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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변화
“안녕하세요. 성남외국어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기술 교사 김범수입니다.” 다소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와 같이 누군가에게 필자를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외국어고등학교에도 기술 교과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요즘 같이 자기PR이 중요한 시대에 한 문장만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떠올릴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기억을 몇 초라도 더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자기소개이기 때문에 타인들은 온갖 미사여구를 이용해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성남외국어고등학교(이하 성남외고) 덕분에 진부한 방법으로 소개해도 효과적으로 필자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필자 역시 성남외고로 발령을 받았을 때 “외국어고등학교에도 기술 교과가 있었나? 발령이 잘못 난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고 성남외고 홈페이지에서 교육과정을 검색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교사라면 누구나 맹자의 군자삼락 중 하나인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를 꿈꾸며 우수한 학생 앞에 서기를 희망한다. 필자도 교사이기에 이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 다음 근무지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 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 과학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찾아본 적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곳에는 기술 교과가 없어 크게 상심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성남외고로 발령을 받은 필자는 “외국어고등학교에도 기술 교과가 있었나?”라는 궁금증과 더불어 우수한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렘을 동시에 가졌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수업 준비는 얼마나 해야 할까?”, “아이들이 수업에 너무 열심히 참여하면 어떡하지?” 등 평소 하지 않던 고민을 하며 부푼 기대를 안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남외고에서의 첫 학기는 필자의 기대와 달리 주요 교과 교사가 아닌 교사로서의 설움을 실감할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수능에 의해서 교과의 존립이 좌지우지되는 곳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그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이전 학교는 중학교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분위기여서 필자는 주요 교과와 그렇지 않은 교과의 차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교단에서 그저 열심히 수업만 했다. 그때 학생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필자는 수업 개선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는 도전이 아니고,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 맞게 진작부터 시도했어야 하는 변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기술 교과가 수능 교과가 아니라는 점 이전에, 매너리즘에 빠져서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교수학습법과 평가로 기술교과를 주변부 교과의 나락으로 필자가 먼저 더 깊게 떨어뜨린 게 아닌가 싶다.
오늘날에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전 세계가 경쟁하고 있다. 영화감독 류승환, RoMela 로봇 연구소 소장 데니스 홍, 광고천재 이제석, 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공통점은 실패, 도전정신, 창의성 세 가지이다. 세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삶이 “도전 정신과 창의성은 실패에서 시작된다.”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도전 정신과 창의성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도전 정신이 길러지고, 반복되는 도전 속에서 창의성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사용하던 교수학습법과 평가는 학생들에게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길러주기에 큰 모순을 안고 있었다. 먼저 교수학습법의 경우 이는 단순한 지식만을 전달하고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으로 필자도 모르게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흔히들 강의식 수업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강의식으로도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필자에게는 그러한 역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도전할 때는 능동성이 기본이 되어야 상황에 맞게 동기를 찾고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우스꽝스럽게도 누군가에 의해 감겨야만 돌아가는 태엽처럼, 특정 시간이 되어야만 울리는 알람처럼 수동적이면서, 정해진 규칙 안에 아이들을 가두어 두고 있었다. 그 결과 필자와 함께 호흡한 아이들은 지식이라는 산소공급기에 의지한 체 교실에서 살아가는 관상어가 되어 도전 정신과 창의성 하고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평가이다. 한 학기에 2회 시행하는 지필평가와 1회 시행하는 수행평가는 학생들에게서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특히 같은 비주요 교과이면서 지필평가를 한 학기에 한 번 시행하는 예체능 교과와 달리 기술 교과는 딱딱하고 단순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학기에 두 번씩이나 시험 보았기에 학생들은 당연히 자유로운 사고를 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심지어 수업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한 학기에 한 번 시행하는 수행평가에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요구했었다는 것은 필자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이다.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평가는 실패란 있어서는 안 되는 세계이다. 더욱이 한 번 잘못 받은 점수는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꼬리표로 붙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실패를 기본으로 하는 도전 정신과 창의성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신한 방법보다는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안정적인 결과를 보장해 주는 정형화된 방법을 더욱 희망할 수밖에 없다. 비록 기술이 비주요 교과이기는 하나 성적표에 나오는 결과는 주요 교과와 마찬가지로 잘 나오면 기분 좋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기술교과는 학생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수행평가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해서 불안해하며 점수를 기다리는 것보다 친구들의 작품과 적당히 비슷하게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 좋은 성적을 받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기에 필자의 평가는 당연히 도전 정신과 창의성이 사라진 평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도전과 변화”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수업과 평가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부담을 없앨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 한 학기에 2회 시행하던 지필평가를 1회로 줄여 학생들에게는 학업 부담을 줄여주었고, 필자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확보하여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문제 해결 및 프로젝트 수업들을 할 수 있었다. 둘째,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이 되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다. 재구성한 수업은 페르미 추정, 전자 회로를 이용한 조명 소품 만들기, 역학적 에너지를 이용한 구조물 설계, 가상현실 안경 제작, 캐릭터 헤드폰 등으로 학생들은 예체능 교과처럼 손을 사용해야만 했고, 수학과 논술처럼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사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에 1회 시행하던 수행평가에서는 A(10), B(8), C(6), D(4), E(2)라는 다섯 단계의 평가로 인해 A와 E 사이에 점수가 8점이나 차이가 났기에 학생들이 무리한 도전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과감하게 A(3), B(2), C(1) 세 단계로 구분하고 A와 C 사이에 점수가 2점밖에 차이가 안 나게 했다. 그리고 1회였던 수행평가를 3~4회로 늘려 무리한 도전으로 C를 맞더라도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게 했다. 더 나아가 수행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더라도 지필평가로 어느 정도 이를 만회할 수 있도록 지필평가를 안전장치화 하였다.
(왼)수업 개선 전 결과물 (오)수업 개선 후 결과물
이처럼 교실 수업을 개선하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활동 위주의 문제 해결 및 프로젝트 수업이 진행되자 모든 학생들이 피곤함에서 깨어나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한 학기 1회 실시되는 지필평가와, 상하 배점 간격이 작고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는 수행평가 덕분에 학생들은 평가로부터의 부담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들이 하나둘씩 목격되기 시작했다. 다수의 평가 기회 중 한두 번은 과제 해결을 위해 무리한 도전을 하는 학생들이 나타났고, 각자 담고 싶은 창의성을 마음껏 결과물에 표현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과거에 획일적인 모습을 띄던 결과물들이 이제는 각자의 창의성이 담겨 보는 이들로 하여금 또 다른 재미를 불러일으켜 수업 분위기가 훨씬 즐거워졌고, 간간이 창의적인 결과물이 평범한 결과물보다 뛰어난 결과를 이끌어내 이를 본 학생들은 실패를 무릅쓰고 창의적으로 무엇인가에 도전하려 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일어난 변화는 학생들에게만 즐거움을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피곤에 지쳐 억지로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아닌 능동적으로 수업에 적극 참여하고 서로 무엇인가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교사로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적지 않은 학부모님들도 이전 기술 수업과 달리 학생들이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고 어깨너머로 함께 즐거워해 주시기까지 했다.
개성 넘치는 결과물들
어쩌면 학교에서는 평가라는 시스템으로 학생들에게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 사회 시스템 안에서 실패라는 것이 용인하지 않게 된 배경이 학교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도 함께 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도 성남외국어고등학교 제자들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업시간에 작게나마 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면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담수어처럼,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회귀어처럼 힘차게 그리고 당당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