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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 나의 진로

재미있는 일, 재미있는 작품, 재미있는 삶

자연과학대학 수리과학부 성지환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독특한 영상미와 신선한 이야기로 우리를 사로잡는 ‘72초 드라마’란 것이 있다. 이 드라마는 짝사랑, 연인 관계, 호러, 심지어 뉴스까지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종전의 드라마와는 선을 긋는 매우 신선한 연출과 영상으로 이미 SNS와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버렸다. 친구, 동생, 선후배 모두에게 이 ‘72초 드라마’의 짧고 굵은 재미에 대해 한번은 들어본 필자는 이를 기획한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하던 참이었다. 보통 60분 한 편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들의 거대한 각축의 장에서 그 틈바구니를 뚫고 나와 72초 동안 승부를 보는 드라마가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전에 이런 드라마를 생각해내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하필 이 드라마를 만드는 장본인이 대학 선배라는 인연까지 필자에게 더해지고, 심지어 웹진 아로리에서도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열려 있으니 이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인터뷰 준비를 하던 차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는 오늘의 주인공의 간단한 이력을 접했을 때는 그 궁금증이 놀라움으로 변하였고 서둘러 궁금증을 해결하고픈 마음이 앞서게 되었다. 서두르다 보니 약속보다 꽤 이른 시간에 도착한 테헤란로의 ‘72초’ 스튜디오. 짬을 이용해 둘러 본 풍경은 필자가 예상한 대로 자신의 일에 몰입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스탭들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폭풍처럼 사로잡은 드라마의 총괄 PD로 활동하는 선배님과의 인터뷰는 드라마처럼 솔직하고 강렬해서, 그래서 더욱 유쾌했다.

학부 시절에 수학을 전공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 하는 일과는 괴리감이 좀 있는 전공인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입학하셨나요?

제가 입학할 때는 먼저 자연과학대학으로 입학해서 전공을 정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원래부터 수학을 좋아해서 수리과학부로 전공을 정했습니다. 수학에 큰 뜻이 있지는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수학 과목을 제일 좋아했어요. 실제로 제일 잘한 과목이기도 했고요. 물론 가장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선택의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 물론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만 재미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웃음)

 

 72초 드라마의 모태인 사무실 풍경

 

 

72초 드라마의 모태인 사무실 풍경

대학교 입학 전에는 지금 하는 콘텐츠 기획보다는 공부에 집중하는 편이었나요?

공부만 하는 편은 아니었죠. 콘텐츠 기획 분야에 관심을 끌게 된 건 고등학교 때가 출발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전노래방이 처음 생겼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고2 때는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죠. 그때 성적표를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그때 우리 반이 40명 정도였는데 반에서 등수가 33등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또, 그 당시에는 시 쓰는 걸 좋아했어요. 한 60편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고2, 고3 2년 동안 쓴 것들이에요. 2학년 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홍콩으로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민을 떠났어요. 전 그게 슬퍼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시에 대해 문학 선생님께 질문하면서 문학 선생님과 시를 적은 노트를 교환하기 시작했고요. 콘텐츠와 관련해서는 이 정도 말씀 드릴 수 있는 게 다네요.

그러면 대학교 입학 후에는 왜 수학에 갑자기 흥미를 잃으셨나요?

사실 전 삼수생입니다. 진로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단순히 점수만 맞춰가는 우리나라의 입시 중심 교육의 피해자가 저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막상 입학하고 나서 무엇을 목표로 정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공부해야 할 과목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지만 정작 왜 내가 그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공부에 열의를 갖기가 힘들었어요. 거의 학교를 나가지 않았죠. 대학교 때 별명이 ‘삼일’이었어요. 개강하고 나면 딱 사흘 후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당연히 올 에프도 많이 맞았습니다. 올 에프 받으면 학교에서 등록금을 되돌려준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 직접 확인해 봤는데 주지 않더라고요. (웃음) 어쨌든 수학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이유를 정확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하는 일들을 안 했어요. 수학은 사실 지금도 좋고, 애정도 남아 있어요. 지금도 평소에 문제를 붙들고 있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학교를 안 갔으면 수학을 계속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대학생 때, 수업을 나가는 대신에 무엇을 하며 일상을 보냈나요?

사람들은 이걸 방황이란 말로 대신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놀았어요. 정말 많이 놀았죠. 당구장도 가고, 게임방도 가고, 술도 마시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이렇게 4년 반 정도를 보낸 것 같네요. 5학년 1학기 때는 병역 문제로 휴학을 했고요. 사실 당시에는 제적이라는 제도가 없어서 제적을 면할 수 있었죠. 물론 최대로 등록할 수 있는 학기 수는 정해져 있었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본인이 자퇴하지 않는 이상 학생 신분을 잃지는 않았어요. 물론 관대하신 교수님들 덕도 조금 보기는 했습니다. (웃음)

병역 생활은 어땠나요?

산업체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주로 했어요. 디바이스에 들어가는 프로그래밍을 하고, 통신 프로토콜에 대한 프로그래밍도 참여했죠. 프로그래밍은 어릴 때부터 조금 할 줄 알았는데, 대학교 들어오기 전부터요. 초등학생 때 무렵 시작했던 것 같네요. 사실 프로그래밍은 논리를 배우는 것이라, 중간에 쉬더라도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죠. 그래서 책을 혼자 보면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땄어요. 수학이 논리학이라 프로그래밍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프로그래밍을 익혔습니다. 나름 재미있게 했어요. 운이 좋아 해외 출장도 자주 가게 되었고요. 나름 재미있게 생활한 것 같네요. 이런 경험이 제가 산업기능요원을 마치고 복학을 하면서 친구랑 IT 분야 사업을 준비하게 되는 바탕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준비하다가 졸업을 목전에 두고 계획을 바꿔버렸지만요.

왜 갑자기 계획을 바꾸었나요?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IT 쪽으로 사업을 하면, 평생을 재미있게 살거나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프로그래밍을 내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과연 평생 즐기면서 최고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있을까? 거기다가 소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분야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 ….’ 등등의 고민을 하게 되면서 궁리 끝에 결정하게 된 분야가 공연기획이었습니다.

진로가 공연기획 분야로 과감히 바뀐 점이 놀랍습니다.
그 전부터 공연 기획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요?

그 전에는 사실 공연을 만드는 것보다 무대에 서는 것에 관심이 많았죠. 데모테이프를 만든 적도 있고, 뮤지컬 무대에도 오른 적도 있어요. 밴드 생활을 한 경험은 없지만 주변에 음악에 몰두하는 천문학과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랑 친해져서, 그 형 집에 작업실을 만들어서 음악을 같이 할 정도였죠. 전 그렇지 못했지만 그 형은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도 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음악에 몰두한 것은 맞네요.

 

 72초의 작품들(72초 누리집)

 

 

72초의 작품들(72초 누리집)

그러면 공연기획 분야에서 출발점은 어떠했나요?

공연기획 아카데미가 시작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2007년이었죠. 그때가 제 나이 서른한 살. 아카데미는 학원 같은 곳이었어요. 그때는 그런 공연기획을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두 곳뿐이었어요. 그중 한 곳인 서울공연예술학교에 들어갔고요. 지금은 이런 아카데미가 꽤 많은 편입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뮤지컬을 기획하려고 했는데 가서 직접 배워보니 뮤지컬은 제가 재미있게, 새로운 걸 도전하기가 힘든 분야라는 것을 느꼈죠. 뮤지컬 기획은 이미 많은 것이 시스템화 되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단순한 공연을 해보자니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페스티벌 기획으로 방향을 바꾸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곳에 취직한 것입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서 어떤 일을 맡았고, 왜 그만두었나요?

그곳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것은 2년 정도입니다. 기업들 대상으로 마케팅, 협찬 유치, 현장 전체 행사장 구성, 행사장 운영 등 다양한 일을 맡아 보았죠. 프로그래밍이나 아티스트 섭외를 제외하고 많은 일을 했어요. 그만둔 이유는 처음부터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 원래 제 생각은 공연기획이란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자라섬에 가서 일을 해보니, 과정이나 방식이 생각보다 기계적이었어요. 매일매일 비슷한 일들로, 정해진 방법으로만 운영이 되었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레 그만둬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을 했죠. 당시 절 채용한 대표님은 원래 뽑을 때부터 ‘한 2년 정도 하고 그만 두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 (웃음).

그러면 그때 자라섬 페스티벌 일을 그만둔 후에 지금의 ‘72초’가 만들어진 건가요?

아닙니다. 자라섬을 떠나서 ‘인더비’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사실 처음 시작한 이름은 ‘MIW’였어요. ‘Make IT Warm’, 그러니까 IT와 공연문화를 연결해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자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인더비’는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진경환 감독과 시작했어요. 원래부터 공연기획 아카데미에서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진 감독은 당시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었죠. 아카데미에서 제가 19기, 감독은 10기. 그리니까 진경환 감독이 엄청 선배였어요. 그리고 아카데미에 제가 들어갔을 때, 진경환 감독은 이미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있었던 사람이죠. 진경환 감독이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 때가 제가 가평 자라섬으로 자리를 잡을 때입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중에 같이 회사나 차려보자고 말했는데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 셈이죠. 회사를 만들고 사업 구상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진 감독을 만나러 여름에 직접 파리를 찾아갔어요. 삼 주 정도 진경환 감독의 기숙사에서 다른 사람들 몰래 살았어요. 매일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죠. 정말 하루도 안 빼고 해 뜨는걸 보고 잤네요. 진 감독은 논문을 마치고 귀국했고 전 그의 합류와 함께 회사 이름을 ‘인더비’로 바꾸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인더비’가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과 뭉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인더비’를 시작할 때도 사실 저와 진 감독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웃음) 제가 파리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도 사실 진 감독은 ‘아니 이 양반이 왜 파리까지 오지?’라고 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그렇지만 진 감독과는 서로의 이야기를 꽤 오래 하면서 결국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둘 다 똑같은 갈증이 있었던 것이죠. ‘왜 사람들은 다 같은 콘텐츠를 똑같게 만들고 있는가?’라는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둘이서 일 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던 중에 새롭게 김남조 감독이 들어왔어요. 그 감독도 유럽에서 공부를 했고, 졸업과 함께 합류했죠. ‘인더비’를 5년 이상 함께 하면서 그 과정에서 많이 끈끈해진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5년 뒤에는 총 6명이 되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 수는 아니죠.

그런데 ‘다른’ 콘텐츠를 만들자며 시작한 회사인 ‘인더비’를 그만둔 이유는 또 무엇인가요?

이제 그만 둔 지 2년 정도 되었네요. 우리가 ‘인더비’에서 4년 10개월 정도 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좀 색다르고 희한한 공연도 만들어 보면서 차곡차곡 이력이 쌓이니까 업계에서도 저희가 많이 알려지게 된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사업을 지원해 주는 단체에서 올해도 잊지 말고 지원금을 요청하라는 전화가 왔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음이 왔죠. 생각해 보니 우린 경제적으로 각자에게도 나아가 회사에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못하고 있다는 깨달음. 우린 처음부터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소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공연 한 편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항상 지원금을 받아야만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현실은 우리가 제대로 된 수익을 못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숭고한 예술가에게나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죠. 이런 각성은 곧 회사의 장래가 암담하다는 것도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린 ‘예술’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 그래서 갑자기 접게 된 것이죠.

원래 공연 기획사는 일이 잘 돼도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가요?
그렇다면 ‘72초 드라마’는 두 가지 목표 즉, 수익성과 재미난 콘텐츠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가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바탕으로 제작한 공연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대중적인 공연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가 만든 것은 실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순수 예술 작품’으로 분류 되는 양식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이윤이 크게 남는 일이 아니었어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예술 분야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에요. 우린 처음부터 예술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고, 새로운 시도로 재밌는 작품들 만들어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되고 있는 게 명확해 보였기 때문에 중간에 일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거고요.
그래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획은 필연적인 것이었어요. 때마침 영상물이란 것이 공연물에 비해 수익을 내기가 쉬워보였고, 그래서 현재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영상 콘텐츠를 확장할 계획도 언제든지 있어요. 콘텐츠라는 것이 단지 하나의 표현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 당장은 72초 안에 영상을 끝내는 형식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해 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끝까지 마쳤을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어떤 일을 끝까지 마쳤을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조금은 색다르고 특이한 콘텐츠를 추구하는 회사, ‘72초’가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까지는 인재상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회사의 구성원이 곧바로 콘텐츠의 질적인 부분과 사업의 수익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을 했고 이를 구체화할 필요를 느꼈죠. 혼자서 고민을 좀 해보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면 ‘72초’의 식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인터뷰를 보는 대학생들이나 고등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먼저 대학생들에게는 창업에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대학생들을 위한 창업지원프로그램이 요즘에는 정말 많아요. 자신이 직접 회사를 운영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지닌 경험의 차이는 정말 큽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게 정말 많은데, 대학생이라는 인생의 순간은 실패란 것을 경험해도 사회에 나와 성인이라 불리는 순간에 겪는 실패라는 경험에 비해 심리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번쯤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물론 고등학생들도 창업이란 것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실행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현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단지 공부가 싫어서 상대적으로 좋게 느껴지는 것인지,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는 직접 해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한번쯤은 어떤 일을 끝까지 실행해 보고 그 결과가 나한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글·사진양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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