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이슈이슈!
교육과정 - 수업 - 평가에 대한 변명과 고민
1. 교직 30년의 굴곡진 수업에 대해 변명해 보다
가. 훨씬 젊어서는 그저 기분에 취해
교직에 들어서고 1~2년 정도는 마냥 교육적 이상이라는 기분 자체에 취해 있었다. 국어교사로서 사명감에 불타 있었다. 매시간마다 시 한판 칠판에 가득 쓰고 읽어 주기도 하고, 작품에 나타나 있는 삶과 사회적 정의에 대해 핏대 올리기도 하고, ‘내 짝 죽이기’라는 소설을 한 달 간 쓰고 발표시키기도 하고……. 수업시간은 문학이었고, 감상이었고, 삶 그 자체였고, 행복한 만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과연 행복했을까?
나. 그러나,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뒤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제 그만 진도나 나가시지요!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리고, 선생님 때문에 시험 망쳤어요.”
“그런 거 대학 가는데 도움이 돼요?”
등등의 마음 쓰라린 말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쌓여있는 문학서적들을 망연자실하고 쳐다보았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읽기를 권유했던 책들이었다. 그런데, 지난 밤 야간학습 때 감독 선생님이 학생들이 읽고 있는 것을 빼앗아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날, 나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그리고
“이 선생님, 자습시간에 쓸데없는 책 읽히지 말아요.”라는 꾸중을 들어야 했다.
‘왜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이 쓸 데 없는 짓일까? 책을 읽는 것은 공부가 아닐까?’라는 반발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잠깐이었을 뿐이다.
다. 그리고, 정말 오래고 오랜 기간 동안의 굴곡진 수업 속에 살다
그 후, 20여 년을 그야말로 가장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로 살았다. 좋은 대학에 한 명이라도 밀어 올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시험 성적 점수를 올리는 일이었다. 수업 내용도 참고서 몇 권 짜깁기하여 가르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수업방법 역시 20여 년을 크게 변함없이 진도위주의 일제식 수업, 시험 유형 풀이식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교과서가 필기로 알록달록해지고, 최소한 “선생님, 진도나 나가시지요.”라는 말은 듣지 않게 되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매일 A4 용지 한 장씩 까맣게 써오는 그야말로 깜지 숙제를 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 내가 가르친 제자가 내 옆의 수학 선생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나에게 배운 것을 잊지 않았다. B4를 여덟 번이나 접게 해서 깜지를 써 오게 하는 것이었다. 청출어람이었다. 아이들은 수학과목 깜지를 먼저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내 깜지를 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다. ‘더 무섭게 해야 하나?’, ‘나도 B4로 바꿔?’라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학생들의 경쟁을 통해 서열을 정하고, 그 와중에 성공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예뻐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였다.
라. 그렇게, 20여 년간 내가 한 일을 기록해 보니…….
담임을 하면서, 대학을 가기 위한 성적을 중요시했다. 쿼트로프로나 엑셀이라는 도구는 그 숫자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통계를 내 주었다. 거기에다가 컬러로 각 과목별 학생의 순위를 그래프로 그려주니,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감동하였다. 그리고, 그 통계를 바탕으로 “야, 인마. 너 그렇게 공부해 가지고, 네가 원하는 대학 가겠어, 응!” 이라는 말을 부드럽게 바꾸어서 상담을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었다. 상담 후 교무실을 나가면서, 그야말로 폴더인사를 하였다. 고 3담임을 하면서, 성적 통계는 극에 달하였다. 모의고사 성적을 영역별로 10만 등까지 나누어 통계를 제시하고, 대학을 합격하거나 불합격하는 것을 예측해 주는 것까지 시도하였다.
결국, 내가 한 일은 학생들에게 그냥 ‘잘하라’ 한 것이 아니었다. ‘남보다 잘하라.’한 것이었다. “무한한 경쟁에서 살아남아라. 그래야 성공하고 출세한다. 그것이 가치이다.”라고 외치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어떤 학생들에게, 어떤 학부모들에게, 그리고 어떤 학교 당국에게는 능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행복했을까?
그러나, 이 역시 그것이 끝이었다. 그렇게 내 앞에서 눈물을 쏟고 나간 아이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이 성공했을까? 사실 그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공부 잘하는 몇몇, 그리고 그 몇몇에 해당되고 싶어 밤잠을 설치고 공부하는 또 다른 몇몇이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성적을 올릴 수 없었다. 아니, 성적이라는 것이 상대적 경쟁이므로, 결코 올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절망감과 열등감이었다. 어쩌면 평생 누려야 할 행복을 내가 빼앗아 간 것인지도 모른다. 20여 년 간 왜곡된 나의 수업을 다시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2. 수업을 고민하다
가. 40대 후반에서야 수업 고민을 하다
아들 둘을 키웠다. 두 놈 다 자유로움이 몸에 밴 아이들이다. 통제된 수업과 무한한 경쟁을 원하지 않았다.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나의 바람과 다른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하였다. 교실에서 왜 딴 짓을 하는지, 왜 잠을 자는지, 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지, 왜 나에게 반항을 하는지…… 그런데, 그것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수업시간이 특히나 그랬다. 그 아이들을 때릴 수도 없었고, 혼을 낼 수도 없었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내 수업의 바닥을 보았다. 그것을 기록한 교무수첩을 내용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나-1. [고민 1]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할까?
내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르치는 내용의 수준을 낮추고 양도 줄였다. 그리고 반복하여 가르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줄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수업시간이 참 많다. 하루에 7시간씩, 적어도 4과목 이상을 수업을 듣는다. 게다가 보충수업 1~2시간, 야간 심화학습 1~2시간, 이것도 부족하여 인터넷 강의에다가 학원에다가 과외까지……. 그런데, 이 시간들의 대부분은 그냥 앉아서 듣고 또 듣는 것이 반복될 뿐이다. 거꾸로 말하면, 선생님들은 자꾸 가르치고 또 가르치기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2011년 OECD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학습효율화지수는 하위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즉, 수업을 받는 시간은 엄청 많은 데 비해, 학생들이 실제로 학습한 정도는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OECD 국가의 주당 공부시간과 학습효율화지수 비교(2011)
나-2. [인식 1] 가르친다고 배우는 것은 아니다
국어교사로서 교지편집을 맡았을 때, 많은 부분을 간섭하였다. 교지편집반 아이들이 스스로 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내가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고, 늘 “선생님,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그들이 해 가지고 온 것조차 많은 부분을 냉정하게 수정하였다. 그렇게 나온 교지는 아이들이 신기해 할 정도로 그럴 듯하였고, 덕분에 아이들은 교육부장관 상도 받았다. 그러다가 내가 교지에서 손을 떼게 되고, 초보 선생님이 맡게 되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힘들어 했다. 그리고 수준도 뚝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힘으로 교지를 복구해 나갔다. 비록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교지를 보고 많이들 뿌듯해 했다. 어떤 것이 아이들을 더 배우게 하는 것일까?
많이 가르친다고 학생들이 많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교사가 힘들게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학생들은 오히려 배움에서 점점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험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실패를 해 보아야 참 배움이 일어난다. 교사가 가르치고자 하는 의욕이 크면 클수록, 교사 중심이 되고, 학생들은 수동적이고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여기에서는 진정한 이해와 이해를 넘어선 자기화가 일어날 수 없다.
교사들은 이제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르치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아이들이 ‘배운다는 것’에 집중하였으면 좋겠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많이 가르친다고 해도, 다수의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르친 것이 아니다.
다-1. [고민 2] 그렇다면 학생이 잘 배운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수업에 황순원의 소설인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가르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제목이 가지는 비유의 의미를 물었다. 나름 아이들이 글을 읽기 전 예측해 보기를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무척 당당한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선생님, 그것은요. 6.25전쟁 때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의 인간성이 파괴되고 상실된 것을 의미합니다.”
수업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미 정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어디서 배웠을까? 사교육, 선행학습의 힘이다. 물론 이 아이는 글 전체를 읽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학생은 학교 내신 시험을 보면 1등급이다.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학생이 말을 한다.
“선생님, 저의 아버지가요. 술만 드시면 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6.25전쟁 때 폭격으로 돌아가셨데요. 그런데요. 지금 이 소설을 읽어 보니까,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너무 슬퍼요.”
문학을 감상하고 공감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은 학교 내신 시험을 보면 5등급이다. 이런 문제는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두 학생 중 누가 더 똑똑한 것일까? 누가 더 잘 배운 것일까? 지금도 이 부분이 아주 고민스럽다.
다-2. [인식 2] 학생이 잘 배운다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성장(역량)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잘 배운 학생이 성적도 좋다고 판단한다. 과연 그럴까? K방송국의 명견만리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2015학년도 수능 영어문제를 영어 원주민들에게 풀게 하였더니 다 틀린 외국인이 거의 절반에 가깝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최승호의 ‘수족관’에 대한 문제를 원작자에게 제시하였더니, 원작자도 풀지 못하더라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세계에서도 수학을 가장 잘 하는 나라로 소문난 프랑스 명문고 3학년생들에게 우리나라 고1 수학 문제를 제시 하였더니, 거의 풀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국어, 영어, 수학이 과연 무엇일까? 외국인도 풀지 못하는 영어와 수학, 원작자도 모르는 국어를 잘 푸는 학생들이 과연 똑똑한 것일까? 이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이 60점을 받은 학생보다 잘 배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의구심이 많이 든다. 선발 중심의 평가, 서열을 나누기 위한 성적 지상주의가 우리 아이들에게 생각이 없는 문제유형풀이와 퀴즈풀이에만 몰두하게 한 것은 아닐까? 결국 지식 위주의 성적에 집착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잃어버린 듯싶다.
한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수 박진영은 ‘소리 반, 공기 반’, ‘스프리트’, ‘말하듯이~’라는 채점기준을 이야기한다. 이 기준은 우리가 보기에는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그가 객관성과 신뢰성 때문에, ‘음정 1개 틀릴 때 마다 –1점, 박자 1개 틀릴 때마다 –2점’하는 식으로 채점을 해서 가수를 뽑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과연 그렇게 뽑힌 가수가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박진영은 성적보다는 실질적인 역량으로 가수를 뽑고 싶었던 것이다.
성장은 지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식을 넘어 이해하고, 실생활에 적용하고, 자기 내면화하여 공감하고 표현하는 역량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성적에 집착하고, 성적의 객관성과 신뢰성에만 집착하여 정작 중요한 성장을 위한 ‘역량 키우기’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잘 배웠다는 것은 성장을 위한 역량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량이란 ‘아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남이 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자기화하는 태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라-1. [고민 3] 그렇다면 어떤 수업을 해야 학생들은 성장을 할까?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흔히 머뭇거리거나 주춤거리기도 하고, 서성이기도 한다. 흥미 있는 이야기나 영상 등을 보여주면 반짝하고 집중력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특히 내가 주도하는 수업일수록 아이들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나의 수업 기대치도 여지없이 무너지곤 한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매달려도 학생들이 잘 배웠다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왜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도약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고 서성일까?
라-2. [인식 3]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계획하고 탐구하고 표현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배움이 잘 일어나는 학생들의 특징은, 메타인지를 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메타인지란 자기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학생들은 끝없이 자기 자신을 테스트 한다. 그것이 바로 셀프테스트 학습 방법이고, 공자가 말하는 소위 학이시습지의 원리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끝난 후라도 스스로 익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몇 번이고 반복하여 듣고 또 들으면 점수가 잘 나올 거라고 착각을 한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공부하기 보다는 모른다고 하여 또 듣고, 또 듣고, 과외하고, 학원가서 또 듣고, 인터넷강의를 또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점수는 예상점수보다 훨씬 낮게 나온다. 이러한 착각은 학생들뿐만 아니다. 가르치는 교사에게서도 곧잘 일어난다. 많이 가르치고, 반복해 가르치면 학생들이 더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도 열심히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다. 아래의 그래프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셀프테스트와 재학습의 예상점수와 실제점수 비교(’KBS 시사다큐 창‘에서 인용)
교사는 더 이상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시간 중에는 공부할 것을 마련하고, 익히는 시간을 별도로 둘 것이라는 기대치를 가져서는 안 된다.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시간 중에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수업 시간 중에 학생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 탐구하고 - 표현하게 하는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적호기심을 가지고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조잡하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은 오류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수업을 고민하면서 표현하는 수업에만 중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탐구가 없는 표현중심의 수업은 바닥도 없는 지붕일 뿐이다. 표현에만 익숙한 아이들은 생각의 깊이가 없다. 삶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저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수업일 뿐이다. 그것을 느끼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라-3. [인식 4] 서로 말하게 하여 배우게 하는 수업이어야 한다.
혼자 탐구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학습법은, 학생들끼리 질문하고 토의하는 학습법이다. 이 학습법을 수업에 적용하면 무척 소란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은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공감하거나 비판하고, 자신의 생각을 끝없이 수정해 가면서 성장한다. 학부모님들의 건의로 학생들은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으로 나누어 수업한 적이 있었다. 여학생반 아이들은 세심하게 열심히 하나, 질투심과 경쟁심이 강해서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반면 남학생 반은 긍정성이 강하나, 어떤 과제도 적당히 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모둠 내에서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 서툴다는 것이었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만 모이거나, 못하는 아이들만 모이거나, 신중한 아이들만 모이거나 산만한 아이들만 모이면 그들의 단점만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우열반 편성에서도 이런 쓰라린 경험을 했다. 서로 이질적인 학생들끼리 모여 있을 때, 학생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 친구에게서 신중함도 배우고, 표현력도 배우고, 태도도 배우고, 은근슬쩍 친구의 좋은 점을 하나씩 캐치하여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고자 한다. 수업시간에 그것이 가능하도록 배치하고 조성하고 활동하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삶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수업일 것이라고 믿는다.
마-1. [고민 5] 수업방법(스킬)을 많이 익히면 수업을 잘 할까?
수업 고민을 하면서, 많은 수업방법과 관련된 연수들을 받았다. 협동학습, 놀이수업, TBL과 PBL, 스마트 수업 등등. 그리고 거기서 배운 다양한 수업스킬들을 수업에 적용하였다. 확실히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따라와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수업을 잘한다고 칭찬도 해 주었다. 스스로의 수업에 대한 기대치와 만족도가 높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사고력을 측정하는 수행평가와 서술 ‧ 논술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지식위주의 전달식 수업만 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방법을 이리저리 바꾸어 보았다. 하브르타도 써 보고, 비주얼싱킹도 적용해 보았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마-2. [인식 5] 수업은 스킬이 아니라, 고민이다
요즘 너무 많은 수업스킬들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좋은 현상이다. 교사는 수업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 더욱 효과적인 수업스킬들을 익히고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오직 수업을 스킬로만 접근하려고 한다는 것에 있다. 먼저 학생들에게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수업 스킬은 그 배움에 내용에 가장 최적화된 것을 선택하는 이차적인 것이다. 수업 방법만 바꾸면, 좋은 수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먼저 수업의 내용을 고민하고, 그것에 따라 수업방법을 선택하거나 융합하여 자신만의 수업방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하거나, 흘러가는 수업스킬들을 마구 적용해서도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수업에는 학생들의 생각이 없는 의미 없는 활동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수업은 결코 스킬이 아니다. 고민하는 것이다.
바. 그렇게 내가 결심하게 된 것은
수업에 대한 고민은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교사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전문성은 수업에서 나와야 한다. 스스로 다짐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수업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수업 고민을 멈추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생들로부터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일이었다. 단순히 “내 수업이 어떠니?”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럴 경우 학생들의 대답은 상당히 교사에게 배려심 넘치는 경우가 많다. 교사 중심의 피드백이 아닌 학생 중심의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수업에서 너는 무엇을 했니? 무엇을 하는데 어려움이 무엇이었니? 이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니? 수업시간 중 기억이 남는 것이 무엇이니? 혹, 집중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니?” 등의 질문을 하였다. 그랬더니, 내 수업이 진정으로 보였다. 상처도 받았다. 그것 때문에, 수업이 두려워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내 수업고민의 출발이 될 수 있었고, 내 수업 개선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수업을 고민하고, 내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함께 고민을 나눌 동료교사였다. 혼자 상처받고, 혼자 고민하면 결코 답은 없다. 동료교사와 수업담론을 나누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그리고 서로가 위로가 되고, 서로에게서 배우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수업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수업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고, 그 고민을 동료교사와 함께 나눔을 통해서 교사가 성장하고, 성장한 교사를 통해서 아이들이 성장한다고 믿는다.
3. ‘교육과정-수업(행사)-평가(기록)의 일체화’를 시도해 보다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서 어떤 성장을 이루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가장 먼저 찾게 된 것은 교육과정이었다. 그 전에는 그저 주어진 교과서나 지도서나 참고서를 보고 교재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핵심인지, 어떤 맥락으로 가르쳐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무엇을 수행하게 하여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그저 획일화되어 내게 주어진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다. 진도를 나간다는 것은 성장과 관련이 없이 지식 위주의 수업, 성적 내기 위주의 수업에 치중한다는 나쁜 행태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교과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 – 교육과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한지 고민해 보고, 내 수업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면서, 비로소 수업고민의 실마리를 풀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교육과정 재구성하고 설계한 것을 수업현장에서 그대로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수업이 끝난 후 평가를 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버리고, 수업이 곧 평가이고, 수업시간 중 학생들이 배우고 익히는 과정 자체가 평가라는 자세로 학생들을 관찰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구체적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어교과 목표에서 수업의 정체성 확인하였다.
모든 교과에는 그 교과를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하면 교과를 배웠을 때, 학생들이 성장해야 할 지향점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교육목표 자체를 다시 확인해 봄으로써,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 방향키로 삼았다. 국어과의 교과 목표(2009 개정 교육과정)를 확인해 보면,
라고 되어 있다. 이 목표에서 지식만을 가르쳤던 지난 시간을 반성하였다. 국어는 무엇보다도 ’말하고-듣고-읽고-쓰는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다.
둘째,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재구성하였다.
교과의 교육목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성취기준이다. 성취기준은 학생이 배워서 도달해야 할 기준이며, 구체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성취기준을 자세히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어떤 순서로 배우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각각의 성취기준을 하나의 카드 형태로 기록하고, 카드를 바닥에 놓고서, 순서를 정하고, 합치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다른 말로 바꾸기도 하였다. 그 결과를 교과 수업 계획서에 기재하고, 그 성취기준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교과서의 텍스트를 찾아서 짝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의 순서와 관계없이 3월에는 122쪽을 가르치게 되고, 5월에는 13쪽을 가르치게 되었다. 다음은 2016학년도 1학기 문학 과목의 수업계획서이다.
문학 1학기 수업계획서(2016년 1학기)
위와 같이 교과서의 진도 순서가 아닌, 성취기준별로 교과서를 재배치하게 되면서, 많은 양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핵심이 되는 사항(학생의 역량 중심)만을 반복하여 생각하게 하는 ‘생각만들기’수업이 가능해졌다.
셋째, 수업시간에 성취기준만 가르치고 평가하였다.
수업시간에 성취기준만을 가르치고, 성취기준을 활동하게 하고, 활동한 자체를 평가하였다. 예를 들어,
"31014-2.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며 글을 읽을 수 있다."라는 성취기준을 수업시간에 가르친다고 하면 그 텍스트가 무엇이든지 간에,
첫째. 글을 읽게 한다.
둘째. 글을 읽고,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시범 보인다.
셋째. 각 문단별로 요약하게 하고 발표시킨다.
넷째. 글 요약하는 과정(쓰기와 말하기) 자체를 평가한다.
라는 수업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은 결코 스스로 요약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정답을 불러 주기를 학수고대하였다. “너희들이 요약한 것을 평가하겠다.”라고 하자 마지못해 한두 줄 끄적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또 정답을 요구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인내심이 필요했다. 한 시간의 수업으로 완성되는 것보다는 수십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들이 스스로 요약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자 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조금씩 스스로의 힘으로 의미를 재구성하였고, 그 과정에서 탐구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점차 세련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넷째, 수행평가는 작게 쪼개서 수업시간 중에만 실시하였다.
수행평가는 수업시간에만 하였다. 수업시간 중 학생들이 활동(수행)하는 모든 과정을 관찰하고 조사하고 게시하게 하여서, 그것을 바로바로 평가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평가의 영역별 점수 자체를 5점 이상 넘기지 않았다. 관찰 평가를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상중하, 즉 543평가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거의 매시간 학생들에게 성취기준을 수행하게 하고, 잘한 학생들은 5점을, 못한 학생들에게는 3점을 주었다. 나머지는 4점이 되는 것이다. 모든 학생을 다 관찰하기 어려웠을 때는 1/3씩 돌려가면서 채점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관찰하는 방법이 능숙해 지면서, 동시다발적인 발표와 게시, 관찰, 게시 등의 방법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고전 2학기 수행평가 평가표
다섯째, 이왕이면 숫자가 아닌, 말로 된 평가도 하려고 애써 보았다.
수행평가를 할 때 숫자로 된 평가뿐만 아니라, 학생부의 교과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나 교과별 독서사항에 기록될만한 것들을 관찰하여 기록하여 보려고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30여 년의 교직생활을 해왔으면서도, 수업시간에 학생의 활동 하나를 제대로 서술하여 평가한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전문성 자체가 없다는 자괴감까지도 들었다. 앞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였다.
여섯째, 비교과 활동(행사)은 수업을 심화시키거나 결과발표회로 하였다.
성취기준 중심의 수업과 평가는 학생의 역량 성장을 목표로 한다. 역량은 ‘계획하고 – 탐구하고 – 표현하는’ 것의 총칭이나, ‘표현하기’로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수업의 집약부분이 ‘행사’로 나타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수업의 심화과정이거나 수업을 결산하는 마무리 발표회의 성격을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는 생뚱맞게 수업과는 무관하게, 즉 ‘계획하고 탐구했던’ 모든 과정을 잘라버리고 ‘표현하기’부분에만 집착하게 되고, 이것이 생뚱맞은 행사, 보여주기 행사, 몇몇 소수만을 위한 행사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다.
이는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수업과 연계가 되도록 재구성해야 하며, 가급적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계획-탐구-표현’의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중간점검이거나, 마무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학교 국어과에서도 생뚱맞게 각기 따로 진행하던 행사들이 있었다. 백일장, 토론대회, 주제발표회, 문학의 밤, 문학기행 등이 그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행사들을 가급적 수업으로 끌고 들어오는 방법을 3년 전부터 연구하여 실천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교과연계 행사의 예시
수업시간에는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읽는 것만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읽은 부분, 알게 된 것, 깨닫게 된 것‘으로 서평을 쓰도록 하고, 모둠별 토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항상 한 명 이상은 발표를 하는 수업을 진행하였고, 평가하였다.
독서하고 서평쓰고 발표하기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서평쓰기를 바탕으로 창작하는 시간, 즉 백일장을 수업시간 중 실시하였고 그 작품들을 걷어서 수행평가한 후, 잘된 작품은 시상하였다. 백일장이 끝난 후, 모둠별로 토론주제를 정하고, 토론주제에 따라 모둠 내에서 토론하도록 하였다. 토론하는 내용은 반드시 기록하도록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모둠별로 토론한 내용을 3분 이내에 발표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수업시간 중 이루어지는 토론대회이며, 수행평가 과정의 하나이다. 그리고 반에서 가장 잘한 모둠을 뽑아서 반간토론대회(비경쟁식토론)을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행사로서의 토론대회이다.
학급간 토론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은 다시 이것을 ‘주제 연구’로 변환시켜 문학의 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수업차시의 뒷부분에서는 ‘카인의 후예’를 비평하는 내용으로 9컷 만화를 그리도록 하였고, 가급적 많은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17차시 수업이 마무리가 되고 난 후 ‘황순원 문학의 밤’을 행사로 실시하였는데, 이는 17차시 수업을 마무리하는 일종의 책거리이고, 일종의 수업 종합발표회 같은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즉, 토론 주제 연구 발표, 백일장 작품 발표, 시노래, 작품을 패러디한 연극 등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문학의 밤에 참가한 학생들을 데리고 ‘소나기 마을’을 방문하였는데, 이로써 3월부터 시작한 총 17차시 수업과 문학의 밤과 문학기행을 마무리한 것이다.
문학의 밤 및 문학기행 행사
일곱째, 학생활동 자체를 누가기록하여 학생부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3월에 책읽기를 시작한 것에서부터 8월에 문학기행을 간 것까지, 학생들은 수업장면에서 끝없이 읽고, 쓰고, 말하고, 표현하였다. 그러한 과정들을 밀착하여 평가해 줄 뿐 만 아니라, 그 평가 자체를 말로 누가기록 하고자 하였다 누가기록을 하기 위해서 별도의 수업일지를 만들었다. 수업일지에는,
✜ 일시/교시/반
✜ 진도사항
✜ 수업과정
✜ 학생활동 상황: ‘누가-무엇을 배울 때-어떤 주제로-어떤 활동을 하여-어떤 성장을 보여주었다.’의 형태로 기록될 수 있는 것
✜ 과제
✜ 수업에 대한 성찰 등이 기록되도록 하였다.
수업일지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하고 통합하여 학생부에 기록하였는데, 본교에서는 1학년과 2학년의 거의 모든 학생들의 교과 독서사항에 다음과 같이 기록될 수 있었다.
학생부 누가기록 예시
1학기 교과별 독서기록 예시
4. '교육과정-수업(행사)-평가(기록)의 일체화'수업을 실천해 보다
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수업인 발문 중심의 짝 활동
교사 중심의 수업을 벗어나 학생중심의 수업, 상호의사소통 중심의 수업으로 이행할 때, 가장 쉽게 접근한 것이 발문 중심의 짝활동 수업이었다. 처음부터 모둠협력학습을 할 경우, 실패할 경우가 높기 때문이다. 우선 학생들에게 배부할 활동지에 ‘무엇은 무엇이다.’가 아닌 ‘무엇일까? 왜 그럴까?’ 형태의 단계적 발문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약 10분간 혼자 풀게 한 후, 다시 짝의 것도 함께 게 하고, 서로 토의하여 맞추어 보도록 유도하였다. 그 과정 자체를 평가하였다. 그리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발문중심 짝활동 활동지 예시
발문중심 짝활동 수업흐름도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학생들은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표현하게 된다. 이 과정을 관찰하여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누가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생활동 누가기록 사항
나. 모둠을 조직하여 협력학습을 시도하기
짝활동이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난 후, 모둠을 조직하였다. 처음에는 성적과 성향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4인 1조의 이질적인 모둠을 편성하고 역할도 강제로 조직하였다. 1학년 2학기에는 모둠만 편성해 주고, 역할을 학생들이 정하도록 하였고, 2학년 1학기에는 모둠장을 공모한 후에 모둠장들이 모둠원을 편성하도록 하였고, 2학기에는 학생들 스스로가 모둠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부터 자유롭게 모둠을 편성할 경우, 원활히 이질적 모둠이 편성되지 못하여 모둠활동 자체가 잘 되지 못하는 그룹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모둠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나면, 학생들에게 스스로 맡겨 놓는 것이 오히려 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둠 편성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역할부여이다. 역할은 지극히 단순해야 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부여하였다. 그리고 그 역할 수행 여부에 대해 항상 관찰하고 기록하고 평가해 주었다.
모둠내 역할
주된 모둠활동은 모둠 내 협력학습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다. 토의하기도 하고, 서로 질의-응답하기도 하고, 과제를 나누어 해결한 후 서로 가르치기도 한다. 협동학습의 직소모형을 그대로 적용하였더니, 산만하기만 하고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 자체를 해결하기를 어려워했다. 그래서 철저하게 변형하였다. 그 방식은 다음과 같다.
변형된 직소모형의 활용
다. 가르치기 귀찮을 때, 아이들에게 수업의 책임을 이양하기
주로 지식적인 부분이 많은 단원을 가르칠 때 사용하였다. 우선 10분 정도를 빠르게 핵심사항을 주입식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다시 모둠의 리더인 이끔이가 모둠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가르치도록 한다. 그런 후에 모둠원끼리 서로 토의하면서 학습을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칠판 나누기를 통하여 이번 수업에 학습한 내용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때, 한 번 나와서 칠판나누기를 한 아이는 다시 나올 수 없다. 나와서 쓰는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모둠원들은 칠판 나누기를 완성하기 위하여 끝없이 공부해야 하고, 전략을 짜야 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다소 산만해 보이지만,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면, 학습량이 매우 높다고 한다.
책임이양 학습법
이끔이 다시 가르치기와 칠판 나누기
학생활동 누가기록 사항
라. 각자 맡은 질문에 대하여 공부하고, 설명하기
발문 수업의 어려움은 학생들에게 질문하여도, 대답하는 학생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답을 회피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기가 일쑤였다. 이 수업은 성취기준을 다시 몇 개의 발문으로 나누고, 그것을 사전에 공개하고, 그 질문에 대해 설명할 학생을 사전에 정해 놓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각자 맡은 질문을 탐구하거나 교사나 타 학생에게 자문을 구하는 형태로 공부한다. 어느 정도 학습이 완성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교사는 뒤에서 질문을 하고, 맡은 바 학생이 그 질문에 대해 사전 공부한 것을 설명하는 수업방식이다.
각자 맡은 질문에 대하여 공부하고, 설명하기
질문공부하기 역할 나누기
학생활동 누가기록 사항
마. 절반 이상을 실패한 수업 – <우리도 샘> 수업 프로젝트
2014년에 큰 욕심을 부렸다.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을 계획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후에 50분간 수업을 진행하는 수업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학생들에게 전반적인 수업의 흐름을 이야기하였더니, 좋다고들 하였다. 의욕적인 출발이었다. 그 흐름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도 샘’ 프로젝트 수업 흐름도
그러나, 학생들은 수업계획서조차도 제대로 작성할 줄을 몰랐다. 그냥 자습서의 내용을 베껴 온 것이 대다수였다. 그때부터 학생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몇 번이나 반려하고, 자료 조사도 다시 시키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수업을 실연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학생들도 욕심이 컸지만, 나 자신도 의욕이 넘치다 보니,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졌다. 거기에다가 타 과목 선생님들의 불만도 생겨났다. 학생들이 내 과목만 하느라 힘들다고들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교사도 학생들도 자꾸만 지쳐만 갔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면서 하는 마지막 단계는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그렇게 집중되고,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수업을 본 적이 없었다. 훗날 학생들도 이 수업만큼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고들 하였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고자 했던 준비단계, 너무 많이 빼앗긴 시간들, 대학원생 정도나 가능했을 법한 다양한 탬플릿과 PPT를 만드는 것, 모둠원 간의 역할 분담이 잘 되지 않아서 일부 학생들의 고생이 심하였던 것 등에 대한 큰 반성을 남긴 수업이었다.
학생활동 누가기록 사항
교대에 진학한 어느 학생의 자기소개서 1번 항목과의 연결
바. 실패를 거울삼아 … 다시 시작한 시 탐구 프로젝트 수업하기 2014년에 실시하였던 프로젝트 수업의 실패를 교훈삼아 몇 가지 원칙을 정하였다.
- 첫째, 수업시간에만 한다. 절대 과제로 나가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 둘째, 모든 탬플릿은 간략화하고 단순화한다.
- 셋째, PPT나 UCC, 상황극을 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도 작성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야기로만 발표한다.
시탐구 프로젝트 수업 흐름도
학생들이 만들어야 할 계획서는 오직 1장으로 줄였다. 배운 것을 적고, 모르는 것을 찾고, 모르면서도 알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표계획을 세우도록 하였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계획서는 모두 수거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 시간에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수업시간에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발표 역시 아무것도 들고 하지 않고, 다만 칠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학생들은 ppt 없이 발표한다는 것에 상당히 당황하였다. 나 자신도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완벽한 기우였다. 아이들은 무척 자연스럽게 칠판에 쓰거나 그려가면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시탐구 프로젝트 수업 흐름도
2015 시탐구 프로젝트 수업 계획서 및 실제 발표
사. 8가지 글감으로 만나는 <나도 선생님>프로젝트 수업하기
2016년 2학기에 고전과목을 선택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세계의 명저를 읽힌다는 것은 좋은데, 이 어려운 글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읽힐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많은 고민 끝에 이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하고 실행하였다.
- 첫째, 한 편의 글을 다 같이 읽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한 모둠당 1개씩 다른 주제의 글감을 선택하여 읽게 하고(선택적 읽기와 선택적 생각 나눔), 이를 전체의 학생들과 생각을 공유하도록 전개하였다. 글감은 삶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인간, 자연, 종교, 사회, 과학, 예술 등)의 것을 선택하게 하였다.
- 둘째, 모둠 내에서 하나의 글감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토의를 통해 의미를 명확하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가지도록 하였다.
- 셋째, 모둠 내에서 의미를 재구성한 후, 이를 전체의 생각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실제로 수업을 해 보는 ‘나도 선생님’수업의 형태를 가지도록 하였다. 긴 호흡의 수업의 마지막 표현하기의 단계라 할 수 있다. 그것을 구체화하면 다음과 같다.
5. 내가 생각하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의미
학교는 ‘학생의 살아가는 힘(역량)을 키워주어 성장시키는 곳’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의 목록, 배우는 양과 순서까지 의도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 교육과정이다. 그리고 의도된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절대적이고 핵심적인 활동은 당연히 수업활동이다. 또한 그 수업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이 얼마나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를 검증하는 것(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이 바로 평가라 할 수 있고, 그 평가의 결과를 수치나 문자 등으로 표현한 것이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가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교육과정과 수업을 피드백하여 수정할 수 있고, 이 단계의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된 학생의 경우는, 다음 단계의 교육과정으로 이행(진학이나 선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수 십 년간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성공’, ‘출세’라는 화두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교육은 받는 것 자체가 출세와 성공을 위한 수단 정도로 치부되었고, 특히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것 자체가 학교 교육의 최고의 목표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도대체 어떤 이가 더 좋은 학교에 가야 하는가?’에 몰두하게 되고, 그 기준으로 ‘성적’을 내세우게 되는데, 그것은 ‘성장의 지표로서 성적 매기기’가 아니라, ‘서열중심의 분리를 위한 성적 매기기’라는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성장을 위한 성적 매기기’는 지식을 넘어 이해와 창의를 측정하려 하지만, 오직 ‘분리를 위한 성적 매기기’는 모든 이의 인정과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지식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가 생긴다. 초창기에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열중심의 성적’에 집착하게 되고, 이러한 평가시스템은 역으로 수업도 오직 점수를 따기 위한 암기식 수업, 유형풀이식 수업 등 기술과 요령 위주의 수업이 만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특히 고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만연되어 있던 행태이며, 누누이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였음에도 견고한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런 시스템으로 대학에 진학한 인재들이 우리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고, 그들에 의해서 우리 사회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성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대학 진학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이라는 교육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과정, 그리고 성장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수업, 성장의 지표로서의 평가라는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흐름과 연계성을 망각하고 말았다. 그 망각된 흐름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는 급격한 몇 가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자동화, 기술 혁신, 인터넷, 융합, 창의, 인구 절벽, 경제 장기 침체, 청년 일자리 부족’ 등의 의미로 해석되는 급격한 변화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가장 크게 타격을 받게 된 것은 기업들이었다. 항상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은 살아남았지만, 과거의 성공만을 믿고 혁신하지 않은 기업들은 최근 수없이 도태되었던 것이다. 노키아, 소니, 파나소닉, 대우조선, 한진 해운, 대우조선, 다음커뮤니티의 몰락과 구글, 페이스북, 화웨이, 카카오톡의 급성장이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혁신하는 기업을 이끌었던 인물들은 놀랍게도 ‘단순한 성적이 좋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닌, ‘혁신 마인드가 있고 탐구력과 협력적인 태도’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기업의 인재 요구 변화는 대학에도 위기감을 주었다. 즉, 단지 서열이 좋은 대학이라는 인식만으로는 그들의 졸업생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생들 역시 대학에만 진학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당연히 대학도 ‘단순히 문제풀이와 암기를 잘한 성실하기 짝이 없는 학생’ 보다는 ‘도전적이고 혁신적이며, 협력할 줄 아는’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는 그동안 우리 교육시스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되물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첫째, ‘성장’이라는 교육목표를 구현한 교육과정이 학교현장에서 제 구실을 하고 있는가?
- 둘째, 기초교육-이해교육-창의성교육으로 이어지는 연계된 교육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 셋째, 수업을 통해 학생의 성장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가?
- 넷째, 평가가 과연 수업을 통한 성장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가?
- 다섯째, 바람직한 평가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있는가?
이 의문들의 의미는 결국, 교육의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러한 논의들의 핵심적 키워드로 모아진 것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라는 용어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육과정 일체화란,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왜곡되고 파행적으로 채 이루어졌던 교육행태들을 바로 잡기 위한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교육시스템으로의 회귀’라는 패러다임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교육시스템으로의 회귀’라는 교육과정 일체화 운동은 그래서 이론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실천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것은 교육학자나 대학관계자가 아닌 최소한 중고등학교 교사 공동체가 가져야 할 실천적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교육시스템으로 회귀’하기 위한 실천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 단계 | 실천적 의미 |
|---|---|
| 교육과정 | - 소수 학생의 성과가 아닌, 다수 학생의 성장을 위한 것 - 수업,평가,행사로 연계되는 모든 것의 계획 - 구호가 아닌, 교실 현장에서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것 - 교사가 스스로, 학생들의 실태를 고려하여 재구성하는 것 - 학생들이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것 - 교과서가 아닌, 성취기준으로 가르치는 것 |
| 수업 | - 교육과정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
-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수업하는 것 - 지식보다는 이해와 생각을 심어주는 수업 - 배움 중심 수업 - 메타인지를 중시하는 수업 - 계획하고, 탐구하고, 표현하게 하는 수업 - less is more를 실현하는 수업 |
| (행사) | - 수업을 심화시키는 것(수업의 보고회 같은 것) - 계획->실행->보고의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것 - 학생 성장과 진로에 부합되는 것 - 소수가 아닌 다수가 참여하는 것 |
| 평가 | - 수업 밀착형 평가(배운 것 그대로 평가하기) - 수업 과정형 평가(수업시간 활동 자체를 평가하기) - 관찰과 조사, 게시 등을 통한 평가 - 정량과 정성의 조화 - 정답보다는 해답 평가(almost 평가) |
| 기록 | - 평가의 또 다른 이름 - 개인적 성장에 대한 평가 - 평소 관찰, 조사, 게시 - 누가기록 - 객관적 사실 - 구체적 맥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