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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이슈이슈!

얘들아, 세련된 글 써보자. 기특한 것 말고, 제대로 세련된 걸루.

- 발췌독으로 읽기, 쓰기, 문법 수업한 이야기

김영희 수원 천천고등학교 교사
수원 천천고등학교 교사 김영희

나는 독서교육에 꽤나 경도되어 있는 사람이다.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책을 읽은 지 12년이 되었다. 십 년 이상 책을 읽다보니 조금씩 딴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독서교육으로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를 실험해보고 싶다.

2010년대 교육계의 큰 화두 중 하나는 ‘독서교육’이었다(그렇다, 2020년대가 되었다! 럴수럴수 이럴수가. 나는 아직 Y2K의 기억이 생생한데.). 수업시간에 단행본 도서를 읽고 독서 전-중-후 활동을 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국어과 교육과정에 들어올 정도로 독서교육이 강조됐다.
대중적으로 활용되는 독서 수업의 방식은 서평쓰기, 영상만들기, 책대화하기다. 이 외에 더 욕심내 볼 구석이 없을까 생각해보다 시도한 것이 발췌독으로 진행하는 생활글 쓰기 수업이다.

이전까진 생활글 쓰기 활동의 가치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솔직한 글을 쓰는 경험 정도로만 인식을 했다. 하지만 2018년 겨울, 독립 출판계를 강타(!)한 ⟪일간 이슬아⟫를 읽은 뒤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거 진짜 멋지잖아.

작문보다 독서 수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글쓰기 수업이지만, 본질적인 목표는 학생들을 장기적인 독자로 만드는 일에 있었다. 해가 바뀌어 학생들이 나와 헤어져서도 꾸준히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멋진 문장을 보며 감탄하고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게 하는 힘은 결국 “와, 멋져.”란 문장에 실려 있으니까.
멋진 문장에 욕심을 갖게 하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직접 글을 쓰는 상황에 세워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진행한 것이 바로 이 생활 글쓰기 수업.

욕심이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쓰기, 읽기, 심지어 문법까지(고쳐쓰기 과정에서 문법 지식이 필요했다.) 욕심을 내 본 이 수업은 2019년 내가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다. 교사가 들이는 품은 크지 않지만, ‘맞다, 내가 애들이랑 이런 걸 해보고 싶어서 국어교사가 된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수업이다.

1학기 : 너는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이야?

글쓰기 수업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 1학기에는 초안을 쓰고, 2학기에는 1학기에 쓴 글을 수정한다. 각 차시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생각을 자극할 수 있는 글들을 한 꼭지씩 발췌하여 안내했다.

1) 1차시 :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활동을 시작할 때 그것이 왜 의미있는 것인지 학생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진행을 해야 알맹이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생활글 쓰기의 첫 발을 떼는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글은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남편이 위암 투병 중인 아내의 식사를 준비하며 매 끼니를 기록한 에세이이다. 환자의 입맛과 소화력을 반영한 식사를 최선을 다해 마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록하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서 저자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챙길 수 있었던 힘은 '기록'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즈음 우연히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라는 영화를 조금 보았다(전편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잘 안 되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어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글을 써왔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이렇게 영원히 살려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 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되었다. (강창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단행본 중 머리말의 내용을 옮겨 학습지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나’가 병수발을 하며 글쓰기를 놓지 않은 이유, 남기고 싶은 기억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토의 주제로 내주었다.
생활글 쓰기 과제에서 내가 가장 경계한 것은 학생들이 일기 같은 글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기를 쓰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그건 교사와 함께 하지 않아도 혼자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이니까. 아이들이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이 남기고 싶은 기억이 무엇인지, 현재 내가 몰두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길 바랐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리라 믿었다.
아이들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사는 걸 바라지 않는다. 국어수업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시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학생들이 모둠 토의한 결과를 발표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교사의 추가발언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각 문항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이렇다.

1번 : 글쓰기의 의미.
“글을 쓰면 넘치는 감정 속에서 이성을 찾을 수 있게 돼. 내가 서 있는 지점을 확인하고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을 수 있어. 매일 기록하면 더 좋지. 데이터가 쌓이는 거니까. 더 현명한 방책을 찾을 수 있잖아. 글을 쓰면 ‘생각’을 할 수 있게 돼. 그게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야.
우리가 앞으로 생활글을 쓸 때에도 이 점을 기억해야 해. 감정을 폭발시키는 글도 의미가 있겠지, 마음이 시원하고. 하지만 글쓰기가 가진 많은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끝내는 일이 돼.
당시의 생각들, 내가 한 일들을 명확하게 정리하다보면, 분명 과거의 일을 가지고 쓰는 글이지만 현재의 ‘나’에게 도움이 돼.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지, 무엇을 중시해야지 생각하게 되거든. 감정 용어만 나열하는 글을 쓰지 않기.
이 책만 보더라도, 글쓴이가 엄청 슬플 것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런데 책 한 권 전체에 ‘슬프다, 슬프다, 너무 슬프다’라는 말만 잔뜩 써두었으면, 내가 이 책을 너희에게 소개했을까? 좋은 글은 절대, 감정이 과잉되어선 안 돼. 그래야 글을 쓰며 너희가 많은 걸 얻을 수 있기도 하고.

​난 매일 도시락을 싸서 출근해.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서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온몸이 너무 가렵거든.
아토피 때문에 너무 괴로워. 그래서 종이 한 장을 펼쳐놓고 ‘너무 괴로워, 고통스러워, 아토피 극혐!’이라는 말을 가득 채웠어. 그럼 잠깐 화가 풀리긴 할 거야. 하지만 긴 기간으로 보았을 때에 상황이 크게 개선되진 않겠지.
그런데 난 핸드폰 어플로 매일매일 내가 먹는 걸 기록하고 있거든.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고(웃음). 그 음식을 먹었을 때에 몸이 보인 반응도 함께 써 둬. 그럼 내가 먹은 음식 중에 몸에 안 맞는 게 뭔지 찾을 수가 있어. 조리법도. 그럼 앞으로 가까이 할 것과 멀리 할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잖아. 확실히 난 요즘 피부가 엄청 좋아졌거든.
예시가 좀 거칠긴 하지만, 이게 글쓰기의 효용이야. 너희도 잘 사용해봐.”


​2번 : 왜 ‘글’일까?
“아내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으로 기록을 하면 초점이 ‘아내’가 되겠지. 그것도 물론 의미가 있어. 하지만 이 사람이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었다고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아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아내를 대하는 나의 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기록하려면 ‘영상’이 아닌 ‘글쓰기’를 택해야 해.
영상과 글은 기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무엇을 기록하느냐에 있어 엄청나게 달라. 글을 쓴다는 건 당시 나의 정신을 남겨둔다는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당시에 어떤 감각을 느꼈는지. 초점이 나에게 있어. 반려견에 대한 글을 쓴다고 생각해봐. 분명 주인공은 반려견이겠지만, 그 아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와의 추억이 무엇이 있는지……… 초점은 나에게 있잖아.
영상과 글 중에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어. 쓰임이 다르거든. 하지만, 나에게 집중하고 싶을 때엔 글을 쓰는 거야.
아까 식단 일기 쓴다고 했잖아. 인스타그램에 도시락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하거든. 확실히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인스타그램)과 글로 기록하는 일(블로그)은 쓰임이 달라. 도시락에 집중하게 되는 건 전자, 내 몸에 집중하게 되는 건 후자야."


​3번 : ‘일상’을 ‘글’로 남기면 무엇이 좋을까?
“해외여행을 갔다고 가정해 봐. 너무 즐겁고 환상적인 경험을 많이 한 거야. 그럼 그 경험을 당연히 남기고 싶겠지. 그럼 글로 쓰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매일 해외여행을 갈 순 없잖아. 반드시 기쁘고 아름다운,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니어도 내가 그 경험에 의미를 실으면 돼. 당장은 ‘별 거야’ 싶더라도 꾸준히 기록을 해두다 보면 그 경험들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확인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와. 정말 와.
일상을 세세히 관찰하고, 그것이 나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을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랑 첫사랑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어. 그 대화를 한 후로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달라졌어. 이전까지 난 되게 무심한 사람이었거든. “첫사랑 이야기를 해보자”라며 대화를 시작했는데 난 진짜 아무 기억이 없는 거야. 그런데 내 친구는 첫사랑이랑 비오는 날 한 우산을 쓰며 걷는데 팔의 살갗이 살짝 찐득하게 부딪혔을 때 느낀 짜릿함이라거나, 흙냄새와 비냄새가 애인의 살냄새와 섞여 난 향이라거나 그런 걸 다 세세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와- 난 되게 재미없이 사는 사람이었구나, 소중한 기억들이 너무 없는 사람이다, 분명히 같은 경험들을 했는데 그걸 다 잊었네,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
일상에 의미를 싣는 능력은 삶을 되게 풍요롭게 해.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일상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하게 만들어 줘.”


2) 2차시 : 국어선생님들의 생활글

두 번째 수업시간에는 천천고 국어 선생님들이 직접 쓴 생활글을 한 편씩 학습지에 실어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나는 스무살 이후 시작한 다이어트에 평생을 사로잡혀 있는데, 그 생각을 그대로 글에 담았다.

교사의 글을 소개한 이유는, 학생들이 글쓰기라는 행위가 인간(글쓴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 만들기 위함이다. “글쓰기,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 해보자.”라는 말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글 한 편을 제대로 쓰는 경험을 위해선 아주 많은 시간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일이 어떤 점이 의미로 남을 것인지, 실제의 효용을 밝혀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학생들에게는 다음의 세 질문이 토의거리로 제시됐다.

1. 각 글의 ‘나’들은 어떤 생각들을 남기기 위해(=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썼을까?
2. 이 글은 각각 2017년, 2018년에 쓰였다. 2019년의 A, Y선생님은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글로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3. 2019년의 여러분이 남기고 싶은 경험과 생각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들을 자유롭게 메모해보자.

학생들의 모둠 토의 결과를 들은 뒤,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수업을 정리했다.

“그 시점에 내가 몰두하고 있는 것,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글로 써두면 앞으로의 판단 기준을 삼을 수가 있어. 내가 가야 할 길의 방향성도 정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선언을 할 수 있기도 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럼 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 말한 대로 살아야 하니까. 글을 쓰며 생활,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 삶의 기준과 방향성을 명료하게 만드는 일이야.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취미인데. 글을 쓴 날엔 블로그에 몇 번 씩 다시 들어가서 내가 쓴 글을 읽어 봐. 너무 잘 썼거든. 진짜로. 그걸 읽으면서 계속 감탄하는 거야. “와, 나 진짜 멋지다!”(웃음)
‘글 속의 나’와 ‘실제의 나’는 꽤 달라. 글에 담긴 사람이 훨씬 멋져, 매혹될 정도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머릿속에 굴러다니던 생각들을 공들여 배치하고, 정리하고, 살을 붙여 탄탄하게 만드는 거니까.
처음엔 약간 부끄러웠어. 엇, 실제의 나랑 너무 다른데. 이건 좀 너무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을 해. “글에 담긴 나/비루한 현실의 나의 격차를 줄여보자.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면 되잖아. 그러다보면 좀 멋져지겠지.”
글을 써서 생각을 정리하면, 심지어 그걸 꾸준히 한다면, 우린 더더- 멋져질 수밖에 없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게 부끄러워서라도 뭔가를 하게 되거든. 글은 확실히,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너희가 꾸준히 글 쓰는 사람이 됐음 좋겠어. 그래서, 생활글을 함께 써보자고 말하는 거야. 멋지게 해보자.”

3) 3차시 : 초안 쓰기 워크북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본격적인 글쓰기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
1, 2차시에 강조한 ‘글쓰기의 의미와 가치’가 아이들이 실제로 쓰는 글에도 반영이 되기를 바랐다. 활동지를 구상할 때 중심에 둔 점은,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가 무엇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인지를 알게되었음 좋겠단 바람이다.

짧은 시간 동안 매체 환경이 어마무시하게 변했다.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자신을 얼마든 표현할 수 있다. 선택지도 많다. 텍스트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취향에 맞는 것을 택해 맘껏 활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를 드러내는 경험, 진솔한 표현을 하는 경험의 장을 수업시간에 열어준 뒤 ‘의미있었다. 뿌듯하다.’라고 자평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5년 전까지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는 수업이었겠지만, 2010년대가 저물어버린 이 시점에서는 ‘표현’ 수업의 새로운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오만해 보일 수 있는 말이지만, 시대가 달라지면 수업이 추구해야할 목표도 재설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상상 속 2020년은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원더키디가 외계인과 연애를 하는 시기였다구!).
교실 밖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좀 더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표현 전 사고 과정’에 무게를 두어 수업을 하는 것이 옳다. 표현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내게는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사족이 길다. 이 수업의 목표가 단순히 ‘진솔한 표현’ 하나에 있지 않길 바랐다는 말, 아이들이 이 활동을 통해 ‘나를 알아가기’를 했으면 바랐다는 말을 하려 구구절절 썰을 풀었다.

‘글감 생성-개요 작성-초안 작성-수정(완성글 작성)’의 전통적인 작문 과정을 따르되, 학습지에 실린 질문에는 학생들이 그것을 수행하며 자신이 무엇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어떤 방향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조건들을 담았다.

학생들은 학습지에 실린 질문에 답을 붙이며 글감을 마련하고 구체화했다.

  • 1. 자꾸 떠올리게 되거나, 집중해서 고민하고 있는 생각들을 써봅시다.
  • 2. ①~⑤ 중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이 기회에 진지하게 탐구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 택한 뒤 다음의 질문에 답해봅시다.
  • 2-1.그것을 자주 생각하는 이유는 이 고민/걱정되기 때문이다.
  • (혹은, 라는 점에서 즐겁기 때문이다.)
  • (혹은, 라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 2-2. 그것에 몰두하다 생긴 일,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생각거리인지를 나타낼 수 있는 경험을 써봅시다. 구체적으로!
  • 2-3.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봅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 조각들을 모으고 잘 배치하면 멋진 결과물이 만들어지죠 :)
  • 3.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냥 하는 생각이 아니라 심지어 ‘사로잡은’ 생각이니까! 마인드맵 그리기를 통해 글에 싣기로 결정한 내용들을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연관 지어 정리해봅시다. 그 경험들은 여러분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어떻게 연관되나요?
  • 4. 드디어 시작. 초안을 써봅시다. 우리의 모든 잠재력을 동원해, ‘최고로 멋진 나’를 남겨보기. 멋진 글을 쓸수록 그에 걸맞은 멋진 사람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요 :)


일반적인 방식으로 개요를 작성하고 글을 쓰게 하면 정말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몇몇 학생들만 ‘나를 확인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일상을 진솔히 표현하는 것을 뛰어넘어 ‘나는 누구지’, ‘무엇을 기대하지?’, ‘어떤 삶을 살길 바라지?’와 같은 아름다운 고민들을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하게 되길 바랐다. 그것이 활동지를 만들 때 초점을 둔 부분.

그냥 “생활글을 쓰자”라고만 말하면, 학생들은 일기를 쓰거나, 의미있는 사물에 대한 소개를 하거나, 사회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정도의 결과물을 써낸다(이게 의미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왕 교사와 함께 글을 쓰게 된다면, 애들 혼자서는 쓰기 힘든 글들을 쓰게 만들고 싶다는 의미다.).
현재의 관심사를 정리한 글(=생활글)에는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담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진솔하게 경험을 밝히는 글을 쓰는 것을 뛰어넘어 그 안에 삶의 방향성을 녹여넣길 바랐다.

단순히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봐.” 라고만 말하면 분명 장래희망을 쓰고 끝낼 학생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수업 과정에서 “촌스럽게 장래희망 쓰지마”라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단순히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이참에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음 하는 바람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했다.

“생활글을 쓴다는 건, 특정 경험을 전달하는 의미를 뛰어넘어.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의 내용이 얹힐 수밖에 없는 활동이야. 당시의 내가 중시하는 게 글에 담기니까.
너희가 쓴 글이 단순한 일기를 뛰어넘었음 좋겠어. 이 기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확인하길 바라.
각자 그린 마인드맵을 보면서 너희가 찾아낸 소재들을 다시 살펴봐. 그걸 바탕으로 내가 무엇을 중시하고 추구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보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여드름을 없애려고 밀가루 음식을 끊은 이야기가 마인드맵에 들어가 있는 거야.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에겐 ‘발전을 위해 단호하게 유혹을 끊어낼 수 있는 사람’, ‘몸의 변화, 상태에 집중하는 사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얹히게 되는 거지. 마인드맵에 쓰인 단어들을 조합해봐. 너희가 발견하지 못했던 특성들이 튀어 나올 걸.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여도, 우리가 고민하는 것,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다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멋진 질문에 대한 답이 돼. 그 생각을 글을 쓰면서 몸으로 선언하는 거야. 알고 보니 난 이런 사람이야, 앞으로는 이런 거 저런 걸 할 거라구. 이번 기회에 각자의 삶에 의미 부여를 해보자. 엄청 멋지지?”

4) 4차시 : 이슬아, ⟪일간 이슬아⟫

학생들이 쓰는 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면에서 허술하다. 주제를 너무 교훈적으로 드러내거나, 글 자체가 재미없거나. ‘매력적인 글’의 사례가 될 수 있는 글을 보여주고 최대한 닮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4차시 수업의 목표였다.

⟪일간 이슬아⟫에 실린 작품 중 연애를 소재로 한 글을 소개해주었다.
이 글의 매력은, 연인과 관계가 성사되기 직전에 글을 끝낸다는 점이다. “사귀자”라는 말이 나오기 딱 직전에. 그래서 독자가 상황에 더 몰입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적절한 장면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일이 글의 매력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
학생들에게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하려고 어떤 장치를 사용했는지 찾아보고 본인의 글의 그 점을 적용해보라 일렀다.

학생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안내했다.
“내가 ‘학생들을 사랑해.’라고 너희 앞에서 선언을 하는 거야. 자랑스럽게. 그런데 실제론 안 그래. 너흰 ‘저 선생 왜 저래.’ 이러는데 나 혼자 착각하는 거야. 얼마나 하찮아(웃음).
생활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려면 관련 일화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게 좋아. 독자가 알아서 매력을 찾게 하는 거야.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네.’ 이편이 훨씬 효과적이고 매력적이야.
경험을 떠올려서 구체적으로 글을 쓰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아주 많아. 장점도 그렇고 부족한 점도 그렇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거든, 나를. 자신을 ‘보여주는’ 글을 쓰는 건 여러모로 글쓰는 사람에게 이익이야. 매력도 어필할 수 있고, 나 스스로도 내가 더 멋져질 수 있게 자기를 성찰하게도 만들어주지.

이 글을 ‘세련된 글’로 소개한 이유는 딱 적절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끊었기 때문이야. 이슬아 씨는 이 글 쓰기 전에 이미 연애를 시작했어. 그런데 딱 설레는 장면, 연애를 할까 말까 하는 장면에서 글을 멈췄잖아.
내 연애가 너무 자랑스러워, 너무 신나. 그래서 연애가 성사된 과정, 연인에 대한 사랑, 그걸 다 써. 그럼 이렇게 멋졌을까? 독자가 함께 설레했을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지, 물론 사람인데. 내 연애 자랑하고 싶지(웃음). 하지만 꾹 참고 글이 가장 돋보일 법한 장면만 택하는 거야. 그래야 멋지고 세련된 결과가 나와.

아, 그리고. 대놓고 교훈을 주려고 하지 말자. 수필을 배울 때에 ‘교훈을 주는 글’이라는 정의를 배웠더래서, 생활글 쓰자고 말하면 다 마무리에 교훈 멘트 넣고 끝낸단 말이야. ‘이 경험을 통해 난 이러저러한 걸 깨달았다’ 하면서. 그게 뭐야, 솔직히 안 깨달았잖아. 그만 좀 깨달아(웃음). 억지로 교훈 주지 않아도 돼. 깨닫지도 말고(웃음). 그냥 너희를 보여줘. 그럼 독자들이 알아서 깨닫는 바가 있어. 단, 경험과 생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해.
계속 이야기하지만, ‘감정/감성’에 집중하지 마. 특정한 경험을 이야기 하려면 당시의 감정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을 써주는 거야. 이슬아 씨도, 연애 직전이면 얼마나 가슴이 터져. 감정이 뿜뿜 하는 시기지만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 내가 걜 너무 좋아서 생긴 일들을 ‘이성적으로’ 쓰는 일에 집중하잖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써. 가슴으로 쓰는 글은 새벽 두 시에 인스타그램에 써(웃음).”

학생들은 이어지는 두 차시(5~6차시)의 수업시간에 완성글을 쓰고 교사에게 결과물을 제출했다. (모든 수업이 그렇듯) 결과물에 대한 교사의 만족도는 60%. 매력적인 글, 자신을 돌아보는 글을 쓰게 해보고 싶었지만 학생들은 교사가 짐작하는 딱 그 정도 수준의 생활글을 써냈다. 뭔가 진솔하긴 한데 촌스럽고, 열심히 했네 싶은데 뭔가는 아쉬운.

2학기 : 이제 진짜 잘 써보자

1학기에 쓴 글을 ‘진짜’ 잘 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로 진행한 것이 2학기의 고쳐쓰기 활동이다. 글쓰기 기회를 한 번만 주고 끝내면 가능성을 보이는 글들은 종종 보이지만 ‘진짜 잘한’ 작품은 전교에 한두 편 나온다. 더 많은 학생이 ‘진짜 잘’ 쓴 글을 써보는 경험을 하길 바랐다. 인생글을 써보자, 아이들아.

수업을 계획할 때 첫 번째 전제로 삼은 점은, 교사가 절대 첨삭 지도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의 작품을 일일이 봐주면 교사가 지친다, 첨삭을 하다 애들에게 화가 쌓이면 수업에도 악영향이 간다.
두 번째 전제는 학생들끼리 첨삭을 하지 않는다는 점. 이유는 간단하다. 크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얻을 수가 없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좋은 글’은 대체로 감에 기대고 있는 면이 있어서, ‘감에 따라’ 피드백 한 결과를 받았을 때 수정 작업이 유의미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이 쓴 글을 다른 학생들에게 넘겨주고 ‘고칠 점을 찾아줘’ 라고 말을 하는 일이, 내 기준에서는 크게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차라리 개인에게 고쳐쓰기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더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그런 이유로, 2학기 수업의 초점은 ‘고쳐쓰기 방법의 학습’에 주어졌다. 고쳐쓰기 방법을 배운 뒤 자기 글을 자기가 고치기.

1) 1~4차시 : 김정선, ⟪제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문법적인 면에 초점을 두어 고쳐쓰기를 할 때엔, ‘이상한 문장을 수정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김정선 교열가의 책을 가져와 활용했다.
마침 고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에 편성된 문법 내용이 ‘문법 요소’였으므로 ⟪제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실린 내용 중 해당되는 것(시제, 피동, 높임표현 등)을, 그리고 평소에 학생들이 자주 틀리는 문법적인 실수들(‘-적, 의, 것, -들’의 남용 등)을 가져와 활동지를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배부된 활동지. 직접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다. 학생들에게 배부된 활동지. 직접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다.

4차시에 걸쳐 학생들은 교사가 제시한 글을 읽고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활동을 했다. 이 활동에서 초점에 둔 부분은 문법지식의 학습(고쳐쓰기를 위한) 외에도 ‘지식/정보를 다룬 글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고 메모하는 방법을 연습시켰다. ​

글을 읽기 전에 밑줄 긋는 법과 메모하는 법을 매번, 재차 알려주고 “글이 어려운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나랑 같이 읽는 거야. 혼자 읽어서 바로 이해될만한 내용이면 굳이 읽는 법 알려주면서 읽게 하지 않지. 같이 연습해보자. 분명 매 시간 더 잘하게 될 거야. 이 글을 쉽게 이해하려면 문장이 잘못된 이유, 수정 방법을 찾아서 표시하면 돼. 그걸 찾아.”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개인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한명 한명을 살피며 활동을 잘 좇고 있는지 확인하며 도움을 줬다. 중요한 곳에 밑줄을 긋고 있는지, 그냥 아무데나 그냥저냥 찍찍 그림 그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걸 중심적으로 본다.

최상위권 학생이 아니면(읽기 능력 기준.) ‘중요한 곳에 밑줄 그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애초에 중요한 게 뭔지를 못 찾는다.
학생들에게는 ‘잘못된 이유, 수정 방법’을 이야기하는 문장에 샤프나 연필로 희미하게 밑줄을 그은 뒤, 글을 다 읽고 나면 밑줄만 확인하면서 다른 내용들을 포괄할 수 있는 문장 하나를 찾아 형광펜으로 표시하라 말했다. 지도를 받는 친구에게 연필로 밑줄을 그어보라 이른 뒤에 다른 학생들을 좀 돌아보고 오면 글 전체를 읽고 몇몇 문장에 표시를 해둔 상태가 된다. 그럼 “대표 문장 찾아보자. 다른 문장들 다 엮어낼 수 있는 문장은 뭐야?”라고 말하면 된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안내를 했다.
“중요한 내용에 밑줄 그으라는데, 중요한 내용이 뭔지 모르겠지(웃음).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라 그래. 당연히 그럴 수 있어.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의 90%는 ‘중요한 내용 찾기’ 제대로 못할 거야. 이제 연습하면 되니까 긴장하지 말어.
지금 메모하고 밑줄 긋는 방법 배우는 이유 자체가, 내 눈높이보다 어려운 글 읽을 때 좀 더 쉽고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하라고 연습하는 거거든. 그냥 쭉 읽고 이해 다 되는 글이면 굳이 밑줄 긋고 메모할 필요 없어. 귀찮게 왜 그래. 어려운 글을 쉽게 이해하는 스킬이라고 생각하면 돼. 모두에게 까다로운 글 맞으니까 나만 바보인가 하며 쭈그러지지 말고. 어려우니까 이런거 저런거 하면서 내용 이해해보자고 하는 거야.
글쓴이는 중요한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어. 중요하니까 독자들한테 계속 이야기하면서 이해 시켜야지.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해서 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 무조건 다 그으면 혼란스러우니까 한 부분에만 그어.
막상 하나 찾으려면 그것도 힘들어, 그치(웃음). 일단 같은 말을 한다 싶으면 샤프로 연하게 밑줄 긋는 거야. 그리고 다 읽은 후에 밑줄 그은 부분 살피면서 제일 확실하게 이해된다 싶은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시해주면 돼. 이거다, 눈에 띄게.
여기서 잔머리를 조금 써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이 글을 읽는 이유를 생각해 봐. 문장을 잘 고치려고 읽는 거잖아. 결국 이 글에서 ‘그 표현이 틀린 이유’, ‘그러니까 어떻게 고치라는 건지’만 찾아서 밑줄 그으면 목적 달성이란 의미가 돼. 글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돼. 나한테 필요한 부분만 명확하게 찾아서 이해하면 글 잘 읽는 거야.
밑줄 그을 땐, 색깔펜을 깔끔하게 자 대고 긋는 습관을 들이기. 샤프로 찌지직 그으면 종이가 지저분해져서 가독성이 떨어져. 밑줄은 내용 이해에 도움 얻으려고 긋는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깔끔하게, 눈에 띄게.
메모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밑줄 옆에 자기가 밑줄 그은 내용을 요약해서 쓰는 거랑. 그 글에서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핵심어 위주로 중요한 내용들을 한 데 엮어 쓰는 거. 취향대로 택하면 돼.

그런데 메모할 때엔 절대로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쓰지 않도록. 팔만 아프고 효과는 떨어져. 본문에 이미 쓰여 있는 걸 왜 다시 써. 미련한 일은 하지 말자. 짧게 줄여서 써. 될 수 있으면 명사형으로 끝나게 하고, 기호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쓰고.”

당연히 다들 잘 하겠지 싶지만, 막상 확인 해보면 상위권 학생 몇 명이 아니고선 중요한 내용을 잘 찾아내지 못한다. 지나치게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으면 오히려 내용 이해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밑줄이랑 메모 많은 게 절대 좋은 거 아니라고. 읽기 능력이 높지 않은 학생일수록 ‘문장이 틀린 이유’, ‘수정 방법’만 심플하게 찾아 표시하라고 이야기했다.

“밑줄이 많을수록 혼란스러워. 많은 정보를 정리해두고 싶겠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글을 읽을수록 핵심만 간단히 찾는 게 이해에 도움이 돼. 글에 담긴 모든 정보를 정리할 필요는 없어. 필요한 것, 써먹을 것만 찾아.
절대 욕심내지 말고 표현이 잘못된 이유, 수정 방법만 찾아 쓰도록 해. 내가 그거 찾고 나서도 능력의 여유가 있다, 정보가 좀 더 추가돼도 혼란스럽지 않겠다 싶으면 그때 다른 정보들을 좀 더 찾아보고 추가 하는 거야.”

수업 전반부 20분은 학생들이 각자 교사가 제시한 글을 읽고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시간으로 진행한다.
글의 내용이 어려워 이해를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개인 읽기 시간이 끝나면 모둠 토의 시간을 가졌다. 모둠 활동의 중심은 ‘잘못된 예문을 만들고 수정하기’에 있다. 수업의 목표는 ‘잘못된 문장을 수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교사가 제시된 글을 100%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 활동을 거치고 나면 학생들이 대체로 “아, ‘-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 문장은 별로구나.”같은 글쓰기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 이상씩은 갖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1학기에 각자 써서 제출한 생활글을 복사해서 나눠준 뒤, 1~4차시에 안내된 문법 요소를 잘못 적용한 사례를 그때그때 용지에 표시를 하게 했다. 이 수업이 끝날 때엔 글 전체를 수정할 텐데, 그때 우리가 배운 내용들이 모두 적용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을 했다. 모둠 토의가 끝난 뒤 남는 시간에 학생들은 1학기 활동 결과물에서 잘못된 표현을 각자 찾고 수정했다.

학생들이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 결과 학생들이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한 결과
1학기에 쓴 생활글에 수정할 내용을 직접 쓴 결과 1학기에 쓴 생활글에 수정할 내용을 직접 쓴 결과

2) 5차시 : 서밤 외, ⟪마음의 구석⟫

1~4차시에 문법적인 내용에 대한 수정법을 이야기했다면, 5~6차시에는 글 자체를 세련되게 만드는 법을 이야기했다. 이때 활용한 것은 서밤 작가의 ⟪마음의 구석⟫이다. 자존감, 가족, 자아인식 등을 소재로 삼은 글들이 많아 청소년들이 읽고 공감하며 도움을 받을 지점이 많은 책이다. 그 중 두 편을 가지고 와 한 차시에 한 편씩을 소개했다.

5차시의 목표는 '좋은 생활글의 요건'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1학기 수행평가에서 생활글 같지 않은 글을 써내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많았다. 성적/진로에 대한 부담으로 출발했다가 한국사회에 대한 분노 폭발로 맺음 되는. 국어시간에 ‘우리나라 왜 이래’, ‘학벌 사회 극혐’이라는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수업 아니고서도 할 수 있으니까.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험을 하길 바랐는데, 1학기엔 마음만큼 되지 않아, 학생들이 진지하게 ‘생활글’의 요건에 대해 생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 기획한 것이 5차시 활동이었다. ​생활글과 논설문은 무엇이 다른가, 생활글은 왜 '문학'인가, 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활동지엔 '생활글의 특성', '글을 쓰는 이유', '매력적인 생활글의 조건'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들을 담아내려 했다. 학생들은 다음의 질문을 모둠원과 토의한 뒤 그 결과를 발표했다.

1. 작가가 이 글을 쓴 이유를 추측해보자.
2. 이 글의 매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3. 자신이 독자에게 미치고 싶은 영향을 떠올려보고, 그것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글을 수정해보자.

학생들이 가져온 답안들을 확인하며 글쓰기의 목적, 매력적인 글의 요건을 일반화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글을 쓰면 정말 좋아. 예를 들어서 내가 렌즈보다 안경을 좋아해.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안경이 좋은가보지’로 끝나거든. 그런데 내가 왜 안경을 더 좋아하게 된 거지, 그렇게 된 이유가 궁금하면 글을 써보는 거야. 안경과 렌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차근차근. 당시엔 무슨 일이 있었고 난 어떤 생각을 했고. 그렇게 정리를 하다보면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갖게 된 흐름이 보여. 아, 이런 이유였구나. 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거구나.
판단의 과정을 알게 된다는 건 내가 무엇을 중시하고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거야.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시하지 않아, 내가 더 소중해, 이런 결론을 내렸으면. 이게 꼭 렌즈와 안경을 택하는 문제를 떠나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거잖아. 사람들은 춥다고 하는데 난 더워, 그래서 반팔을 입고 싶어. ‘반팔 입어도 되나? 미친 애처럼 보는 거 아니야?’ 싶을 때 렌즈를 택한 나를 떠올리면 ‘아, 난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날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야. 그럼 겉옷을 입겠지. 생각을 정리하는 건, 현재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만드는 일이면서도 미래의 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돼.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자. 내가 고민을 마무리 했어. 몇 년 갈팡질팡 하다 이제 정리한 거야. ‘아, 난 안경을 좋아해.’ 그럼 지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겠지. 이게 꼭 ‘안경을 써, 이게 정답이야, 스스로를 사랑해야지.’가 아니라, 난 이러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어, 이게 정답은 아니지만 네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음 좋겠어, 라는 식으로.
이게 우리가 1학기에 대거 제출한 논설문과 다른 점인데(웃음). 얘들아, 우리가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생활글을 쓰는 거잖아. 생활글은 문학이야,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어. 독자에게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하면 문학 아니야(웃음). 강요하면 안 돼, 그냥 보여주는 거야, 내 생각의 과정을. 폭력적으로 말하지 마(웃음). 읽는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서 쓰는 거야.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도움이 됐음 좋겠어, 라는 맘으로.
<네이트판> 들어가 봤어? 사람들이 고민 있으면 글 쓰잖아. 답글 막 이백 개씩 달리고(웃음).
글을 쓰는 행위는,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단 맘과 연결되어 있어. 이게 막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 써서 나만 보면 모르겠지만, 우린 공개되는 글을 쓰는 거잖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공감받고 싶다, 라는 생각도 글을 쓰는 주요한 이유가 돼.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 응원, 공감을 얻으려면 ‘나도 이런 생각했어’라는 포인트들이 많을수록 좋겠지.”

“이 글의 매력은 글쓴이의 생각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담겼다는 점이야. 진솔하다는 건 뭐지? 약한 점, 부끄러운 점을 숨기지 않는다는 거야. 자랑을 막 마음에 있는 대로 쏟아내, 엄청나게. 그건 진솔한 거 아니야. 재수 없는 거지(웃음).
사람들은 약점을 솔직하게 말하는 글을 좋아해. 자랑만 꽉 차 있어, 내가 너무 훌륭하다고 말하는 거야, 다들 나처럼 해보래, 그럼 끝까지 못 읽어. 재수 없어서(웃음).
나처럼 나약한 사람이 어찌어찌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려 하는 이야기, 혹은 극복하지 않더라도 안고 가려 노력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 받지. 아, 멋지다.
작가의 멋짐은 그런 데서 나오는 거야. 인정하는 힘, 부족하지만 끝까지 노력하는 힘.
가르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도 이 글의 아주 큰 매력이야.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 판단은 독자가 하는 거야. 이건 문학이니까. 진-짜, 논설문 쓰지 마라(웃음).
이건 너희가 선택할 문제인데, 이 글의 작가는 마무리에 자기 생각을 짤막하게 다시 한 번 정리해주거든. 이것도 매력 포인트가 된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경험을 이야기 하고 딱 끝내는 글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
내가 당시 겪은 일, 생각을 진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썼어. 그럼 경험만 이야기하고 멈춰도 돼. 여운이 남아. 근데 또, 마무리에서 내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해보고 싶을 수 있잖아, 그럼 이렇게 한 문단 정도로 엮어내도 괜찮아. 그럼 글이 완성된 느낌으로 끝나. 완결성 있게.
취향대로 하면 돼. 난 너희가 뭘 하든 다 좋아. 논설문만 쓰지 마(웃음).”

정리를 해주고 난 뒤엔, 학생들에게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 강조되는가’를 기준으로 자신의 글을 평가하고 부족한 내용을 보완하라 일렀다. 그리고 수업을 마무리.

3) 6차시 : 서밤 외, ⟪마음의 구석⟫, 한 번 더.

그간 학생들이 경험해 온 작문활동의 목표가 ‘일단 완성’에 있었다면, 이 활동을 통해 더 ‘잘’ 쓰는 법을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다. 6차시의 활동은 매력적인 문장과 구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하는 일이 목표였다.

학생들에게는 5차시와 같은 책에 실린 다른 글을 한 편 읽게 한 후, 표현상 특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했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글의 구성과 문장을 활용한 방법.

토의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1. 작가가 자신이 우는 장면을 표현할 때 ‘눈물이 흘렀다’가 아니라 ‘콧물이 흘렀다’라고 말한 이유
2. ‘손가락 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글의 도입과 마무리에 반복 배치한 이유
3.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 ‘쭈그러진 것들’을 언급하여 맺음한 이유, 작가가 의도한 효과

학생들에게는 완성글에 반드시 독자가 수첩에 옮겨 쓸 만한 문장을 만들어 넣으라고 강조했다. 멋진 문장을 만들 때에는 의미 없는 감성문장 말고, 알맹이 있는 의미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의 주제로 제시한 문장은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였다. 왜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굳이 콧물 이야기를 꺼냈는지 생각을 해보라 일렀다.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아주 다양했다. ‘너무 슬프게 우니까’, ‘아이처럼 엉엉 우니까’와 같은. 학생들에게는 창의적인 문장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면 이렇게 익숙한 표현을 살짝 비틀어 만들어보라는 말을 했다.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고 더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개인 활동 시간에는 자신이 1학기 때에 쓴 생활글을 읽고 사람들을 감탄하게 할 만한 문장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만약 실려있지 않다면 만들어 써보라 일렀다.

4) 7~8차시 : 완성글 쓰기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학생들은 수정글을 작성했다. 결과는, 훨~씬 좋아졌다. 아주아주아주 좋아졌다. 고쳐쓰는 방법과 구성, 문장에 대해 수업을 한 뒤 자신이 직접 자기 글을 고치게 하는 일이 정말 효과가 컸다.

1학기에 쓴 초안과 2학기에 쓴 수정본을 비교해보았을 때 대부분의 학생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1. 문단 나누기를 하게 되었다.
2. 주제를 좀 더 초점화시켜 강조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3. 주제 자체가 심화되었다.
4. '것, 들' 같은 불필요한 표현의 사용, 자기 마음을 두고 '-한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 과거형의 남발 같은 현상이 아-주 많이 줄었다.
5. 문장이 깔끔해지고 짧아졌다.
6. 한 문장 안에서 같은 단어 두 번 이상 쓰는 현상이 급감했다.


내용과 문장의 변화를 실감하실 수 있도록, 한 학생이 쓴 글의 비교본을 소개한다.

수정 전(1학기 최종본) 수정 후(2학기 최종본)
나에 대해 말하는 방법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며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학을 가면서 나의 삶이 크게 변했다. 전학을 처음 와봤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때부터 ‘나’라는 사람은 늘 착하고 성실했어야 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친구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려 도와주는 친구였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나에게 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말하는 것은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때때로 말하고 싶었다. 나의 즐거움은 하교후 집에 와서 전학오기 전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이었다. 하루씩 지나갈 때마다 행복하진 않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친구들이 나를 착하고 성실한 친구로 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을 무렵, 한 친구가 나에게 친구들에게 늘 잘해주는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너가 더 착해’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가식적이었던 나는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지 못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행복해서 웃을 수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의 신**에게 웃음은 ‘자신을 감추기 위한 도구’였고 가식이었다. 웃음 뒤로 나를 숨기고 나니 편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신경쓸 필요도 없었다. 늘 밝고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나는 나를 찾고 싶었다. 제일 먼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물었다. 평소에 나를 감춰왔기 때문에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착하고 성실한 아이’, ‘선생님을 잘 돕는 친구’.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물론 친구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친구는 나에게 힘내라고 말해주었고 나는 용기가 생겼다. 어쩌면 나는 다른 대단한 말이 아니라 ‘힘내’라는 한 마디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에게 말한 후의 생활은 많이 달랐다. 친구들에게 짜증을 낸다거나 싸우는 것은 못했지만 누군가의 의견에 나의 생각을 말하게 되었고 조금씩 신**라는 존재를 좋아하게 되었다. 늘 바보 같았지만 이젠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게 생겼고 나의 진짜 모습을 좋아해주는 친구도 생겼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더 이상 겁내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 후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고 즐거웠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며 살지 않았다. 하지만 전학을 가면서 나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전학을 처음 가 본 나는 새로운 환경, 친구들에 적응하지 못했다. 마치 내가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나를 바꾸기 위해 나를 감추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이런 방법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계속 나를 감추기로 했다. 늘 착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친구, 수업 시간에 늘 집중하는 학생. 항상 웃었지만 외로웠고 답답했다. 마음에 있는 말을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초라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면의 나도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하고 옷 입는 스타일도 바꾸었다. 나는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무작정 나를 바꾸려고만 했었다.
어느 날에는 친구가 나에게 항상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나에게 웃음은 도구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이런 나를 좋게 봐주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해도 이 친구는 이해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조차 나를 잘 몰랐었기에 일단 종이에 하나씩 써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나에 대해 모르는 게 훨씬 많았다. 나는 날 알지만 숨기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나는 날 숨겼던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일 처음 나를 보여준 건 전학 온 학교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친구였다. 내 우려와 달리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쉬운 거였으면 처음부터 나를 감출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번 말하고 나니 두 번째는 쉬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낸 후부터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늘 웃고만 있었던 내가 이제는 화도 내고 의견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늘 별로였던 내가 이제는 좋아졌다. 외롭지 않고 한심하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던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겼고 좋아하는 것도 생겼다. 전학을 온 후 무채색이었던 나의 삶에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많은 일들이 있고 난 후에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나의 부족한 점을 숨기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일, 그리고 진짜 행복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글을 멋지게 쓰고 싶다’란 욕심을 품었음 좋겠다.
아이들은 춤 잘 추는 사람이나 요리 잘하는 사람, 옷 잘 입는 사람, 돈 잘 쓰는 사람(읭?)을 보면 ‘나도 그러고 싶다’며 마음이 동하는데, 잘 쓴 글을 두고는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마음을 동하게 하는 사례’를 자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멋져!’란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자주 봐야 좋은 것도 알아보고, 좋은 걸 알아봐야 욕심도 내보고 하는 건데 애들이 ‘빼앗고 싶은 글’을 접하는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교과서엔 막 한국전쟁이 배경인 소설 나와 버리고, 개화기 시 나오고(폄훼하는 건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문학 수업 경험에 ‘종탑 아래에서(윤흥길)’와 ‘향수(정지용)’가 포함되어 있다. 그 글들의 멋짐을 알아보기엔 아이들의 배경지식과 독서력이 부족하단 의미다.).

학생들이 지적능력을 (좋은 곳에) 발휘하는 사람들을 보며 ‘멋지다!’라고 감탄하는 경험을 했음 좋겠다. 그 생각이 ‘나도 멋지게 말해볼래, 멋진 글 써볼래’라는 마음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지적 멋짐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일의 ‘멋짐’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 기획한 수업이다. 단순히 작문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애썼다’라는 칭찬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게 되길 바란다. 되게 멋있는 성과물을 손에 쥐어보는 일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하게 하면 그 경험이 앞으로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 나가지 않을까, 문득문득 떠올라 자신의 한계를 좀 더 높이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입에서 말했듯 이 수업은, 교사가 들이는 품에 비해 ‘아 맞다, 내가 국어교사로서 이런 걸 해야했다’라는 깨달음을 받은 경험이라 소중하다. 책의 힘, 아이들 자체가 가진 힘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생님께서도 한 번 경험을 해보시길 바란다. 학생과 함께 삶이 증진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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