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자기다움을 찾아 나의 가치를 만들어라
고등학교 시절 ‘약콩두유’를 마시며 배고픔을 달랬었다. 섣달그믐을 앞두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 연구실로 ‘약콩두유 아빠’ 이기원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연구실에 수북이 쌓인 편지를 보며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도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어울리는 이기원 교수님을 보며, 얼른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식품생명공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전공에 관심을 갖고 계셨나요?
제가 93년도에 입학했으니 25년 전의 오래된 이야기가 되겠네요. 식품생명공학과는 2018년도에 딱 50주년이 됩니다. 원로교수님들께서 이 전공을 개설하실 때, 후학을 정말 잘 키울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시고자 무척 애를 쓰셨어요. 당신들은 고되더라도, 자식들 교육 잘 시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신 것이죠. 저는 그러한 두터운 학문적 토양에서 유학을 가지 않고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 남들보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일에 집중해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었어요. 식품생명공학과에 입학한 사연은 사실 단순합니다. 원래 사회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어요. 사회를 이해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자연계열에선 가고 싶은 전공이 별로 없었어요. 공학 쪽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의대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명동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의사의 길을 걷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론 한방, 한의학에 관심을 두었어요.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데, 잘 먹는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뭘까 생각하니 한의학이더군요. 그렇지만 한의학과 커트라인이 높고 한자와 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되었어요.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식품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식단이 한식이란 말이 있어요. 한식을 매개로 인간의 만성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교수님께서는 특히 콩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하셨고, 관련 제품도 출시하셨는데요. 콩에 집중하신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 입학해서 1~2학년 동안 식품이 아니라 일반화학, 일반생물학, 유기화학 같은 공통 기초과목만 배우다보니 전공에 이렇다 할 흥미가 없었어요. 2학년 때, 전공 기말시험을 보지 않고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유럽에 가보니 식품이 그 나라의 문화더군요. 지역의 식자재를 갖고 브랜딩하는 회사도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눈여겨보며, 식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생각을 했어요. 향토에 맞게 오랜 세월 숙성되거나 핵심기술을 이용해 변주되는 것이죠. 저는 후자의 경로, 즉 기능성 식품을 연구하는 길을 택했어요. 그러면 그 가운데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봤을 때, 한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전통식품 중에 콩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셨습니다.
저는 식물성 화합물(phyto-chemical)의 효능을 연구했어요.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연구했죠. 당시엔 이것이 주된 연구주제가 아니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그다지 주목받던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한국에 건강기능식품법이 제정되어 모든 식품공학과에서 기능성식품학 교수를 채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서른 둘에 교수가 될 수 있었죠. 남이 하지 않는 분야를, 한국에서만 하는 주제를, 국내ㆍ외 기초연구나 응용연구를 잘 하시는 분들과 협력하여 탐구를 했어요. 제 주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하고 창의적으로 융합하는 경험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거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두 가지 교육목표가 있어요. 교육의 핵심은 ‘자기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다움은 곧 자기 인생이라는 것이에요. 아래세대로 갈수록 경쟁력이 약해져요. 1세대는 모멘텀이 있었어요. ‘나는 굶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우겠다’는 일념 하에 교육에 많이 투자했죠. 그래서 우리 아버님 세대는 교육을 많이 받고 대한민국을 글로벌 경쟁국가로 만들었죠. 그런데 그분들이 약진한 경험에 젖어 자녀 세대에게 자꾸 가르치려는 것들이 있어요. “너는 나처럼 하면 돼”라는 생각이 그렇죠.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들을 따라하는 것 같아요. 자기 인생에서 본인이 가장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동시에 사회에 이로운 일인가를 고민했으면 해요. 과학자도 철학이 있어야 하고, 주위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공헌을 고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해 제가 강조하는 바는 자신이 관심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평생 그 주제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지겨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죠. 또 하나는,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학생이 되라고 해요. 학문은 배울 학(學)에, 물을 문(問)이잖아요. 무언가를 배웠으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할지 자문해야 해요. 미국에서 공부했어도 이걸 한국인인 나는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해야지, 미국에서 이렇게 했으니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저는 이런 자기다움, 자기의 인생, 자기가 평생에 걸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주제로 삼는 것을 강조합니다.

BOBSNU 대표를 맡게 된 과정과 계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은 영문으로 Agriculture & Life Science라고 불러요. 여기서 농업은 그 땅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요. 오랫동안 그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온 경험과 이야기가 Agriculture인 거죠. Life는 생명, 생활로 사람들이 이롭게 사용하는 거예요. 좀 더 맛있게, 예쁘게, 향기롭게 만드는 거죠. 이를테면 HMR(Home Meal Replacement) 같은 편의식이 대표적인 예죠. Life를 연구하는 것은 굶어죽지 않도록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있고, 식량 문제를 넘어 건강과 행복을 고려하는 것도 있지만, 가치 중심적으로 가는 것도 있어요. 약콩이 나온 배경도 가치 중심적인 것에 있어요. 환경이란 것을 무시하고, 값싸니까 소비한다고 하면 미래는 없어요. 다소 비싸고, 조금 먹더라도 가치 중심적으로 소비해야 해요. 기존에 약콩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원가가 비싸서예요. 수입 콩에 비해 6~10배 비싸고, 대량으로 얻기도 힘들어요. 중국 콩을 가져다가 쓴 두유 제품들이 값은 저렴하나 건강 면에서는 더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연구한 결과를 실제로 사회에 적용해보고 싶었어요. 당초엔 개발까지만 하고 직접 제품을 출시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외부 제조업체들이 동참하질 않더라고요.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죠. 이런 연유로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BOBSNU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약콩두유를 출시하며 기대했던 바가 무엇인가요?
평창의 산학협력부지에 약콩두유 공장이 있어요. 지역 주민들이 여기에 원물을 공급하거나 취업해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인근에 약콩 음식점들이 생기는 것을 기대했죠. 강릉의 초당순두부가 유명하듯, 평창은 약콩두붓집이 있는 거죠. 더 나아가 약콩을 특화해서 얻은 수익으로 대학의 연구에 기여하는 선순환과 상생을 목표로 했어요. 대학이, 농생대가 국내 농산물을 잘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업체에서 약콩두유를 만들고 있어요. BOBSNU가 국산 콩의 소비를 늘렸고, 콩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르면서 농민들의 소득도 많아졌죠. 농민들과 지역사회에 일조하고, 식품 회사들이 이전보다 건강한 재료를 찾도록 따라오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엄마가 딸에게'라는 양희은 씨 노래가 있어요. 너의 삶을 살라잖아요. 자기 삶을 사는 거예요. 이제는 스펙을 쌓고 거기에 시간을 쓰느니, 자신을 브랜드화 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영화의 주인공이었으면 해요. 어떤 소신을 가지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필요는 없어요. 큰 기업에 가서 남을 위해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페이스북은 마크 주커버그에게 엄청난 돈을 줘요. 그 사람에게 돈을 주면 그 사람이 좋은 데 쓸 거라고 생각해서 주는 거예요. 나한테 돈이 온다면 그것은 내 돈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안 잠깐 보유하는 거고, 그걸 가치 있게 써야 해요.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고, 잘 써야 해요.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남들에게 나눠주는 위치에 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실패하면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패의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남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차라리 실패해보는 것도 좋아요. 나의 생각을 따르는 팬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트렌드를 따라가지 말고요.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은 거예요.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면 10년이 지나 그것이 트렌드가 돼요. 자기가 행복하고, 잘 할 수 있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