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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입 제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 가치 : 공정성,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

새로운 대입 제도가 갖추어야 할 기본 가치 : 공정성,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1)
우리나라에서 대입제도는 온 국민이 관심을 쏟는 중요한 제도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가 개인의 출세는 물론 집안의 명예와 위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비록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12년 동안 대학 입시라는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대입제도는 공교육에도 큰 영향도 미친다. 국가 차원에서 정한 교육과정과 학교 구성원이 정립한 교육 비전과 방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대학, 특히 소위 명문대가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느냐가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적으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지만, 대입 결과가 학생의 미래 삶을 좌우하는 만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대입제도가 우리 공교육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현실적인 영향력을 생각하면, 남은 과제는 대입제도를 잘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대입제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무엇이 중시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대입제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화해 온 역사적 산물이다. 물론 앞으로도 대입제도는 교육 및 사회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해갈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성과 지향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서남수와 배상훈(2022)은 대입제도가 가진 신분 제도적 성격과 교육제도로서 역할을 충분히, 균형적으로 고려해서 대입제도를 만들고 운용해야 하며, 대입제도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여기서는 이를 하나씩 설명하고 앞으로 대입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한다.
1. 역사적 산물로서 공정성
우리나라 대입 제도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인 공정성은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즉,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의 변화와 교육의 역할을 살펴보아야만 우리 국민이 왜 그토록 공정성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계층 질서 변화와 관련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은 일제의 식민 지배와 1945년 광복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시작하면서 조선 사회를 지탱해 온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광복과 함께 일제가 떠난 자리를 누군가 채워야 했다. 이 시기에 사회적 계층 이동을 위한 수단이자 엘리트 충원의 관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당시에는 국민 모두가 가난했고, 사교육도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분이나 출신과 관계없이 누구든지 노력하면 명문대에 갈 수 있었고 명문대 입학은 곧 출세를 의미했다. 이 시기 대입 제도는 옛날의 과거 제도처럼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신분 제도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담당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시험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즉, 대입제도에서 공정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한편 1990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큰 충격을 주었다. 사회적, 경제적 중산층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 양극화가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사회든 부모가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한국 부모들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희생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사교육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교육은 내 자녀가 시험을 잘 보게 하고, 다른 집안 자녀를 앞서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고소득층일수록 고액의 사교육을 받을 여력이 있고, 사교육이라는 매개를 통해 교육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로 이어진다.
최근 이런 현실을 보면서 출발점에서의 기회균등만으로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즉, 시험에서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절차적 공정성을 넘어 결과적 공정성까지 보장할 수 있을 때,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될 수 있고 사회 정의가 구현된다는 주장이 대두한 것이다. 종합하면, 그것이 절차적 공정성이든 결과적 공정성이든 공정성은 대입제도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구가 되었고, 앞으로도 대입제도가 지향할 핵심 가치로 인식될 것이다.
2.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교육적 타당성
우리 사회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만으로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험이야말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입에서도 점수를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강력한 믿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점수에 모든 걸 거는 경쟁 시스템과 성적에 기반을 둔 학생 선발은 교육적 한계가 분명하다. 우선 고차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등은 대학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자질과 역량임에도 이를 시험으로는 평가를 하기 어렵다. 응시자별로 서열을 매길 수 있는 객관적 점수로 나타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런 역량은 중요함에도 선발 시험에서 종종 제외된다. 또한 일반 사람들은 응시자의 글쓰기 능력을 보는 논술 시험이나 심층 면접을 통해 학생의 성품과 인성 등을 알아보는 구술식 면접은 시험과 비교해서 객관성이 떨어지고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대입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중시할수록, 교육적으로 중요한 역량은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험에서 배제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보면, 공정성과 교육적 타당성은 함께 달성하기 어려운 가치라고 할 수도 있다.
사회 정서적으로 공정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정책적 관점에서 대입제도는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 교육적 타당성을 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입제도가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입 전형을 공정하게 적격자를 선발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해서 공정성을 중시하고 교육적 타당성을 도외시한다면 고교 교육의 황폐화는 뻔한 일이다. 실제로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모집 비중을 확대한 결과,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종합전형은 약화되었다. 고교 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이 거둔 학업 성과, 진로 관련 활동,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 가진 경험과 성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선발하는 방식이 줄고, 획일적 평가를 통해 모든 학생에게 하나의 점수를 부여하고 한 줄 세우기를 해서 선발하는 방식으로 늘어난 셈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일부 부작용이 생겼다고 점수 중심 정시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대입 제도는 고도의 공정성이 요구되는 선발 도구여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입제도가 학생의 참된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는 교육적 타당성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3.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
헌법 제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이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규정을 적용하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대학이 누려야 할 자율의 영역이다. 또한 국가는 이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정부는 대입제도가 미치는 교육적, 사회적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대학의 입학 전형 운용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대입제도는 대학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 제도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대입제도에 개입한 이유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대입에서 공정성을 추구한다는 명분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정부의 개입과 대학의 자율이 대립하거나 충돌하면, 대체로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면서 헌법이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입 전형에서 대학의 자율은 위축되는 길을 걸어왔다.
대입에서 대학이 온전한 자율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데에는 대학의 책임도 있다. 대입 제도가 교육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큼에도 불구하고, 학생 선발을 대학이 가진 권리로만 생각해서 대학의 이해만을 반영하려고 했다는 진단이 있다. 또한 대학들이 대입 전형을 통해서 또 다른 헌법 가치인 교육 기회의 균등한 보장과 사회통합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대입에서 대학의 자율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입에서 대학이 가지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정부보다 크다. 대학이 학생 선발의 당사자이고 전형을 운영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입제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변화가 중요하다. 대입 전형을 적격자 선발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공익, 특히 공교육 정상화와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제도적 장치로도 이해하는 것이다. 대학이 그런 자세를 보이면 정부와 사회는 대학을 더 신뢰하고 더 많은 자율을 부여하자고 나설 것이다. 즉, 정부가 개입할 명분을 원천적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4. 세 원칙의 균형과 조화
앞서 제시한 세 가치는 각각의 맥락에서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다른 가치가 훼손될 수 있음을 역사가 보여주었다.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예컨대 수능 점수 중심의 학생 선발을 대폭 확대하면, 대입제도의 교육적 타당성이나 대학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처럼 대학 간 서열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즉 수능 중심 전형을 확대하면, 대입 단계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대입제도가 가진 신분 제도적 특성은 더 강해지는 것이다. 또한 수능 점수로만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전형을 급격히 확대되면, 학교 수업이 수능 시험 대비 위주로 운영될 수 있고, 수능 대비에 특화된 사교육에 교육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대입제도가 형식적 공정성에 집착해서 소수 집단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반면 대입제도가 교육적 타당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면,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역사적 교훈은 교육적 타당성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학부모나 국민이 대입제도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러한 대입제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학이 수학 적격자 선발을 이유로 사교육을 유발하거나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어렵게 하는 입학 전형을 운용하면, 사회는 대학의 자율이라는 가치를 불신하고, 제도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대입제도는 공정성, 교육적 타당성, 대학의 자율성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진화해왔다. 어떤 가치의 과도한 추구로 셋 사이에서 불균형이 생기거나, 대입과 관련된 어떤 사회적 문제나 부조리가 발생해서 어느 하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여겨지면, 대입제도를 바꾸라는 사회적 요구가 어김없이 분출했다. 따라서 대입제도를 개편하고자 할 때는 항상 이 세 가치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교사, 학부모, 대학 등 대입제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과 지향점을 관련 집단의 협조와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5. 결론: 대입 제도의 신분 제도적 속성과 교육제도로서 역할
지금 우리가 운용하는 대입제도는 긴 역사를 통해 발전시켜 온 산물이다. 원칙적으로 평가는 배운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입제도는 본래 교육제도의 하나이고 또 교육제도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가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명문대에 입학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과거에 급제한 것처럼 사회적으로는 신분의 상승을 의미하고 경제적으로는 부귀를 얻는 기회를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명문대 입학은 공교육 정상화나 사회통합 같은 거대한 사회 담론에 앞서는 개인 차원의 원초적 욕망이자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분이나 계층 이동을 위한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 세계에서 대입제도와 관련된 어떠한 교육적 담론과 논리도 힘을 잃는다. 즉, 명문대 진학을 통해 자녀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강렬한 욕구가 존재하고, 소수만 승리자가 되고 대다수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신분 제도적 속성이 모든 학생의 성장을 추구하려는 교육 제도적 성격을 압도한다.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대입제도를 교육제도만 바라보고 개혁을 추진한다면, 정책은 현실에서 유리되고 왜곡된 결말을 낳을 수 있다. 우리가 대입제도를 설계할 때, 교육적 타당성 못지않게 절차적, 결과적 공정성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도를 설계할 때 현실 인식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입제도가 가진 신분 제도적 속성을 중시해서 오직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최고의 원칙으로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 대표적인 사례가 대입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수능 점수 위주의 정시 모집을 늘리고, 수시 모집을 줄이도록 대학에 요청했던 사례다. 이러한 정책은 객관적인 점수를 바탕으로 한 줄로 세워서 평가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대중의 생각을 반영한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은 대입제도가 불공정하다는 불만을 일시적으로라도 잠재울 수는 있다. 하지만, 대입제도와 정책은 신분제도의 속성을 반영하는 정책 프레임에 깊이 빨려 들어갈수록 점점 더 신분 제도적 속성이 강해지는 악순환을 맞을 것이다.
대입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교육적 타당성이다. 즉, 대입제도가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미칠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학생이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과 성품을 길러주는 데 도움을 주는 제도가 아니라면, 교육제도라고 할 수 없다. 형식적 차원에서 공정하게 보이지만 교육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대입제도는 교육제도가 아니라 냉혹한 신분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입제도가 교육제도로서 제도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이 원하는 공정성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대입제도를 개편할 때는 대입제도에 내포된 신분 제도적 속성, 즉 대중이 폭발할 수 있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세심히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대입제도에서 공정성과 교육적 타당성은 어느 하나를 양보하기보다는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대입제도 개혁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대입제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와 교육이 안고 있는 많은 모순적 상황 속에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앞으로 대입제도를 개편할 때는 현재의 제도를 존중하면서, 공정성, 교육적 타당성, 대학 자율성이라는 세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1) 본 원고는 ‘서남수, 배상훈(2022).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거나 수정, 보완한 글임을 밝힌다.
※이곳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