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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 나의 진로

노래처럼 흐르는 시의 아름다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시월’ 등의 서정시로 우리의 감성을 설레게 하였고 ‘태평가’, ‘삼남에 내리는 눈’ 등의 현실 참여시로 우리의 정의를 움직이게 한 황동규 시인. 6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언어를 조탁하여 많은 이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끼친 황동규 시인을 만나 뵌다는 기쁨을 안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종합연구동으로 찾아갔다. 교과서에서 시집에서 문학 잡지에서 글로 뵙던 분과 마주한 순간,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긴장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따라 미소 짓게 되었다. 당신의 영향력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하셨지만, 길지 않은 인터뷰 동안 황동규 시인께서 걸어온 삶의 이야기는 필자를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황동규 시인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연옥의 봄’이라는 시집을 내신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작품을 마무리하신 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물론 시를 쓰고 있지요. 저는 늘 시집을 낼 때마다 이전 시집과는 다른 시야를 확보하려고 해요. 처음엔 다른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다음 시집은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중간에 힘이 떨어지면 작품을 쓰지 않을 생각이지만, 1년 더 쓸 수 있다면 다음 시집이 나올 것이고 아니면 그동안 쓴 산문과 합쳐서 마지막 책을 하나 낼 수 있겠지요. 저는 과거를 반복하는 작품은 쓰고 싶지 않아요.

 

매번 다른 시야로 시를 쓰려고 합니다. 연옥의 봄도 그렇고요

 

 

매번 다른 시야로 시를 쓰려고 합니다. 연옥의 봄도 그렇고요

문학과의 인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그 인연은 고3 때 시작되었어요. ‘즐거운 편지’를 쓰면서부터. 고2 때까지 음악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6.25 사변이 끝나고 서울에 오니 시각적인 즐거움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어요. 명동성당, 시공관(市公館), 음악다방 ‘돌체’는 남아 있었지만 명동 자체가 폐허였어요. 도저히 시각적 즐거움을 엿볼 수 없어서 저는 청각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했어요. 그때 ‘르네상스’나 ‘돌체’에 가면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그 당시 저는 미군 부대에서 쓰던 교범으로 화성악을 조금 봤어요. 그렇게 엉터리 영어로 화성부터 공부했지만, 시공관에서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같이 듣던 ‘김영욱’이란 친구와는 달리 저는 정확히 휘파람을 불지 못하더군요. 일종의 발성 음치였던 거죠. 그래서 음악을 포기했어요. 사실 작곡가는 발성 음치라도 상관없어요. 성악가가 발성 음치인 건 문제가 되지만, 작곡가는 상대방의 휘파람 음이 정확한지만 알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근데 저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음악을 그냥 포기해버렸죠. 고3이 되어서 음악하고 가장 가까운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영문학과에 진학하기로 했죠. 왜 국문과가 아니고 영문과를 택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번역된 것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6년 동안 배운 영어를 사용해 책을 읽고자 영문과에 갔어요. 영문과에 간 특별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에요. 아마 지금 가려고 한다면 국문과에 갈지도 모르겠어요. 요새는 번역되어 있는 책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그래도 영문학과에 갔을 거예요. 새로 나온 책들에 의역, 오역이 있을 수 있어서요.(웃음)

‘즐거운 편지’에는 모순된 매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에는 끝이 있지만, 영원한 사랑이 있는 것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요.

그렇죠. 사랑에 끝이 있다고 처음부터 끝이 있는 사랑은 할 수 없죠. 일종의 모순율이에요. 현대에 영원한 사랑은 없어요. 이것을 6.25 사변 직후 우리의 정황에서 발견했어요. 김소월이나 한용운, 후에 와서는 서정주 선생까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지만 6.25 사변을 겪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영원한 사랑은 없더군요. 그러나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이 있는 것처럼 사랑을 시작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모순율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해결되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독자가 그만큼 성장하게 돼요. 이 작품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썼지만 사실 짝사랑한 연상의 여인이 썼다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에게 받친 것이니까요. 그 사람에게 맞게 쓴 것이니 대학생이 썼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아름다우면서도 아련한, 삶의 진리를 목도한 듯합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셨나요?

짝사랑을 심하게 하면 그래요. 여성의 나이가 더 많은 경우는 참 없었어요. 지금이야 시대가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드물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대학생인 여자에게 시를 받치려고 하다 보니 내 상태가 전부 대학생의 상태가 되었어요. 그분의 마음에 들려면 수준이 높아야 했죠.

 

글을 이끌어가는 힘은 호기심에 있어요

 

 

글을 이끌어가는 힘은 호기심에 있어요

황동규 선생님의 시는 진솔하면서도 고와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예리하게 비판적이기도 하고요. 이런 시를 쓰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시는 점이 무엇인가요?

어떤 -ism, 어떤 주의. 시적인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초현실주의로 끝났어요. 그 후에도 자잘한 것들이 있었지만, 세계시를 풍미한 것은 없어요. 지배적인 -ism이 없는 거죠. 전부 자신의 삶을 가지고 형상화시킨 거예요. 저는 시 속에서 시적 자아나 시인이 규모가 작지만 극적으로 변하는 것을 내세우는 극서정시를 써요. 시 속에서 시적 자아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달리 보게 되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비평가가 제 시의 결말에 가게 되면 형이상학적 전율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초기 시를 제외하고는 시적 자아와 제가 대화하는 시를 썼어요. 대화를 하다 둘 중 하나가 삶의 새로운 구석을 발견해 변하게 돼요. 저는 시를 쓸 때 처음부터 어떻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쓰지 않아서 쓰다가 제가 놀랄 때도 있어요.

작품을 쓰실 때, 기대하시는 독자의 반응이 있나요? 독자는 어떻게 선생님의 시를 읽어야 할까요?

주어진 소재 속에서 시인이나 시적 자아가 어떻게 변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읽으면 될 거예요. 다는 아니겠지만 제 시의 대부분이 그렇게 읽으면 돼요.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거듭나는가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주체가 변하는가에 집중하면 시의 90%는 이해할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문학은 무엇인가요?

참 힘든 질문이네요. 사람들이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을, 혹은 환희하는 것을 제대로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해요. 꼭 아픈 것만 내놓는 것도 곤란하고, 환희하는 것만 내놓는 것도 그렇죠. 인간을 제대로 그려야 해요. 그리고 광의의 ethics, 다시 말하면 넓은 의미로 윤리적이어야 해요. 문학자가 도덕적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윤리적이어야 하죠. 도덕과 윤리의 차이가 무엇이냐? 둘이 공유하는 면적이 크지만, 교집합이 많지만, 도덕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에 집중을 둔 것이고, 윤리는 무엇을 하라는 데 집중을 둔 것이에요. 둘은 상당히 공유하는 것이 많지만,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위대한 문학이 아니에요. 니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중심으로 도덕을 비판했어요. 사회나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건 해야 한다는 것이 윤리죠. 스피노자의 윤리학도 하지 말라는 것보다 하라는 것에 중심을 두었죠. 스피노자가 실제로 한 말인 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명언이 있죠.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지금은 사과나무를 심자.’ 이것이 윤리고, 좋은 문학은 윤리를 가져야 해요.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등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 말이 안 통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최고예요. 지위나 돈을 먼저 생각한다면 삶이 재미없어져요. 제가 젊었을 적에는 이과하고 문과가 구별되기 전이라 집안에서 법대나 의대에 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번역된 책이 없어 외국 서적을 읽기 위해 영문학과를 선택했고, 지금까지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그 당시 고등학교 영어 선생이 되어 문학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학교에 들어갔어요. 당장 1인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 대학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는 과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글·사진조예은 (일부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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