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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이슈이슈!

수업, 당연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이재호 고성고등학교 교사
고성고등학교 교사 이재호

아이들과 <언어와 매체> 과목을 공부하면서 언어와 사고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성장에 주목해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성장을 관찰하고, 생활기록부에 언어를 활용해 기록하고 나면, 저는 아이들과 사랑‘에’ 빠진다고 느껴요. 그러나 현재 우리 교육에 입시는 있지만 사랑‘은’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1. 왜 사랑은 빠져 있는가

2016년에 총 4000만 대의 상업 항공기가 목적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치명적 사고를 당한 항공기는 10대에 불과하다. 언론이 언급하는 항공기는 당연히 이 10대다. 무사히 착륙한 항공기는 뉴스거리가 못 된다.

-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저)-


지난 2학기에 아이들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도서로 선정해 읽은 책 ‘팩트풀니스’의 내용입니다. 아주 큰 문제가 되는 사건, 사고는 사실 매우 적음에도 언론은 그 사고를 보도합니다. 당연한 일은 보도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그 드문 일을 흔한 일이라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속보입니다. 모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엄청 사랑하고 있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혹시 이런 뉴스를 보셨나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며 비행기가 안전히 착륙하는 일처럼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벌어지는 소수의 교육문제가 언론에 보도됩니다. 물론 그 문제들은 보도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보도된 내용만을 우리 교육의 모습으로, 학교의 모습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 관계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 응당 그래야만 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쉽게 외면 받습니다. 저 또한 저와 만나는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많은 교사들이 지금도 치열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랑하는 교직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만은 않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비행기가 수천 킬로 위로 승객들을 태우고 올라갔다가 무사히 착륙하는 일처럼.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2. 수업, 나를 지탱해주는 사랑의 기억

수업 준비를 하다가 문득, ‘고등학생 때 나는 수업시간에 어떤 생각과 말을 했었지?’하고 떠올려보았습니다.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기억력을 탓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고등학교에 다닌 2000년대 말에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경험이 드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제가 말했던 것은 답이 있는 질문에 대한 것이었어요. 답이 정해진 질문에 답을 말하고 무척 뿌듯해했던 감정만 흔적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그 지식은 과연 진실이었는지, 옳은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떤 생각과 말도 제 것은 아니었기에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의 저는 자아에 대해, 자존감에 대해, 나에 대해 생각해본 기억, 경험이 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방향으로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지 못했고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 기억이 납니다. 사춘기를 뜻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것을 시험 답안지에 써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생각, 제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된 사춘기를 지탱해준 힘은 타인의 격려에서 나왔습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써간 글을 고2때 국어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는 ‘재호야, 너의 글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 구름이 걷히는 기분이 든다.’ 라고 노트에 써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꽤나 오랫동안 저는 힘든 일이 있으면 사랑이 담긴 그 기록을 보려고 노트를 꺼내들었습니다.

제 수업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칠 때 가끔 꺼내어 먹을 수 있는 기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에 대한 기억이 제가 전달한 지식에 대한 단순기억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기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가 했던 말 말고 자신이 했던 말들이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친구들하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억을 만들어주는 데 도움을 주는 타인,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바로,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3. 수업도 사랑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이들과 좋은 수업을 함께 만들고 싶은데, 마치 미성숙한 시절의 연애처럼 쉽지 않습니다. 수업과 사랑,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후회가 있습니다. ‘나’를 몰랐습니다. 사랑처럼 수업도 교사가 자신을 모르면 실패합니다. 1교시에 성공했던 수업이 2교시엔 실패합니다.

수업은 그 형태를 떠나 참 어렵습니다. 그 중 학생중심 수업을 준비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구상입니다. 수업을 구상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고, 교사 창의적 디자인 능력, 피드백 능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구상을 했거나, 질문을 잘못 던지면, 아이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질문이 잘못돼서 배움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평가는 위협을 느낄 정도로 어렵습니다. 평가 전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말 평가와 수행평가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나 동료교사가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상호평가의 경우에도 친구들끼리 평가하고 점수를 주는 것에 거부감을 갖기도 합니다. 수업의 양상 때문에 학생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게 된다면 수업실패가 곧 사랑의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제 수업이 처참히 실패했던 기억이 크게 두 번 있습니다. (사실 더 많습니다.) 발령 받은 첫 해였는데 소설 속 시점에 대해 중3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논문을 요약 정리해 알려주었습니다. 모두가 눈에 초점을 잃고 잠이 들었습니다. 소리를 질러 깨우고는 남은 부분을 듣는 이 없이 혼자 설명했습니다. 다른 한 번은 한글날을 기념해 훈민정음혜례본에 대해 배운 수업이었습니다. 큰 고민 없이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혜례본을 20등분정도로 잘게 잘라서 나눠주고 모둠별로 조각을 빨리 맞추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날은 못 느꼈지만 나중에서야 아이들이 한글의 가치가 아니라 빠르게 가위질하고 풀칠하는 법에 대해 배운 수업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두 실패의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하나는 과도한 지식만을 주입식으로 전달하려 했고, 다른 하나는 활동중심 수업을 그저 몸을 움직이며 모둠 활동하는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랑이 실패하는 양상도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지나쳐 상대가 어떻든 내 마음대로만 하려고 들면 강요, 학대가 됩니다. 한편으로 상대가 어찌 되든 내버려두면 무관심과 방임이 됩니다. 제 의욕만 앞서 교사만 만족하는 주입식 수업을 했던, 활동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무책임한 방임을 했던 제 수업을 반성합니다. 종종 미성숙한 사랑의 기억에 몸서리치며 이불킥을 하듯, 저는 폭삭 망했던 이 흑역사를 기억합니다. 흑역사도 또한 제 역사이기에 잘 기억하고 늘 더 나은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4. 노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를 돌아보는 일은 무척 괴롭습니다. 특히 망한 수업을 다시 떠올리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려면 늘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이 노력은 어디에서 올까요?

요즘 대입전형 중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불신 논란이 생기면서 생활기록부 기재에 많은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줄여서 세특)은 줄어들지 않아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세특이 단순히 입시를 위한 도구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세특을 잘 써주시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수업을 구상하고 오래도록 관찰하고 아이에게 어울리는 문장과 단어를 골라 기록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노력하고 계십니다. 선생님들의 선의에서 나온 많은 노력과 고민들은 그러나,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노력과 고민은 분명히, 분명히 사랑에서 옵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수많은 업무에 지쳐, 관계에 지쳐 소진한 교사들조차 힘듦을 참고 노력합니다. 지금 당장은 지쳐 아이들을 사랑하기 어렵더라도,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책임감, 사랑을 걸고서라도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모습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많은 교사들은 자신을, 학생을, 이 직업을 사랑해서 노력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5. 사랑을 담아 쓰는 연애편지. 생활기록부

저는 수업 속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성장을 관찰해 그에 적합한 단어를 고르고 다듬고 기록하다보면,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나 사실 너를 지난 1년 간 지켜봐왔어. 너는 다른 친구 얘기를 잘 들어줘. 마음이 편한 친구들하고 있으면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도 해.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도와줬어. 참 고마워. 널 많이 사랑해. 너도 너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 학생중심 활동수업시간에 쓴 수업노트 학생중심 활동수업시간에 쓴 수업노트
  • 강의중심 수업시간 후 수업진도를 기재해 둔 수업노트 강의중심 수업시간 후 수업진도를 기재해 둔 수업노트

사랑하려면 소통해야 합니다. 상대를 더 알아가기 위해 대화해야 합니다. 수업의 방식이 일방적인 강의형태로‘만’ 한 학기 내내 이뤄진다면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걸어 교무실로 돌아올 때 오늘 수업에서 ‘저와 아이들의 목소리 비율’이 얼마였는지에 대해서 돌아봅니다. 목소리의 비율이라는 것이, 저를 제외한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간이면 그 시간은 다 저만의 목소리로 채워진 시간이니까 아이들의 목소리, 즉 생각을 알기 어려워요. 저 혼자 말하고 아이들이 듣는 상황이 오면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착해서 이해가 안 되었음에도 노력하는 저를 위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살짝 벌려 감탄해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귀여운 아이들. 그러나 저는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매 월요일 수업 시작 시간에 전 주에 배운 내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눠 짝과 설명해보는 시간을 갖는데 잠시지만 그 동안은 저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을 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생겼을 때, 그때 기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 손이 노트에 무언가를 적을 수 있고, 눈이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고, 귀로 아이들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하게 되는 데에 필요한 가장 우선 과제는 제가 말을 멈춰야 합니다. 저는 말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관찰해서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AI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업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선생님과 학생의 좋은 유대관계, 깊이 오래도록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배움이 생기고 사랑이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입시제도로서의 세부특기사항이 아닌, 배움을 위한 성장을 위한 사랑의 모습이 기록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6. 사랑, 일상 속 보통날의 기억

사랑은 이벤트처럼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주 특별한 날의 기억만 사랑의 기억이 아니듯 수업 또한 원대한 목표를 가진 프로젝트만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 수업이 갖는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수업은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 내용을 함께 읽는 강의식 수업 3차시를 진행한 후 마무리차시 1시간 동안 진행했던 활동입니다. 특별하고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수업이었지만 학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은 수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에게 모둠별로 7개의 문제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그것의 순서를 정해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외로움·고독, 가정불화, 취직 등 취업문제, 학교 성적 및 진학 문제, 이성 교제 문제, 경제적 어려움, 신체·정신적 장애 총 7가지가 적혀있었는데 우선 아이들에게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어떤 문제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순서를 정해보도록 안내했습니다. 아이들은 고민을 하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고, 만장일치 토론이다 보니 조원 의견이 모두 일치할 때마다 순서를 정했습니다. 저마다 사회에서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달랐습니다.

수업 사진

모둠별로 순서를 정한 이유에 대해 발표한 후에 다시 안내해주었습니다. 사실 그 종이에 적힌 7개의 문제는 자살을 생각해 본 한국인들이 자살 동기로 꼽은 것임을 알려주고, 다시 한 번 순서를 정해보라고 이야기했어요.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문제들을 살펴보았고 앞서 순서를 정한 것을 많이 바꾸었습니다.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과 신체 정신적 장애 등이 앞선 순서로 올라왔는데,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문제인 학교 성적 및 진학 문제가 높은 순서에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자료였기 때문에 순서가 확실히 정해진 문제들이었으며 그 중 압도적인 1위는 사실, 경제적 어려움이었습니다. 모둠의 반 정도가 1위로 경제적 어려움을 골라냈습니다. 통계 결과를 맞히고 틀리고의 문제는 사실 이 수업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만,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을 배우고 있었다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지난 수업 시간, 난쟁이는 공장 옥상에 올라가 자살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활동이 앞선 문학작품과 연계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워낙 시치미를 떼고 전혀 다른 무언가를 고민하는 시간처럼 수업을 구성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아이들에게 작품 속 누군가의 죽음이란 잠시 잊힐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심지어 교과서의 내용이 난쟁이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조각글이었거든요. 통계 수치 중 1위는 경제적 어려움, 2위는 신체 정신적 장애, 3위가 가정 불화였던가요. 아이들은 그제야 난쟁이 아버지가 경제적 어려움을 심하게 겪는, 신체장애를 가진, 그로인한 가정의 갈등과 불화를 겪는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함께 슬퍼해줍니다. 예쁜 아이들.

문학작품의 내용이, 그것도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내용이 거의 50년이 지나가는 2018년도 통계와 맞아떨어지는 대목을 보며 아이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생각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난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낡게 하는지, 초라하게 하는지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수 있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난쟁이는 가난으로 인해 난쟁이로 태어났다고 할 순 없지만 가난했기에 몸도 마음도 늘 낡고 작았습니다. 난쟁이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쭉 가난했다고 묘사됩니다. 노비문서가 그 증거입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잘 못 배워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묘사되는 대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가난하기에 남들보다 배움에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가난하기에 남들보다 시간을 더 써서 알바를 해야 하고 그래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이른바 ‘서울주요 15개 대학’에 가지 못합니다. 대학에 가서도 등록금은 빌려야 하고, 역시 취업준비에만 완전히 힘을 쓰기는 힘들어집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힘듭니다. 다시 가난해집니다.

때로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라고 불립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도 생각됩니다. 하지만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만 작동하는 교육이라면 누군가를 돕는 마음, 아픔을 가진 사람을 보고 잠시라도 얼굴을 찡그리며 함께 괴로워할 수 있는 마음까지 가르칠 수 있을까요? 사다리 아래에서 몰래 이웃이 굽는 고기 냄새를 함께 맡던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공부하는 데에 방해만 되는 사치스러운 오지랖이 되고 마는 것일까요?

비록 학교에서 아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선 돕기 어렵다고 해도 아이들의 마음마저 가난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난쟁이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함께 아파할 줄 아는 것에 대해, 우리가 받는 의료 서비스는 사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발전했다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반드시 수업시간에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수업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적어도 그것만큼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일상의 모든 수업이 활동형으로 진행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성취기준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문학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기에 강의형태로 소설 내용과 소설 속 사회 맥락을 충분히 정리했습니다. 여기에 작은 활동이 들어와 일상적인 강의중심 소설 수업에 숨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앞선 수업 내용들이 자신의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이 수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7.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쳐있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실은, 제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수업준비를 열심히 하고 아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아이가 있습니다. 평소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강한 열정이 있고 언제나 예의를 지키며 생활합니다. 아쉽지만 평소 수업시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습니다. 춤을 잘 춰 무대를 발칵 뒤집어놓는 능력을 가진 이 아이는 무대에서의 모습과 달리 자존감이 부족합니다. 정말 잘 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맙니다. 겸손을 넘어 자기비하에 이르는 모습을 종종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학 수업 시간에 시조를 모둠별로 각각 공부해 다른 모둠에 설명해주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학습자료를 만드는 중 아이의 척추가 펴지더니 열정을 뿜어냅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자신의 가슴에 창문을 내겠다는 내용을 담은 시조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창문모양으로 자료를 디자인해 열었다 펼 수 있게 제작해냈습니다.

수업 사진

사실 이 수업의 평가 요소에 자료의 디자인은 점수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발상을 보여준 점에 저는 감동했습니다. 아이는 디자인만 내리 진행하느라 사실 더 중요한 설명은 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들의 동료평가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잘 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정작 본인은 자신에게 최하위점수를 부여하며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자기평가를 남겼습니다.

  • 학생의 자기평가 학생의 자기평가
  • 학생에 대한 동료평가 학생에 대한 동료평가

수업을 모두 마친 후 아이와 따로 만나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수업 시간에 그 과정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그리고 동료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세세히 알려주었어요. 놀라면서도 감동을 받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 또한 마음에 무언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모습을 보는 교사 또한 자기 수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수업을 그리고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서로가 사랑할 수 있도록, 함께 성장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수업 시간입니다. 아무리 지쳐도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8. 온전히 사랑할 시간이 없다

사랑은 오래 보아야 깊어집니다. 저는 처음 만난 날부터 제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해서 사랑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교사는 늘 시간과 싸웁니다. 수업을 정말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학기, 학교에서 근무하는 일과시간에 수업준비를 했던 시간이 10시간이 안 됩니다. 수업이 많기도 하나 그것은 괜찮습니다. 수업이니까요. 문제는 업무입니다. 과도한 업무에 치입니다. 업무를 하며 담임도 겸하며 수업을 하고 잠시 시계를 바라보면, 퇴근시간이 됩니다. 교사는 소진됩니다.

퇴근하고도, 주말에도, 수업 준비하는 교사가 많습니다. 사랑하니까요. 문제는 사랑이 다른 사랑을 침범하는 데에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할 시간을, 머리를 식히며 재충전하며 자신을 사랑할 시간을 침범합니다.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랑은 응원받기 어렵습니다. 교사인데, 당연히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겠지요?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더욱 외롭습니다. 교사들이 학생만 사랑하며 헌신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교사는 사랑에 무뎌집니다.

다행히도 제 곁에는 제가 소진되지 않게 열렬히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제 곁에는 제가 소진되지 않게 열렬히 응원해주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교사들은 아이들을 등에 업고 높이 올라갔다가, 늘 평소처럼 무사히 착륙합니다. 고생했다고, 박수 한 번만 쳐 주세요.

9. 사랑의 기술, 그리고 실천

제가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 얘기를 꺼내는 듯해 걱정됩니다. 고민하다가 집에서 조용히 늙고 있던 1993년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펴보았습니다. 먼지를 털어내자마자 머리말로 인용된 파라켈수스의 말이 자꾸만 수업 언어로 치환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그럴수록 사랑은 더욱더 위대하다...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파라켈수스-

에리히 프롬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사랑도 기술이기에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술 습득 과정을 둘로 나누면 첫째는 이론의 습득, 둘째는 실천의 습득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가장 필수적인 세 번째 요인이 기술 숙달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 사랑에 대한 지식을 알아야 한다는 말,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에 대한 것 또한 알아야 한다는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능숙히 숙달해야 한다는 말. 사랑에 관한 책인 줄 알고 있었는데 왜 자꾸 수업 얘기처럼 느껴질까요? 심리학자인 줄 알았더니, 교직 대선배를 만난 기분이 듭니다.

1장에서 에리히 프롬은 이 책에서는 사랑에 관한 이론을 주로 검토하고 그게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천에 대해선 할 말이 별로 없긴 하다.’는 말을 남기며 1장을 마쳐버립니다. 아니, 이렇게 1장을 끝내면 다 읽고도 사랑을 진짜 실천하는 법은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에리히 프롬 선생님, 섭섭합니다.

방학임에도 생기부 기록을 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1장까지밖에 못 읽었지만, 그 시간에 그냥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냥, 수업 준비하러 가야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수업 개선 이야기에 자꾸 사랑타령을 하는 저는 사실 좀 특별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고성 거진중학교에 처음 발령 받아 만났던 중1 아이들과 학교 급을 넘어와 고성고등학교에서 올해 고3이 될 때까지 쭉 함께하고 있습니다. 14살짜리들이 19살이 되어서 이제 곧 대학에 갑니다. 제 모든 교직 생활 6년과 그들의 중, 고등학교 생활 6년이 겹칩니다. 함께 사랑하며 보낸 이 시간들이 저를 사랑꾼으로 만들었습니다. 과도한 사랑이야기,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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