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영역 바로가기

교육계 이슈이슈!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아 떠나는 수업

박경란 숭덕여자고등학교 교사



1 ‘쉼’이 있는 수업

저는 1993년도에 시작하여 사립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 지도를 오랫동안 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 온 학생들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이 마치 골인 지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운동선수들의 결정적인 순간과도 같기에 예민함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임은 쉽게 공감될 것입니다. 때로는 이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포기하고 마는 학생을 보면서 너무 슬펐습니다. 저도 대한민국에서 팍팍한 교육의 과정을 거친 사람이지만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쉼’이 되는 수업을 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이 저에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교육청에서 ‘꿈두레 공동교육과정’을 실시하고자 한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꿈두레 공동교육과정이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인근 지역 학교 간 상호 협력하에 운영할 수 있는 인천형 공동교육과정이었습니다. 이 교육과정에 관심이 끌렸던 것은 내가 수업을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점과 그에 필요한 전문 강사를 초청하고, 학생들에게 간식과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을 읽고, 이런 인문학 수업을 학생들에게 적용하여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이 과정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인문학 감수성을 통해 학생들 마음에 ‘쉼’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3학년 윤리 교과 담당 교사였기 때문에 수업의 대상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만 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고, 타학교도 동학년 학생들로 수강 신청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수능 시험 과목에 들어가지도 않는 인문학 교양 수업을 누가 신청할까?’하는 염려와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밴드로 두 개 학교가 일정을 맞추려니 주말을 이용해서 강좌를 개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해야만 했는데, 이로 인해 가족들한테도 눈치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3 학생들과 입시 교육이 아닌 인문학 수업을 한다는 기대감이 더욱 컸기에 이런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고교와 최대 15명의 인원으로 2018학년도에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걱정은 ‘고3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교양 수업으로 진행하는 이 수업을 학생들이 빠지지 않고 잘 참여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3일을 빠지면 자동으로 미이수가 되는 수업이어서 ‘안 나오면 그만이지’하고는 학생들이 자칫 쉽게 포기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작할 때부터 ‘수강 신청을 한 학생 중에 한 명이라도 이수자가 나온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업의 목표를 ‘학생들이 쉼을 통해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회복하고, 타인의 소중함도 알게 되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갈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라고 정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타인 지향적인 삶에서 무한경쟁에 몰려 자신의 예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잊고 지내는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그 마음을 상기시키자는 한가지 소망으로 수업을 출발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수업을 진행한 지난 4년 동안 단 한 명의 미이수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진 1] 수업을 시작하며

2 촛불을 켜세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저의 소망을 실천하기 위해, 강의실 수업을 할 때면 자신의 촛불을 켜서 앞에 두고 끝날 때까지 바라보며 활동하도록 했습니다. 수업 전에 강의실에 힐링 뮤직을 잔잔하게 틀어놓았고 강의실에 도착한 학생들은 자신의 촛불을 켜고 앉아서 그날 활동할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겼습니다. 또 토요일에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에게 자신의 생활을 나누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지낸 이야기를 하면서 고3 생활에서 다가오는 압박감을 토로하며 우는 학생들이 생겼고, 교사도 따라 울고, 친구들도 공감하고 함께 울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강의보다 같은 고민을 하는 또래 친구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훨씬 소중하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마음을 열지 못했던 친구들도 다른 친구의 진솔한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수업이 3회차 정도 진행되었을 무렵에는 모두 마음 열기가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교과 수업을 할 때도 교사인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진솔하게 먼저 마음을 열고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들과 교감을 이루어 수업이 잘 진행된다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서로 마음이 열리니 우리가 모이면 그 자리는 언제나 따뜻해졌습니다. 교사의 계획된 강의는 중요하지 않았고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자연스럽게 웃고 울고 공감하는 그 자체가 가장 좋은 인문학 수업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사진 2] 자신의 촛불을 켜고 수업하는 모습

3 나는 누구인가?

30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수행과제를 준 적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은 제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는데,“선생님! 혹시 ‘나는 누구인가?’ 수업하셨던 샘 아니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이 주제를 교직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목표로 삼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글을 써오도록 과제를 주었고 이를 토대로 친구들에게 자기를 소개하도록 수업을 진행했으며, 친구의 발표를 경청하면서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질문도 하고 거기에 답변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도록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인스타그램의 형식, 웹툰 형식, 수필형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책 한 권을 가지고 와서 친구들에게 그 실물 책을 보여주면서 책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설명하도록 진행하였는데, 학생 자신이 영향받은 책을 통해서 진로 선택을 결정했던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의 장기를 친구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인문학 콘서트’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각자 원하는 형식으로 준비하라고 했더니 3중주를 선보인 학생들도 있었고, 드뷔시의 달빛을 피아노 독주로 멋지게 보여 준 친구도 있었으며, 중창과 율동을 선보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문학 콘서트 수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해 준 친구들 덕분에 수업은 매우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미술 심리 치료 전문가를 초청해서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학생들이 그린 그림에 대해 전문가의 해석을 들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미술 전시회도 함께 관람하면서 작가의 일생을 작품으로 보고 느끼고 감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과 친구들은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토론 형식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사진 3] 나를 찾기 위한 활동

4 숲 체험을 통한 인문학적 감성 키우기

공간이 주는 교육효과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들은 12년 동안 ‘숲 체험 교육’을 함께 하면서 자연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고, 우리 학생들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숲을 교실로 삼아 수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습니다. 마침내 이 수업을 통해 이를 실천하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교 근처에 대공원이 있다는 사실이 행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연 숲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훨씬 밝고, 명랑하고, 행복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숲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일찍 장소에 도착해서 나무 향기를 맡으며 산책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은 편안했습니다. 코로나19로 공원이 폐쇄되는 날이 있었으나 코로나19에 굴하지 않고 공원이 개방하는 날을 미리 체크하여 숲에서 하는 인문학 수업을 계획한 대로 모두 진행하였습니다. 봄 숲 산책으로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고마운 나무 이야기와 딱따구리 숲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다양성을 배웠고, 공생이라는 주제로 나무와 벌레, 새들이 함께 공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직접 관찰했습니다. 저와 학생들이 숲에서 수업할 때는 나무, 풀, 벌레, 흙 등 우리 삶이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숲에서 하는 인문학 수업 시간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감상문을 제출했는데, 그것을 읽다 보면 학생들 모두 공통적으로 ‘자연의 모든 것은 나와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점을 깨달았음’을 볼 수 있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이전보다 겸허해진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진 4] 숲속 인문학 수업

5 책갈피처럼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이해인 수녀님의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라는 시집을 선물로 나눠주고 ‘자기를 닮은 꽃 시’를 찾아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낭독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에 꽂아둘 책갈피를 만들어보도록 했는데, 그 의도는 책의 페이지를 쉬어가도록 하는 책갈피의 의미처럼 삶에도 ‘쉼’이 꼭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의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은 더욱 병들고 피폐해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쉬었다 가면서 자기도 돌아보고 주변도 살펴보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수업의 작은 소망이자 목표였습니다.

어느 해는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이 수업했던 장면들과 느낌을 그림과 글로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교사인 저에게 선물로 주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이 있었던 그날 저녁에 일기를 썼던 내용이 담기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은 누구에게 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사진 5 종강 후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감상을 책으로 만들어 교사에게 선물한 내용의 일부]

3학년 때 선생님께서 진행하신 공동교육과정 수업은 힘든 수험생활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따뜻한 마음을 채워갈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인문학의 가치를 배우고 느낄 수 있게 해준 수업이었습니다. 책 읽고 토론하기, 숲 체험, 인문학 특강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수업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그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인문학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한 주간의 일상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대화 시간에는 학생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기도 했고, 지역사회의 문제와 사회적 소수자 문제 등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 문제들에 관해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저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더 밝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은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의 근간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몸소 느낄 수 있게 해준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선생님은 제가 사교육 없이 학교 안에서만 면접을 준비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학교에 면접 준비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모아 모의 면접을 진행하시면서 학교에 면접 준비 프로그램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면접 준비과정에서 선생님께서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같이 계속해서 제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물음을 던지셨고, 저는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해놨던 사고의 틀을 깨고 점점 더 나은 답변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주변에는 학원에서 면접을 준비한 친구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제가 학교에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제시문 기반 면접을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더욱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박경란 선생님은 누구보다 학생들을 생각하시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하시는 분이기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재학생 S

퀵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