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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와 대입전형,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까?

1. 공교육의 변화된 양상 : 내적 기제와 외적 기제
우리나라는 교육에 관한 논의와 실천이 ‘기-승-전-대입’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여러 층위의 실천이 있었지만,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희망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과정 아닐까? 희망은 여전히 있다.
우선은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를 개선하고, 혁신하려는 학교 교사들의 실천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수행평가가 도입될 때, 교사들은 가뜩이나 바쁜데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도입이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과목 특성상 지필고사를 줄이고, 수행평가를 늘릴 수 있도록 평가의 자율성을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근래 들어 다양한 교과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필고사보다는 과정중심평가나 수행평가가 수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불일치 현상을 성찰하면서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를 강조하는 정책과 실천의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온정주의, 부풀리기, 일부 상위권 학생 중심의 기록, 형식주의와 같이 생활기록부를 작성했던 관행을 반성하면서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과정과 수업이 바뀌지 않으면, 당연히 평가와 기록에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강의식, 주입식 수업을 진행한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와 기록이 가능할 것인가? 기말고사가 몇 점과 상대평가 관련 정보가 주어지고, 학생에게는 경청 내지는 성실 등의 ‘클리쉐’가 생활기록부에 담길 수밖에 없다.
교사 스스로 교과의 벽에 갇혀 ‘각자도생’하는 방식의 수업은 위험하다는 인식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같은 학교에서 A교사는 문제풀이 수업을, B교사는 토론 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다. 마치 축구 선수가 작전도 모른 채, 열심히 운동장에서 뛰는 방식과 유사하다. 수업과 교육과정에 관한 비전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고, 교사 간 편차가 발생하는 수업 방식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계란판 속의 계란’처럼, 교과와 학년의 담벼락을 세우면서 현란한 개인 플레이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을 원하고, 바라고, 기르고 싶은가’를 논의하고, 비전을 정립해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의 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정리해야 한다.
최근 학교에서는 교원학습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있다. “바쁜데 언제 모여서 공부하냐”며, “교과 협의록이나 대충 작성하고 끝내자”는 형식적인 실행의 양상을 보이는 사례도 있지만, 각자의 수업을 개방하고, 나누고, 공유하면서 주제통합수업 내지는 융합수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혁신학교의 문화가 일반 학교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면서, 교사의 반성과 성찰의 내적 기제가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전문성 없이는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외적 기제 역시 공교육의 변화에 일조하였다. 대입 체제의 변화가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의 변화로 이어진 면도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되거나, 수능 점수를 활용하지 않거나, 수능 점수의 비중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 ‘한 줄 세우기’의 철학에서 벗어나 대학의 인재상에 비추어 맞는 학생을 다양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선발하기 시작했다. 대학 스스로가 대학의 지속가능성이라든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인권조례의 도입 이후, 고등학교에서도 방과 후 수업이라든지 야간자율학습에 선택권을 보장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러한 외적 기제의 변화는 고등학교라고 해도 학생들을 교실이나 독서실에 가두어 놓고, 방과 후 교과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양적으로 많이 시킨다고 해서 대입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과 교훈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필자의 학창 시절과 교사 시절을 돌이켜보면, 일반계고등학교는 정규 수업 1라운드, 교과 보충수업 2라운드, 야간자율학습 3라운드를 거쳐야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견고하게 형성된 일반계고등학교의 문화적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가 동아리활동, 학생자치활동, 독서활동, 체험활동 등은 대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서로만 기록될 뿐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실제와 기록의 진실한 일치를 위해 충분히 보장해주고 있다.
이른바 승자가 많은 것을 누리는 ‘메리토크라시’의 원리는 국가가 관리하는 공개경쟁 시험체제로 압축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반드시 누리고, 경험하고, 체험해야 할 일들을 대학에 가서 맘껏 해도 늦지 않는다는 식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유보시켰는가? 그런데, 대입에서 성적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교 활동 전반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대입 전형이 변화되면서 “유보”가 아닌 현재 해봐야 할 “경험”의 범주가 늘어났다. 이러한 양상은 ‘대입전형’이라는 평가의 ‘꼬리’가 교육과정과 수업의 ‘몸통’을 흔들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 고교학점제의 의미와 변화
2025년 전면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는 교육적 의미와 별개로 논란과 쟁점이 존재한다. 교원수급의 현실적 어려움, 시기상조론, 지역 간 격차 심화, 정시 확대 기조와 충돌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고교학점제에 대해서 통상적으로 ‘교육과정 다양화’ 내지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 보장’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김성천, 2021).
우선은 책임교육의 강화이다. 우리나라는 초중고 공히 출석 일수만으로 졸업 기준을 잡고 있다.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최소 성취 기준의 도달 여부라는 질적 기준은 없고, 학교 책상에 며칠을 앉았느냐는 양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정미라 외, 2022). 실제로 학교 알리미 사이트에 들어가서 임의로 일반계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고1 공통과목을 중심으로 학업 성적분포도를 살펴보라. ‘E’단계에 해당되는 학생들의 비율이 낮지 않다. 많게는 과목별로 50%를 상회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당연히 누군가는 ‘A’를, 누군가는 ‘E’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E’를 맞은 학생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교육과정을 따라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의 교육과정 내지는 수업 소외 현상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봐야 한다. 배움이 느린 학생들에게 “평소에 예습과 복습을 하라고 하지 않았니”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개인의 책임과 별개로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의 난도라든지 책임교육과 지원교육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공교육의 허술한 시스템을 뼈아프게 반성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졸업 기준의 변화로 이어지는데,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학생이 획득했느냐의 문제보다는 학점을 취득하기 어려운 학생에 대한 조기 발견, 상담, 지원, 학습경로 보장(수준의 하향, 재이수, 대체경로 등)이 더욱 중요하다. 예컨대, 수포자가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단 하나의 표준화된 교과목을 제시하기보다는 수준이 다른 교과목을 들을 수 있는 다양화된 학습경로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교육은 그 정도로 친절한 체질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학생의 고유성에 주목하고, 이를 발현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 시스템을 구현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그런 철학과 가치의 토대에 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참여하는 교육과정의 거버넌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상위권 중심의 교육과정이 아닌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 설계가 가능해진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성장을 중심에 놓고, 교육과정을 맞추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학교의 체질 개선을 요구한다(김성천·민일홍·정미라, 2019).
근래 들어 각 고등학교에서는 학년제에서 학기제로 편성을 하고, 과목별 학점(단위)를 통일하면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있다. 예전에는 국영수는 일주일에 주당 5시간을, 예체능 과목은 일주일에 2시간을 들었다면 근래 들어 4시간 정도로 대부분의 과목을 통일한다. 그래야 과목의 호환 가능성을 높이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과목 가중치도 학생의 진로에 의해 각각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각각의 진로를 고려해보면, A 학생에게는 수학을, B 학생에게는 미술을 더 많이 들기를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학생의 진로에 따라서 국영수사과의 필수 단위를 이수한 이후, 국․영․수를 듣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주고 있다. 개별학교에서 열기 어려운 과목은 학교 간 협력을 통해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양적 발전과 질적 진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별학교에서 학생들의 진로 수요에 따른 과목 개설이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청 내지는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국가 중심의 교육과정이 아닌 지역과 학교 차원에서 교과목을 개발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인정교과서를 개발하기도 하고, 학교 차원에서 별도의 교과목을 만들기도 하다. 고시 외 과목을 운영하는 사례도 조금씩 축적되고 있는데, 이는 교육과정 개발과 교과서 집필 역량을 가진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주어진 교육과정’에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으로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교사들의 경우, 누군가 만든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는 존재가 아닌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존재로서 정체성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래 들어 마을 연계 교육과정도 활성화되고 있다. 학교가 지역으로, 지역이 학교로 나아간다. 교육과정의 요소가 지역에 있고(마을을 통한 교육과정), 지역의 누군가에게 배울 것이 있으며(마을에 의한 교육과정),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학교가 기여하는(마을을 위한 교육과정), 교육과정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와 교육지원청, 지자체,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형성되어야 한다(김성천, 2021). 시민성과 생태전환교육, 마을공동체의 가치가 교육과정을 통해 구현되는 사례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 대입 전형의 원칙과 방향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아쉽게도 정시를 확대했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 본인이 성공했던 과거의 대입 성공 신화를 바탕으로, 복잡하게 하지 말고 ‘수능 한방’으로 끝내자는 관점이 깔려있다. 수능이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는 대중의 인식과 여론도 한몫했다. 여기에, 수능 시장의 위축을 우려한 사교육 관계자들의 치열한 방어 노력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에도 정시 확대를 검토했으나, 더 이상의 확대는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시 확대와 고교학점제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른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시가 확대되면 그만큼 교육과정의 다양화의 길은 멀어진다. 수능 반영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교육과정 편제를 하면 되기 때문에 교육과정 다양화에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다양화가 입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만들어지면,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변화를 도모하려는 교육과정의 ‘이노베이터’들이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고교학점제는 진공상태에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정책은 아니고, 교육과정-대입제도-고교체제-내신 절대평가와 맞물려야 하는 패키지 정책으로 봐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난점은 복잡성에 있다. 일부의 제도 개선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연동하여 풀어야 할 문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대입 전형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변수는 고교학점제이다.
앞으로 대입 전형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자율성, 공공성, 공정성, 다양성이다. 대학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서울권 대학과 지방의 대학,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처지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대학의 성공 모델이 통하지도 않는다. 대학의 지속 가능성과 비전 실현 차원에서 본다면, 인재상에 부합한 최적의 지원자를 선발해야 한다는 대학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선발의 자율성은 매우 중요한 전형 설계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율성은 정의로운 입시의 구조 내에서 실현해야 한다. 특정 계층과 지역, 고교에 유리한 방식으로 입시를 설계하거나 별도의 사교육을 받아야만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는 공공성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공성에는 공교육 정상화 내지는 활성화의 목표를 포함하며, 당연히 고교 교육과정과 대입 제도는 연계해야 한다. 이는 공정의 가치가 중요함을 의미한다. 기회와 과정이 공정해야 하고, 결과를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성을 곧 수능 확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정성 개념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수능 역시 가정 배경 효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양성의 가치 내에서 실현되는 공정성이 보다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구체적으로는 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위주전형, 실기위주 전형 등 대학과 전공의 특성을 고려한 입시 트랙 내에서 구현하는 공정성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배려전형이라든지 지역균형선발 전형 역시 성립하기 어렵다. 공정성은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하고, 그 트랙 내에서 공정성을 보장하는 개념으로 진화·발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모 내지는 지역 배경의 효과가 작용하면서 나타난 결과의 격차를 줄이거나 보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교학점제의 가치를 고려한 대입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수능의 경우, 고1 공통교육과정을 중심으로 대입을 설계하면서 필요하다면 일반선택에서 각 영역별로 한 과목 정도를 선택과목으로 추가하는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 수능 반영 교과목을 최소화할 때,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상상력과 기획력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시를 적용한다고 해도 일정 비율 내에서 대학의 학과 내지는 계열에 부합하는 진로교과를 정량 내지는 정성 점수화하여 반영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는 수능이든 내신이든 상대평가를 지속해야 할 명분을 약화시킨다. 수능 등급제를 적용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동점자 처리인데, 공교육 정상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학교생활기록부의 정량 내지는 정성 요소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학과 내지는 계열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생이 어떤 과목을 이수하였고, 핵심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나타난 보편적 역량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진로교과(융합교과)를 중심으로 진로 적성이나 흥미, 관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사실 학생부종합전형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늘리려는 모습이라든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교육과정을 설계하려는 학교민주주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탐구 내지는 연구 과목을 많이 개설하여 학생 스스로가 탐구 주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팀별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과정을 통한 학생들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구축되고 있다. 공통교과나 일반선택과목에 일차적으로 집중을 하면서, 교양과목 내지는 진로교과에서 다양성을 담보하려는 전략적 시도가 있다(주주자 외, 2018). 이러한 현장의 노력을 감안할 때, 진로교과를 대입 전형에서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것은 잔인한 처사이며, 고교학점제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진로교과는 크게 등급화하거나, 상대 점수화하거나, 정성 요소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진로 교과를 다 반영하는 것이 어렵다면, 학과 내지는 계열 특성을 고려한 과목 몇 개를 지원자 본인이 선택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동시에,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하고, 교과전형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 또는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4. 학령인구 시대에 필요한 전략과 제언
상대평가의 시대는 그 운명을 다하고 있다. 학생 한 명이 소중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원자보다 모집정원이 더욱 많은 상황에서 상대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양에서 질로, 서열화에서 피드백으로, 경쟁에서 협력으로, 결과에서 과정 중심으로 평가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변화는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상대평가의 유물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 엘리트들의 인식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의 경쟁 체제에서 성공했던 경험으로, 다음 세대의 미래를 발목 잡아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선발효과가 아닌 학교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어떤 학생이 들어오든 그 학생을 잘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모든 교육기관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대원칙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위기임이 틀림없지만, 우리 교육의 관성과 관행을 타파하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교원 스스로도 내신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AI와 사교육 시장과는 차별화된 교육 목적과 방식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과정의 변화가 평가를 이끌기도 하지만, 대입전형이라는 평가의 변화가 교육과정을 이끌기도 한다. 전자는 고등학교에서, 후자는 대학교에서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인데, 그 가능성은 이미 열리고 있다. 대학이 어떤 철학과 방법으로 지원자를 선발하는가에 따라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실행 양상도 달라진다. 고교 교육과정과 대입의 연계가 중요한 이유이다. 그것은 정의로운 입학 전형의 모습이면서, 입시 체제로 인해 왜곡된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중요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참고문헌>
김성천·민일홍·정미라(2019).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 서울: 맘에드림.
김성천(2021). 고교학점제의 쟁점과 과제 분석. 교육비평, 48, 32-63.
김성천 외(2021). 지역사회학습장을 활용한 군포·의왕의 지역교육과정운영모델 개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지원청.
정미라 외(2022).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을 다시 디자인하다. 서울: 맘에드림.
주주자 외(2017). 고교 무학년 학점제 구현 방안 연구. 경기도교육연구원.
※이곳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