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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길
수업을 바꾸는 이유
교직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수업을 하는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은 열심히 배우는 그런 멋진 교실을 그렸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젊어 학생들과 소통하기 쉽다는 점도 있고, 이 순간을 위해 공부했던 시간과 노력을 믿었습니다. 당연히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내심 자신도 있었어요. 교과서의 내용을 완벽히 공부하고, 교육과정과 수능 문제 유형들을 분석하고, 잘 나가는 인터넷 강사들의 강의와 패턴까지 공부하며, 좋은 부분들을 흡수하고,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눈빛이 변하면서, 저 혼자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많은 것들을 준비했지만, 기대만큼 학생들은 행복해 보이질 않았습니다. 깨우면 쓰러지고, 깨우면 또 쓰러지고를 반복합니다. 화학은 점점 어려운 과목이 되어가고 있고, 저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며 이런 모습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비참했던 순간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쓰러져 자고, 살아남은 몇몇의 학생들은 저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제 수업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저는 상처받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보호막을 두껍게 쳐가고 있었으며, 학생들은 계속 수업시간에 쓰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잘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임용이라는 시험이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혹은 교사들이 잘 가르치는 교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수업을 듣고 함께 교실에 있는 이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랐습니다. 같은 교실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해줄 수 있다면 너무나도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제 직업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학생들도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앞에서와 같은 고민을 한창 할 무렵, EBS에서 좋은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더군요.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학생들은 왜 대학에 가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에서 우리가 관심 있고, 더 알고 싶어 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을 채워 지적 만족감을 느끼고, 이런 공부와 고민에서 우리 삶이 조금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게 도움까지 된다면 더 좋겠죠. 그러나 이런 목적은 사라지고, 대학이 취업을 위한 중간 단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등부터 차례대로 줄 세워 놓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본질도 잃고, 목적도 잃고, 그 중간 과정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 입시라는 것에 목매고 있는 저도 과학을 왜 가르치는지 본질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잠시 대학 입학이라는 중간 과정을 놓고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왜 과학을 가르치며, 배워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교사, 그리고 믿고 의지하는 동료교사들과 대화와 고민을 함께했으며, 학생들과 과학과 관련된 대회에 참여했고, 수업 동아리에 가입하고, 각 종 연수들도 들으러 다녔습니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과학교사란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과학지식을 가르치고, 이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해 내는 과학적 탐구능력을 가르치며, 기본적 실험능력 함양을 위한 수공적 실험기능을 가르치고, 과학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윤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과학적 태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쳐야 할 것이 이렇게 많은데, 저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과학지식을 가르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던 거죠. 이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해오던 ‘강의’라는 수업 형태로 위 내용들을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사의 설명이 아니라, 학생이 직접 주제를 찾아보고, 실험을 설계, 수행 해보며, 결론을 내봐야 잘 배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강의보다, 협동학습으로. 설명보다 발표로. 수용적인 것보다는 능동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도록 수업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세 가지 수업 사례
수업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 그려질지 모르겠지만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2학년 화학1 내용 수업인데, 요즘 한창인 거꾸로 수업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생들이 예습하는 능력이 조금 부족하여 예습 영상 부분을 그냥 수업 시간에 강의로 합니다. 그리고, 모둠원과 함께 고민하여 답을 내고 이를 발표하는 형태의 수업을 진행합니다. 과학지식뿐 아니라 의사소통능력을 기르고 학습지는 설명보다는 발문으로 채워서 학생들이 추리력과 자료해석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합니다.
두 번째는 2학년 화학1 프로젝트 수업입니다. 화학1을 배우면서 관심 있던 단원을 다른 책이나, 참고서, 인터넷 등을 활용하여 더 깊고, 넓게 공부하게 만든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를 영상으로 표현하여, 배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입니다. 학생들이 매우 뛰어나다면, 잘 진행되겠지만, 아주 평범한 저희 학교에서는 교사가 많이 안내를 해줘야 합니다.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선정하고, 이런 것들을 모둠원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며 역할을 나누는 것까지. 이런 것들은 PBL 수업 연수를 들으며 배웠던 것을 활용했습니다.
세 번째는 1학년 과학 프로젝트 수업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설정하며,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 수행하고, 이것을 자료로 정리하고, 이 자료를 토대로 결론을 내는 것까지 학생들이 스스로 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교사의 안내가 많이 필요합니다. 각 단계별로 활동지를 만들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오르막길
수업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이지만, 이것이 항상 좋은 피드백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학생들은 관성 때문인지 기존의 수업을 요구하기도 하고, 활동 중심 수업이라 그런지 귀찮아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면, ‘굳이 이런 고생을 하며 수업을 바꿔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고민한 시간과 노력을 믿고,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믿고, 마지막으로 우리 학생들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힘겨운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젠 수업시간에 아무도 자진 않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조금씩 말을 하는 학생들이 생기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발표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들이 많이 있지만, 학기말에 교실 안에서 학생들과 제가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젠 학교로 출근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다시 제 직업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을 바꾸는 노력의 과정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저도 함께 변해갑니다.
처음 교직에 섰을 때, 정상에 있다고 생각했던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바닥에서 다시 위를 봤을 때는 정상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닥에 주저앉을 수는 없기에 다시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지금도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좋은 수업이란 정상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은 멈추는 순간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 앉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교사라는 직업이 참 힘든 것 같습니다. 답이 없는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니까요. 그래도 함께 올라가는 선생님들이 있고, 웃음과 질문과 배움이 많아지는 학생들이 있기에 올라갈 만합니다.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또 힘든 한 발짝을 내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