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공, 나의 진로
오랫동안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사운드미러 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는 황병준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미국의 사운드미러 레코딩 스튜디오의 한국 지사고, 2000년 5월에 이 자리에서 오픈해서 올해로 만 21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20주년이었죠.
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field recording과 mastering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음악을 녹음한다고 하면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을 많이 떠올리는데요. 여기에서는 음악이 원래 만들어지는 그 장소에서 녹음하는, 통제되지 않은 공간에서 녹음하는 것을 많이 시도하고 있어요. 스튜디오에서 한 정제된 녹음보다, 이런 날것 그대로의 공간에서 오는 그만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공연장이라든지, 서양 문화권에서는 교회에서 많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는 절이 해당될 수 있죠. 물론 레코딩 스튜디오에서도 합니다. 음악을 만들 때 크게 세 단계가 있는데, 먼저 녹음을 하고, 편집 및 믹싱을 하고, 마스터링을 해요. 이 스튜디오에서는 편집을 하고, 믹싱을 하고, 마스터링을 하죠.
요즘은 immersive sound라고 해서, 왜 영화관에 가면 서라운드 사운드가 있잖아요. 여기 스튜디오에도 보시면 앞에 세 개, 뒤에 두 개 해서 바닥에 스피커가 다섯 개 있어요. 여기에 추가적으로 천장에도 스피커가 있어서, 바닥의 2차원에 한정되던 소리를 이제는 3차원으로 들을 수 있죠. 이런 3차원 음향은 앞으로 AR, VR 등에서 사용이 많이 될 것이고, immersive sound가 앞으로는 표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얼리 어답터라서, 이런 것들을 미리 해보는 것을 좋아해서 이 스튜디오에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혹시 하시는 작업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 스튜디오의 특징이라면 고해상도의 사운드를 추구한다는 것인데요, 보통 휴대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많이 듣죠? 스트리밍을 한 거를 다시 무선 이어폰으로 들어요. 그렇게 하면 음질이 많이 손상이 될 수밖에 없어요. CD의 표준 음질이 1.4Kbps인데, 이 스튜디오에서는 그것의 32~128배로 좋은 음질로 녹음을 해요. 요즘 음악의 트렌드는 수명이 짧은 음악을 순간적으로 즐기고 또 새 음악을 찾는 것이라면, 저는 좀 더 오랫동안 사람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 또 빈티지가 대세죠? 빈티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질이 좋기 때문이에요. 저는 진정한 빈티지가 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습니다. 한 세대 지나서도 충분히, 촌스럽거나 낡지 않은 그런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저는 요즘 영화음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넷플릭스 승리호 사운드트랙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field recording으로 작업을 했어요. 강철비2 작업도 했고, 또 뮤지컬 작업도 하고 있어서 이번에 뮤지컬 영웅 작업을 끝마쳤어요. 이 밖에도 명성황후, 노트르담 드 파리 같은 뮤지컬들을 매년 몇 편씩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제주도에 아르떼뮤지엄이라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고흐나 고갱의 작품들을 복합 미디어 작품으로 재해석한 전시 등을 하는 공간인데, 이러한 전시 공간들에 미디어 작품을 설치할 때 사운드를 점검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선배님께서는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전공을 선택하셨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 알고 지내던 형이 전자공학을 전공했어요. 그 때는 컴퓨터가 정말 초창기라서, 마우스도 없이 펀치카드라는 것으로 입력을 하던 시절이에요. 그 형이 언제는 저한테 자기가 이메일이라는 거를 쓰면, 버튼만 누르면 미국에서 그 순간 바로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가 그 때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했죠(웃음). 8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그 형의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그 형한테서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으면서 엔지니어나 과학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죠. 또 어릴 때부터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서, 오디오 장비들에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아마 전기전자 분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선배님께서는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무지하게 바빴어요(웃음). 하는 게 워낙 많았으니까. 솔직히 전공에 그렇게까지 흥미가 많은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음대 수업이나 사회대 수업처럼 제 전공이 아닌 수업도 많이 들었어요.
그 때는 음악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하지 못한 때였어요. 그래서 공대 대학원까지 갔죠. 내가 열정을 가진 것과, 의무로서 감당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어요.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쏟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마구 빼먹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대학원에 갈 정도로 공부를 하기는 했으니까요. 아무튼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음악도 해야겠고 공부도 해야겠으니까 너무너무 바쁜 거예요. 또 저희 세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빚진 마음이 강한 세대였어요. 그래서 학생들끼리 공단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거든요. 저는 주로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같이 가서 노래를 불렀던 거 같아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니까 바쁘죠(웃음).
학창시절 하신 동아리 활동이 지금 하시는 일에 영향을 많이 주었나요?
그럼요, 그럼요. 학생회관 음악감상실에서 소리지기를 했는데, 그때 제가 공대 컴퓨터 연구회에 참여할까 소리지기를 할까 고민을 했어요. 그때 공대 컴퓨터 연구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지금 네이버라든지 엔씨소프트라든지 우리나라의 IT 대기업에 상당히 많이 가 있어요. 전공을 생각한다면 공대 컴퓨터 연구회에 가야 했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음악감상실 소리지기를 꼭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소리지기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많이 듣고, 또 그 당시로서는 정말 꿈에만 그리던 오디오 장비가 음악감상실에 있었어요. 음반이 많았고요. 음악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죠. 이때 제가 의문이 들었던 것은, 해외 클래식 혹은 팝 음반과 우리나라 음반의 질적 차이였어요. 당시 음악감상실 시스템이 워낙 좋아서 그 차이가 들리더군요.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그 때는 해외의 음반의 질이 우리나라 음반에 비해서 너무 뚜렷한 차이가 날 정도로 더 좋은 거예요. 또 제가 그때 기독교 동아리에서 밴드 활동을 했는데, 저희 밴드 녹음을 했더니 이 음질은 더 나쁜 거죠(웃음). 이게 왜 이렇게 될까, 하는 의문이 저에게 늘 근본적인 의문으로서 저의 그 이후 진로의 기반이 되어 준 것 같아요.
음악과 관련된 동아리 활동이 선배님의 진로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군요. 그렇다면 현재의 직업을 선택하시게 된 자세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공대 석사를 하고, 미국에 박사과정을 하려고 갔는데 갑자기 진로를 바꿔서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 갈 때는, 그 당시에 저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박사과정을 밟고 나서, 제3세계, 아니면 연변 과학기술대나 평양과기대에서 청춘을 불사르리라. 그렇게 해서 미국에 박사과정을 밟으러 갔는데, 미국 사회는 그 당시 80년대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너무 다른 거죠.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하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저도 저 스스로를 우선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전자 분야는 워낙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성공 여부는 모르지만, 신나게 지지치 않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의무감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들여다보니까 저는 항상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더라고요. 그래서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뉴욕에 있는 음악 프로덕션을 하는 직업학교로 갔어요. 1년 동안 실무 위주의 내용을 가르치는 학교였고 그곳을 다니다가 보스턴 버클리 음대 학부로 들어갔어요. 저는 학위가 필요한 거는 아니었으니까, 학사 학위는 받지 않고, 전공 수업만 들을 수 있는 과정이 있어서 그 과정을 선택했죠.
제가 한 번 깊이 생각해서 결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걸 하는 성격인 거 같아요. 음악 프로덕션을 배우는 동안은 너무 좋고 신나서 완전히 그 몇 년 동안은 몰입해서 지냈거든요. 뭐에 취한 것처럼 하루에 한두 시간만 자도 너무 신이 났어요. 그 때 많이 배웠죠. 그러다가 한 교수님의 소개로 사운드미러라는 회사에 가게 됐어요. 글쎄 거기에 갔더니, 대학교 때 음악감상실의 오디오 매니아들이 좋아했던 높은 질의 음반들이 쫙 꽂혀 있는 거예요. ‘어, 이 집 뭔가 다른데?’ 했어요. 사실 그곳이 버클리 음대 친구들이 학점을 위해서 인턴을 많이 하는 곳이거든요. 별 생각 없이 시간을 채우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저는 대학교 때 음악감상실에서 쌓은 경험으로 그곳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선배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하는 일을 찾아서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게 부럽네요.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너무너무 신나게, 재밌게, 좋아서 하는 일은 언젠가는 내가 하는 일에 시너지를 주게 돼 있습니다. 의무감에서 하는 일이라면, 그냥 먹고사는 데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정말 뭔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건 그런 것들이에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 작업도 기술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지만 이런 것들이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나한테 음악이 그렇게 크게 다가와야지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제 바로 다음 세대, 70년대 생들은 비디오게임 세대예요. 저는 자라면서 비디오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제 조금 후배들은 어린 시절을 비디오게임과 함께했죠. 그 때는 게임을 하면 잔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 보세요. 엔씨소프트같이 거대한 게임 회사들이 생겼죠. 비디오게임으로 먹고 살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예요. 몰입하고, 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으세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선배님의 향후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제가 어쩌다 보니 인기가 많은 음악, 히트를 치는 음악보다는 마이너한 음악들을 위주로 한다고 업계에서 알려졌더라고요(웃음).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닌데, 클래식, 재즈, 국악 같은 예술음악장르를 많이 한다고 소문이 났어요. 그런 음악들 작업을 많이 한 건 맞고,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지금은 사라져가는 사운드들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고 싶어요.
제가 하는 일은 공식적으로는 서비스업이에요. 고객이 일을 맡기면 그 일을 하는 것이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일도 하겠지만, 정말 가치 있는 음악인데 자꾸 사라져가는 음악이라면 제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작업하고 싶어요. 요즘의 보편적인 스트리밍 퀄리티 말고, 이 시대의 기술이 허락하는 최대치의 기술로 그 소리를 그대로 담고자 합니다. 제가 영화 사바하 음악 작업을 할 때에는 티베트에 두 번 가서 그곳 수도원에서 사운드를 녹음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성바오로딸 수도회의 공연을 녹음하기도 했었죠. 또 피앗고라고, 피아노를 개조해서 각종 국악기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어요. 그 작업도 했고, 유기방짜 장인의 좌종 연주 작업도 했죠. 좋은 소리인데 아무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가는 그런 소리를 좋은 퀄리티로 남기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배님께서는 직접 작업하신 음원들을 스튜디오의 장비로 틀어 주셨다. 휴대폰에 편의점에서 산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듣는 것이 전부였던 필자는 처음으로 오디오 장비로도 현장에 있는 느낌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찰의 타종 소리를 녹음한 음반에 저 멀리 개울물이 조잘대는 소리, 솔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까지 담겨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감 없이, 오래 전해질 수 있도록 가장 좋은 음질로 담아내겠다는 선배님의 음악 철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