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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 나의 진로

우리 무예에 담긴 우리의 정신

공과대학 전기전자제어공학부 박금수

나라의 존망을 걸고 펼치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과연 어떻게 싸웠을까?
사극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은 사실일까?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상들이 어떻게 한반도를 지키고 이겨낼 수 있었는지
우리는 정작 아는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동문 중에는
우리의 무예를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문(文)과 선비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조선의 다른 면모를 널리 알리고 있는
박금수 박사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통무예를 연구하고 다양한 무예 사업을 하고 있는 박금수입니다. 현재 사단법인 ‘십팔기 보존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십팔기 보존회’는 조선의 군사 병영 무예인 ‘십팔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문화유산으로서 발전시키고 보급하는 무예 관련 문화 사업을 하는 곳입니다. 경복궁과 남한산성 등에서 무예 시범을 보이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청소년과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에도 ‘무(武)’와 관련된 문화와 역사가 있었음을 문화상품으로서 제공하여 그 문화의 실체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전공은 전기전자제어공학부였습니다. 지금은 전기정보공학부로 이름이 바뀌었죠?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시 로보캅이란 영화가 꽤나 인기였는데 저도 그 로보캅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공을 선택했습니다.(웃음) 사실 그 시절에는 제대로 된 진로나 진학 지도를 받은 적이 없으니 막연히 선택한 것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들어간 동아리였습니다. 원래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무술에 관심이 많았고 태권도도 곧잘 했어요. 어렸을 때는 목검을 들고 칼싸움도 했죠. 그래서 택견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학생회관에 갔는데 당시 건물의 작은 뒷문으로 올라가다가 ‘전통무예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발견하고 ‘아, 여기에서는 이것저것 다 가르쳐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죠. 선배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회식 자리로 저를 데려가더니 어느새 동아리의 일원이 되어 있었고 …. 그날 큰 문으로 들어갔으면 택견 동아리에 들어갔을 텐데 작은 뒷문으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웃음)

동아리에서 십팔기라는 무예를 접했는데 택견과는 다른 강력한 매력이 있습니다. 손발과 무기를 같이 쓰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매일 동아리 방에서 살다시피 했고 노천강당과 버들골(서울대학교 기숙사 근처에 있는 잔디 공터)을 배회하면서 봉을 돌리고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죠. 공대 근처에 댐 비슷한 거 본적 있나요? 거기서 수영도 하고 권법 연습도 하면서 관악산에 오르락내리락하고 … 그 생활에 빠져들었어요. 군대를 다녀온 후 졸업을 앞두었을 때 진로 고민을 하다가 체육교육으로 전공을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회로를 만지고 설계하면서 마감에 허덕이는 삶보다는 몸을 움직이고 무예를 할 때가 행복하다고 느꼈거든요. 기성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고 동작을 연구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습니다. 또한 그동안 우리의 무예가 너무 잊혀있었으니 이를 재현하고 보존하는 일이 참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분야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전공을 바꾸는 일이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을 텐데요. 전통무예의 어떤 매력이 선배님의 결단을 이끌어내었나요?

제 성격이 워낙 낙천적인 편이라 부담은 없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이 지루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전통무예 십팔기가 참 좋았습니다. 무기 종류가 워낙 다양하니 계속 새롭게 익혀야 할 것이 생기고 할 것이 많거든요! 가족들도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가 제가 체육교육과로 옮긴다고 말했더니 헤어지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지금은 제 동반자입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진로와 생계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달려 들었죠. 그렇지만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 과연 그 분야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블루오션에는 블루인 이유가 있어야지, 사람이 없다고 블루오션이 아닙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일 수도 있죠. 자신만 좋아하고 사회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야하고 업으로써 삼고자한다면 그 분야가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그 기준을 다른 사회나 국가에는 존재하는데 우리 사회에만 없는 분야가 진정으로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십팔기를 기록한 ‘무예도보통지’는 그 근거가 확실하고 우리의 역사가 담긴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무예 무술 문화에 비해 그동안 우리나라의 무예 문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특히 일본의 식민 무도에 파묻힌 까닭도 있지요. 저는 여기에서 우리나라 전통무예에 대한 가능성과 의무감을 함께 발견한 것입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여 무예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시고, 사극 영화에 자문을 맡는 등 대중들에게 십팔기를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혹시 예전에 비해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거나 보람 있는 일이 있나요?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것은 불편하던데 … 어설프게 알려져서 가끔만 불편합니다.(웃음) 역사저널에 처음 출연했을 때는 그냥 말로 설명하는 것을 부탁하더라고요. 그런데 다음에 또 출연 제의가 왔을 때는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고 PD들이 제안했습니다. 지난 번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무예 문화가 있음을 알고 이를 더 잘 알고 싶어 하는 요구가 있던 것이었죠.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활쏘기를 시도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활의 민족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제가 활쏘기를 하겠다고 하니, 제작진 측에서 위험하다고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PD의 도전성 덕분에 원활히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더 다양한 무예를 스튜디오에서 시도하는 등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예 문화에 대한 수요가 커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시청률과 시청자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무예를 그냥 ‘아비요오!’하고 소리 지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를 시각적으로도 파악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경복궁이나 남한산성 등에서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참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무예가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무예를 시연만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미를 설명해줄 수 있는 무예 연극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없는 것으로 오해하는 우리의 무예를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없는 것으로 오해하는 우리의 무예를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우리의 무예를 좀 더 제도적으로 안정시키고 현대 스포츠로도 만들고 싶습니다. 일단 서울시에서는 ‘전통군영무예’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지정 절차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지만 앞으로 더 해야 할 것은 많지요. 일본 사무라이와 그들의 검술, 그리고 현대적인 스포츠가 된 검도. 유럽의 기사와 총사들의 검술과 현대 스포츠인 펜싱.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런 역사가 없다고 배워온 데다가 무(武)와 관련된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삭제되고 잊혔지요. 대한제국 때 이것저것 군대 개혁을 시도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실패한 신식군대 이야기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과 사회를 위해, 역사적인 자신감을 갖고 몸을 단련할 수 있는 스포츠로서의 무예를 보급하고 싶습니다. 물론 생각대로 잘 풀리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더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문화 콘텐츠에 전통무예가 제대로 된 자리를 잡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그 장구한 역사를 농기구 하나와 정신력으로만 싸우면서 버텼을까요? 아니죠. 그렇지만 아직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 말도 안 되는 전투 장면들이 종종 나옵니다. 당시의 과학적인 전술과 무예가 문화 콘텐츠에 잘 녹아들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사극을 찍을 때 족보 없는 검술이 나오기보다는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검술이 고증되는 것이 좋겠지요. 그래서 기회가 닿으면 영화일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시작 될 ‘충주 국제 무예 액션 영화제’를 최초 기획했고 ‘대립군’이라는 사극 영화에 자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서 피 흘리며 싸우기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에 자신의 인생을 던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 진로라고 하는 분야들은 대부분 20~30년 전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죠. 사실 대한민국만 놓고 본다면 역사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갖추어져야 할 것들, 그리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미 정해진 길에서 빨리 가라며 채찍질 당하기보다는 사회에 필요한 길을 자유롭게 개척하면서 재밌게 걸음을 옮기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 그런데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그 길이 만만치는 않아요!(웃음)

현우경 / 사진박금수 사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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