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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교사가 서울대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경기도 일산이란 곳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학생들 말로 표현해보자면 소위 듣 ‧ 보 ‧ 잡 교사가 이곳, 서울대 입학본부 웹진 아로리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어서일까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이런 곳에서 글쓰기를 부탁받거나 전국 곳곳의 학교들, 각 시도 교육청, 교육부 등에서 발표를 의뢰받는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발표하고 다니는 제가 더 잘나졌다거나 성공했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활발한 사람도 아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타나 해결하는 빠릿빠릿한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그저 제가 하던, 그리고 추구하던 수업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고 이를 듣고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생겨났기에 이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항상 부담스럽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서울대 입학 관련 이모저모를 알아보려다가 제 글을 읽는다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부담스러워 당장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혹시라도 제 글을 읽고 단 한 분이라도 수업시간에 변화를 주고 싶은 교사, 그리고 그런 교사를 격려해 줄 학생, 학부모들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신규 발령을 받은 그 날부터 수업에 대한 고민은 삶이 되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있었던 학교는 대부분은 교사 수가 적어 많은 일과 동시에 한 학년 수업을 혼자 다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혼자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7년 반 제 뜻대로 실수도 해가며 칭찬도 들어가며 수업을 하던 중, 1년 반 전 어느 날 수업은 그냥 막연히 이래야겠다 이렇게 해봐야지 하면서 혼자서 해오던 수업에 대한 생각과 방법들이 단 한 장의 공문 제목에 의해 정리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업- 평가 - 기록의 일체로 학교문화 바꾸기”입니다. 위의 공문을 보는 순간 내가 원하던 수업, 내가 바라보던 수업이라고 생각했고 주저 없이 동아리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아리에서 열다섯 분의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일면식도 없고 생각을 공유한 적도 없는 열다섯 분이 놀랍게도 비슷한 생각과 수업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어져 현재까지도 수업 – 평가 - 기록의 일체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과연 수업 – 평가 - 기록의 일체란 무엇일까요? 요즘 대학입시 전형 중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인해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기록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고, 소위 말하는 SKY를 가기위해 다들 학생부 기록에 열을 올리면서 기록의 대상이 필요해졌고 그 결과 수업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기록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대학입시를 위해 기록이 변해야 하고, 기록이 변하기 위해 수업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수업에 관심을 두고 집중된다는 것은 교사로서 좋은 변화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수업-평가-기록의 일체입니다. 수업한 것을 평가하고 평가의 결실을 기록하는, 아주 당연하며 색다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현재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다만 고등학교의 경우라면, EBS수능교재를 수업하고 EBS수능교재의 문항을 평가하고 그 결과 EBS수능문항을 잘 풀어낸 학생들을 칭찬하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훌륭하다고 기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수업, 문제 풀이 교육과 학업성취도에 집중하는 모습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몇몇 학생들은 대학을 가기위해 수업을 듣는 척 하지만, 학업성취도가 중간정도부터 그 아래인 다수의 학생은 지레 포기하거나 이거 배워서 뭐하냐는 질문으로 저의 말문을 막히게 합니다. ‘어차피 쟤네들이 좋은 대학갈 테고 저는 깔아주는 거죠.’라는 말을 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로서 뭐라 대꾸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것도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학업성취도에만 집중되어 있는 입시방법, 대수능이라는 이름의 시험점수가 대학을 결정하고 그 대학의 이름이 사람을 결정짓는 사회문화적 구조에 대한 불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부한 말을 하기엔 학생들은 냉정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너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우리의 생활 그 자체가 과학이라는 말 또한 진심을 다해 던져도 그저 몇몇 학생들이 불쌍하게 지켜봐 줄 뿐 그들의 마음에 닿지 못하였습니다. 적어도 이거 하나는 가르쳐 보자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비판적 사고였고 그것을 위해 수업에 조금씩이지만 변화를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에 대해 이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고민해 볼거리 <경기도 교육청 김덕년 장학사님 PPT 중>
1. PMI 노트
P.M.I라는 말은 발명교사 연수 때 처음 들었던 말입니다. 어떤 발명품에 대해 Plus, Minus, Interesting(장점, 단점, 개선점)을 생각해보는 가장 기초적인 발명기법인데 이 연수를 듣고 수업에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발명 수업 때 쓰던 PMI기법을 발명품이 아닌 수업에 대해서 적용해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면, 힘의 합성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고 난 후 끝나기 5분 전쯤 그날 수업에 대해서 알게 된 점(P), 모르겠는 점(M), 궁금한 점(I)에 대해서 각 1줄(25자 내외)씩, 총 3줄을 적어보게 했고 이것을 수행평가에 반영하였습니다. 학생들의 무비판적 사고와 인터넷에 의존하는 대화 등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시점에 이 평가방식은 글 쓰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는 중학교 학생들에게 다소 과격하지만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고 싶다는 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평가를 위해 이 노트를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노트 정리는 예전 제가 학교에 다닐 때도 있었던 수행평가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그 노트에 수업내용을 그대로 적거나 선생님의 말씀을 옮겨 적는 것이 아닌, 학생들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라고 했습니다. 정답이 있는 내용이 아니기에 자기 생각을 솔직히 꾸준히 적기만 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수행평가입니다.
처음 노트를 시작할 때엔 ‘도대체 너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 수업을 듣기는 하는 거니? 도대체 너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니?’라는 생각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잘못을 따지고 싶은 다소 못된 심보가 어느 정도 들어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노트를 읽다 보니 좀 더 욕심이 생기게 되고, 수업시간에 3줄만 쓸 것이 아니라 이제 앞에 교사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3줄 덧붙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수업시작 시 동기유발 겸 독서를 하기 위해 제가 읽어주는 책 내용을 3줄 PMI로 작성하고, 수업을 한 후 수업 마치기 전 3줄. 해서 모두 6줄이 되었습니다. 한 해가 지난 학생들의 피드백은 수업시간마다 ‘자신의 생각’을 쓴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오히려 더 늘려달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엔 수업 시작 전 각 반에서 회의를 통해 선발한 물리 부장 4명이 번갈아 가면서 5분간 복습을 하게 했고 학생들은 총 9줄의 PMI를 적게 되었습니다. 복습 3줄, 독서 3줄, 수업 3줄 이렇게 총 9줄의 수업 PMI가 되었고 이를 작성하기 위해 첫째, 수업 오리엔테이션이 강화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처음 접하는 PMI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지 시뮬레이션하는 수업방법을 공부하는 수업시간을 3월 첫 주 3시간 동안 진행합니다.
둘째, 처음부터 9줄이 아니라 처음엔 3줄, 한 달 후에는 6줄, 1차 지필후 9줄로 점점 늘려나가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피드백 중의 하나가 학생들의 그 수많은 생각, 특히 모르는 점이나 궁금한 점을 누가 답변을 해주는 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어 그다음 해부터는 9줄의 PMI 뒤에 모둠원 중 1명이 읽고 답변을 달아주도록 하여 옆 친구의 궁금한 점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여, 총 10줄의 PMI노트 작성을 합니다. 그리고 올해 또 피드백을 받고 매일 친구들의 리플을 달지 않고 몰아서 하는 학생들에 대처하기 위해 프린트 형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매시간 나눠주고 끝나고 걷어서 부장이 검사하고 다음 시간 복습 ‧ 리뷰할 때 주제를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학생들이 주로 M과 I에 쓴 부분을 부장들이 다음 시간 복습 때 정리해 주는 것입니다. PMI노트는 5년에 변신 중입니다. 이렇게 매시간 작성하여 누적된 노트는 학생들에겐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되고, 저에겐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할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근거가 됩니다.
2.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 독서 교육
워낙에 ‘책 사는 것’을 좋아하여 읽지도 않은 책들이 제방 구석구석에 수북이 쌓여 더는 꽂을 곳도 올려놓을 곳도 없을 무렵, 이 책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는 것만 좋아했지 읽지는 않다보니 책을 버리고자 해도 아까워서 도저히 책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책을 읽자. 그러고 나서 책을 팔자.’ 그리고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한창 특목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강조되고 있었고, 저야 워낙에 책 사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이래저래 초점이 맞아서 독서교육을 준비하고자 여러 시도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도서관 예산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재미있을 것 같고 유용한 책, 소위 말하는 권장도서를 10권씩 4종류를 사서 읽게 해보았습니다. 도서관에 협조를 얻어 장기대여를 하고 실험장 하나를 비워 책장을 마련하여 ‘과학도서관’처럼 운영코자 했습니다만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실패합니다. 제가 혹은 교육부가 혹은 과학센터가 정한 권장도서는 아이들에게 큰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이 흥미 없는 책을 수행평가라는 말에 겨우겨우 손을 대 보지만 읽는다는 말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시도, 구글 드라이브를 이용하여 학생들의 희망도서를 종류에 상관없이 받았습니다. 교사가 정해준 책을 읽기 어렵다면 너희들 스스로 골라봐라 는 뜻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학생들은 정말 아무책이나 희망하였습니다. 원피스, 나루토를 비롯한 각종 만화책부터 트와일라잇, 더문등의 판타지 소설, 쎄시 등의 여성패션잡지까지. 물론 몇몇 학구적인 친구들의 과학도서가 있었지만 제안한 제가 스스로 뻘쭘해질 정도로 아이들의 취향은 극명했습니다. 학생들이 신청한 도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주기전 이런 약속을 하나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원피스란 만화 속 주인공은 고무인간입니다. 그 만화의 캐릭터 중에 번개인간이 있는데 자신의 특성을 이용해 한 나라의 신으로 군림하며 사는 인간입니다. 신과 같아서 그 누구도 때리지 못하던 번개인간을 우리의 주인공 고무인간이 여지없이 때려줍니다. 고무가 절연체라는 과학적 사실을 만화에서 설명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고 과학적 오개념이 생길 부분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아이들이 접하는 콘텐츠에서 과학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의 삶속에서 과학을 찾는 흥미가 생긴다면 그것보다 좋은 교육은 없으리란 생각에 어떤 책이던 다 사줄테니 대신 그속에서 과학을 찾아 에세이를 A4 1쪽 분량으로 쓰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 저는 과학실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쉬는 시간에, 그러니까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중학생들이 과학실에 와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진귀한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딱 3주 후, 그리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흥미를 끌 수는 있었지만 더는 읽을 게 없었던 학생들은 더는 열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책 속에서 과학을 찾아서 쓰겠다는 A4 한 장의 에세이는 수행평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도 빈 종이로 혹은 낙서로 채워져 제출되었습니다.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독서교육 관련 책을 읽던 도중 ‘크라센의 읽기혁명’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눈을 통해 글을 뇌로 전달 할 수도 있지만 어렸을 적에는 듣는 것을 통해 글을 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을 접하고, 한창 수업시간에 책읽기를 도입하려던 저에게 큰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시도, 내가(교사가) 읽어주자는 생각과 함께 시도해 봅니다. 무얼 읽어줘야 할까 고민하다보니 책 사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게도 많은 책을 사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학생들에게 읽을 부분을 발췌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책을 길게 읽어주기보다는 3분정도 A4 용지로 1쪽에서 1쪽반 정도의 분량정도만 선택하여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책 속에서 이 정도의 분량으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 좋은 사례를 찾는 것이 책의 경우 앞뒤 맥락을 설명해야 하거나 혹은 저 같이 독서량이 부족한 경우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아지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책을 고집하기보다는 TED, 세바시 같은 영상이나, 네이버캐스트 신문기사, 잡지의 일부 등을 보여주거나 읽어주는 형태도 혼합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은 실제 물건을 들고 와서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가령 정상파 강의 전에 기타를 PMI 주제로 들고 들어가 이야기하고 학생들의 짧은 연주도 듣는 기회로 삼는 등 제한 없이 성취기준과 관련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개념으로 접근하였습니다.
3. 수업 방법의 변화 (5분 복습+ 10분 독서+ 15분 강의+ 20분 학생과제, 수업 오리엔테이션, 미러링)
5분 복습+ 10분 독서+ 15분 강의+ 20분 학생과제 : 신규발령을 중학교로 받은 후 6년, 물화생지가 섞여있는 중학교 과학을 가르치면서 전공이었던 물리과목 보다는 부족한 부분이었던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더 신경쓰다보니 고등학교로 와서 물리만 가르친다는 사실이 매우 부담스러웠습니다. 수능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50분 내내 아이들에게 수능문제 EBS교재를 설명하고 문제풀어주고 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15분 강의입니다. 당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TED 같은 것들을 종종 보던 시기였었고 그 영상들 속에서 수많은 훌륭한 강사들이 15분 사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보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문제풀이를 위한 상황을 하나하나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15분간 풀어낼 주제는 과연 무엇인가? 바로 교육과정에 있는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입니다. 교과서만 쳐다보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와서야 비로소 교육과정을 바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EBS교재의 문제풀이 대신 교육과정상의 성취기준을 말 그대로 기준삼아 15분 강의를 설계하였습니다. 15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5분 강의를 스톱워치를 켜놓고 시작하였고, 남은 시간은 학생 과제를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복습하고 독서하고 강의하고 남은 20분, 적어도 8시간 계속 앉아있길 강요당하는 학생들이 지치지 않도록 수업 중에 일어나고, 움직이고, 말하길 바랐습니다. 학생과제는 개인과제와 모둠과제 그리고 개인과제를 모아 모둠과제를 만드는 성취기준에 따라 다른 과제를 제시하였고 이 과제 제시가 수업설계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입니다.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그러면서도 많은 학생들이 움직이면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과제를 생각하기란 무척이나 고된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길이에 대한 수업에서 학생과제로 나만의 자를 결정하여 교실의 세로길이를 측정해보고 발표하는 과제 같은 조금은 이상한 과제를 주거나 특수상대성 이론의 시간지연식을 유도해보는 아주 일반적인 과제까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아직도 과제는 저에게 가장 큰 숙제 중의 하나입니다.
수업 15+15+20
수업 오리엔테이션: PMI노트를 쓴다거나 15분 강의 후 25분 과제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바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시간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매해 3월 첫 주 3시간을 활용합니다. 첫 시간 학생들과 첫 만남에서 서로에 대해 소개하고 인사하고, 모둠편성 및 부장 선출을 합니다. 학생들에게 맡겨놓으면 빨리 끝나긴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적절한 회의 절차를 통하기 보다는 귀찮은 듯이 목소리 큰 몇몇 학생들의 의견으로 결정되곤 합니다. 그럴 땐 적절한 개입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두 번째 시간 PMI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실제로 PMI적 사고를 해보고 제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듣고 노트에 적어보는 연습으로 한 시간을 보냅니다. PMI를 처음 쓰는 학생들은 무엇을 써야할 지 어떻게 써야할 지 실제로 써 보면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때 다가가서 한마디씩 보태어 주면 수업에 관심 없던 아이도 쓰는 척이라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간에는 좀 이상한 말이지만 수업하는 연습을 하는 수업을 합니다. 5분 복습하고 PMI쓰고 인사하고 책읽어주고 PMI쓰고 15분 강의하고 학생과제 그리고 수업 PMI쓰고 하다보면 바쁘게 50분이 지나갑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매해 다양한 과목이 바뀌고 선생님들의 수업방식이 바뀌는 3월, 아이들이 적응할 시간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러링: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수업의 장면을 학생들에게 라이브로 보여줍니다. 매시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험을 할 때나 과제를 해결할 때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기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발표할 때 사진을 찍어 확대를 해가면서 여러 학생들과 함께 공유하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미러링에 집착했던 이유는 제가 학생들 속으로 들어갈 기회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아이패드나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의 활동을 확인하고 돕기도 하면서 학생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기록과도 연계가 됩니다. 아이들 속으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모습은 교탁에서 바라본 모습과는 다릅니다. 교탁에서 볼 때 딴짓하고 떠들고 있던 아이들이, 그 아이들 속에서 바라보면 음악을 작곡하고 있고, 옆에 있는 친구를 가르쳐주고, 수학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도구로서 그리고 문서나 발표할 때의 모습이나 발표 자료를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 아니면 문제풀이 할 때도 사용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미러링(잘 보이지 않는 발표물을 아이패드로 실시간 영상중계)
사실 실시간 미러링뿐만이 아니라 교과서 PDF 파일을 저장해 두었다가 같이 본다든가 15분 강의 시간을 지키기 위한 타임워치로 쓴다든가 각종 앱을 통해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거나 다양한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록 부분에 있어 저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미러링을 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은 꼭 가지고 들어갑니다. 학생들의 관찰 기록을 적기위해 작은 메모 노트를 가지고 다니거나 아니면 기억해 두었다가 교무실로 돌아와 노트북에 작성해보기도 했으나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고 여러 시도 중 가장 저에게 가장 잘 맞았던 방법은 스마트폰에 적는 것이었습니다. 학급 구성원들의 행동발달사항도, 수업시간의 활동모습도 그 순간 적지 않으면 거의 다 잊어버리곤 하여 힘들었는데 휴대폰에 바로바로 적으니 적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학기말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데에도 훨씬 수월해 졌습니다.
[사족] 기타 등등(etc.)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 여러 가지 수업
수행평가
일과 에너지 연극, 나도 기상캐스터, 구름사진 모으기, 독서퀴즈 만들기, 논술문제 만들기, 구술평가-물리용어 이야기하기, 자유탐구(예: 게임 속 아이템의 물리 데미지 크기 비교 등 자신이 제일 관심 있는 분야에서 주제 찾기), 페임랩 같은 과학 버스킹 따라하기, 과학 독서 감상 등
책상 배치
학익진 책상 모형(교탁을 둘러 싸듯이) / 다단계 책상모형 (1+2+3) *3영역 ㄷ자 형태 / 가변형 책상모형(강의형, 평가형, 모둠형, 실험형 4가지 약속)
학기말 교과 축제
재활용 태양광 자동차 만들기, 무동력 자동차 만들기, 인포그래픽 그리기
각종 간단한 실험(뇌 해부, 눈 해부, 무릎반사, 동공반사 실험, 마인드맵 그리기 대회, 분자모형 만들기, 모니터 확대하기, 빛의 3원색 섞어보기, 전자렌지에 CD넣고 돌려보기, 회전관성실험, 각운동량 보존 실험, 19.6리터 생수통 구기기, 리모컨 자외선 확인하기)
수업 중 과제
수업규칙 정하기, 교실길이 재보기, 내가 생각하는 시계아이디어, 작용반작용 실생활 사례 모둠별 대결, TGT 퀴즈대결, 특수상대성 이론 식 유도해보기
기타 활동
카메라 연처럼 날려서 학교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게 찍어보기, 1박2일 스팀(STEAM) 캠프, 1박2일 과학 캠프, 과학ucc만들기, 과학연극, 클레이로 남녀 생식기 만들기, 영재 스팀프로그램 물을 살리자
제가 해온 것들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있었던 것들, 다른 선생님들께서 하셨던 것을 보고 배워 해보고 저에게 맞는 부분은 가져오고 맞지 않는 부분은 조금씩 변화시켜 본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워낙에 제가 글을 매끄럽게 잘 못 쓰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다 정리할 능력도 없어서 사족까지 달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지라, 어떤 선생님께서 제가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ADHD환자인 줄 알았다며 어쩜 그렇게 산만하고 정신이 없냐는 걱정과 불만이 섞인 말씀을 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평가랑 기록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제가 쓴 글에 분명 어떤 분은 고깝게 보시고 어떤 분은 고개를 끄덕여주실 것 같습니다. 물론 그 2가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학생들과 수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수업방식에 대해 좋아하는 학생도 싫어하는 학생도 존재할 것이고 그 2가지 말고도 다양한 반응이 있을 겁니다. 이 글을 통해서 일방적인 긍정이나 일방적인 부정으로 칭찬이나 질타를 받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 교사는 이렇게 준비하고 노력했구나, 저런 생각을 하고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시고, 그 다양성 중에 본인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정을 넘어서서 공감해주시고, 공감을 바탕으로 격려와 조언을 해 주신다면 더욱 노력하는 마음을 갖는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평범한 교사가 ‘서울대 아로리’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 이후로도 이곳에 글을 쓰실 수많은 선생님들 중에 뽑기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앞 순서를 뽑아서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질 선생님들의 수업변화 이야기를 관심 깊게 지켜봐주시고, 앞서 제게 해주셨던 것처럼 인정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이 항상 행복하시고 변화를 향한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不怕慢, 只怕站. “느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 - 중국 명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