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환경을 지키는 게 곧 정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별생각 없이 가볍게 봤던 영화 ‘판도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원전 피폭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국내 원자력 발전소의 밀집도가 매우 높은 편이며, 설립 속도도 세계에서 빠른 편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장면들은 우리를 두렵게 했지만,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지 의문도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마주하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환경’을 전공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는 윤순진 교수님과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교수님, 혹시 최근 개봉한 ‘판도라’ 보셨나요?
표를 받았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어요. 관람 전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위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원자력 발전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더군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판도라’는 분명 원자력 발전 문제라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로 충분히 가져왔다는 점에서 근래 우리 사회에 가장 이바지한 영화로 남을 것 같군요.
영화 ‘판도라’를 본 관객들 중에는 원전을 없애고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사실상 비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많은데요. 이런 의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뭐죠? 현재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기존에 유통되었던 정보를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는 무비판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모든 에너지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부터 먼저 해야 해요. 나는 이 방에 불을 켜놓지 않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전체 에너지 사용량 중 조명이 차지하는 비율이 17% 예요. 몰랐죠? 그런데 만약 집마다 한 등씩 줄인다면 원자력 하나 줄이는 건 큰 문제도 아닌 거죠. 예를 들어, 공공화장실에서 비데나 손 건조기의 코드는 항상 꼽혀있는데, 우린 이것들을 공공시설에서 꼭 써야 하나요? 또, 우린 집 밖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생활하지만 비데는 항상 켜놓거든요. 이렇게 쓰지도 않으면서 불 켜놓는 것만 줄여도 지금처럼 새로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돼요. 다시 말하면, 우린 무조건 많이 생산하기 전에 ‘절약이 생산이다.’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해요. 그리고 전 세계는 이미 원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게 오히려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원천이 된다고 봐요. 우리나라만 구시대적 발상과 인식에 묶여있는 거죠. 나는 ‘판도라’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전제가요. 그런데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하고 확신할 수 있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할 거라고 누가 상상했죠?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의 상상을 항상 넘어서고 있고, 일본에서도 15m 이상의 쓰나미가 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일어났잖아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쓸 돈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돈이 없는 게 아니에요. 이전 정부 때 4대강 정책에 썼던 비용을 만약 재생에너지에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린 투자할 자금이 없는 게 아니에요. 이런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고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거든요. 풀려고 하면 방법은 무척 많아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각의 전환이 지금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성장과 생산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성장이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문제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그 문제들에 우리는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고요. 환경 친화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해요.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투덜거리지만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 발전 방식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거나, 경유차를 산다거나 등의 방식을 지지하는 정책을 내놓은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죠.
그럼 교수님의 대학생 시절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 대학생 때는 우리나라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지 않았거든요. 그때만 해도 경제 규모가 지금의 수준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내가 학교 다니면서 조금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예요. 난 그때 신문을 매우 열심히 읽는 편이었는데 체르노빌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다른 학생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진 이유는 내 고향이 경주 월성군, 그러니까 월성 원전단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우리 집은 거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거든요. 어릴 때, 그 주위에 문무대왕릉에 놀러가거나 부모님과 회를 먹으러 그 주위로 자주 갔어요. 그때마다 회색빛의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을 보면서 저게 뭔지 부모님께 물어보곤 했어요. 그때 부모님이 ‘원자력 발전소’라고 했는데, 이게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걸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알게 된 거죠.
그러다가 제가 91년에 교사가 되었죠. 사회학과를 나왔지만 교직을 이수해서 교사 자격증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고요. 그 당시 우리나라도 환경문제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 교육에 참여했죠. 내가 사회교사라 ‘정치경제’와 ‘사회문화’를 가르쳤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교육받은 내용을 수업 시간에 환경오염이나 공해 문제 중심으로 가르쳐줬죠. 그리고 내가 숙명여고에서 4년을 근무했는데 그 학교에서 최초로 시사환경반을 만들어서 특별활동을 학생들과 같이 했어요. 신문 스크랩도 하고 아이들에게 조사와 발표도 시키고. 그리고 92년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UNCED라는 회의가 열려서 학생들과 함께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문제, 사막화 문제에 대해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저 역시도 더 깊게 알 수 있었죠.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들도 그즈음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92년도에 지금의 녹색연합의 전신이 만들어지고, 환경운동연합의 전신도 93년에 만들어졌어요. 그게 90년대 초반이었죠.
고등학교 때는 어떻게 사회학과에 가겠다고 결심하셨나요?
사실 그때 대학교에 어떤 과가 있는지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난 대학교에 가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도 몰랐고 대학교라는 곳은 그냥 가야하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거죠. 그리고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서울대학교에 가는 것인 줄 알았어요. 진지하게 나중에 무엇을 공부할지 고민해 본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정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죠.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데. 아! 한번쯤 이런 생각은 했죠.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해 잠깐 배웠어요. 그때, 잠깐이지만, 이과 학문을 배워서 과학기술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큰언니가 나한테 ‘뿌리 깊은 나무‘라는 출판사가 만든 ‘나는 대학에서 어떤 걸 공부하여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책을 선물해 줬거든요.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되는 책이었죠. 그래서 그 책에서 문과 이과 학문 모두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어요. 그걸 보면서 사회학과라는 학문이 되게 재미있을 것 같고, 내 성격과도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사회학과로 결정했어요.
실제로 사회학과에 진학하여 공부해보니 어땠나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흥미롭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내가 학교에 다닌 시기는 85년 3월에서 89년 2월이었어요. 군부정권 시절이었고, 87년에는 6월 항쟁이 있었죠. 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대학이 매우 낭만적인 곳인 줄 알았는데 … 낭만은커녕 매일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짱돌이 난무하고, 친구나 선후배가 경찰에 잡혀가서 두들겨 맞고 … 심지어 의문사도 많았죠. 또 학교 안에서도 시위가 많았고, 스스로 분신하는 사람,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너무나 우울한 시대였죠. 그런 대학생활에서 공부에 몰입하는 건 정말 힘들었어요. 사실 뭘 배웠는지도 모르겠고…. 학교에서 크게 배운 건 없었던 거죠. 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학은 정말 흥미로워요.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회에는 어떤 규칙이 있고, 사회는 어떻게 변화 발전하는지. 이런 내용들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지금 연구하시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사회학과와 관련성이 높은 분야인지도 궁금합니다.
난 지금도 환경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해요. 사회의 구성원들이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는,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조직을 만들며, 그 조직이 환경운동을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를 연구하죠. 혹은, 왜 어떤 사람은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왜 또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지. 아니면, 왜 어떤 사람들은 환경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하지만, 왜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해요. 정책적인 부분도 연구해요. 예를 들면, 왜 어떤 정책은 만들어지고 다른 정책은 그렇지 못한지. 아니면,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때 누구는 어떤 입장에 왜 서는지. 나는 그런 문제가 너무 궁금해요. 그래서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는 거죠. 사회학은 나에게 너무나 흥미로운 학문이에요. 사회학은 할 만한 학문이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대학교에 다니던 당시는 이렇게 학문적으로 자극을 받을 정도로 나에게 동기 부여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학교에 와서 공부했던 게 사회학보다는 정치경제학이었어요. 철학이나.
그러면 지금 대학생들이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하는 것처럼, 학과 공부 말고 열정을 가지고 하셨던 활동이 있다면요?
그때는 '문·사·철' 중에서 역사와 철학을 학생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리고 경제도.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를 새로 보는 것이 너무 중요했거든요. 식민시대의 경험, 해방전후사, 그리고 근대적 산업화 시기의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우리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역사를 매우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 다음에는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이건 철학 분야이기 때문에 우린 철학을 열심히 공부했죠. 그래서 이런 분야는 사회학과 학생이든 다른 학과 학생이든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 당시에 정부는 대학생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막았어요. 우리는 그래서 ‘패밀리’라고 부르는 언더서클을 만들었죠. 지하활동, 그러니까 공개되지 않고, 공식화하지 않는 우리끼리만 아는 조직을 만들어서 같이 공부했던 거예요. 한동안 열심히 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해산하게 되었어요. 그 모임과 더불어 나는 ‘사회발전연구회’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학과에서의 공부모임이었죠. 나름 무척 재미있게 했는데, 정부가 싫어하는 ‘불온서적’을 공부했어요. 이 책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읽어야하는 기본 교양서들이죠. 허나 당시에는 그걸 읽으면 잡혀가는 것은 기본이고 투옥까지 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몰래 밤샘 토론하곤 했죠.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심포지엄’이라는 활동을 했어요. 사회학과의 전통이었는데, 관심 있는 주제를 1년간 공부해서 마지막에 발표하는 활동이에요. 나는 사람들과 함께 2학년 말부터 준비해서 ‘농업과 농촌 문제’를 다뤘어요. 농민층 분해와 농민운동에 대해 공부했죠. 우리 선배들은 노동자 문제를 공부했고요. 그리고 그 결과물이 ‘사계절’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왔어요. 내 인생 첫 책이었죠.
환경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 혹은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가져야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환경이 파괴되면 사회에서 불우한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는 것도 맞죠. 그런데 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동물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생명에 대한 존중, 애정, 관심, 이런 게 있어야 하는 거죠.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한 문제를 깊게 파고들 줄 아는 치열한 문제의식이 필요해요. 요즘에는 환경공부를 사람들이 많이 해요. 그런데 그 이유는 환경이 돈이 되기 때문이에요. 환경이 큰 먹을거리라서 하는 사람도 많은 거죠. 그런 사람도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겠지만, 그런 사람들 보다는 스스로가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어서 하는 사람들이 이 분야를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그게 상식적인 보상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나는 안전한 사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윤리와 책임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 전기를 생산해서 생기는 환경문제를 남에게 전가하면서 사는 것은 용납돼서는 안 되는 거죠. 결국엔, 내가 에너지 소비자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생산자가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그걸 위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해요. 이런 문제는 환경적으로만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정의롭지 않거든요.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를 나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