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이슈이슈!
함께 도전하고 성장한다는 것
라떼는 말이야, 백묵과 칠판 하나만 가지고 말이지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단 말이지. 한참 썰을 풀다가 결정적인 장면에서 수업종이 울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면 학생들이 일제히 ‘아~ 선생님, 조금만 더 얘기해 주세요!’라고 한단 말이지. 그러면 도도하게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금쪽같은 쉬는 시간을 보장하고 싶습니다.’라며 교과서를 옆에 끼고 교실 앞문으로 우아하게 사라진단 말이지. ‘우와, 드라마 예고편 같애.’, ‘다음 역사 수업 언제 들었냐?’ 등등의 말들을 뒤로 한 채...
이것도 다 옛날 얘기다. 강의식 수업만으로도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호시절 이야기다. 물론 아직도 나는 강의식으로 수업한다. 프로젝트 수업, 협동학습 등등이 유행처럼 번져나갔을 무렵에도 강의식 수업으로 교실을 장악했다. 한때는 혁신학교에서 진행하는 연수도 신청해서 수업 방식을 다양화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연수에서 배운 방식을 시도했을 때 학생들과 잘 맞지 않았고, 수업 진행도 어색했고, 무엇보다 효율성이 떨어졌다. 다시 강의식으로 했더니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수업 효율성도 좋아졌다. 유행이라고 남들 따라 무턱대고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수업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교훈도 깨달았다.
그러나 고등학교로 발령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동아시아사를 담당했는데, 처음 가르치는 교과에 고등학교가 처음이라 무척 긴장한 나는 평상시 준비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수업을 준비해갔다. 신나게 강의를 했지만 학생들은 전혀 신나 보이지 않았다. 자신 있는 유머를 날려도 무반응이었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며 재정비를 하여 열강을 해도 학생들은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이.럴.수.가! 내 강의식 수업이 먹히지 않는 곳이 있다니... 월화수목금금금... 주말을 반납하며 강의와 학습지를 준비해가도 학생들은 반응이 없었고 나는 좌절하며 한 학기를 방황했다. 그러다 같은 교무실에 근무하는 선생님이 학생들과 알콩달콩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
“아, 이거 학생들이 발표한 건데 샘 반 ○○이가 발표를 너무 잘하더라구요. 이 자료 좀 보세요. 진짜 잘 만들었죠?”
○○이는 우리 반에서 아주 조용하게 생활하는 학생인데 그가 만들어낸 발표 자료를 보니 표현력과 구성력이 뛰어나 그 학생이 새롭게 보였다. 잠재된 학생들의 능력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샘, 그 발표 수업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 그건 말이죠...”
이렇게 나는 동료 교사의 도움을 받아 발표 수업을 새롭게 시도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발표 수업이 프로젝트 수업처럼 거창하게 느껴져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동료 선생님이 현장에서 접목한 발표 수업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그래서 나도 나만의 방식대로 변형시켜 진행하였다.
| 동료 교사 | 나 | |
|---|---|---|
| 발표 주제 | 교사가 지정 |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면 어떤 주제이든 상관없음 |
| 발표 시기 | 학기 중 | 학기 말 |
| 발표 자료 | PPT, 한글 문서 | 자유 |
주제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발표 시기는 2차 지필 고사가 끝난 후로 했다. 역사 과목은 가르칠 내용이 많아 학기 중에는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안내를 하고 발표자를 정했다. 발표는 원하는 학생만 지원하도록 하고 ‘의미있는’ 발표 수업을 하면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하, 교과세특)에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수업 시간 리액션에 소극적인 학생들이라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까봐 걱정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여 교과세특의 놀라운 위력을 확인했다. 2차 지필 고사가 끝나고 발표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발표를 하기로 한 학생들이 발표를 못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이유는 다양했다.
1. 교과세특이 탐나서 발표를 지원했지만 막상 준비해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음
2. 학원 숙제 등으로 발표를 준비할 시간이 없음
3.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용기가 없음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않는 학생들이 야속하여 포기할까 했으나 찬찬히 설득해보았다. 1번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는 자유로운 주제니까 부담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고, 2번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발표 가능한 날로 변경을 하기로 했고, 3번에 해당하는 학생에게는 그 학생의 장점을 칭찬하면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학생들은 나의 설득과 격려에 용기를 갖고 발표 날짜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발표를 했다. 발표날이 다가오면서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졌다. 과연 준비는 제대로 했을까, 주어진 시간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헛되게 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교사 주도의 수업을 해온 나에게 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업은 낯설고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발표 수업을 진행해 보니 학생들의 잠재된 능력이 다양한 측면에서 발굴되었다.
첫 번째는 말하기 능력이다. 발표자 중에는 급우들을 바라보는 것이 쑥스러워 출력한 한글 문서나 PPT 자료를 쳐다보고 읽기만 한 학생도 있었지만 급우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발표하여 웬만한 강사 저리가라고 할 만한 학생들도 있었다. 판서를 하면서 설명하는 학생도 있었는데 칠판에 지도나 그림을 직접 그려가면서 사건의 흐름을 정리하고 핵심 내용을 강조하였다. 이런 발표는 발표자가 실시간으로 그림이나 자료를 제작하기 때문에 현장감이 살아나 청중의 집중도가 월등하게 높았다. 판서를 활용한 발표는 발표자의 손짓과 판서 자료만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머릿속에 발표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었다. 발표자가 발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니 청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됐고, 청중들은 흥미를 가지고 발표 시간 내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좋은 수업이나 발표는 화려한 스킬이나 최신식 도구가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두 번째는 주제 선정과 정보 탐색 능력이다.
| 동아시아사 발표 주제 | 동아시아사 발표 내용 |
|---|---|
|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 역사 캠프로 답사한 지역과 수업 시간에 배운 역사 내용을 접목시킴 |
| 동아시아 3국 전통 과자* |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 과자의 유래와 변천 과정 |
| 작품으로 보는 역사+# | 영화와 소설, 웹툰을 통해 본 동아시아의 역사 |
| 동아시아 전통 놀이*# |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몽골의 전통 놀이의 유래와 종류 |
| 동아시아 역사 여행+ | 한국, 중국, 일본의 주요 답사 지역 안내 |
| 동아시아의 문화유산 & 명승지+ | 문화유산의 개념과 명승지의 역사 |
| 동아시아 15분 패키지*# | 동아시아 전통 가옥, 전통 의상을 현재와 비교 |
| 동아시아의 역사 왜곡+ | 일본과 한국의 역사 왜곡 분석 |
| 동아시아의 인종+ | 동아시아 인종의 종류와 특징 |
| 동아시아의 미술# | 동아시아 미술의 종류와 차이점 분석 |
| 동아시아의 음식 문화* | 동아시아 음식의 유래와 삼국의 젓가락 차이점 분석 |
| 동아시아의 크리스트교+ | 크리스트교의 전래 과정과 삼국 역사에 끼친 영향 |
| 동아시아의 교육 제도와 특수 교육# | 동아시아 교육 제도와 특수 교육의 공통점과 차이점 |
| 동북공정의 현주소 | 동북공정의 문제점과 교과서 서술 내용 분석 |
| 베트남 전쟁과 민간인 학살+ | 베트남 전쟁의 과정과 민간인 학살의 실태 |
| 조선어학회 사건 | 조선어학회의 전개과정과 결과 |
| 일본의 근대화# |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근대화의 명암 분석 |
| 동아시아의 전통 의상* |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의 전통 의상 특징 |
| 신여성+ | 근대화로 인한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의 변화 |
| 한국사 발표 주제 | 한국사 발표 내용 |
|---|---|
| 조선의 병풍* | 병풍의 유래와 역사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 한국 자동차의 역사*# | 한국의 경제 개발과 한국 자동차의 역사 |
| 조선 시대의 이색 직업+ | 이색 직업의 역사적 배경과 종류 및 특징 |
| 한국의 근대 미술# | 일제 강점기의 한국 근대 미술의 특징 |
| 일제를 찬양한 예술가들# | 친일 작가들의 친일 행적과 작품 |
|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 나혜석의 생애와 작품 |
| 제암리, 고주리 학살 사건+ | 제암리, 고주리 사건의 전개 과정 및 결과 |
|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원인과 결과 |
| 군함도+ | 군함도의 역사와 강제 징용의 실태 |
| 조선어학회 사건 | 조선어학회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
| 한국과 일본 사이의 아픈 과거+ | 한일 관계의 역사와 앞으로의 과제 |
| 조선의 5대 임금, 문종+ | 문종의 업적과 측우기 |
| 한국사 관련 영화+ | 한국사를 다룬 영화의 내용과 역사 사실 비교 |
| 한국 전쟁과 터키+ | 영화 ‘아일라’를 통한 한국과 터키의 역사 |
| 사도세자+ | 영화 ‘사도’를 통해 본 조선의 역사 |
| 한국사 최고의 성군, 세종+ | 세종의 업적과 장단점 분석 |
한번은 내가 정해준 주제로 발표 수업을 했더니 교과서 내용을 복습하거나 내 수업을 따라하는 단편전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발표 주제를 자유롭게 학생이 정하게 하니 기존의 교과서에는 배울 수 없던 것들(도표에서 * 표시된 부분)이나 교과 내용을 심화할 수 있는 주제들(도표에서 + 표시된 부분)이 나왔다. 본인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라 내용이 알차고 발표 과정에서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자신의 진로와 연계(도표에서 # 표시된 부분)하여 주제를 선정한 학생은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탐색하여 수준 높은 발표 실력을 보여 주었다.
세 번째는 자료 구성과 도구 활용 능력이다. 단편적인 내용을 단조롭게 나열식으로 자료를 구성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창의적으로 자료를 구성하여 발표 수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학생들도 있었다. 또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서 자료를 작성하거나 자신이 직접 제작한 그림을 활용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2: 휴대폰 잠금 화면을 활용하여 주요 사건의 연도를 강조할 수 있도록 구성

학생3: 프레지를 활용한 자료 구성

네 번째는 경청하기와 질문하기 능력이다. 교실에서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가 수업 시간에 자못 진지하게 수업을 진행해 나가자 학생들도 다함께 진중한 모습을 보이면서 발표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친구가 수업을 진행하니 용기가 생겨 질의-응답 시간에 자발적으로 질문을 했다. ‘이것도 모르냐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핀잔 받지 않을까’라는 부담감을 벗어버리고 편하게 질문을 하다 보니 참신하고 예리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발표자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들은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자신이 직접 자료를 제작하다 보니 주제에 대해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나도 그들만큼 기쁨을 느꼈다.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자 교사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학생들의 무반응과 기존 수업의 한계에서 시도한 발표 수업은 강의식 수업과 지필 평가에서는 파악할 수 없었던 학생들의 숨어있는 능력을 발견하게 하였다. 발표를 지원한 학생들을 살펴보면 자신을 드러나지 않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가 이렇게 말을 잘한단 말이야? △△에게 저런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었다니! □□이가 그런 예리한 질문을 할 줄이야...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발표하는 학생도, 경청하는 학생도 자신감을 가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과정을 통해 나 또한 성장하고 있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교사 주도의 수업에서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기다리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조건 새롭거나 최신 유행하는 수업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다. 수업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 철학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학생과 함께 나도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또 어떤 조심스러운 도전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