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
기자는 어렸을 때 인권 변호사의 삶을 동경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었던 사람들이 참 멋있었다.
중학생 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공감에서 공익 변호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해 개최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로펌에서 3년 간 근무했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어서 공익 변호사가 되었다는 윤지영 변호사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작은 체구이지만 눈빛과 목소리에서 강인함이 느껴지는 윤지영 변호사님의 모습과 공익 변호사로서의 활동 이야기는 어렸던 기자의 가슴을 뛰게 했다.
졸업생을 인터뷰할 수 있는 아로리 학생 기자가 되었을 때, 윤지영 변호사님을 다시 한 번 뵙고 싶었다.
당시 공감에서 막 활동을 시작했던 윤지영 변호사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계셨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찾아가 윤지영 선배님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법과대학 법학과 96학번 윤지영입니다. 사법 시험에 합격한 후 로펌에서 변호사로 3년간 근무했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한지는 벌써 10년이 됐네요.
요즘 가장 힘쓰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주로 노동과 관련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여성 노동, 중‧고령 노동, 이주 노동, 그리고 비정규직이라고 통칭하는 취약 계층 노동과 관련해서 일해요. 또한 ‘직장갑질119’라는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119는 무엇을 하는 단체인가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서 민주주의를 실현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결국은 자기 직장으로 돌아가면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안에서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인간답게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사실 직장갑질119는 처음에 단체라기보다는, 변호사, 노무사, 노동 관련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든 모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서, 지금은 단체를 꾸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일반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과외로 직장갑질119 활동을 하고, 다행히 저와 같은 전업 공익 변호사는 직장갑질119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습니다.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 전자마트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사례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전자마트에 남성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이 여성 노동자에게 온갖 쌍욕을 하는 등 괴롭힘을 일삼았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성 노동자가 직장갑질119에 제보해서, 함께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법적 대응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직장갑질119에서는 피해자의 구체적인 진술을 바탕으로 직접 회사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고, 어디 회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언론을 통해 이를 알렸습니다. 이렇게 해도 잘 안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사례의 경우는 굉장히 잘 풀렸어요. 괴롭힘을 일삼던 직원들은 징계를 받았고, 여성 노동자는 본인이 원하는 지역 그리고 부서로 승진하면서 배치되었어요. 일을 굉장히 잘 하는 분이셨던 것 같아요.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다보면 이러한 폭언, 폭행, 온갖 성희롱뿐만 아니라 별의별 희한한 일이 다 있어요. 또 한 가지 대표적 사례가 저도 초반부터 함께 관여했던 한림 성심병원의 사례에요. 카카오톡에 직장갑질119를 검색하면, 누구나 그 방에 들어와서 익명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림 성심병원의 간호사 한 분이 그 방에 들어와서 자신이 직장에서 겪었던 고충을 이야기했고, 그 분의 동료들이 대거 카톡방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분들을 위한 별도의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고, 그 네이버 밴드를 통해 결국 그 분들이 노동조합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노동조합을 통해 그분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괴롭힘, 장시간 노동, 수당 미지급 등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변호사님께서 법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러한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계신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변호사이긴 하지만, 사실 법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요. 직장갑질119에서 처음 활동할 때는 직장갑질과 관련된 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직장갑질119에서 직장갑질을 계속 공론화하기도 했고, 전 세계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이슈가 되어서, 우리나라에도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만들어졌어요. 근로기준법이 웬만하면 잘 안 바뀌는데, 직장 내 괴롭힘이 있을 때 회사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하는지 근로기준법에 새롭게 명시가 된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한계가 있어요. 방금 말씀드린 조문은 회사가 스스로 지켜야하는 것이고,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고 하거나, 괴롭힘은 있지만 그냥 넘어가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면 딱히 조문을 강제할 방법이 없어요. 직장 상사나 사장이 직장 내 괴롭힘을 했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혼자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에요. 변호사를 선임해서 법적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너무 큰 비용이 들고,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죠. 이렇듯 법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해결책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직장갑질119에서도 직접 회사를 상대하거나, 노동부를 압박해서 근로감독이 나오게 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119외에도 여성 노동, 이주 노동, 청소년 노동 등과 관련한 일을 하시고 계신데, 이런 일들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는 기본적인 법률 상담도 하고, 국가 기관에 제출할 의견서를 써드리기도 해요. 또한 공감 사무실에는 소송 신청하는 곳이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공감에 소송을 신청하는데, 공감은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거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수임료를 받지 않고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안이 소송으로 갔는데 승소를 하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분들한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 노동과 관련해서는 국가정보원 출판팀의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한 정년 차별과 관련해서 공감에 사건 수임을 요청하셨어요. 출판팀에서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가 같은 업무를 하는데, 남성은 정년이 57살이고 여성은 정년이 43살이라서, 여성 노동자가 일찍 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공감에서 이 사안에 대해 소송을 진행했는데, 이 사안이 여성 차별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했어요. 왜냐하면 출판팀에서 남성은 인쇄, 여성은 편집으로 부서를 나누고, 인쇄 업무의 정년은 57살, 편집 업무의 정년은 43살이라고 규정하면서 차별이 간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에요. 이런 경우는 차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서 1심과 2심은 패소했는데, 최근에 거의 6년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했어요. 사실 이 사안이 국가 기관에서 비정규직 공무원의 정년 차별이 인정된 첫 사례였어요.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 다른 노동자들한테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거죠.
또한 이주 노동에 관련해서는 상담이나 소송을 많이 하는데, 그중에서도 헌법 소송을 많이 해요, 법 자체가 이주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규정돼있을 경우에는, 이주 노동자가 차별받은 사안에 대해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법원은 이미 규정된 법을 집행하는 기구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법 자체가 차별적이거나 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게 되면, 헌법 소원을 진행해요. 헌법 소원은 헌법 재판소에 이 법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 자체가 위헌적이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주 노동자들은 회사를 바꿀 때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를 바꿀 수 있는 횟수도 3번으로 제한되어 있어요. 회사를 바꿀 때 국가의 허락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당장 문제를 제기하기가 힘들어서, 이주 노동자의 이직 횟수 제한에 대해 헌법 소원을 했어요. 그런데 그 소송에서는 공감이 패소했습니다.
또한 공감에서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사안에 대해서도 헌법 소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일용직처럼 일을 해요. 퇴직금은 1년 넘게 근무하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분들은 퇴직금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퇴직금이라는 것 자체가 일자리가 없어서 당장의 수익이 없는 사람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야말로 퇴직금이 필요하죠. 국가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퇴직 공제금을 법에 명시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퇴직 공제금이 이주 노동자들한테는 적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주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분의 유가족이 퇴직 공제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받지 못하게 법이 아예 막아 놓았어요. 외국인은 안 된다는 것이죠. 공감에서는 이러한 법이 차별적이라고 판단해서, 헌법 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노동의 경우에는 공감이 직접 청소년 노동자들을 만나서 실태 조사도 하고,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교육도 진행합니다. 이러한 식으로 저는 변호사이면서 활동가로서 제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하고 있어요.
공익 변호 활동을 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공익 변호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공익 변호는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 또는 사회라는 시스템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되고 받아들여져야 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결론은 공익 변호 활동을 하면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보다 안 풀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국가정보원에 관련된 소송도 결국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1심과 2심에서는 패소했습니다. 사실 그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년 차별을 받고 있다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해당 조직이 국가정보원이었고, 판결이 미칠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법원에서 더 몸을 사리기도 했죠. 결국에는 대법원까지 6년을 기다려야 했고, 승소할 때까지는 총 9년이 걸렸어요. 정년 차별을 당한 여성 노동자들은 그 기간에 일을 못한 것이고, 퇴직하고 다시 복직할 때까지 거의 10년의 시간이 걸린 거잖아요. 이 소송이 아직 파기 환송된 상태기 때문에 다시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보다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좌절감을 많이 느껴요. 변화가 잘 안 보이면 개인적으로는 “아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라는 자책을 하게 됩니다. 공익 변호 활동을 하면서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국가 기관에 대한 기대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제 마음도 착잡해집니다. 그렇다면 공익 변호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보람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는 거죠. 아까 말씀 드렸듯이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이라는 법을 바꿨거든요. 인권이나 권리가 원래 법에 있었던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것이잖아요.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면 안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이지만, 법에는 어디에도 그러한 권리가 명시돼 있지 않았죠. 그러다보니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주었고, 직장갑질119와 함께 직장 내 괴롭힘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법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까 굉장히 보람된 것 같아요.
선배님께서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후배로서 뿌듯합니다. 대학 때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지금은 사라진 서울대 법학과는 어떤 곳이었고, 그곳에서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지금은 사라진 법학과는 법학을 공부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법학도 범위가 정말 넓어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법학과에서는 민법, 형법, 노동법, 사회복지학법 등의 법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법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할 수 있는 법철학이나 법사상사도 공부할 수 있었죠. 또한 법은 결국 정책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형사정책이나 법과 정치 등의 수업도 있었습니다.
사실 법학과 학생의 대부분은 사법고시를 준비했어요. 그때는 법학전문대학원이 없었기 때문에 법학과 학생이 사법 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죠. 법학과 2학년부터는 사법 시험을 준비했는데 빨리 합격하면 4학년 때 합격하고, 그게 안 되면 계속 해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법학과의 정원이 270명이었는데, A, B, C, D반으로 나뉘어있었어요. 저는 C반의 4조였는데, 조별 활동도 있고 반 동아리도 있었어요. 저는 C반이 만든 동아리 중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했었고, 또 A반과 C반의 연합동아리인 들꽃공부방에서도 활동했어요. 들꽃공부방은 서초구 꽃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활동을 했어요. 그때는 동아리 활동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어서, 대부분 반 동아리나 과 동아리를 적어도 하나씩은 했죠.
대학 생활이 지금의 변호사님께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들꽃공부방에서의 활동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법학과 A반이랑 C반이 연합해서 소위 철거촌 또는 비닐하우스촌이라고 불렸던 서초동 꽃마을에 가서 아이들 가르치는 활동을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동정심을 가지고 꽃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마음가짐만으로는 이런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말을 전혀 안 듣기 때문이에요.(웃음) 저는 처음에 들꽃공부방에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서로 사이가 좋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아이들이 수업도 잘 안 와서, 수업에 나오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녔고, 결국에는 그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게 일이었죠.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들은 약았고, 모났고, 말도 안 들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가까워지면 진짜 인간적인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 편견이 많이 깨졌어요. 사회 문제에 대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다는 선한 마음으로만 접근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좋은 마음이지만 한 편으로는 되게 위험할 수 있어요. 나는 위에 있고, 나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내가 돕는다는 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결국은 다 똑같은 인간이고,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죠.
또한 이분들이 힘든 것은 본인들의 잘잘못이라든가 본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아이들 역시 안정적이지 않은 주거환경인 비닐하우스에서 살면서, 부모님께 제대로 교육을 받기도 어렵고,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어려웠던 거죠. 들꽃공부방에서의 활동과 그때 깨달은 것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의 씨앗이 된 것 같아요.
변호사님도 2학년 때 사법 시험 준비를 하셨나요? 어떻게 변호사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2학년 때 다들 사법 시험 준비하니까 저도 휩쓸려서 한 번 시험을 봤었어요. 그런데 법이라는 것 자체가 보수적인 성질이 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법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사법 시험을 준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저는 사회학과로 전과를 해야겠다고 결심해서, 사회학과 전공 수업을 많이 찾아서 들었어요.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 있어서 사회학과 교수님께 이런저런 고민을 담은 메일도 보냈어요. 그런데 사회학과 교수님께서 오히려 본인은 말로만, 학문으로만 떠들고, 그 말이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데, 그래도 법학을 전공해서 법조인이 되면 어쨌든 현장에 뛰어들어서 사회를 바꾸는 게 아니냐는 답변을 해주셨어요. 그 이후에 일반 회사를 잠깐 다녔는데, 자격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법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사법 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보통 변호사들은 로펌에서 근무합니다. 그런데 변호사님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공익 변호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왜 공익 변호 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셨나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돈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으면 변호사가 괜찮다는 조언을 해주셔서 변호사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 변호사가 되었을 때는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아서, 로펌에서 근무했었어요. 왜냐하면 전업으로 공익 변호 활동을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수임이 줄어드는 것을 각오하고 해야 하거든요. 공감 역시 기부로 운영되는 단체이고, 공감에 소속된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받지 않고 일하고 있어요. 처음에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로펌에 가서 일했는데, 막상 돈을 벌려니까 저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사가 된 것이었는데, 이렇게 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로펌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어느 정도 빚을 갚았고, 그 이후에는 전업으로 공익 변호 활동에 뛰어 들었어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일이 그냥 좋아서, 저의 취향이나 지향과 잘 맞는 일이어서 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 변호사와 공감에 소속된 공익 변호사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감에 소속된 변호사들은 변호사로서의 정체성도 있지만, 사실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커요. 한마디로 법률 전문가인 활동가죠. 또한 공감의 사건 수임의 원칙은 수임료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철폐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반 변호사와 공익 변호사의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복장의 차이가 있어요. 제가 로펌에서 일할 때는 좀 더 전문적이고 세련되어 보이게 복장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공감에서 일할 때는 오히려 그런 복장이 제가 만나는 분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점점 편안한 복장을 입게 되었습니다.(웃음)
공익 변호사가 되는 것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익 변호 활동은 정말 재밌어요. 정말 재미있는데, 공익 변호 활동을 하는 것에 만족을 해서는 절대 안 돼요. 저는 일반 변호사보다 공익 변호사에게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로펌에 있을 때는 열심히 판례를 찾아보고, 이미 있는 판례를 잘 적용하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반면에 공익 변호사는 이미 있는 판례를 바꾸는 일을 해야 해요. 그러려면 공익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하고, 외국 법제도 찾아봐야 되고, 이 법이 어떤 경위로 이렇게 만들어져야 했는지 등 법에 대한 본질적인 공부를 해야 하죠.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내가 여기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주하게 될 수 있어요. 따라서 공익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보다 일에 더 많은 공을 기울여야 성과가 나올 듯 말 듯 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또한 공익 변호 활동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은 운 좋게 전업으로 공익 변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개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공익 변호 활동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게 공익 변호 활동의 원조이기도 해요. 이처럼 과외로 시간을 할애해서 공익 변호 활동을 하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관심 가는 분야가 있으면 도전해보세요.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전업으로 공익 변호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공감도 올해는 신입 변호사들을 많이 채용했지만, 전업 공익 변호사의 시장이 좁기 때문에 경쟁이 굉장히 치열합니다. 그래서 선배로서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고, 반성도 많이 됩니다.
변호사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 아무래도 몸이 늘어지고 저도 모르게 꼰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공감에 처음 왔을 때, 저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간다는 생각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노동뿐만 아니라 장애, 여성, 성소수자, 난민 그리고 빈곤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감에서는 변호사 열두 명과 실장님 세 분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 특히 변호사로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지영 변호사님을 인터뷰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편에 서는 것은 전업 공익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시간을 내어 공익 변호 활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걱정하기에도 바쁜 시대이지만,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면서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