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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이슈이슈!

자유로운 대화를 통한 수업기

김광모 순심고등학교 교사


1. 우리는 문학을 감상하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사범대에 진학해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을 때 한 교육학 수업에서 가드너의 다중 지능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그 강의에서 지능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을 접하고 학습했지만 이 다중 지능 이론만은 특히나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당시 시간 부자였던 나는 그 강의를 수강했던 동기들과 함께 가드너가 제시한 여러 다중 지능들을 각각 우수한 정도에 따라 여러 급간을 나눠 점수화해 보았다. 다음으로 서로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제시하고 이들의 다중 지능 점수를 도출하기 위해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찾아보고 토론했었는데 이 과정이 매우 즐거워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 때문에 다중 지능 이론이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담으로 그 당시 우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하지만 이 다중 지능 이론이 선명히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토록 꿈꾸던 교사가 된 후 많은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학생들 개개인들이 모두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의 여러 지능들이 서로 융합되고 개개인의 각기 다른 서사들이 얽히면서 현재 내가 보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 개개인의 서사가 다 다르고, 관심 있는 인식의 영역 또한 다르며 모든 학생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학교란 교사와 학생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 맺는 곳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은 역설적이게도 국어 교사로서 문학 수업을 진행할 때 큰 혼란을 야기했다. 똑같은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학생들에게 무엇이 맞으며 무엇이 틀린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 해석의 방향성과 옳고 그름에 관련된 고민은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국어 교사가 가지고 있을만한 것이지만 나에게 만큼은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상황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는데 어느 순간 문학 시험 문제를 어떻게 출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시험 원안 제출일이 다가왔지만 출제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평소 문제지나 참고서의 문학 풀이만을 전적으로 믿으며 그 외의 풀이 및 해석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지루한 국어 교사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직접 학생들에게서 해답을 찾기로 했다. 수업 시간에 몇몇의 문학 작품을 제시하고 감정, 상황, 표현 방법 등을 스스로 분석하며 학생들 나름대로 작품을 해석하게 한 후 그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개인의 해석이 모두 그럴 듯해 보였다. 하지만 발표 후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서 놀라운 모습과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표자가 아닌 학생들이 자신의 해석과 다른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발표자의 해석을 다듬어 나갔고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으로 바꾸어 나갔다.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모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 대답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독려하고 질문의 난이도를 조절해 학생들이 쉬운 것부터 대답할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의 성격, 작품에 대한 본인의 의견 등을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이 후의 과정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문학 작품은 옳은 해석과 틀린 해석으로 나누어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형화된 해설지의 설명과 별 다를 것 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그 보편적인 관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의미를 두었다. 하나의 문학 작품에 개개인의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이러한 여러 해석들을 대화 등을 통해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으로 승화하는 과정들을 수업 시간에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쏟아내는 생각이나 의견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것이었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해석들을 경청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을 담아낼 수 있는 보다 큰 집단의 해석을 만들어 나갔다. 학생들의 보편성을 찾아내는 능력을 확인한 후 수업 시간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발표, 질문, 의견 등 모든 말들이 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재료가 되었다. 가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이라 쉽게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는 의견이나 생각들도 문학 작품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를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주는 귀중한 것들이었다.

이 후 나는 문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정답과 오답에 대한 고민을 떨쳐낼 수 있었다. 나의 문학 수업은 정형화된 틀에 맞춰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외우고 작품을 구절구절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수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아가 문학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인식하고 감상하며 보편적인 해석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바꿀 수 있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은 존중하는 자세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의 극한을 맛보았다.

시험 출제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작품 구절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출제할 때 다양한 관점 중 하나의 관점을 선택해 제시하고 그 관점에 맞게 작품을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 모든 국어 교사들이 그렇게 문항을 출제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과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어떠한 문항에서 제시하는 작품 해석의 관점은 작품을 해석하는 절대적이고 정형화된 관점이 아니며 다양한 관점 중 하나라는 것을 학생들과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이렇게 출제된 문항에 대해 이야기하며 문제의 정답은 맞혔지만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수업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문학 시험을 치르면서 제시된 관점에 따라 작품을 해석하고 문항의 정답을 맞히는 사고의 과정은 중요하다. 이는 내신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하고 대학 선택의 폭을 넓혀 진학에 있어서 조금 더 큰 자유로움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항에 제시된 관점이 작품을 해석하는 유일한 관점이 아니라는 사고를 지니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이는 문학 작품을 통해 개인의 사고에 자유로움을 부여하고 문학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작가 개인의 생각과 가치들을 넘어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며 살아가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자신의 자아를 분명히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모두에게 저마다의 서사가 존재하며 저마다의 삶의 이유를 형성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들과 긍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것. 이는 문학 작품을 파편화하고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여 정해진 해석만을 따르는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통해 인생에 대해 성찰하기를 희망한다. 교과서와 시험지에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을 분석의 대상이 아닌 감상 및 인간에 대한 이해의 행위로 인식하는 학생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보다 보편적인 가치도 대화를 통해 찾을 수 있는 학생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2. 대화를 통한 독서

학교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담임 및 국어 교과 담당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매년 6월과 9월 교육과정평가원의 모의고사가 치러지는 날에는 문항을 분석하고 학생들과의 수업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기억들이 많다. 과거 단편적인 지식의 점검에 그쳤던 국어 영역의 문제들은 날이 갈수록 진화했고,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내 관점에서 문학의 시험 난이도는 쉬워 졌으나 독서 지문, 그러니까 과거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비문학 지문의 읽기 난이도는 극도로 상승했다. 지문의 난이도만 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내용 확인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제시된 외적 준거들은 터무니없이 읽기 어려워져 갔고, 과학 지문을 분석할 때에는 처음 접해 보는 정보의 향연에 머리가 아득해질 때도 있었다. 수업을 하기 위해 제시된 지문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겨운 일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본문 내용의 이해를 위해 과학 교사를 찾아가 그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자문을 구하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들은 큰 문제로 다가왔다. 평소 학생들에게 국어 과목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한 것들이 있다. 국어 과목은 수학과 달리 문제를 풀기 위한 선제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사회나 과학과 달리 문제를 풀기 위한 이론과 공식이 필요 없다고 숱하게 이야기해 왔었다. 평소 국어는 문법을 제외하고는 선제적 지식이 없더라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만으로 모든 문제들을 읽고 풀 수 있기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과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국어 교과는 다른 학문을 수행하기 위해 대화와 쓰기, 읽기의 수준을 높이는 교과이며 논리적으로 사건과 대상, 상태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거짓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그 근거를 찾아 가는 방법에 관련된 과목이라고도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왔었다. 하지만 몇 년간 지속된 독서 지문 난이도의 향상은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던 국어 과목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결과를 가져 왔다. 독서 지문은 그 자체로 해석과 분석의 대상이 되었으며 나아가 학습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먼저 내 독서의 수준이 낮은 것인지 지문의 내용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점검이 필요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예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만 했지 선뜻 읽지 못했던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라는 책을 읽기로 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고 한 권이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인데 읽기 어렵다기 보다는 ‘다’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읽은 후의 감상은 의외로 간단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과학과 관련된 책도 읽어 보기로 했다. 학교 도서관을 찾아가 유명한 과학 도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먼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을 찾아 읽었고 이후 더 깊이 있는 전공 관련 도서들도 읽기 시작했다.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그러면 왜 그렇게 수능의 읽기 지문은 어렵게 생각되는지가 더욱 궁금하게 여겨졌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1500자, 많으면 1800자 내외의 과학 독서 지문은 왜 훨씬 더 긴 과학 관련 도서보다도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한 문장과 한 문단에 적혀있는 정보의 양이었다. 독서 지문은 분량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문장들이 새로운 정보들로 가득했다. 너무 많은 정보들로 글의 내용을 인지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내 대부분의 국어 교사들이 과학 기술 지문의 내용 인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국어 교과는 다른 학문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거나 국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창작 활동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내 자신의 교과 교사관에 크게 위배되었다. 하지만 많은 석학들과 우수한 교사분들이 참여해 출제하는 수능을 일개 교사가 어찌할 수는 없었다. 나는 빠르게 현실과 타협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나를 위한 수능 독서 지문의 분석을 위한 방법들을 고안해야 했다.

하지만 나 혼자서 제한된 시간 내의 독서 지문 분석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학생들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독서 지문 수업을 진행하기 전 먼저 지문을 분석해 학생들에게 소개했고 나의 분석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가감 없이 듣기로 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믿고 의지하던 교사의 해석에 반하는 자신의 분석을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은 곧 자신의 해석과 차이가 있는 교사의 견해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지문의 내용을 기반으로 대화를 나누며 지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각 문장들을 읽으며 문장이 의미하고 있는 바와 앞뒤의 맥락을 통해 각각의 문장이 의미할 수 있는 것들까지도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지문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지문의 내용을 해석하는 ‘독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외적인 지식을 제외하고 독서 지문만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문과 관련된 책의 읽기를 촉진했다. 나 자신의 논리가 무너지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 학생들도 지적인 대화를 위한 독서의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지문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내가 서로 자신의 논리를 쌓고 대화를 나누면서 얻은 것들이 참 많다. 가장 큰 것은 하나의, 혹은 획일화된 지문 분석 방법을 찾는 것에 대한 무의미함을 깨달은 것이다. 독서 문제를 출제하기 위한 지문들은 한 사람의 글이 아니며 글의 구성 방식 또한 모두 달라 획일화된 해석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대신에 글을 읽고 스스로 글에 제시된 정보들을 이해하고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함을 깨달았다. 너무 당연한 말같이 느껴지지만 이번에도 글을 정확하게 읽고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대화를 활용했다는 것이 달랐다.

평소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른 교사의 공개 수업을 참관하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 교육은 학생들의 발화에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교육을 아득히 뛰어 넘는 사교육 시장에서도 일방향적인 지식의 전달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교육의 장에서 학생들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학생들이 궁금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논리적 사고를 위한 도구 교과인 국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교사가 본문을 읽고 분석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훌륭한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 스스로 글을 읽고 분석하는 힘을 기르도록 기다려 주기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틈틈이 치러지는 수행평가 등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과 대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글을 읽고 나름대로 분석한 것들을 먼저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학생들은 나와 대화하기도 하고 때때로 자기들끼리 대화하면서 글을 분석하는 능력들을 길러갔다. 더불어 자신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설명과 질문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발화를 돌이켜보고 수정해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논리도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법을 알아갔다. 언어로 구성된 논리는 또다른 논리로 깨어질 수 있음을 깨닫고는 겸손함도 배웠다. 서로 존중하는 태도만 지닌다면 이 모든 것들을 학생들은 스스로 해 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매일 보는 학생들이지만 새삼스럽게 이 학생들이 더 훌륭하게 느껴졌다. 글을 읽고 분석하는 능력을 정확하게 수치화할 수는 없었지만 수업을 잘 따라왔던 학생들의 읽기 능력과 속도 등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나아가 어떠한 지문이 있더라도 두려움을 지니고 그 지문을 접하기 보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변한 것이 가장 큰 성과로 다가왔다.

대입 기간이 끝난 후 수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면접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학생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큰 보람을 느꼈다. 이후 나 자신의 말로만 수업 시간을 가득 채웠던 과거를 반성했다. 이제 지식은 여러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굳이 수업 시간에 나의 지식을, 독서 지문에 대한 나의 해석을 전달할 필요가 없었다. 학생들은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며 나는 그냥 그 학생들의 능력을 믿고 수업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3. 국어 과목의 정체성

고등학교의 여러 교과 중 과학처럼 그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 되는 과목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어와 영어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어도 내신 시험 때문에 고등학생들에게는 그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결국 영어를 학습하는 이유는 세계 공용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진행하고 좀 더 깊이 있는 학문을 탐구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나는 국어 교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말 문법의 정교함에 대해서 학습하고, 문학으로 표현된 아름다운 감정과 서사를 접하는 것도 결국은 대한민국 안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한국인들의 사회 문화적 가치를 습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조금 더 명확한 의사소통에 참여하고 그러한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함에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어나 문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교직을 하면서 서로 다른 다양한 교사관 및 교직관을 가질 수 있지만 나는 국어 교과가 도구 교과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타난 다양한 지식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형성된 공감대 안에서 예의를 지켜가며 표출할 줄 아는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국어 교과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 생각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 또한 많은 국어 교사들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찾은 방법은 대화였다. 대화는 말하기도 중요하지만 듣기도 말하기와 더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학 지문이든 독서 지문이든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말하기와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기,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등 대화를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봐 왔고, 앞으로도 내 국어 수업은 지금까지 경험들을 토대로 지속할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경북 지역, 남자들이 말 없기로 소문난 곳이다. 신입생과 담임으로서 첫 상담 때 간단한 자신의 희망 진로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교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머리에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처음 대화를 통한 수업을 진행할 때 과연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 많이 표현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말하기에 적응했고, 타인의 말을 듣는 것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이후는 앞서 언급했듯이 정말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학생들은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다. 이 지역 남자 친구들이 무뚝뚝하다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간 말 할 기회가 없었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기회가 적었던 것뿐이다.

세상의 많은 오해들의 시작 대부분은 언어적인 표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표현 하나가 작은 오해를 불러오고 이어지는 소통에서도 이를 풀지 못해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일들이 많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긍정적인 사회를 구성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현재보다도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위해 언제나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든 국어 선생님들, 모든 교과 선생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국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십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입시를 위해 읽을 뿐, 책을 가까이하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진로와 관련 없는 문학은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가서 취미가 독서, 소설 읽기라고 말합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수업이 재미있었습니다. 문제집에 나오는 문학 작품을 정해진 대로 해석하지 않으셨습니다. 학생들에게 구절이 상징하는 바를 묻고선, 대답에 맞추어 작품을 해석하셨습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학생의 답이 작품의 의미로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정해진 해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석의 방향에 따라 문제집의 정답도 틀릴 수 있음을 확인하며 껍데기를 깨서 문학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후에 어떤 책을 읽더라도 제 생각에 귀 기울이게 됐습니다. 제가 그 책의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 내야 한다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제 생각을 길러주셨습니다. 제가 독서 지문에 관해 질문을 드리면 그 텍스트에 근거하여 추론적으로 답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배경지식을 가진 것이 아닌, 오직 지문의 내용을 근거로 질의가 오갔기에 저로서는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논리 대 논리로 대담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떤 질문이 있으면 단순히 여쭙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의문이 남았는지 주어진 지문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논리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문장 단위로 글을 해체, 논지와 논리 전개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글을 대하는 제 생각이 길러졌습니다.
제가 책을 읽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철학을 다루는 지문에 대해 질문을 드렸는데, 선생님께서 그 철학자의 책을 언급하시면서 지문에선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의미를 해설해 주셨습니다. 여러 예시와 탄탄한 논리로 설명하시는 것을 들으면, 마치 그 책을 다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철학자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도서관에서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또, 수업 중에 국문학사를 언급하시며 각 작품의 의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언급하신 책들을 찾아 읽으며 역사와 사회를 개인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으로 찾아 읽으면서 어느새 책과 친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영향으로 읽게 된 책을 통해 저는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학생이 되었고, 진로 희망도 바뀌었습니다. 또, 매주 소설을 읽어오는 교양 수업을 수강하며 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입시로 점철된 저의 삶에 정해진 해석이 없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금 자유롭게 사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재학생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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