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재미를 좇아서, 공연장의 대표가 되기까지
서울대학교 안팎의 밴드들이 자주 공연장으로 이용하는 곳. 맛집으로도 정평이 난 바로 그곳 ‘사운드마인드’. 학교 친구들의 공연을 보러 몇 번 가봤던 이곳을 이번엔 인터뷰를 위해 방문하였다. 밴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과 ‘버튼 브라이트’의 기타리스트이자 ‘사운드마인드’라는 뮤직펍의 운영자기도 하다.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주신 ‘사운드마인드’의 대표님은 긴 머리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분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맥주 한 캔을 흔쾌히 건네셨다. 대표님의 추천으로 고른 맥주는 역시 톡 쏘면서도 맛있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서울대학교 밴드들에게 사랑받는 공연장으로 거듭난 이곳의 주인장, ‘이재훈’ 대표.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했던 밴드활동에서 뮤직펍의 대표가 되기까지,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사운드마인드’를 시작하셨나요?

전 밴드를 오래 했어요. 지금도 밴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같이 만든 친구들의 대부분이 음악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팀과 그 친구들이 하는 밴드 모두가 인디음악을 하는 판에서조차 많은 사람들이 크게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에요.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장르의 음악을 하죠. 저는 ‘슈게이징’, ‘포스트록’ 장르를 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장르를 하면서 느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야지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맥주나 음식도 마찬가지이고요. 사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공연을 만들면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걸 전제로 하고 ‘사운드마인드’를 시작했습니다. 3년 정도 운영을 해보니까 혹시나가 역시나였죠. (웃음) 우리가 만약 술이나 음식으로 운영을 제대로 한다면, 여기서 우리가 하고 싶은 공연을 만드는 데도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만약 우리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익성이 높을 만한 공연들에만 계속 의존하다보면 지금 하는 일들에 재미를 크게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재미’입니다. 그렇게 해서 술과 음식을 판매하게 됐고요. 다행히 오시는 분들이 이런 부분을 좋아해 주시고 저희의 생각도 알아주시고 해서 소위 돈 안 되는 공연들을 계속해서 열고 있어요. 계속 돈 얘기를 하고 있네요. (웃음)
우리가 직접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 나온 음악들을 계속해서 점검합니다. 국내 밴드들이 어떤 음악들을 내고 있는지, 다른 곳에서 본 만족스러운 공연들은 무엇이었는지 이런 것들을 계속 점검하는 거죠. 그리고 그분들을 이쪽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운드마인드’에서는 금전적인 부분과 관계없이 수준급의 공연들이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인디 음악이라고 해서 수준이 절대 낮지 않아요. 지난 3년 동안 했던 공연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가끔 ‘이런 좋은 공연들을 사람들이 왜 보러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이런 장르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저희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거고요.
‘사운드마인드’에는 어떤 손님들이 주로 오나요?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단골손님은 대부분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요. 제가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정도의 분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음악을 되게 좋아하거나, 술을 엄청 좋아하거나. 저랑 여기서 맥주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도 있고, 여기서 공연을 했던 분들도 다시 많이 찾아오시죠. 손님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요즘은 바빠서 많이는 이야기를 못 나누지만. 특히 여기서 공연을 했던 친구들은 얼굴을 까먹지 않아서 자주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죠. 2013년도에 오픈했을 때가 졸업을 하고 2년 뒤였는데 사실 전 학교를 10년 정도 다녔어요. 휴학도 많이 하고. (웃음) 뒤에 가서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했죠. 밴드 생활과 학교생활이 맞물렸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네요. 데뷔를 2011년에 해서 밴드와 공부를 함께 하다 보니 아무래도 학업에 소홀했던 것은 맞아요. 아무튼 질문으로 돌아오면, 사운드마인드를 구상하고 있을 때,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그런데 보니까 음악을 창작하는 친구들이 제가 학교 다닐 때 보다 많은 것 같더라고요. 또 이곳을 열고 얼마 안 돼서, 학내 밴드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는 이름의 컴필레이션 CD가 나왔어요. 그 친구들이 ‘낙성대에 공연장이 생겼으니 가보자.’라고 하면서 많이들 이곳에 왔죠. 음악을 직접 창작하고 공연하는 친구들은 아마 제가 학교 안에서 제일 많이 만나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웃음) 그 친구들이 이제 다 단골이 된 상태입니다.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밴드 활동에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밴드를 하는 것과 밴드가 공연을 하는 곳을 운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공연장을 열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인디음악 공연장이라 하면 주로 홍대를 많이 떠올리잖아요? 저는 밴드를 하고 노래를 쓰면서 맨 처음 든 생각이 ‘홍대로 진출하자’였어요. 전국에 있는 밴드들이 아마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요. 그렇게 해서 홍대로 진출했습니다. 집도 홍대 쪽으로 옮기고요. 홍대에 있는 클럽들에서 오디션도 여러 번 봤어요. 2014년까지 4년 동안 홍대의 여러 공간에서 공연을 했죠. 그즈음 홍대 바깥에서도 공연장들이 한둘씩 생기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는 문래동에 위치했던 ‘로라이즈’. 그곳은 기계 공장들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그런 새로운 곳에 가서 공연을 한다는 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공연이 아니면 그 동네 갈 일이 없었으니까요. 또 이태원 경리단길 쪽에는 지금은 사라진 ‘파우와우’라는 공연장이 있었는데 사실 거기서 처분하는 장비들을 우리가 인수했죠. 거기서 공연하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거기서 공연하면 바로 옆에는 유명한 피자집이 있어서 공연 마치고 피자 먹는 것도 참 재미있었죠. 어쨌든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찾아가서 공연하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지방 순회공연도 많이 했습니다. 대구, 천안, 부산 등 지역을 대표하는 클럽에 가서 한 번씩 공연을 다 해봤어요. 그렇게 공연을 하다 보니 꼭 홍대에서만 공연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홍대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나가서 공연하는 게 더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방금 말씀드렸던 대부분의 공간이 문을 하나씩 닫은 거예요.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연하는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던 것이죠. 그래서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 가능한 공연장을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게 어떨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했던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홍대 바깥에서 하는 게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장소를 더 고민해보니, 우리가 음악을 시작하고 여러 친구들을 만난 장소가 서울대학교였던 것이죠. 전 낙성대에 5년 정도 살기도 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낙성대에서 공연장을 열기로 선택한 것이죠. 우리들이 만난 곳이니까.
선배님의 학창시절이 점점 궁금해집니다.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학과와는 다소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는데,
선배님의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대학교는 아카데믹한 곳입니다.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대학교는 일반적인 개념과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생이라는 ‘지위’가 생기면서, 대입을 위해 억눌려있던 욕망이 분출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하다가 대학교도 조금 늦게 왔어요. 처음 입학할 때는, 더는 기타를 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곳에 취직해야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나 어느 날 과방에 가만히 앉아 있었던 적이 있는데 선배들이 기타를 메고 왔다 갔다 하는 걸 계속 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나도 기타 되게 잘 치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웃음)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밴드를 하고 있더라고요. 서울대학교 안에는 유난히 밴드가 많아요. 혹시나 인터뷰를 보는 친구들 중에 음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서울대학교에 오면 음악 활동의 길이 크게 열려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아무튼, 그렇게 대학교 들어와서 밴드를 하게 되었죠. 저는 사범대 소속이라 사범대의 ‘파문’이라는 동아리에서 2기로 활동했어요. 원래는 1기와 2기가 합쳐서 활동하는 사범대 소모임이었지만, 동아리로 승격해서 이제는 올해 16년을 맞은 동아리가 되었죠. 사범대 들어오시는 분들이라면 ‘파문’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네요. (웃음) 그렇게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기타 치는 애’로 각인되어 있더라고요. 학교 수업은 솔직히 그렇게 열심히 듣진 않았어요. 그래서 군대를 다녀온 다음에 다시 한번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1년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왜냐하면 2년 동안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에 그 다짐이 1년 정도 유지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1년이 지나고 나서는 다시 음악을 했어요. 이전보다 좀 더 깊게 음악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창작도 하고 본격적으로 홍대 진출을 위한 준비도 하고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 갔네요.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마음먹으면 이상하게 밴드에 더 열심히 몰입하게 되네요?
그런가요? (웃음)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에 모이는 친구들이 대다수 그렇듯 기본적으로 공부를 정말 잘하는 친구들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당연히 많지요. 그중에는 학업도 음악도 모두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 대학교 입학 후에 지구과학교육과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낀 건가요?
그렇진 않았어요. 공부하면 되게 재미있게 했죠. 저희 과는 특성상 지질 탐사나 천문대에서 며칠 새면서 하늘을 관찰하는 활동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은 정말 재밌게 공부했죠. 다만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것에 조금 흥미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질문에 답을 하자면, 지구과학교육과는 적성에도 맞았고 흥미도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갖게 되면 고등학생 때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처음 하는 경험들이죠. 그 과정에서 학업과 상관없는 경험 때문에 진로가 바뀌는 경우도 무척 많아요. 그래서 스스로가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편견을 지니지 말고 늘 마음을 열어두는 게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주변에 학과 선배나 동기 후배들을 보면 저 말고도 다양한 진로로 진출한 사람이 많아요. 학과 선배 중 한 분은 ‘지구과학교육’을 전공했지만 서울 지역에 있는 근현대사 사료들에 매력을 느끼셔서 지금은 역사책을 쓰는 작가가 됐죠. 대학교에서 하는 경험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이 경험들을 토대로 스스로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진로가 180도 바뀌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어요.
고등학생 때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한 적이 있나요?
꿈에도 생각 못 했죠. 제가 중학교 때 상상했던 건 고작 머리를 기르고 기타를 칠 것이라는 정도? 공연장을 운영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 심지어 불과 5년 전만 해도 제가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한 10년 전쯤에는 심지어 고시를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마음잡고 공부하기로 다짐한 적이 있었거든요. (웃음)
그래도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고등학생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노는 걸 엄청 좋아하는 고등학생이었어요. 사실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많이 없기는 하죠. 음악도 엄청 좋아하고 밴드도 열심히 했어요. 그때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어요.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라면 저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집에서 음악을 듣고, 공부를 하고, 기타를 치고, 아니면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았죠. 아니면 농구를 하거나. 그래도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공부하는 것이 싫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어요. 공부는 음악과 또 다른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사운드마인드’를 오픈하기 전까지는 제가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잠시 했어요. 수학을 좋아했으니까. 사실 싫어서 뭔가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싫으면 안 하죠. 공부를 하기 싫었던 건 아닌데 밴드를 좀 더 열심히 하다 보니 삼수까지 하기는 했죠. (웃음) 너무 공부만 하고 있는 친구들과는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어요. 대체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죠.

‘사운드마인드’를 열기로 한 결정에 대해 만족하고 있으신가요?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여긴 정말 전쟁터와 다름없네요. 한국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전쟁과도 같은 일이에요. 특히 저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걸 다 붙잡고 가고 있는 경우는 특히나 더요. 스스로의 삶에서 포기해야하는 것도 많고, 술과 안주, 음식들도 항상 체크해야 하고,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밴드들도 항상 체크해야 합니다. 정말 할 게 많아요. 제가 하는 일은 사실 사업 아이템이 많은 편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공을 들이는 정도에 비해서 이를 관리하는 인원이 많지 않은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학교를 졸업하고 강사를 할 때도 그렇고 지금 ‘사운드마인드’를 운영할 때도 그렇고 실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기서 말하는 실무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어떻게 현실화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벤처 기업 운영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매일매일 숫자로 기록되는 삶을 사니까 그에 맞춰 전투적인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사실 웬만한 이야기를 다한 것 같네요. 지금 고등학생 신분으로도 물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하지만, 특히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업이나 정해진 진로에만 갇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고등학생 때든 대학생 때든 많이 경험하고 재미있게 지내면 좋겠어요. 무엇인가 분명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살다 보면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다양한 경험과 기회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사운드마인드’는 이제 3주년을 맞았어요. ‘사운드마인드’에서 추구하는 공연 문화를 누리고 들여다 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늘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좋은 공연장이 되기 위해서 음향이나 술, 음식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을 계속 신경 써나갈 것입니다. 이곳을 잘 가꾸고 유지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