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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물리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a.k.a 소수 과목의 비애)
“선생님, 물리 어려워요?”
매년 6월쯤 되면 얼굴도 잘 모르는 1학년 녀석들이 과목 선택을 앞두고 나에게 묻는 말이다. 이 질문 뒤에는 꽤 높은 확률로 이런 말이 이어진다.
“저 공대 가고 싶은데. 주변에서 물리 어렵다고 해서 고민 중이에요.”
맞다. 물리는 어려운 과목이다. 이공계를 희망하는 학생들도 버거워하는 과목이고 문과생들은 절대 선택하지 않는... 소위 말하는 기피 과목이다. 난 그런 물리를 아등바등 가르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교사이다.
언제부터인가 많은 일반고에서 물리 교사는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물리Ⅰ은 많아야 3반, 물리Ⅱ는 아예 개설이 안 되거나 1반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니 물리 교사가 두 명 있을 필요가 없다. 올해 우리 학교 생명과학Ⅱ는 4반이나 개설되었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물리학Ⅱ는 겨우 1반인데. 같은 과목 교사가 없다 보니 외로운 건 둘째 치고 걱정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제일 힘든 건 지필고사 출제이다. 혼자서 출제와 편집, 검토를 하다 보니 오류가 있을까 매번 전전긍긍이다. 행여나 오류라도 발생하면 상의할 사람도 없이 혼자 괴로워하며 수습해야 한다. 출제 과목이 1개면 좀 나은데 보통 2~3개 과목을 걸치다 보니 출제 기간만 되면 다른 과목 선생님이 부럽기도 하다. 학교에 물리 교사가 한 분만 더 있어도 각종 정보와 노하우를 교환할 수 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다. 나에게 잔소리를 할 교직 선배도, 꼰대질 당할 후배도 만나기 어려운... 물리는 그렇게 어느 샌가 쓸쓸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이과의 상징과도 같던 물리에 대한 기피가 시작된 건 7차 교육과정(고등학교 적용은 2002년부터) 즈음이라 여겨진다. 물론 이전에도 물리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과목이었지만 과목 선택의 개념이 없었기에 기피라는 단어까지는 안 썼던 것 같다. 7차 교육과정에 이르러 문・이과 계열이 공식적으로 폐기되며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강화되었는데 사실상 사회와 과학 교과군 내에서의 선택권이었다. 이에 맞춰 2005년 수능부터 1학년 공통과학이 제외되고 과학탐구 응시자는 8개 선택과목 중에서 4개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회탐구를 응시할 학생들은 수능을 위해 물리를 전혀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과학탐구를 응시하는 학생들은 보통 Ⅰ과목 3개, Ⅱ과목 1개를 선택했는데 학업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수능에서의 물리 과목의 선호도가 낮아지기 시작했고 이 여파로 학교에서도 물리Ⅱ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12년 수능에서는 선택과목이 3개, 2014년에는 2개로 줄면서 물리에 대한 기피가 물리Ⅱ를 넘어 물리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여학생들의 기피가 심한데 3학년 물리Ⅱ 학급에서 여학생이 5명 이상인 경우는 드물다. 물리Ⅰ도 화학Ⅰ이나 생명과학Ⅰ에 비해 확연히 여학생 수가 적어 물리는 이제 공대를 희망하는 남학생들의 마니아 과목인가 싶을 때도 있다.
나름 물리 수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난 물리가 필요하면서도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이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다. 수능은 그렇다 해도 내신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공계를 가겠다는 학생이 물리를 안 듣다니. 그렇다고 다른 과목이 엄청나게 수월한 것도 아닌데. 본인이 직접 과목을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남들 얘기만 듣고 얄팍한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 같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그들의 선택이고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 것을.
물리는 참 개성이 강한 과목이다. 물리학자만큼 떠오르는 이미지가 또렷하고 독특한 학자들도 없을 것이다. 아인슈타인,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브라운 박사, 미드 ‘백뱅 이론’의 셸든... 이 정도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물리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공부하는 과목이라는 선입견이 꽤 강하다. 고등학교 탐구 과목 중에서 물리만큼 수학적 계산과 더불어 개념 습득부터 응용까지의 위계적인 학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과목도 드물다. 이러다보니 암기 위주의 공부가 익숙한 학생들에게 물리는 ‘벼락치기로 외워도 문제를 못 푸는 과목’이며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과목이다. 더군다나 요즘 학생들은 과목의 수강생 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택률이 낮은 과목일수록 상위 등급 학생 수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물리처럼 선택률이 낮은 과목은 더욱 선택을 안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학생들이 물리를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간다.
물론 나 역시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본 것은 아니다. 과목 선택 시즌이 되면 교실을 돌아다니며 이공계 가려면 물리를 꼭 해야 한다고 각종 자료와 졸업한 선배들의 경험담, 대학 입학관계자들의 발언을 들이대며 설득도 한다. 학교에서 물리 교사가 2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물리를 안 배우고 이공계로 진학할 학생들이 겪을 고생과 고통이 눈에 훤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다른 과학 선생님들조차 물리를 꼭 선택하라고 함께 나설 정도이다. 그러나 내신의 벽 앞에서 선 학생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은 물리 선택의 리스크(?)를 걱정하며 끝내 고개를 돌린다. 물론 ‘물리가 그냥 좋아서’, ‘이공계 가려면 물리는 기본이지’라며 용감하게(?) 물리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늘 있다. 그런 학생들이 있기에 난 여전히 ‘소수 과목 물리’를 혼자나마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물리를 선택한 학생이 적다는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소수 과목만을 혼자서 가르칠 때 누리는 자유가 있다고나 할까? 같이 가르치는 동료 교사나 수능과 내신 등급에 민감한 학생들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리를 배우고 싶어 선택한 학생들이니 난 물리를 물리답게 가르치면 된다. 교직 10년 차에 이르러 비로소 가르침의 자유를 인식하게 되었다.
가르침의 자유는 그 자체로 기쁨이지만 제대로 된 수업에 대한 책임감을 의미하기도 했다. 부실한 수업에 대한 핑곗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예전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내가 늘 아쉽게 생각했던 것은 실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물리 공부가 좋았던 순간에는 늘 실험이 있었다. 좁은 틈을 지난 레이저가 무늬를 만들어내고, 충돌한 2개의 공의 속력이 내가 예측한 것과 일치할 때, 물리가 참 재미있었다. 언뜻 보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물리 개념과 법칙으로 명쾌하고 체계적으로 설명됨을 알았을 때 물리 공부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내 수업은 이런 걸 경험할 수 있는 실험보다는 이론 강의와 문제 풀이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물리실 보물 찾기였다. 물리실 곳곳을 뒤지며 학생들에게 보여주거나 직접 실험해볼 수 있는 고전적이지만 의미 있는 실험 도구들을 찾아보았다. 실험실 상태가 파악된 이후에는 소단원별 실험계획을 세워 필요한 물품들을 조금씩 구매했다. 적어도 소단원마다 1개의 실험은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해갔다. 교사가 주도하는 매뉴얼적인 실험 이외에 학생들이 직접 실험을 구상한 뒤 이론을 통해 예측하고 실험값과 비교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하였다. 동영상 운동 분석 프로그램, MBL 운동 센서, 속도 측정 센서 등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역학 파트에서 배웠던 이론 중에 하나를 선택해 관련 운동을 직접 구현하고 물리량을 측정해보게 하였다. 물리 공식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학생이 자신의 실험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교과서를 펼쳐 놓고 고민하고,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엑셀 앞에서 끙끙대고, 빛의 성질에 감탄할 때, 내가 물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성적과 무관하게 야무지게 실험을 잘 해내는 학생들을 칭찬해줄 때는 그들의 소질을 발견해줬다는 작은 뿌듯함도 가질 수 있었다. 학생들도 “이런 실험을 우리가 언제 해보겠냐.”, “물리가 진짜 과학이네.”라며 나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인정해주었다.
나는 내 이런 노력에 역량 중심이니, 학생 참여형 수업이라는 등의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 난 단지 가르침의 자유를 인식하고 물리라는 과목이 가진 본연의 맛을 학생들과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물리가 소수 과목이 되기 이전부터도 자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사실 누구도 내 자유를 빼앗아 간 적은 없었다. 어쩌면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기대하는 것도 수능 일타 강사 같은 강의가 아니라 과목의 본질을 자유롭게 일깨워주는 수업이 아닐까 싶다.
2025년부터 시행하는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요즘 교사들의 불안감이 상당하다. 고교학점제에서는 전통적인 국영수사과의 칸막이가 허물어지고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과목이 개설된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교사가 2~3개 과목씩 담당함은 물론, 전혀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게 될지도 모른다. 물리처럼 학교에 담당 교사가 1명인 교과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내가 속한 경기도교육청은 2022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선제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본격적인 변화가 코앞까지 다가온 셈이다.
하지만 난 고교학점제가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교사들에게 더욱 큰 자유와 교육적 책임을 부여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지금까지 고등학교 교육은 수능, 입시라는 거대한 체제 안에서 수단적, 경쟁적 가치에 함몰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다. 설국열차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학생들을 조금 더 앞쪽 칸으로 보내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교학점제가 이끌 미래가 또 다른 설국열차가 될지 따뜻한 바깥세상일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우리가 좋든 싫든 고교학점제는 기차 문을 열고 우리를 밖으로 내보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우리 교사들이 어디를 바라보고 가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가오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물리처럼 자유로운 소수 과목들이 용감하게 먼저 나아가며 공교육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