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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 나의 진로

아이디어를 지키기 위한 엔지니어의 변신

공과대학 이영필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연구나 기술이 세계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술 자체, 혹은 개발자에게만 집중한다.
그러나 정보와 지식이 곧 재산인 현재, 기술 역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이렇게 기술이라는 재산을 보호해주는 사람이 변리사이다.
이영필 대표님께서는 특허로써 반도체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심과 함께
변리사이자 기업가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알려진 분이다.
현재는 국내 굴지의 특허법인의 대표변리사이시며, 항공우주동창회 회장을 역임하고 계신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한가운데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치열하게 도전하셨던
대표님의 인생 이야기를 기자가 들어보았다.

공과대학 이영필

고등학생들에게 변리사는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변리사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변리사는 산업재산권을 획득, 행사하는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간략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산업재산권에는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권이 있고 권리마다 법이 있는데, 이 네 가지 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특허법이에요. 특허권은 신기술을 개발했을 때 그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변리사가 하는 중요한 일이 특허권을 획득해주고 후에 이를 행사하는 것을 도와주는 거예요. 특허권은 ‘명세서’라는 문서에 적힌 특허 범위에 부여되는데, 이 명세서에 따라 특허가 결정된다고 봐도 좋습니다. 변리사는 명세서 작성, 출원, 거절이유에 대한 대응 등을 대리해 특허권을 창출하는 역할을 해요. 실용신안권은 특허권보다 고도(高度)성이 떨어지는 기술에 대한 권리이고, 디자인권은 말 그대로 상품의 외관 등에 대한 권리, 상표권은 다른 상품에 비교해 식별력을 가진 표지에 대한 권리입니다. 요즘에는 변리사들이 저작권에도 관여해요.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을 합쳐서 지식재산권으로 정의하거든요. 이렇게 권리를 생성하고 활용하여 고객을 도와주는 것이 변리사의 일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특허청을 상대하여 일합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특허 심판을 해서 특허법원이나 대법원을 상대하기도 하고, 침해 문제가 생기면 민사 소송에도 관여하게 됩니다. 일반 특허침해소송은 변리사가 대리할 수 없지만 특허의 무효와 권리 범위 인정 등의 특허 소송, 특허심판원 업무는 변리사의 영역이에요. 특허 외 영역에서 고객에게 자문을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구 개발 시에 발생하는 신기술의 보호나 소재 선정에 활용하는 선행연구 조사 등이 그런 것이죠. 또한, 권리 행사 과정에서 특허권을 평가할 때도 변리사가 평가 역할을 맡게 됩니다.

항공공학을 전공하셨는데요. 전공을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서 이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공계에서도 순수 학문보다는 공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풍족하게 자라온 것은 아니라서 돈을 잘 벌고 싶었거든요. 공학에서 규모가 큰 분야가 전자, 기계, 화학 아니겠어요? 그중에서 저한테는 기계가 잘 맞더라고요. 기계 분야 중에서도 좀 멋있어 보이는 게 항공공학이라서 선택을 하게 된 거예요. 아마 다들 비슷할 겁니다. (웃음)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학창시절 본인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큰일을 이룬 것도 아니고 공부를 특출하게 잘 하지도 않았어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죠. 중학생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어서 대학에 와서 기독학생회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좀 열심히 나갔어요. 선배들한테 신앙 이야기도 듣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회장까지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지극히 평범했어요. 제가 공부를 잘 했으면 유학을 갔겠죠? 졸업한 동기 10명 중에 교수가 된 친구들이 절반 정도 돼요. 저는 제대하고 바로 취직했고.

학부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으시는 일이 있다면?

기독학생회를 하면서 신앙심이 깊으신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배우고 느끼는 것들도 많았고. 제가 재학할 당시에는 모든 단과대학이 지금처럼 하나의 캠퍼스에 있지 않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공과대학은 공릉동에 있었어요. 지금은 다른 대학으로 바뀌었습니다만. 그때는 공릉동이 서울에서도 굉장히 외진 곳이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의 신앙 활동 공간으로 캠퍼스 내부에 교회를 지었어요. 참 신기한 게, 아무리 학생들이 다니는 교회라고 해도 국립대학 안에 어떻게 기독교 교회가 들어올 수 있었는지 지금도 놀라워. 공과대학이 옮기고 학교가 확장하면서 교회도 철거되었지만, 교회를 지을 때 도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과 생활과 관련해서는, ‘불암제’라고 해서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불암산까지 왕복하는 경보대회가 기억에 남네. 항공과가 거기서 항상 1등을 했습니다. 10명, 많아야 20명이니까 사람이 많지도 않은 과인데. 기계과는 40명이 넘어가고 그랬거든요.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 같은 것을 하면 항상 이겼어요. 항공과가 특수한 분야라 그런지 단합도 잘 되고 다들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졸업 후 몇 년간 기업체에 계셨습니다. 변리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기업체에 입사하기 전에 2년 동안 행정고시를 공부했어요. 그 당시에 고시 열풍이 불어서 흐름 따라 공부했었죠. 졸업 후에는 삼성항공, 그때는 삼성정밀이었는데, 거기서 4~5년 정도 근무했어요. 지금은 다른 기업과 합병한 것으로 압니다. 입사해서 R&D 같은 기술 개발 쪽으로 안 가고 기획 근무를 했어요. 그래서 외부 기술을 도입하고, 사업 계획도 세워봤어요. 그때 사업 계획이 항공기 제트엔진을 개발하자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우리한테 항공기 엔진 기술이 없잖아요? ‘GE(General Electric)’에서 기술을 전수했다고. 당시 공군이 사용했던 전투기가 F-4 팬텀, F-5인데 전부 GE의 제트엔진을 장착하고 있었어요. GE 엔진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특허를 알게 됐지. 기술 도입료를 지급하고 협상도 했는데, 특허 등록을 위해서 특허료도 같이 납부해야 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특허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에도 특허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특허의 전문가가 변리사잖아요? 변리사가 되려면 기술도 알아야 하고 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허가 국제성이 강해서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에 능통해야 해요. 이 세 가지를 잘 해야 하는데 이게 제가 잘 하고 싶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하는 겁니다. 내게 부족한 것은 채워가면서 변리사가 되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군대도 다녀오고 고시도 준비하다 보니 회사에서 출발이 늦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군 생활도 안 하고 바로 취직을 했는데. 그래서 회사 생활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았어요. 변리사를 알게 된 이후에는 변리사의 길로 나가보자고 생각한 거죠.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반, 제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공부를 많이 했어요. 대학에 갈 때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는데. 가정도 꾸린 상태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준비하는 거니까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한 번 떨어졌어. 다시 도전해서 합격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변리사에 합격하셨네요. 현재는 특허법인의 규모가 굉장합니다.

제가 시험을 82년도에 합격했는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삼성전자를 필두로 83년도에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87년도에 삼성이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러먼트’에 1억 달러의 로열티를 주게 되었어요. D램 메모리의 원천 특허를 텍사스 인스트러먼트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난리가 났지. 지금으로 치면 10억 달러보다 큰돈이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전자 계열 회사들이 경각심을 느끼고, 개발이 늦어서 원천 특허는 취득하는 게 어려우니 제조 과정에서 개선점을 발견해서 개량 특허라도 가지고 있자는 생각이 확산됐죠. 상대방이 대포로 싸울 때 우리는 소총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싸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때부터 외국 특허 붐이 일어났어요. 제가 85년도에 개업을 했는데, 처음에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입장에서 87년도에 로열티 문제가 생긴 후에 88년부터 해외 출원 문의가 급격하게 늘어났죠. 외국 특허는 명세서를 각국 형식에 맞춰 작성해야 하고 영어권이면 영어를, 일본이면 일본어를 써야 합니다. 제가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에 83년부터 개업하기 전까지 ‘목특허법률사무소’에 근무했어요. 목특허사무소는 국내 특허 출원은 안 하고, 해외에서 오는 것만 받아서 외국 특허를 국내에 출원하는 곳이었어요. 저도 2년 동안 영어, 일본어로 된 특허들을 번역해서 특허청에 출원하고, 의견서 제출하고, 결과를 외국에 보고하면서 외국인을 상대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88년도에 외국인을 상대로 특허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많이 없는 겁니다. 나는 경험이 있으니까 한발 앞서있는 것 아니에요? 삼성전자의 여러 사업부 중에 삼성기술원 쪽 업무만 맡아서 하다가 입소문이 퍼지면서 삼성전자 사업부 전체의 특허 업무를 맡게 됐어요. 일이 막 몰려오는데 사람은 없고, 제가 영어를 했다고 해서 얼마나 잘 했겠습니까? 안 되겠다 싶어 전자공학을 전공한 외국인을 채용했어요. 국내 특허 작성하는 사람, 번역하는 사람, 해외 출원하는 사람 이렇게 업무를 나눴고요. 특허를 영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단어 하나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자공학을 잘 아는 원어민이 출원서를 쓰니까 경쟁력이 있지 않겠어요? 미국에 특허를 출원하면, 그쪽 변리사들이 검토해서 현지에 출원하고 삼성이나 특허사무소에 방문합니다. 그때 이 특허사무소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얘기를 해요. ‘이영필특허사무소’가 괜찮게 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제삼자가 평가를 해주니까 의뢰인들이 더 신뢰가 가겠죠.
85년도에 개업할 당시에는 인원이 8명이었어요. 91년도에 60명에 되었고 계속 확장하다가 2003년에 목특허사무소랑 합병할 때는 200명이 넘었어요. 제가 목특허사무소에서 수습을 했으니까 소장님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소장님이 이제는 은퇴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이런저런 절차를 처리하고 합병 형식으로 회사를 합쳤어요. 덕분에 해외 고객도 많이 유치하게 되고. 그분이 서울공대 12년 선배이십니다. 그런데 시험은 저랑 같이 붙었어요. 그분은 아버지가 개업하신 사무소에서 일하시다가 시험 합격이 늦어졌는데, 저도 꽤 늦은 편이었으니까 공부할 때 의지가 됐죠. 지금은 작고하셨어요. 그렇게 성장하는 중에 2008년에 세계 금융 위기가 찾아오면서 회사들이 R&D도 줄이고 특허 활동도 잘 안 했어요. 그때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2012년에 회사를 이사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규모가 큰 만큼 회사가 하는 일도 다양할 것 같습니다.

물건을 판매하는 곳에 비유하자면 백화점과 같아요. 기술적으로 기계, 전자, 화학은 기본이고 생명공학 등의 거의 모든 전공을 다루고 있어요. 해외 출원도 하고, 변리사를 하면서 로스쿨을 졸업하여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소송을 대리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던 지식재산권의 획득, 활용, 분쟁, 자문 등 모든 영역을 다 커버하죠. 주 고객은 국내 업체들이에요. 국내 업체가 80퍼센트, 외국 업체가 20퍼센트. 외국 기업이 한국에 출원할 때 자신들이 손 많이 안 대고 바로 출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특허법인을 좋아합니다. 우리 법인이 업계에서 평판이 괜찮아서 외국 고객들이 찾아와요. 국내 기업들보다 외국 기업의 수익성이 좋습니다. 회사 수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또, 우리 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50명 정도 돼요. 회사 수익에서 납부할 것들을 제하고 남는 것을 배당하는데 외국 고객이 없으면 배당하기 어렵습니다. 외국 고객만 상대하면 일에 비해 수익성이 좋아요. 국내에도 그런 특허사무소들이 많고. 그런데 저희는 국내 고객을 위주로 일을 하고 있죠. 거기에 외국 고객을 유치하니까 고객 구조가 상당히 좋아요. 앞으로도 저희 법인은 바람직한 고객 구조로 회사를 지속해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법인 소유주들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파트너들이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50명이 전부 회사의 주인이에요. 배당의 크기는 차이가 있겠지만, 회사 월급과 함께 배당금을 지급받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웬만한 사람들이 법인을 그만두고 개업을 할 거예요. 파트너십은 회사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유능한 사람들이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거죠.

변리사로 재직하시던 중에 회사를 설립하신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걸 다들 궁금해합니다. ‘잘만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게 99년도예요. 그때도 사무소 인원이 200명 가까이 됐어요. 변리사 업무에 부족함을 느낀 것은 아니었고, IMF가 끝난 후에 인터넷 비즈니스가 대유행했습니다. 그것과는 관계없이 사무소 직원 중에 컴퓨터를 다루는 데 능숙한 직원이 있었어요. 어느 날은 이분이 밤에 작업하는데, 컴퓨터의 냉각팬(fan) 소음이 너무 큰 겁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온도는 낮춰주면서 소음은 덜 발생하는 무소음 냉각팬을 개발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해결 방안은 있었어요. 냉각팬은 CPU나 GPU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방출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팬의 핀(fin), 그러니까 날개의 표면적을 최대화하면 됩니다. 핀의 모양을 꽃잎처럼 만들어서 방열이 잘 되면 팬을 돌리는 모터의 회전수를 줄일 수 있잖아요. 이걸 특허로 냈죠. 회사를 설립해 제작하면 좋겠더라고요. 회사를 세우기까지는 3년 정도 걸렸어요. 그 직원은 기술은 있는데 자본이 부족하고, 저는 돈도 좀 있고 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도 있으니 힘을 합쳐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회사를 세운 다음에 R&D를 더 발전시켜서 2년 뒤인 2001년에는 30개국에 수출을 했어요. 인터넷이 막 발달할 시기인데, 어떤 사람이 그걸 사용하고 영어로 사용 후기를 올린 거예요. 우리는 홍보를 딱히 한 적이 없는데 컴퓨터 부품 회사들로부터 주문이 엄청 들어와. 점점 회사가 커져서 각종 히트 싱크(heat sink), 케이스 등 컴퓨터 액세서리를 만드는 곳이 됐어요. 2007년에는 코스닥(KOSDAQ)에 상장도 했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 것은 없고 직원의 기술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렇게 승승장구하면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음) 시가 총액이 1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설립하신 회사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셨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2011년에 경영권을 넘겼어요. 그동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해보면, 첫째로 앞서 2008년에 세계 금융 위기가 있었다고 했죠? 환율이 폭등하고 경제가 안 좋았어요. 그때 환율 변동에 대비해 자산을 지키려고 파생상품에 가입했는데, 사기였어요. 거기에 잘못 휘말려서 250억의 손해를 봤습니다. 회사 자산이 450억인데 순수 손해가 250억이 되니 회사가 엄청 어려워졌지. 재무 상태가 나빠졌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요.
제조업은 끊임없이 신성장 동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품이 지금은 잘 팔릴지 몰라도 1년만 지나면 수명이 다해요. 대기업들도 계속 신제품들을 만들어내잖아요? 중소기업도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들을 계속 만들어야 해요. 냉각팬에서 출발해서 컴퓨터 액세서리까지 확장했는데, 그걸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상장을 했으니까 주주들에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도하고. 그래서 3D 모니터 관련 기술을 외부에서 도입해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전 세계에서 3D 모니터를 상용화한 것은 저희 회사가 최초입니다. 기존 잘만테크 판매 네트워크를 통해서 제품을 전파했어요. 그것도 이름을 좀 날렸지. 그런데 모니터가 장치 산업이에요. 시설을 마련해서 제조해야 하는데, 원가가 굉장히 높았어요. LG 화학에서 3D 필름을 대량생산할 때 저희는 조그만 실험실에서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이었습니다. 게임이 안 되잖아요. 생산을 못 하니까 그 프로젝트도 실패로 돌아갔어요. 다음 사업으로 와이파이 안테나 개발을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되면서 손실이 컸습니다. 이게 두 번째 이유에요.
이제 회사 운영이 감당이 안 되니까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요. 그때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회사를 넘기는 과정에서 주식 등의 자산을 많이 잃어버렸어요.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넘기고 2011년부터 변리사 업계에 집중하게 된 거예요. 96년부터 11년까지 어언 15년 동안 제조업의 전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준비, 회사 설립, 성장, 전성기, 내리막, 망하기 직전까지. (웃음)

요즘 플랫폼이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소프트웨어 분야의 창업과 비교하여 제조 관련 창업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제조 관련 창업은 쉽고도 어렵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엄청 어려워요. 저도 두 번 시도했는데 전부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소프트웨어는 창의력만 있으면 파급력이 강해서 어느 정도 괜찮은데, 제조업은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제조업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회사를 유지하고 있는지 신기해요. 뭐 소프트웨어도 그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제조업에서는 대기업과 경쟁을 하면 굉장히 어려워요. 하지만 대기업이 모든 사업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대기업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면 중소기업은 그 안의 부품을 만드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대기업도 수월하고 중소기업도 활로가 마련됩니다. 잘만테크에서 3D 모니터를 만들 때 삼성도 그걸 개발했어요. 삼성의 특허를 대리해주던 변리사가 창업을 해서 삼성과 모니터로 대결을 한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죠.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수요가 있는 사업을 하든지 대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해요. 경쟁하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냉각팬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히트 싱크가 대기업의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아직도 쿨러는 중소기업이 경쟁하는 시장이에요. 규모의 경제로 대기업과 협력해야 할 것은 협력하고, 대기업이 못 해서 진입하지 않는 시장에서는 중소기업끼리 경쟁을 하면서 경쟁력을 키워나가야죠.

두 가지 역할을 모두 경험하셨던 입장에서, 기업가와 변리사가 각각 요구하는 역량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주 다릅니다. 변리사는 주어진 일만 잘 하고, 실수하지 않으면 돼요. 실수로 날짜를 못 맞추면 큰 권리를 놓칠 수도 있거든요. 반면에 기업가는 신제품 개발을 해야 하고, 재무 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외환 변동에 잘못 대처했다가 회사가 어려워졌잖아요. 변리사는 거대한 자본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재무 관리에 들이는 노력이 덜 합니다.
그래서 제조업을 하려면 개발능력, 영업능력, 재무 관리능력이 만족이 되어야 합니다. 중소기업 CEO는 이 세 가지를 잘 해야 해요. 자기가 직접 하지 않더라도 제품 아이디어를 내고 적절한 사람들을 구해 지휘해야 하고, 효과적인 전략으로 영업을 해서 제품을 판매해야 하고, 재무 관리도 굉장히 잘해야 합니다. 저는 세 가지 다 못했어요. (웃음) 그중에 재무 관리가 가장 치명적이었지. 변리사는 전문직이다 보니 고객의 어려움을 잘 해결해주고 수수료 받아서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으면 돼요. 전문직의 본질은 같습니다. 제품 개발, 재무 관리 크게 필요 없어요. 영업도 제조업만큼 하지 않아요. 그저 일을 잘 하면 기존 고객을 유지함과 동시에 업계에 좋은 평판이 퍼져서 신규 고객이 찾아옵니다.

기업체 근무에 그치지 않고 변리사시험, 창업까지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셨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편하게 사는 것보다 도전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모험심과 승부욕이 강하다고 할까요? 그런 성향이 없으면 에너지가 안 나옵니다. 추진 동력도 안 나오고. 그래서인지 고생도 많이 하고. (웃음) 변리사 하면서 고객들이 어려운 요구를 할 때도 있어요. ‘고객에게 사정이 있어 필요한 일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비용과 노력을 감수하고 해결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면 고객이 신뢰하지. 고객 자신도 무리한 주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안 하려고 하면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겠어요?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기술의 흐름을 읽어내기 위한 대표님의 개인적인 노력이 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듣고 될 것 같은 사업을 선정해보는 거예요. 이걸 만들면 수요가 있겠다고 제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없었고, 그냥 판단하는 거죠. 직관이라기보다는 판단력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 빨리 판단을 내리고 바로 실천에 옮겨요. 변리사 일을 할 때도 고객의 요구를 듣고 그 자리에서 할지 말지를 결정짓습니다. 하겠다고 결심하면 곧바로 집행하고. 그래야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집을 계약할 때도 괜찮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계약하거나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2시간 이내에 결론을 내려요. 좌고우면할 것 없이, 나에게 필요하고 조건이 그리 나쁘지 않다면 계약하는 거지. 나한테 나쁜 조건은 그 사람에게는 좋은 조건이잖아요? 나에게만 이득이 될 수는 없는 거죠. 지금 사는 집을 계약할 때도, 둘러보고 오전에 계약했는데 그날 오후에 이틀 전에 보고 간 사람이 계약하려고 왔대요. 회사를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는 교대역 근처에 있었는데, 그 장소를 계약할 때 11시에 그곳을 둘러봤어요. 둘러보고 나서 점심 먹고 계약하겠다고 말하고 2시에 계약을 했거든요? 4시에 다른 사람이 계약하겠다고 왔다고 합니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실천하고. 잘 되면 계속해나가면 되고, 실패하면 정리하고 다른 걸 하면 돼요.

자랑스러운 공대동문상을 수상하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2018년도에 받았는데, 상패에 제 인생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있어요. 전자 기술에 대한 특허권, 무소음 컴퓨터와 3D 모니터의 상용화. 이것들이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을 내 모교에서 인정해준 것 아닙니까? 제가 졸업할 당시에 동기가 460명, 지금은 그것보다 많겠죠? 그 많은 사람 중에서 3명만 받는 상이에요. 같은 내용으로 2017년에 대통령 훈장도 받았지만, 훈장보다 공대동문상이 훨씬 더 값지고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운 공대동문상

현재와 같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변리사의 역할과 중요성이 궁금합니다.

신기술이 계속 나오면 권리 보호를 차질 없이 해야 할 필요성이 커집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해야죠. 변리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특허는 먼저 출원하는 사람이 권리를 가져가거든요. 그리고 청구 범위를 잘 써서 특허 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강한 특허를 써야 하고요. 지식재산이 많아지고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지식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많아질 거예요. 현재도 특허 소송이 굉장히 많이 진행되고 있고. 변리사가 참여해야 하는 영역이 넓어질 겁니다.

공학을 전공하면 변리사로 일하는 데 유리할까요?

유리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적이에요. 공학과 자연과학, 이거 못하면 변리사 못해요. 왜냐하면, 변리사는 fact finding, 즉 신기술이 무엇인지를 알고 법으로 보호를 해줘야 하거든요? 이공계 배경지식이 없으면 fact finding을 할 수가 없어요. 상표나 디자인은 깊이 있는 이공계 지식이 없어도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특허권, 실용신안권을 다루려면 이공계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신기술의 개량점이 무엇인지, 선행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이미 있는 특허들을 피해서 권리 범위를 작성할 수 있어요. 이거 못하면 변리사로서 역할을 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변리사에 온갖 전공자들이 모이는 거예요. 저는 기계 쪽 전공이잖아요. 전자 못 합니다. 화학? 벤젠 구조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요.
그리고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복수전공을 하면 좋은지.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전자공학도 같이 전공하겠다는 사람을 말렸어요. 기계, 전자 각각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어떻게 두 개를 동시에 할 수 있겠어요. 기계면 기계, 전자면 전자 쪽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할 텐데 사람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고, 나중에 가면 어느 한쪽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와요. 우선 자신의 분야를 잘 해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변리사시험 합격했어도 학점 낮은 사람은 안 뽑아요. 시험 합격은 기본이고 변리사가 되어서 뻗어 나가려면 전공 공부가 잘 되어 있어야 해요. 공부가 탄탄히 되어 있어야 fact finding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서 특허도 먼저 낼 수 있는 겁니다. 응용 기술을 이해하려면 기초 지식을 쌓는 게 선행이 되어야 하는 거죠.

공학이나 변리사 업계 등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이 지금 어떤 것들을 가꿔나가면 좋을까요?

인터뷰 사진

이공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변리사가 꿈이라고 한다면 물리, 화학, 수학을 특히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도 잘 해야 해요. 특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출원해야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국의 선행기술들을 파악해야 해요. 그리고 국제적으로 출원을 받으려면 명세서도 영어로 써야 하고. 국제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과학, 수학, 어학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또, 사회를 모르면 고객을 상대하거나 사건을 대리할 때 어려운 면들이 있겠죠. 결국에는 전 과목을 다 잘 해야 해. (웃음) 국가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인데 당연히 취득하기도 어렵고, 좋은 변리사가 되고자 하면 더 노력해야죠. 싫어한다거나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게 좋습니다. 이런 점은 공학이나 변리사 업계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중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네요.

글·사진전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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