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궁금함의 시선이 사회를 바꾸는 글이 되기까지
순화동 중앙일보 본사 앞, 빌딩 숲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건물은 수줍게 기자증을 패용한 필자를 압도하는 듯했다. 어쩌면 건물보다 학생기자로서 진짜 기자를 만나는 일이 더욱 마음 졸이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밝게 인사하는 한애란 기자님을 보는 순간 떨림은 설렘으로 바뀌었고, 다년간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과 따스한 긍정의 정조는 이야기에 스며들게 하였다. ‘기자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인터뷰. 이제 그 답을 들어보자.

한애란 기자님의 중앙일보 기사 블로그를 보면 매주 2~3편의 기사가 올라옵니다. 기사는 어떻게 작성하시나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 중 하나는 딱히 정해진 게 없다는 거예요. “너는 왜 2일 동안 기사를 안 썼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개 궁금한 게 있으면 취재를 자발적으로 하더라고요. 기사는 크게 자료기사와 기획기사가 있어요. 자료기사는 문자 그대로 몇 시 이후에 보도하라는 엠바고에 따라 배포된 자료를 살펴 기사를 작성하는 거예요. 자료기사는 자료를 받은 모든 기자가 거의 똑같이 쓰는 기사예요. 보통 9시에 자료를 받고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해서 취재하고, 통계 그래프를 만들어서 12시 전에 기사를 올려요. 근래 ‘금융위원회’라는 정부 부처에 출입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자료를 가지고 적어도 한 주에 두 건 이상의 기사를 쓰고 있어요. 반면, 기획기사 같은 경우에는 며칠에 한 번 써야 된다는 규정이 없어요. 어느 날 ‘어떤 주제를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관련된 곳에 연락을 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요. 이렇게 2~3시간 조사한 뒤, 다음 날 ‘이런 기사를 쓰겠다’고 발제하고 상부의 허가를 받지요. 승인이 나면 일련의 취재 내용을 정리해 기사를 작성하는 거예요. 단시간 내 쓸 수 있는 기사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현장도 방문하고 유관 사례도 수합하며 일주일 이상 취재해야 하는 기사도 있어요. 1월 말에 실업과 신용불량 두 가지가 결합된 ‘청년 실신 시대’ 기획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그때 전화의 한계 때문에 실업과 신용불량으로 고통을 겪는 분들을 일일이 섭외하여 직접 만나다보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더라고요.
기자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나요?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때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고 그저 신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기자들을 보면 다들 성향이 비슷해요. ‘나는 재미있는 걸 하고 싶고, 의미 있는 게 하고 싶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주로 기자를 하는 것 같고 저도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 어느 과에 지원할지 쓰라고 했을 때, 저는 3년 내내 언론정보학과를 적었어요.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하고 보니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 속에서 굳이 장래희망을 변경할 필요 없이 졸업하고 바로 언론사 시험을 봤어요. 고시를 보지 그랬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합격하더라도 재미없어서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웃음).
경제부 기자가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건 우연이었어요. 기자의 가장 안 좋은 점은, 특정 부서의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해도 그게 원대로 안 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 어떤 기자가 되고 싶기보다는 그냥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어떤 부서의 기자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엔 사회부 교육팀에 있다가 경찰팀에 갔고, 그 후에는 산업부에서 자동차 부문을 담당하다, 기회가 되어 경제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언론사 차원에서 희망 부서를 조사하지만, 각 부서의 입장에서 필요한 연차라든가, 경력을 가진 사람을 선별하다 보니 대개 1지망 부서로 배속되진 않더라고요. 운에 달린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해요.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김호정이란 기자가 있는데, 그분은 전공과 희망이 일치하고 다들 그분이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지금 클래식 부문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러면 경제 관련 지식은 부서를 이동하면서 배우신 건가요?
신입 경제부 기자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없어요.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서 기사를 써야 해요. 그러다 보니 기자에게는 빠른 학습능력이 필요하죠. 제가 처음 경제부에 들어갔을 때는 증권팀에서 일했어요. 무슨 말인지 몰라도 기사는 써야 해서 모르는 단어는 관련 서적을 찾고 “사실 잘 몰라서 그런데…” 하면서 애널리스트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애초에 관련 지식이 있으면 기사 작성이 수월하기는 하겠지만, 전문지식이 있어야 좋은 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기사를 전문가의 눈높이에서 쓰는 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써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전문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전문지식은 별로 없지만 열심히 물어봐서 배우는 기자의 기사가 더 쉽게 읽히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자동차 부문에 출입했을 당시 여성 기자가 거의 없었어요. 자동차 관련 지식이 부족했던 터라 자동차 시승기를 쓸 때 난감했지만, 오히려 일반인의 입장에서 기사를 더 흥미롭게 작성할 수 있었어요.
조금 전에 빨리 학습하는 능력이 기자에게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혹시 기자에게 필요한, 가져야 할 자질이 더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궁금한 게 많아야 해요. 정부에서 무얼 발표하면 ‘어, 그렇구나’ 하는 게 아니라 ‘이건 왜 그렇지?’, ‘이게 맞나?’라는 삐딱한 시선이 필요해요. 모든 걸 다르게 보고 의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성향이 있으면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요.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면 세상에 기삿거리가 별로 없겠지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사람은 애초에 기자를 하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기사를 쓸 수도 없어요.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저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내성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지요. 왠지 괄괄할 것 같은, 전형적인 기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언론사 사람들을 살펴보면 섬세하거나 조용하고 책읽기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반드시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일 필요는 없어요.
기자님의 학창시절이 궁금한데요. 고등학교 때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대학에 가야겠다는 일념뿐이어서 다른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때 너무 입시 공부만 열심히 해서 고시가 싫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막연하게 왠지 기자를 하는 사람은 학창시절에 교지 활동, 방송반 활동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저는 하나도 안 했어요. 제대로 된 기사를 쓴 건 신문사에 입사한 다음이에요. 선배들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오히려 교지, 학보사에서 글을 썼던 사람은 그 글투, 문체가 있어서 신문사랑 오히려 안 맞을 수도 있답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요. 저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어요. 선생님들이 왜 언론정보학과 가냐고 물어볼 정도로(웃음).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전공 만족도가 높았어요. 나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고 학과도 조그마해서 굉장히 가족적이었거든요. 또 ‘장정’이란 학과 내 언론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언론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게 좋았어요.

기자로서 보람을 느낀 적 있으신가요?
정말 많아요. 기자라는 직업이 그런 소소한 보람이 없으면 다소 맥 빠지는 일이에요. 항상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처음 썼던 기사예요. 2003년 2월 1일에 입사를 했는데, 2월에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났어요. 그래서 들어온 지 보름밖에 안 된 교육생이지만 현장에 긴급 투입되었어요. 취재해본 적도 없고, 기사를 써본 적도 없는데 병원과 장례식장 몇 곳을 찾아가 여러 사연을 취재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어느 한 병원에서 어떤 아주머니의 죽음을 접했어요. 자녀가 3명인데, 남편은 이미 위암으로 돌아가셨더라고요. 가정형편이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겨질 처지였어요. 그 기사가 사회면 하단에 1,000자 정도 실렸고, 다음 날부터 많은 분들이 기부금을 보내주셨어요. 당시 대구 공무원분들이 “햇병아리 기자 아가씨가 이런 거를 운 좋게도 취재했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우연히 취재했어요. 정황이 급박하여 갱지에 작성해 팩스로 보낸 기사인데도 여태껏 보람을 느껴요. 현재 상황은 모르지만, 그 후로 1년 뒤, 2년 뒤 그 아이들을 돌아보는 대구 기사가 나왔는데 할머니와 잘 살고 있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사회부 기사가, 특히 사건ㆍ사고 기사가 파급력이 크고 한 사람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대개 글쓰기의 비결로 독서를 꼽는데,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네. 저는 학생 시절에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데 경제부에 있는 선배들 상당수가 “소설은 안 읽는다” 이러세요. 이론서나 우리가 생각하는 딱딱한 경제 관련 책을 주로 읽으시죠. 근데 저는 정반대예요. 저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많이 읽고 지금도 필요하지 않으면 딱딱한 책을 즐겨 읽지 않아요. 언론사 시험 준비할 때 박완서 님의 책과 에세이를 많이 읽었어요. 저랑 기호가 맞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먼 미래에 도움이 되려고 그랬나 봐요. 이제는 딱딱한 설명 기사보다 감성을 터치할 수 있는 기사를 쓰는 게 중요해진 시대예요. 언론사 작문 시험도 문체와 생각의 참신함 등을 중요시해요. 앞서 말했던 “소설은 안 읽어” 하는 선배들도 요즘에는 딱딱한 책 말고 소설을 읽으라고 말하시기도 해요. 저는 예전부터 소설을 읽었는데 말이죠(웃음). 기자가 되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각을 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중앙일보에 ‘TONG’이라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년기자단이 있어요. 보니까 경쟁률도 높고 뽑힌 학생들은 무척 열심히 활동을 하더라고요. 저희 때는 대학생 신문사 인턴도 없었어요. 그냥 막연하게 ‘기자 활동은 이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기자를 꿈꿨어요.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자체로 학생들에게 좋다고 생각해요. 직업에 대해 더 소상히 알고 진로를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언론정보학과 출신의 예능 PD 친구들을 보면 일은 재밌어 하나 일주일에 2~3일은 밤을 새워서 너무 힘들어해요. 대학생이 되더라도 지금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기자가 꿈이라면 기자들에게 직접 메일로 물어보는 적극성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은 친절하게 답변해주니까 그런 기회도 찾아 누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