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나만의 이야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선배님을 만나기 위해 매봉역 3번 출구에 있는 EBS에 도착했다. 방송국은 몇 번 간 적이 없어서 늘 갈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로비 한 구석에서 선배님을 기다리는 동안 EBS에서 하는 공감 콘서트에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둘 입장하는 것이 보였다. 로비에는 카페가 있어서 향긋한 커피 향기가 즐비했다. 선배님께서는 늦지 않으셨음에도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환한 인상으로 등장하셨다.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선배님께서는 내게 커피를 사주시며 방송사 내의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으로 나를 인도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바쁘신 도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별 말씀을요. 저야 말로 이렇게 후배님을 만나게 돼서 기쁩니다.
현재 선배님께서는 방송국에서 PD를 하고 계시는데, 사실 대학생 시절 전공은 윤리교육이라고 들었습니다. 전공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음,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사실 사범대학에 입학할 때 원대한 뜻을 둔 것은 아니에요. 소위 말해서 점수 맞춰 온 셈이죠. (웃음)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PD가 되기까지의 과정 중 대학에서 쌓은 전공 분야 지식들이 많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 분야의 지식 자체도 매우 흥미로운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전공 과정 외로 인문이나 사회과학, 교육 분야 등의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재미를 느꼈던 부분은 따로 더 찾아보면서 공부하기도 했고요.
당시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공부만 하고 있기에는 조금 어려웠던 환경은 아니었는지요?
하하.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쯤부터는 흔히 생각하기 쉬운 ‘학생운동’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어요. 그때 서태지가 처음 데뷔하기도 했고, 녹두거리(*서울대학교 근처 대학가)에 노래방이나 비디오방 등이 등장했기도 했어요. 쉽게 말하면 오늘날 대학가의 문화를 형성해 가는 문화적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가 등장하려고 했던 움직임이 보였을 때였죠. 그래서 저도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를 고려하여 여러 분야의 공부를 스스로 했죠.
아, 그러면 현재는 대학 시절 전공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언론직에 종사하고 계신데, 언론인이 되고자 했던 계기나 생각 같은 것들이 있으셨다면 무엇이었나요?
저는 교직에는 큰 흥미가 없었어요. 다들 그랬듯이 무탈하게 대학생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사범대학에서는 4학년이 되면 교생 실습을 나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제가 지닌 적성이나 흥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 역시도 20대 초반이라면 또래들이 늘 고민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와 같은 뻔한 고민을 했어요. 그 즈음 동기들과 임용시험 준비를 위한 스터디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 덕인지 임용시험에는 합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되자마자, 학생들에겐 참 미안한 일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직서를 냈어요. 당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과연 내가 교사가 되고 나서도 나중에, 그러니까 현재의 제 나이겠죠,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가. 이런 고민들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고민 중에 막연하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기자가 주던 이미지나 모습들이 제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수차례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봤었는데, 번번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결국 한 신문사에 합격을 했는데, 친한 후배가 제게 EBS 방송국에 PD를 모집하고 있다는데 한번 지원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지원을 했고 현재의 일을 시작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죠. 사실 PD가 된 것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마치 운명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특별한 관련 지식도 없었고 미처 깊이 있게 생각도 잘 하지 못했던 길이니까요.
그렇다면 PD가 되고 나서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먼저, PD의 생활 패턴이나 하루 일과 같은 것이 궁금합니다.
사실 PD라는 직업에도 여러 분야가 있어요. 다큐멘터리, 예능, 스포츠, 음악 등 다양한 방송 분야가 있고 그러한 분야에 따라서 PD들의 일과도 달라집니다. 매일 방송하는 데일리 방송이나, 주마다 방송되는 위클리 방송, 그리고 길게는 몇 달에 거쳐 방송을 만들어 나가는 PD들도 있어요. 하지만 공통적으로 기본이 되는 사항이라면, PD가 하는 일은 처음과 끝이 존재하는 일들입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분야로서 보통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3~4개월 정도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에도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휴식단계이기 때문에 마냥 편하게 쉴 수만은 없죠. PD는 결과로 평가받는 직업이기에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PD는 정말 힘든 직업이에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웃음)
PD가 하는 일은 그 전체 단계를,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의도를 담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기획 단계, 그러한 생각을 어떻게 담아내고 구현할 것인지에 관한 촬영 단계, 촬영된 영상을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지에 대한 편집 단계, 그리고 최종 마무리를 통한 완성 단계로 보통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과정들을 PD가 도맡아서 진행해야 합니다. 물론 틈틈히 촬영이나 편집 기사분이 일을 분담해서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PD가 다양한 일들을 총괄하고 기획해야 한다는 점에서 쉬운 직업은 아닙니다. 음,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그렇군요. 저는 처음 선배님을 접했던 것이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도 한창 큰 이슈가 되어서 몇 번 방송을 되짚어 보기도 하고 책으로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어떻게 담당하고 기획하게 되신 건가요?
그 프로그램은 10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이 되었는데, 총 제작 기간만 1년 6개월이 걸렸어요. 6개월 동안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 기획을 하였고, 편집을 석 달 동안 하였고 나머지는 촬영 기간이었어요. 기획을 했던 발상은 거창한 것은 아니었어요. 우리의 삶 속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무언가 통과의례 같은 곳으로 여겨지는데,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러한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별로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학교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우학교 이야기부터 사교육, 칭찬의 역효과, 0.1%의 영재들, 세계 최고의 고등학교와 같이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을 했어요. 촬영은 무척 힘들었어요. 화면에 전부 담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았고요. 그렇지만 보람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이 15개의 상을 탔을 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았습니다.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작품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예요. 이를 시발점으로 해서 이후에 ‘학교의 눈물’이나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등의 후속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는 과도한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칭찬의 역효과’에 대해서 말씀드렸죠? (웃음)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아동범죄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하시기도 하고 바누아투 섬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보통 기획을 할 때에는 어떤 생각이나 기준을 갖고 하시는 편인가요? 특별한 방법 같은 것이라도 있나요?
보통 PD가 기획을 한다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 외로 단순해요. 자신의 흥미에 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고 기획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만 계속 하면 지겨우니까 여러 가지 주제들을 고민하는 것이죠. EBS 다큐프라임이 지닌 고유한 특징인지도 모르겠지만, 제 기획의 첫 출발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시 한 구절이나 소설 한 줄, 인문학 책 한 권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것으로부터 출발해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정보를 찾으면서 구체화하고, 살을 붙이는 것이죠. 아니면 다른 PD들과도 이야기를 하면서 기획을 하기도 합니다. PD들은 서로 가진 관심사가 다르기에 이야기를 하다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어요. 예를 들자면, 저는 ‘학교란 무엇인가’에서 ‘칭찬의 역효과’에 대한 기획을 했었어요. 언젠가 제가 딸아이의 그림을 보고 참 잘 그렸다고 칭찬했던 적이 있었는데 딸아이는 ‘아빠는 왜 잘 그리지도 않은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해?’라고 되묻더군요. 그것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이것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기획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작품을 하시면서 굉장히 많은 보람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PD는 직업을 빌미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고 보람 있는 직업이기도 해요. PD로 선발되면, 그 전에 소위 ‘입봉’이라고 불리는 수습 단계인 AD를 2~3년 정도 맡게 됩니다. 그 기간에 제가 한 첫 연출이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명동백작’이었어요.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띤 드라마였는데, 제작 과정에서 이청준 씨나 김지하 씨 등 유명한 작가님들의 작품들은 웬만큼 다 읽었었고 그분들과 인터뷰도 했어요. 문학계의 거장들을 만나보고 그 분야에 미친 듯이 몰두하고 기획하는 것이 PD로서의 삶이 보람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은데요. 혹시 자신의 생각이 작가나 연출진, 방송사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 어떻게 풀어나가시는 편이세요?
갈등 많죠. (웃음)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도 PD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학교란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있을 당시에, 기획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소위 싸우는 과정이죠. 어떤 PD는 청소년 자살이나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다른 PD는 선생님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차별화나 가시화가 힘든 주제들은 과감하게 삭제됩니다. 또 주제가 결정 돼도 방송사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조율되기도 하죠. 그래서 각자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총 10부작이면 1/3씩 주제의 방향을 나누어 기획했던 것 같아요. 작가와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PD나 작가, 방송사 모두 좋은 방송, 재밌는 이야기라는 하나의 공동 목표가 있기 때문에 때로는 밉다가도 서로 잘 타협하고 일을 진행하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일을 하시면서 목표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이런 고민을 많이 해요. 전국의 PD가 수천 명이 될 텐데, 나는 그냥 ‘수천 분의 일’인 PD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온전한 ‘1’로서의 PD가 될 것인가. 그저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PD는 대체 가능한 PD이죠. 그래서 저는 나만의 이야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노력도 열심히 해야겠죠.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PD가 된 것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운이 좋게 PD로 방송국에 입사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힘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어요. 물론 재미가 없는 것은 알아요. 누가 TV를 보면서까지 힘들고 어두운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겠어요. 그럼에도, 사회에서 잊혀져가는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다른 관점이나 프레임으로 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저를 PD가 되게 했던 운명이 속삭이는 것 같아요. (웃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인터뷰를 무사히 끝마치고 선배님과 환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음료수 자판기가 한 대가 있었다. 그곳에는 랜덤이라 적힌 800원짜리 음료수가 있었다. 호기심에 뽑고 나니 그 자판기에서 가장 저렴한 600원짜리 캔커피가 나왔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운에 연연하기 보다는 목표를 정하고 원하는 것을 추구해 나갈 때 진정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선배님의 말씀처럼 나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확실히 알고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