적은 노력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요. 하나 예를 들자면, 서울대학교 강의평가 사이트인 ‘스누이브’라는 사이트가 있어요. 제가 재학 시절 교내 동아리인 ‘와플스튜디오’에 있을 때 만들었던 사이트죠. 사실 저는 선배들과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강의와 관련된 정보들이 굉장히 제한적이었어요. 선배들과 친한 동기들은 선배들로부터 강의 관련 정보를 잘 얻곤 했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없으면 내가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개발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재학 시절 일화 중 하나로, 서울대 출신 연예인 김OO 씨의 증명사진이 유출되던 사건도 있었는데 혹시 관련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그 사건은, 제가 3학년부터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공부를 하면서 각종 사이트들이 어떻게 구성돼 있나 호기심이 들어서 막 뜯어보곤 했어요. 이글루스 사이트나, 교내 전산망 등을 대상으로 삼았었는데, 보고 나니까 교내 전산망이 생각보다 허술한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타인 아이디로도 로그인 할 수 있고, 성적 등도 조작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겠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생각을 해서 전산망에 리포팅(report)을 세 번이나 했어요. 5월, 8월, 11월에. 그럼에도 대응을 안 하기에 11월 말에 관련 사건을 일으켰고, 그 다음 날 바로 언론에 기사가 나면서 교내 전산망 보안을 강화하더라고요. (웃음)
알게 모르게 학교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네요.
창업 지원 센터도 학교에 없었는데 최근에 생겼잖아요. 사실 저와의 연관성은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에 박사 과정 중 자퇴하면서, 학교가 너무 권위적인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을 했어요. 너무 갇혀있는 것 같다고.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우리 대학도 이에 발맞춰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어차피 제 입장에서야 학교 그만둘 거,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다 하고 나온 셈이죠. (웃음) 학교를 나오고 나니까 그 뒤로 학교에 각종 지원 센터 등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좋은 일이죠.
이후에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캐스팅 되었는지, 부담은 없었는지, 또 출연 전과 후의 바뀐 모습 등이 있는지요?
사실 캐스팅 자체는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요. 갑자기 어느 날 전화가 오더라고요. 방송에 출연해 주실 수 있냐고요. 사실 저는 처음에 출연을 안 하려고 했어요. ‘더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전 시즌을 보니까 꽤 재미가 있어서 결국엔 출연을 승낙했어요. (처음 방송 출연이셨던 걸로 아는데, 부담은 없으셨어요?) 아,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선 별로 부담을 안 느껴요. 떨어져도 뭐, 떨어지나 보다 했던 것 같아요. 방송 끝나고 나서도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럼 출연 이후에 달라진 점은요?) 출연 당시에는 실시간 검색에서 5일 연속 1위도 달성했고,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몇몇 학생 분들은 알아봐 주시긴 했는데, 지금은 전혀 안 그래요. (웃음) 음, 그래도 사실 얼마 전에 ‘메르스 맵’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한창 여름에 메르스 사건이 터졌을 때, 친구와 같이 만들어서 제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메르스에 감염된 병원이 공유가 잘 안 됐는데, 우리끼리라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병원들 리스트 등을 만들어서 배포한 거예요. 루머가 아닌 진짜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시작했고, 사람들의 사진 제보 등도 받았어요. 이게 옛날 같았으면 그냥 저냥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올리고 나니까 실시간 검색어에도 하루 종일 오르더라고요. 500만 명이나 이용을 했어요. 이것도 방송 출연의 영향이라면 영향일까요? (웃음)
이후에도 다양한 스타트업 활동을 하면서 프로그래밍을 하시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최근 들어서는 ‘멋쟁이 사자처럼’이란 곳에서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IT 교육도 한다고 들었어요.
코딩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데, 이런 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박사과정 중에 창업과 관련한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창업을 하려면 차라리 학교를 떠나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외 대학의 경우에는 박사를 하면서 대기업에서 투자를 받고 창업이나 기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우리 사회 통념은 공부를 안 하는 이단아 정도로 비춰지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전 학교를 그만 두어야겠다 생각했고요. 그리고 당시 제가 맡고 있던 일이 카OO에 매각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됐는데 … 그럼 백수가 된 거잖아요. (웃음) 할 일이 없어진 덕에 가까운 학생들과 함께 컴퓨터 교육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멋쟁이 사자처럼’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엄청 많았어요. 지금은 수강생이 500명 가까이 되고, 다음 기수에는 천 명 가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미국으로도 진출할 생각이고요. 수강생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어요. 사실 C언어나 JAVA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정교한 고급 언어에요. 자동차로 비교하면 슈퍼카 정도 될 텐데, 이런 차를 처음부터 모는 것은 사실 힘들잖아요. 코딩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쉬운 언어지만 실용적인 언어부터 학습하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파이썬 같은 언어부터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실제로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이 만들어 낸 창업 사이트나 앱(App)들도 현재는 꽤 많이 나왔습니다.

현재는 교육용 SNS인 ‘클래스팅’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평소에도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지요?
아니요. 그냥 사람들이 많이 사용해 주는 것을 좋아해서 일들을 시작한 거에요. 이 SNS는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육용인데, 백 만 명이 넘게 사용하고 있죠. 무엇을 해볼까 생각하고 일들을 진행하는 것이, 어쩌다 보니까 하고 있는 일들이 다 교육과 관련된 것들이 된 거죠. 우연 아닌 우연이네요.
요즘 우리나라에는 소위 ‘스타트업(start-up)’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힘든 것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도전을 하게 되면,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막심한 분야라 되게 조심스러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잘 되는 회사들은 굉장히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시작한 곳들이거든요. 이런 긍정적인 모습만 바라보고 섣불리 도전했다가 실패하게 되면, 소위 ‘투덜이’가 되곤 해요. 왜 난 안 되나. 할 수 없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사실 저조차도 따로 회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잖아요. 열정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장이 스타트업 시장입니다. 오히려 대기업들보다도 실력 기반으로 가야하는 것이죠. 서울대 나왔다고 자기가 만든 서비스를 무조건 이용해 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차라리 먼저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실력과 경력을 쌓은 뒤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멋쟁이 사자처럼’에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 창업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안 해요. 배운 것을 그냥 써 먹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아 물론, 코딩 자체를 배우는 것은 찬성이에요. 코딩은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풍부하게 하는 것이에요. 오히려 적극 권장해요. 보통의 인문계열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단순 반복 작업 등을 컴퓨터에 시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하물며 엑셀 작업 같은 것을 할 때도, 2~30분 씩 걸리는 일들을 코딩을 활용하면 5분이면 끝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아예 IT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죠.
그러면, 앞으로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한 마디 하자면, 컴퓨터가 ‘목적’이 되게 하지 말고, 자신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가령, 컴퓨터가 목적이 되면, ‘어떤 프로그램을 로딩(loading)하는 데 드는 시간을 10%나 줄였다.’와 같은 고민들만 하게 되는데, 실제 사용자들에게는 이게 별로 중요한 점이 아니거든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공되는 서비스나 콘텐츠 등이지, 그 프로그램이 빠르냐, 느리냐는 두 번째 문제인 거예요. 사람들의 니즈(needs)와 다르게 되는 거죠. 컴퓨터는 현실과 가장 가깝고 빠르게 맞닿을 수 있는 제일 좋은 분야이기 때문에, 컴퓨터를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징검다리로써의 역할을 하도록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선배님과의 인터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민감할 수도 있겠다는 몇몇 질문들에도 친절하게 답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사실 필자도 코딩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맛보기 정도로만 배웠던 적이 있는데, 이번 기회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볼까 싶다. 선배님의 말씀처럼,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너무 거창한 계획이나 생각을 가지기 보다는 현재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선배님. 학교 식당의 메뉴와 계절의 풍경은 그대로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어요. 관정도서관이 마침내 문을 열었고 공과대학에 기업들도 많이 들어오고요. 학내에는 연합전공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 더 많은 긍정적인 변화 속에서 학교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