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이슈이슈!
교육, 그 뜨거운 설렘!
2002년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한 시기, 나는 도서관에서 ‘꿈은 이뤄진다’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적힌 방석을 깔고 앉아 임용고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4강 진출이라는 기적과 같은 결과를 냈고 그해 겨울 나 또한 삼수 끝에 기적과 같이 경기도 중등 과학교사가 되었다. 내 인생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합격과 동시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어렵고 두꺼운 전공책을 던져 버렸다. 대신 나의 마음은 아이들과 함께 할 기대로 쿵쾅거리고 있었다.
Ⅰ. Step by step
첫 학교는 중학교였다. 4년 동안 아이들과 알콩달콩하면서 모형, 영화&만화 등의 다양한 시청각 자료, 체험, 실험 등을 통해 과학지식을 쉽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던 시기였다. 강의식으로 아이들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준비한 다양한 수업자료들을 바쁘게 펼치면서 흥미를 유지하려 했고 아이들도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다. 그때는 나 스스로 수업에 도취하여 자신감이 넘쳤던 시기기도 했다.
다음으로 이동한 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의 최하위 고등학교였다. 교재연구를 열심히 해서 수업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 아이들은 무기력, 취침, 무단지각, 결석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이들은 흥미 있는 수업자료에도 잠깐 관심을 보일 뿐 수업에 참여할 의향이 없어 보였고 나의 자존심은 처참히 무너졌다. 그들의 삶이 배움과는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때 나는 방어 기제를 사용하며 수업붕괴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했다. 그리고 적당히 타협하기 시작했다. 자유 시간을 주겠다고 아이들을 유인하여 짧게 허락된 시간에 압축된 강의를 쏟아부었다. 수업준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편한 직장 생활이 기쁠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점점 작아져 눈치를 보고 있었으며, 수업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갈 때는 뒤통수가 따가웠다. 무언가 모를 부끄러움이 나를 조금씩 잠식해가고 숨을 조이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세월도 흘러갔다.
‘나는 왜 교사가 되기를 꿈꾸었던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수업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고… 각종 연수 신청, 수업 세미나 참여, 수업 컨설팅, 교육 관련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수업기법은 우리 학교 아이들 수준에 ‘맞네, 아니네.’ 재지 않고 우선 시도해 봤다.
Ⅱ. Hop
근무하는 지역이 평준화가 될 즈음, 혁신학교로 이동했다. 특목고, 자사고를 통해 아이들이 선발되어 나간 후 남은 일반고는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들어진 상태였다. 아이들의 학업역량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기에 어느 수준에 맞춰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난감했다. 졸업만이 목적인 아이들과 수능 문제 풀이까지 원하는 아이들이 섞여 있는 교실에서 교사의 고민은 더 깊어져 갔다.
Ⅱ-1.
혁신학교로 이동한 가장 큰 이유는 수업에서의 자율성이었다.
‘선생님이 원하는 수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
라는 동료의 추천은 규제 때문에, 안전 때문에, 수능 때문에… 온갖 ‘때문에’의 억압으로 펼치지 못했던 나의 수업 본능을 꿈틀거리게 했다.
버리는 과목으로 취급받는 ‘문과 과학’을 맡게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주당 2시간 수업을 블록타임으로 묶고 주제별로 다양한 활동식 수업을 디자인했다. 1차 목표는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 2차 목표는 기다려지는 즐거운 과학시간. 상상한 수업이 실현되는 것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해서 더 즐거웠다. 교과 연구회에서 발표 기회가 주어져 동료 과학 교사들에게 사례를 전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이 복 받은 것 같아요. 즐거워 보여요.^^ 하지만 우리 학교,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사실 문과 과학수업의 성공은 수능이라는 장벽을 걷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정말 배웠을까? 수업은 아이들이 재밌게 활동하고 참여하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나의 수업은 재밌지만 아이들의 사고를 촉진하는 깊이를 가진 수업이었나?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을 정말 따분해할까? 깊이 생각하고 배움에 몰입한 경험이 없기 때문 아닐까?
고민이 깊어지면서 다음해 아이들을 맞았다. 1학년 아이들에게 ‘지구과학Ⅰ’이라는 수능 과목을 주당 2시간으로 진행해야 했다. 문이과로 나뉘지 않은 1학년, 수능 선택과목, 주어진 개념만 전달해도 빡빡한 주당 2시간 수업…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는 이 상황의 해결책을 ‘학생 스스로 배움을 구성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 로 결정했다.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여 천문학 파트를 재구성하였고 모둠을 구성해 주제(일주운동/연주운동/달의 운동/태양의 운동…)를 나눠 함께 내용을 학습한 후, 공간적 사고를 접목하여 창작물을 만들어내도록 요구했다.
천문학 프로젝트
결과물을 발표하면서 동료평가, 자기평가까지 프로젝트 수업의 매뉴얼대로 꼼꼼히 따라 했으나 결과는 대실패…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아이들의 수준 파악이 제대로 되지 못한 부분이었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 궁금해서 찾아볼 것이라는 너무나 이상적인 기대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기주도 학습이 능숙하지 않은 1학년 아이들에게 어려운 천문학 단원을 스스로 학습해서 공간 아이디어를 사물에 적용한 후 창작물을 만들어내게 했으니… 거기에 혼자도 아니고 갈등의 총산인 모둠을 구성해서 하라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나 또한 아이들 질문에 정신없이 진행한 것 같다. 물론 교사의 의도대로 잘 해낸 아이들도 있다. 30명 한반에 2~3명 정도. 그 보석같은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였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을 놓친 나의 이 프로젝트는 더 깊은 고민으로 빠져들게 한 계기였다. 고민이 들 때마다 책을 읽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나의 수업을 관찰하고 반성했다. 이때의 생활기록부 교과세부 특기사항 기록이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
보석을 발견할 순 있었지만 모두를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프로젝트 수업. 위 기록을 읽어보면, 온통 천문학 수업 이야기인데 중간에 지질학 수업이 한 줄 적혀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그 해에 학생 참여형태의 수업을 구상하고 실현하고 싶었지만 동료교사에게 함께 하자고 설득하지 못했다. 강의식 수업보다 훨씬 힘든 이 방식을 함께 할 것 같지 않았고 동료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과목수업을 A, B로 나눠 들어가 각자의 수업방식을 고수하는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때 왜 나는 동료 교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Ⅱ-2.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수업 아이디어를 디자인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온 에너지를 쏟고 결국 실패하고 그 이유를 혼자 고민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방식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 시기에 동료 지구과학 교사가 휴직을 하게 되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온전히 나의 수업철학에 맞는 분을 모실 수 있길 고대했다. 혼자만의 고군분투에 한계를 느꼈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하늘이 도왔을까? 심사과정에서 나의 수업철학과 일치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너무나 기뻤고 그 선생님과 매주 고정된 시간에 만나 다음 수업을 설계하고 서로의 수업을 피드백해주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함께 하니 의지가 되고 소진되던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UNESCO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도에 대해 논문을 쓰신 그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지질명소 단원을 재구성하여 아이들의 삶에 교과를 접목하려 디자인했다. 과학실에서 잠자던 암석 표본을 꺼내 교내 화단에 숨기고 3학년 지구과학Ⅱ를 수강하는 선배들이 수학공식과 나침반 앱을 이용해 지도를 제작하면 1학년 아이들이 지도를 들고 화단에서 암석을 찾는다. 찾은 암석이 모티브가 되어 한반도의 암석지형을 연결하고 이를 스토리화하여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암석을 찾는 활동에 남학생들의 즐거움, 그림으로 스토리화하는 작업에 여학생들의 기쁨, 함께 발표하는 경험… 전년도의 천문학 프로젝트가 너무 수준이 높아서 실패한 것에 반해, 암석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또 한계에 부딪혔다. 5~6차 시가 소요되는 프로젝트가 주당 2차시 교과에서 적절한지의 여부이다. 그 기준은 또, 수능이었다. 수능에 1~2문항 출제되는 파트를 프로젝트까지 진행할 필요가 있었는지… 풍선효과로 여기서 늘어난 시수는 다른 파트에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너무나 비슷한 성향은 창의적 수업설계에서는 빛이 났지만 디테일함을 요구하는 평가 부분에서는 난항을 겪었다. 3,2,1로 점수가 부여되는 평가요소에서 3점과 2점을 판단하는 기준은 교사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교사의 수업만 화려해 졌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화단을 헤매 암석을 찾았고 암석 지형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하며 서로 배웠지만, 자료 조사를 제외하고는 지적인 몰입과 사고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 활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수업을 통해 마음이 움직인 아이들에게 자연유산 보존 시민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기부를 권했고 몇몇의 아이들은 꼬깃꼬깃한 자신의 돈을 기부하며 실천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자연적 시간의 위대함과 가치라는 울림을 준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지질 프로젝트
2학기가 되면서 좀 더 아이들에게 집중했고 지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수업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큰 프로젝트로 움직이는 거창한 수업이 아니라 잔잔히 수업 안에서 아이들에 집중할 수 있는 디자인. 과학실에서 ‘산사태를 유발하는 요인’에 대한 모둠별 잠정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설계, 실시한 후 교실에서 실험 결과를 함께 보면서 가설을 유추, 조작변인과 통제변인의 설계, 결과 해석 등을 분석했다. 그 때마다 반짝이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깊은 관찰의 눈으로 실험 설계의 오류를 지적하는 아이, 교사가 가져간 모형의 개선점을 짚어주는 아이… 질문이 허용되는 따뜻한 수업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생각을 확장하고 보석 같은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억하여 기록하기 시작했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
Ⅱ-3.
올해는 1학년 아이들 같은 반에 2개의 과목으로 만나는 행운이 주어졌다. 융합과학 2시간, 지구과학Ⅰ 2시간. 아이들을 발견하고 싶은데 주당 2시간 수업은 충분히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2개의 과목으로 아이들을 주당 4시간이나 만날 수 있다니! 어떤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가슴이 뛰었다.
융합과학은 수능과목이 아니기에 교육과정 재구성에 유연성이 발휘된다. 하지만 지구과학Ⅰ은 수능 출제과목이면서 내용교과로 반드시 전해야 하는 필수 내용이 존재한다. 이에 2개 과목의 균형을 맞추며 전문성을 발휘해 보고자 시도했다.
개별 학생들의 성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필평가만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이 중심이 되는 수업과 밀착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교실 안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특성과 교과 본질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교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교육과정 재구성이었다.
지구과학Ⅰ 1학기 평가계획
지구과학Ⅰ은 수능 출제과목으로 견고한 교육과정이다. 필수적인 내용을 언급해야 했고 현재 1학년이 2년 후에 수능에 응시할 때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했다. 교과서를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노트’를 도입했다. 손글씨는 좌뇌와 우뇌를 가장 활성화하는 장치이며 지구과학의 특성상 다양한 그림이 많아 이미지화 및 내용 조직화에 적합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꾸준한 노트 검사는 아이들이 학습습관을 바로 잡도록 도왔고 노트가 누적되어 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노력도 성장하고 있었다. 자료를 관찰하여 생각을 확장해 보고, 교과서를 읽고 큰 개념에서 세부적인 개념으로 구체적인 접근을 해보기도 하고, 어려운 용어를 간단한 이미지로 변환시켜 보기도 하고… 서로의 결과물을 보면서 상호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노트(처음의 대충주의 – 교사필기 따라하기 – 생각 확장하기 – 스스로 구성하기) 과정
융합과학은 교육적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설레는 교육과정이었다.
융합과학 1학기 평가 계획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 미래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익히고(지필평가), 과학적 사고가 실생활에 접목되는 경험을 연구를 통해 시도해 보며(과제연구), 어려운 과학 용어가 아닌 나의 삶에서 과학적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고(토론) 바쁘게 살아가는 삶에서 자연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포토에세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신뢰와 존중의 교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후에야 아이들은 참여하고자 노력한다. 우리의 의도된 교육 계획에 제대로 실천된 학생이 진정한 과학 1등급이 아닐까?
가장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과제연구’였다. 4인 1모둠을 구성하여 우리 주변에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산한 후 적용하여 결과를 분석하는 프로젝트였다. 아이들 하나하나와 그들 간의 관계가 드러났고 각자의 개성과 소질이 발견된 정말 고맙고 소중한 프로젝트였다. 그 중 여러 생각이 들게 한 몇 가지 사례를 적어보겠다.
모둠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혼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함께 하지 않음. 모둠원들을 데이터 수집을 위한 실험대상으로 생각함. 실험을 까먹은 학생을 탓하며 리더인 자신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학생
▶ 뛰어난 언변, 학업 역량, 다양한 재능… 훌륭한 학생이었다. 학우들에게 인정을 받아 각종 임원 등 다양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더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다. 연구가 끝난 후 학생과 대화하면서 함께 하는 과제의 의미, 모둠원의 과제가 될 수 있도록 조성할 수 있는 리더의 역할, 시키는 사람이 아닌 도와주는 리더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학생의 성장을 도왔다.
커피믹스 봉지로 커피를 젓는 습관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양파를 대상으로 실험을 설계, 그 결과를 홍보하여 수저로 젓는 습관을 유도함. 양파 실험을 보완하여 교내 대회에 진출하였고 발표 과정에서 교사 피드백을 받음.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안을 요구하였으나 결국 포기해버린 학생
▶ 과제연구의 전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학생이었다. 자료 변환이나 실행 과정, 아이디어 적용 등 여러 부분에서 전공 적합성과 역량이 드러났다. 그러나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학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인내심, 끈기의 중요성과 지도했던 교사로서의 섭섭함도 드러냈다. 아이는 자신을 되돌아봤고 좀 더 노력해보고자 다짐했다.
주장이 강한 2명의 학생이 과정 내내 부딪힘. 서로의 아이디어를 비판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함. 한 명은 끝까지 해보려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았던 또 다른 학생
▶ 두 명 모두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해보려 노력한 학생에게는 양보와 타협의 자세를, 계속 불평만 했던 학생에게는 담임, 상담교사의 전문 상담까지 이어졌다. 사실 이 아이에게는 과거부터 누적된 인정욕구와 불만이 쌓여 있었고 가정 및 전문 상담을 통해 현재는 자신의 길(미용&헤어)을 구체화하여 동아리활동으로 실현하고 있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 둘의 갈등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모둠 안의 제3자였다. 이 제3자 학생은 마지막 소감문에서 ‘과제연구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 갈등 해결, 배려의 중요성 등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하였다. 이 부분은 내가 교사로서 잊지 말아야 하는 지점,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의 고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횡단보도 안전에 문제를 느끼고 안전봉에 디자인을 적용한 후,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디자인을 보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신호를 기다리는지 분석함. 뜨거운 여름, 의자에 앉아 사람 수를 셌던 열정을 보인 학생
▶ 개인적으로 나무랄 데 없었다. 진지했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주인은 모둠이 아닌 개인이었다. 혼자서 다 해내고 다 짊어졌다. 모둠원들은 고마워했을까?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없었음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미술을 하는 친구라 프로젝트에 더 집중한 부분도 있겠지만 왜 혼자서 다 하려고 했는지.. 나의 개인적 경험과 겹치면서 아쉬움이 많이 드는 학생이었다. 때마침 ‘제1회 안전교육 체험수기 공모전’이 열려 학생의 프로젝트 결과물 응모를 제안했고 그 결과 장려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성실함이 인정받은 계기임과 동시에 함께함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였다.
연구 과정 내내 교사에게 와서 팀의 연구가 잘 진행되지 않는 고충을 토로하고, 자기 모둠의 허술한 실험 과정을 비판하고 결과 발표 때는 실패 원인을 분석하여 미리 언급하면서 질문을 사전에 봉쇄해 버린 학생
▶ 처음에는 ‘투덜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아이는 타인과의 소통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둠 과제를 잘하고 싶은데,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모둠원과 해결하지 못하고 불안함을 교사에게 끊임없이 토로했다. 50만 원의 사교육을 들여 로봇을 배우고 있다는데 물어보면 구체적이지 않았다. 과학을 좋아한다는데 열정이 보이지 않았다. 거절이 두려워 스스로 방어벽을 치고 부정적인 이야기로 타인의 시선을 끌었다. 지식은 쌓여 있으나 사람 간의 관계가 성장하지 못한 느낌. 이 아이의 역량은 어떻게 키워줘야 할 것인가?
때마침 ‘유정란 관찰을 통한 발생과정 탐구’를 주제로 방과후를 개설했고 아이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지원서의 글은 짧고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이 아이는 탐구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보였고 꾸준하며 성실했다. 수업에서만 이 아이를 관찰했다면.. 글을 통해서만 이 아이를 관찰했다면… 절대로 발견하지 못했을 장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아이는 아직도 수시로 교무실을 들른다. 나는 과제연구과 방과후를 통해 발견한 아이의 분석력, 논리적 사고력, 세심함, 끈기를 칭찬했다. 책을 권하고 사교육을 끊길 요구하며 학생 스스로 설 수 있길 지지했다. 사람은 마음을 열었을 때 진정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 않았나! 아이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방학동안 ‘사피엔스’를 읽고 거금 50만 원 로봇학원을 끊고 교내에서 자율 로봇 동아리를 기획하기 위해 친구들을 모으고 있다 하니 이보다 기쁠 수 있을까!
과제연구
Ⅲ. Fly
2016년에 이슈였던 ‘4차 산업혁명’과 ‘사피엔스’…
교사의 끊임없는 수업 개선 노력은 지식 중심 교육이 아닌 다양한 역량 중심 교육을 지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역량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 지식,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 경험은 교과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교사각각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아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수업을 디자인하기 위해 교사 개개인의 역량만을 키워야 한다면 얼마나 지치는 일일까? 개인의 역량으로 로봇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함께라면 어떨까? 과제연구를 진행하면서 1학년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온 말이 있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하다 보니, 결국은 완성해서 뿌듯했고 다음에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사 개개인의 수업개선은 막막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동료가 존재하지 않는가! 손을 내밀면 된다. 물론 쉽지 않다. 나 또한 1학년 융합과학 60% 수행평가를 5명의 과학교사와 진행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동료들이 손은 잡아 주었지만 손을 내민 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진행을 하지만 모든 것을 나에게 요구하는 동료에게 서운함과 섭섭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결국 1학기 평가과정에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그만하고 싶은 의사를 표현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동료들도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을 것이라는 나의 예감이 깨진 것이다. 다양한 수업 장면에서 학생들을 관찰하고 성장을 경험하신 선생님들은 교육이 이렇게 가야 한다며 계속 하길 원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셨던 것이다. 이것도 큰 도전인 선생님들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혼자 삐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선생님들은 좀 더 나은 2학기를 위해 마음을 여셨고 좀 더 디테일한 평가기준, 수업방법, 각종 자료들을 함께 나눴다. 마음에 맞는 사람만 어찌 만날 수 있으랴. 다양한 타인과 함께 할 때 과정은 힘들지만 더 단단해질 수 있고 멀리 갈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호모 사피엔스…. 다양한 종이 존재했지만 사피엔스만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
생물학적으로 가장 작고 약했지만 공통의 이상향을 품고 함께 했던 사피엔스. 함께하는 힘. 이것이 교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끝으로 과학 수업시간 학생들과 오갔던 대화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어. 인공지능의 발달로 많은 부분이 편리해지고 있지. 그런데 반대로, 로봇으로 대체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생각해 봤음 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엄마요!”
“그렇지. 차가운 기계에서 우리가 태어날 수는 없으니까.”
“친구요!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께 하는 친구는 뜨거운 피가 흘렀으면 좋겠어요.”
“예술인이요! 인간만의 창의적인 생각, 감정은 로봇이 절대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요!”
“응??? 왜 그렇지?”
“로봇이 수업을 하면 정확하고 틀림없는 지식을 알려주겠지만 저는 같이 소통하고 따뜻한 사회적인 수업을 하고 싶어요. 바로 선생님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