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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 나의 진로

건축, 사유의 즐거움

공과대학 건축학과 승효상

혜화에 위치한 이로재 건축사무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안을 감추려는 닫힌 공간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그 견고한 철탑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방이 연결되어있는 열린 공간이 펼쳐졌고, 그 곳의 정점에 승효상 건축가님이 계셨다.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로서 한국의 전통성과 현대성이 잘 조화된 집이라 평가받는 수졸당을 짓고,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감독에 이어 서울특별시 총괄건축가를 역임하신 승효상 건축가님. 그의 모습은 그가 내세운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과도 같이 여유로우면서도 배려심이 있었다. 차 한 잔과 함께 시작된 인터뷰는 잔잔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속에서 승효상 건축가님의 신념과 생각을 듣는 것으로 이어졌다. 건축사무소 지하에 있는 검도장에서 매일 아침 7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검도를 하며 자신을 항상 바르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신 승효상 건축가님의 인터뷰를 지금 들어보자.

 

궁극적으로 건축은 신학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궁극적으로 건축은 신학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승효상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건축학과에 들어가셔서 건축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원래 고등학교 때는 신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그러지 못했어요. 그리고 누님의 권유로 건축을 하게 되었죠. 누님이 제가 그림도 꽤 잘 그리고, 공부도 뭐 못하지 않았으니까 건축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누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긴 했지만, 지금은 누님에게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건축을 한 게 내 적성과 너무 잘 맞아서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건축이 내가 하려고 했던 신학과도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교와 대학원에 이어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배움’이 있으신가요?

우리 때는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기가 힘든 시기였어요. 70년대 초에는 온 사회가 어수선해서 제대로 건축을 못 배웠다가 유학을 갔는데 선생님께서 책을 하나 주셨어요. 그 책에 실린 한 건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 건축은 20세기 초에 아돌프 로스라는 사람이 설계한 ‘로스 하우스’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건축이라는 것이 그림을 잘 그려서 건물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작업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생각했어요. 20세기가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건축계에서는 여전히 장식적인 건물이 많았어요. 근데 아돌프 로스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건물을 주창하면서 장식이 없는 건물을 선보인 거죠. 그게 20세기의 모더니즘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돼요. 그는 세상을 바꾸었어요. 건축으로 시대를 혁명한 거죠. 저는 그때, ‘아, 건축이라고 하는 게 예술가가 아니라 지식인이 되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건축은 모양이나 형태나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 시대가 지니고 있어야 할 가치를 생산하는 작업이에요. 이 배움이 나를 굉장히 바꾸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어요.

다른 인터뷰 중에서 제대로 된 건축을 위해서는 철학, 미학 등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건축학과가 보통 공과대학이나 미술대학에 있는데 그게 조금 잘못된 것 같아요. 건축은 공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닌 거예요. 생각해보면 인류가 생기고 집이 먼저 생겼지, 공학이나 예술이 먼저 생긴 게 아니거든요. 공학이나 예술이 없던 시기에도 건축은 할 수 있었어요. 건축가라는 사람이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조직시켜주어야 해요. 그러니까 건축가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아는 게 중요해요.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알아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삶을. 이런 거는 공부할 수밖에 없는데 공부를 하려면, 문학이나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밖에 없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왜 사는지를 알아야 설계를 하니까 철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인문학들을 공부해야 건축의 본질적인 공부가 되는 거예요. 결국에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니까. 예쁜 건물을 만드는 건 건축이라고 얘기할 수 없어요. 공학이나 예술은 수단일 뿐이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삶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건축은 건축인데 굳이 학문에 집어넣는다면 인문학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건축가를 꿈꾸는 중ㆍ고등학생들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저는 관찰력을 키우고, 상상력을 키우고, 추론력을 키우고 창조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런 추상적인 얘기를 해요. 건축이라는 게 쉽게 이야기하면 건축 도면, 평면도를 먼저 그리는 거잖아요. 원래 그건 하늘에서 보는 거예요. 사실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신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건축 도면을 그리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타자화해야 해요. 또 자신의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니까 자신을 객관화시켜야 해요. 자기의 입장을 떠나서 자신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시류에 흘러가거나 하지 말고 자신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가장 중요해요. 모든 사물을 관찰할 때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해요. 또 하나는 건축은 도면을 그릴 때, 축적을 1:100 이렇게 표현하다 보니까 공간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여기에 긋는 1cm가 실제로는 1m가 되니까 1m가 얼마인지 알아야 해요. 세상 크기가 얼마인지, 자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얼마인지, 방의 크기가 얼마인지, 높이가 얼마인지 등 공간 구조에 대해 민감해야 해요. 모든 사람들이 공간 속에 살고 있지만 이런 걸 의식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차이가 있어요.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건축가가 되지 못해요. 특히나 요즘은 도면을 대부분 캐드로 그리는, 더욱 스케일 센스가 없어지는 세대예요. 10평의 집이면 얼마의 크기인지 알아야 하는 거예요. 누가 100평 집을 설계해달라고 했을 때, 100평 집에 대한 감이 없는데 설계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타자화시키고, 공간에 대한 감각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를 타자화시키는 방법은 독서가 가장 효과적이에요. 독서는 정독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남독해야 해요. 그냥 막 함부로 읽는 게 좋아요. 책도 한 번에 한 권을 읽는 게 아니라 서너 권의 책을 갖다가 집에서 읽는 책, 학교에서 읽는 책, 학교 가면서 읽는 책, 다 다른 게 좋아요. 그래야 한 책을 정독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여러 책을 읽으며 자신을 타자화할 수 있거든요. 책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 잠재되어 들어오는 거니까 아무리 남독을 해도 필요할 때는 또 밖으로 나와요. 그게 스스로를 타자화시키는 아주 좋은 방법이에요.

 

자기를 타자화시키는 방법은 독서가 가장 효과적이에요

 

 

자기를 타자화시키는 방법은 독서가 가장 효과적이에요

책을 통해서 인생의 답을 찾는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중ㆍ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 책이 있으신가요?

글쎄, 나는 중ㆍ고등학교 때 사정이 있어서 도서관에서 살았기 때문에 도서관에 있는 책이라는 책은 거의 다 읽었어요. 중학교 때 도서관의 장서 수도 얼마 없었지만 그때 읽은 책들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든가, 「폭풍의 언덕」 같은 책이었어요. 저는 이런 책을 알든 모르든 다 읽었어요. 중ㆍ고등학생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읽는 책을 읽지 못하는 법은 없어요.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책은 다 읽는 게 좋아요. 저는 세상의 모든 책을 추천합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게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말씀을 하신 것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소통을 계속 실천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부산 태생으로, 막 말도 잘 더듬고, 수줍음도 많이 타요. 저는 그런 사람인데 건축은 공공적 작업이에요. 건축은 개인이 자신의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소유가 되면 안 돼요. 그 집을 지나는 다른 사람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땅을 점거하고 세워진 이상 공공의 자산이에요. 그 소유는 시민들에게 있고, 사회의 소유가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자신의 돈을 내고 집을 짓지만 사용권을 얻을 뿐이지, 그 집은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있게 되기에 평생 그 사람의 소유는 아니에요. 건축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렇기에 바른 건축을 하는 게 중요해요. 나한테 설계를 맡기는 사람은 바른 건축으로 설계를 해주겠지만, 내가 하는 건 세상에 있는 모든 집 중에서 지극히 적은 부분이니까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말로써 전하고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퍼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어요. 내가 내 개인의 편리만을 위해서는 살 수 없다는 거예요. 한나 아렌트라고 하는 여성 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개인의 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공의 광장에 자기 자신을 오롯이 투신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위대한 일이다’라고. 내 개인의 인격을 위해서 내가 광장에 나가는 거예요.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면 더없이 좋고요. 내 개인의 내면적인 이유 때문에 하게 되는 거죠.

바른 건축, 좋은 건축이라는 것은 공공의 이익이 최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럼요. 유명한 건축은 만들기가 굉장히 쉬워요. 조금 삐딱하게 만들거나, 요란하게 만들면 돼요. 근데 그런 건축이 좋은 건축은 아닌 경우가 매우 많아요. 좋은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건, 지나는 사람이건, 그 건축을 통해서 마음이 더욱 선하게 되고, 진실 되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좋은 건축이에요. 그런 좋은 건축을 하는 게 건축가로서의 먼저 의무지, 유명한 건축이 절대 먼저가 아니에요. 좋은 건축은 더불어서 같이 즐거워하고, 공유할 수 있고, 공유적 가치를 꿈꿀 수 있어야 해요. 건축가는 건축으로서 돈을 벌려고 하면 다른 직업을 갖는 게 좋아요. 물론 건설회사에 간다거나 해서 건축을 통해 돈을 벌 순 있죠. 하지만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해요. 공공 이익을 위해 투신하는 사람이 건축가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건축가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잘 알고 있어요. 그걸 자기가 모르면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겠어요? 건축가는 돈 없어도 행복해요. 그러니까 건축가는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어요.

이미 많은 일을 하셨고,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로 불리시지만 건축에는 정년이 없다고 말씀하신 만큼 앞으로의 목표도 분명 있으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실수 안 하는 건축을 하는 게 목표예요. 항상 만드는 걸 보면, 항상 실패예요. 건축을 하는 것은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에요. 무슨 제품을 만들어놓고 파는 건축이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누가 의뢰를 해야 시작하는 거고, 건축주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법규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아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공사하는 사람들의 능력에 의해서도 달라져요. 맨 처음에 생각한 게 나중에 완성되어서 나온 걸 보면 틀린 게 수없이 많아요. 뭐 이런 엄청난 싸움을 거친 다음에 나오는데, 완성물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맨 처음 생각과 설계는 얼마나 훌륭했겠어요? 근데 항상 비참한 결과가 나와요. 그런데도 지켜야 하는 가치가 있으면 상관없는데 처음 생각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굉장히 절망스러워요. 제가 보면 저는 대부분 그랬어요. 그래서 늘 건축을 마치고 나면 그 현장을 다시는 안 가요. 앞으로 그렇지 않은 건축을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그 분야의 투사가 되어 꿈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그 분야의 투사가 되어 꿈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건축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건축을 다른 말로 하는 언어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짓다’라고 말해요. ‘짓다’라는 것은 시를 짓거나, 밥을 짓거나, 농사를 짓거나 할 때 사용되죠. 건축을 architecture라고 할 때, 사용되는 tecture가 tektōn에서 비롯되었는데 그게 ‘구축하다’, ‘짓다’라는 말이에요. ‘짓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자신의 사상을 집어넣어서, 자신의 테크닉을 가지고 전혀 다른 걸 창조해내는 거니까 사유과정이 대단히 중요해요. 건축을 하고자 하면 사유의 즐거움을 몸으로 체득해서 가지고 있어야 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물에 대해서 제삼자적 입장을 가지는 게 중요한데, 건축은 어떻게 보면 그런 입장이 되기 때문에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는 위치에 있는 즐거운 작업이에요. 그런 행복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고통스럽죠. 그런 걸 겪을 수 있는 사람이 건축할 수 있어요. 그걸 겪고 나서 건축을 하면 건축처럼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이 없어요. 한때 저 사람은 왜 전생에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건축이 아닌 다른 일을 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위대한 건축가가 되고 싶다면 위대한 투쟁가가 되어야 해요. 투사가 되기 싫다면 건축가를 안 하는 게 좋아요. 투사가 겉으로의 투사가 아니라 내적인 투사예요. 자신의 내면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죠.

글·사진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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